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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으로 사치스러운 시대… 그래서 고독·절망 더 깊어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2. 17. 13:19

“정서적으로 사치스러운 시대… 그래서 고독·절망 더 깊어져”
김병익 문학평론가
문화일보 : 2013년 02월 15일(金)
▲  문학평론가 김병익 씨가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문학과 지성사 사무실 앞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는 문학의 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닫힌 사고와 편향성이 횡행하는 시대다. 엄청난 속력으로 전개되는 디지털 문명의 폭풍 속에서 지식인은 과연 균형추를 잡고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이자 ‘균형 잡힌 지식인의 전범’으로 꼽히고 있는 김병익을 만나러 나가면서 품었던 의문이었다. 그와의 대화는 응어리진 의문들을 차근차근 풀어줬다. 그것은 샘이 깊은 물을 마시면 오랜 체증이 씻어지는 듯한 시원스러움이었다.

지난 40여 년 이상 문화·출판 현장의 마당발로, 또한 치열한 글쓰기로 한국의 지성사와 문화사에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은 ‘지(知)의 거장’다웠다. 명저인 ‘들린 시대의 문학’ ‘상황과 상상력’ 등 그의 저서는 거의 40여 권에 육박한다. 그는 최근작 ‘이해와 공감’에서 변화 적응의 지체자와 불능자, 탈락자까지 포용하는 인문학적 문화 전통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극단에서 극단으로 쏠리는 시대에 소외된 사람들까지 빼놓지 않는 그의 폭넓은 지적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다.

김병익은 또한 과거의 지적 유산이나 문학의 세계에만 집착하지 않고 이미 우리의 현실 속으로 들어온 미래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는 20세기가 저물어갈 무렵에 쓴 한 에세이에서, “디지털 시대의 인공 문명에 내 삶의 끝자락만 걸쳐 있다는 데 다행감을 느낀다”고 썼다. 인간의 생명을 만들고 조작할 수 있게 된 생명과학과 정보과학이 가져올 엄청난 후폭풍을 예리하게 감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두 차례 진행됐다. 1월 중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문학과 지성사(문지) 사무실, 그리고 최근 홍대앞 한 레스토랑에서였다. 75세.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였다. 겨울바람조차 길들일 수 있을 듯한 해맑고 따뜻한 성격 탓이란 생각이 들었다. 논쟁의 시기와 문학의 위기에 대한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젊은 세대의 좌절감이 큰 문제입니다.

“지금은 감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사치스러운 시대입니다. 경제적으로 옛날보다 풍요롭고 편리하고 자유로워졌다고 하지만 청년들은 고독감과 절망, 좌절감을 더 심하게 느끼지요. 197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싸워야 할 대상이 권력이든 부패든 억압이든 분명하게 있었어요. 지금은 그 대상이 애매하고 불투명해졌지요. ‘적이 없는 증오심’이라고 할까요. 지금 세대들이 우리 세대보다 심리적으로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몇 번째로 자살률 높은 나라가 되지 않았습니까. 좌절과 고독감은 객관적 상태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에 내면적으로 깊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도 더 외롭고, 뭔가 어수선하고 풍성한데 가치가 없이 화려해요. 그래서 지금은 풍성하되 가난하고, 활발하되 의미가 없는 역현상이 나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이후 우리 사회의 양분적 대결 구도가 더욱 심해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까지 모든 사태를 옳음과 그름이라는 시각으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좀처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죠. 이것이 유신체제가 남긴 가장 큰 악덕이라고 봅니다. 그때는 말 그대로 적과 나, 주류와 비주류, 체제와 반체제 등으로 분명하게 갈랐지요. 그런 양분법적인 선악의 대결 구도가 우리의 심리구조를 구성해 왔어요. 1990년대 이후 민간 정부가 되고 난 뒤에는 그런 단계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심리적으로는 못 벗어난 것 같아요. 대통령 후보의 구분도 어떻게 보면 선택의 문제지, 정의와 불의의 문제는 아니거든요. 자유사회에서 토론하고 선택할 수 있을 때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죠. 나는 이것을 택했고, 당신은 저것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정치도 아직 후진적이라는 악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꾸 유신 얘기를 하게 됩니다만 유신시대에 경제가 성장을 했습니다. 또 유신 체제를 벗어나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살아났어요. 통섭·융합이 예술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죠. 과학기술은 처음부터 정치적 입김이 약한 가운데 통섭적 기술발전을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독 정치는 유신의 악습이 가장 집요하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적과 나’라는 관계 설정이 정치세계에 아직까지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정치를 즐기기보다는 권력을 장악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생존이나 상황이 결정되는 것으로 보는 의식이 잔존해 있죠. 미국, 영국 등 이른바 정치적 선진국들을 보면 정치의 특징이 유머입니다. 의견 대립을 유머로 풀어 나가죠. 이것은 말을 잘한다기보다 인간의 품성이라든가 내면의 크기를 말하는 것 같아요. 우리 정치는 아직 그걸 못 이뤘다고 봅니다.”

―초대 문화예술위원장을 역임하셨는데 문화 분야의 지원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이명박 대통령 초기에도 그랬지만 지난 대선 때도 문화정책에 대한 공약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공공사업의 주요 항목으로 문화공간, 예술활동 방면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지요. 우리가 젊었을 때 없었던 문화적 풍요를 누리고 있어요.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 시대의 고급문화, 진지한 문자문화만이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크로스오버 등 경계를 넘어 융합하는 예술 분야가 인정을 받아요. 제가 문화예술위에 있을 때나 그전에는 문화창조자가 너무 가난하고 활동할 자리도 없으니까 저는 문화창조자에 대한 지원을 주장했었죠. 그런데 포스트모던 시대가 되면서 문화계가 엄청나게 변화했고 오히려 문화융합 분야 등이 발달됐어요. 작가와 시인들이 많아졌고 잡지도 엄청 많아졌지만 수만 많습니다. 문화 전반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이제는 오히려 순수·고급예술에 대한 지원 확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문화정책 담당자도 자주 바뀌지 않습니까.

“과거 문화예술위원장을 할 때 보니까 첫해는 이전 사람(전임 위원장)이 예산을 집행하고 두 번째 해는 자기가 짠 예산을 집행하고 세 번째 해는 자기가 짠 예산을 만들긴 하지만 그다음 사람이 맡게 돼 있어요. 자기가 구상해서 짠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해는 딱 한 해밖에 안 돼요. 전 2년 만에 그만뒀으니까 그나마도 못했지만. 문화정책과 문화철학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보면 1년에 뭘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은 제퍼슨 시절에 의회도서관을 만들었죠. 당시 의회도서관 위원장이 세상의 모든 인쇄된 것, 기록된 것을 다 모으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20여 년 동안 했어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장도 한 20년을 맡았죠. 다 장기적으로 운영을 담당함으로써 자신의 문화나 정책에 대한 철학을 구현해 냈거든요. 의회도서관이건 스미스소니언이건 뭔가 물건이 하나씩 나왔지요. 우리나라는 2∼3년마다 (문화기관장이) 바뀌고 장관은 1년마다 한 번씩 바뀌고 그러니까 그동안 뭘하겠어요. 일 배우다 마는 거지. 빨리빨리 성장하자는 그런 급함에 쫓겨 모든 조직이며 시스템이며 작업이 서둘러서 조급하게 이뤄집니다.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어떤 철학이 나오는 건지, 그걸 통해 우리가 이룩하자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알 수가 없을 정도죠. 오히려 기대되는 것은 민간 베이스에서 개인적으로 하는 작업들, 그런 것들밖에 남을 게 없지요.”

―영화가 과거 문학의 위치를 대신하고 있고, 게임이 영화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문학의 위기가 이런 좌절감을 더욱 키운 것은 아닐까요.

“문학 우월주의가 해체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군사정부가 해체된 시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이제 문학의 서사성은 위기에 처해 있어요. 작가는 창조자라는 입장보다는 영화 끝나면 자막에 감독 누구, 시나리오 연출 누구가 나올 때 그런 것 중 하나인 스토리 구성자의 위치로 밀려났다고 생각해요. 1990년대부터 문학이 낙오되면서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고 생각해 왔어요. 문명비평, 과학, 힐링 등으로 문학 수용자들의 선택의 폭이 다양해진 것도 원인입니다.”

―영화 ‘레미제라블’이 인기인데 영화와 문학과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레미제라블은 소설로 봤는데 장 발장이 숨었던 파리의 지하도 얘기가 굉장히 길게 나옵니다. 이런 것을 다 영화에 담으려면 한 20시간짜리 영화는 돼야 하겠죠. 전 아이들이 보는 아동용 세계문학전집은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로빈슨 크루소’를 예로 들어보죠. 크루소가 배 타고 항해나 하고 싶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붙들면서 내 사업을 하라고 훈계하는 대목이 나오죠. 그의 말 중에 중산층의 미덕을 설명하는 부분이 몇 페이지에 걸쳐 나옵니다. 그게 어린이 책에는 다 빠져버립니다. 어린이 세계명작은 스토리 말고 그 사이사이에 낀 숱한 사상이나 세계관을 다 제거시켜버리죠. 로빈슨 크루소는 다 알지만 진짜는 모르죠.”

―문학 인구는 더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걱정했던 것만큼 빠른 속도로 우리나라 문학, 즉 작가와 시인 위상이 약화된 것은 아니죠. 문학하겠다는 사람과 문학상이 많지 않습니까. 시인, 소설가의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랭킹 톱이 아닐까 싶을 정도지요. 작품 쓰겠다는 사람만 보면 유례없는 문화국가죠.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엉터리 잡지도 많고, 잘 아시겠지만 잡지를 일정량 사는 조건으로 시인을 만들고 소설가 만들기도 하죠. 이처럼 문학은 타락하지만 더러더러 뛰어난 작가가 나올 수가 있죠. 숱한 실패와 쓰레기 속에서도 문학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가 튀어나오고 창조적인 것 나오게 되고, 세상은 재미있고 이상한 것 같습니다. ”

―디지털 문명이 전광석화처럼 발전하면서 인문학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문명을 크게 보자면 불을 발견하기 이전과 이후시대, 문자를 발명하기 이전과 이후의 시대, 그리고 그다음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지요. 지금은 사이버 세계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으로 제일 중시하는 것이 정보기술(IT) 아닙니까. IT 변화를 통해 문명의 양상들이 그걸 축으로 해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케빈 켈리라는 사람이 쓴 문명비평서 ‘기술의 충격’을 보면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기보다는 기술진화의 최종이 신이 아닐까라는 말이 참 매력적이에요. 패러다임이 참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발전하다 최종적으로는 파멸이란 신에 부닥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기술 격차도 문제가 되겠지요.

“1999년에 나온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라는 책에는 트위터라는 말이나 유튜브라는 말이 안 나와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13억 명이 봤다는 것 아닙니까. 이런 급속한 발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국부는 늘어나고 젊은 세대는 점점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엷어지고 있습니다. 기술발전으로 말미암은 양극화 현상입니다. 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력을 적게 쓴다는 얘기고, 적게 쓰는 것만큼 부는 늘어나지요. 기술적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품위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어떤 형태로 변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통섭이나 융합이니 하는 것이 그 일환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기술적인 것이지 인간 본질에 관한 문제로 확산되지는 않았어요. 인터넷 사용자들의 연대력이 그렇게 강할 수가 없어요. 보지 않는 상대에 대해서는 친밀하고 함께 뜻을 같이하고 심지어 운동에도 함께 나섭니다. 모르는 사람과 모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골방에서 혼자 작업을 하죠. 상반된 두 성격이 한 인간에게서 나타나고 있어요. 같은 공간 안에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도 달라질 것이고, 문화권이 다른 선진권과 원시부족들 간의 격차도 점점 더 벌어질 것이고. 세계와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오래 살아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예요.”

―문학 분야 등의 4·19세대가 한국 문화를 견인해 왔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식민지 시대, 해방, 전쟁, 쿠데타, 유신 그리고 시민정부, 민주주의, 산업화 등 서양사에서 3∼4세기에 걸쳐서 겪을 일들을 60∼70년 동안에 다 겪었지요. 다행인 것은 할아버지 세대가 쇠망의 길 즉, 내려가는 코스로 경험했으나 우리 같은 경우는 상승하는 코스로 경험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행운의 세대’란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사실상의 첫 세대이며 민주화와 근대화를 함께 추진해온 세대입니다. 우리는 자기 세대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첫 세대일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변화 자체가 놀랍고, 내 몸에 맞지 않은 큰 옷을 지금 입고 있다는 그런 느낌마저 들어요.”

―과거의 문학 전통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유럽의 경우 몇 세기에 걸친 문화적 전통 속에서 작품이 나오고 있지요. 한국 같은 급변이 아니라 지속성이 지배적입니다. 선진국에선 평가해야 될 것과 무시해도 좋을 것을 명확하게 구별하고, 삼류작가가 아닌 일류작가가 되기 위한 노력이 지금까지 추구되고 있어요. 한국은 인기 많고 책이 많이 팔리면 일류작가라 하니, 정작 뛰어난 작가는 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해요. 여러 사람 문학관이 많이 생기지만 정작 중요한 사람의 문학관조차 없습니다. 이광수가 욕먹을 일을 했지만 문학적 공헌도 상당히 컸습니다. 하지만 이광수문학관이나 염상섭문학관은 아직까지 없지요.”

그와의 인터뷰는 인문학과 문학, 과학 등의 경계를 바람처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묵직한 그의 메시지가 전환기에 선 한국 문화·지성계에 주는 함의가 결코 작지 않다.

인터뷰=예진수 문화부장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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