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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와 인문학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2. 25. 17:49

"과학자도 인문학 해야 하지만, 인문학자도 과학 알아야…” ,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
  • 글| 정재승, 정리/김민영
  • 게재일 | 2011.08.30 조회수| 4702



사람들은 구분하기를 좋아한다. 삶과 죽음,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을 나누고 과학과 비과학, 인간과 자연을 구분한다. 인문학과 과학을 별개의 것으로 논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지식과 삶의 분리를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장회익(73) 서울대 명예교수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각별하다. 물리학자이면서도 인문학적 주제를 천착해온 그에게 삶은 앎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였고, 과학 연구가 곧 철학적 성찰이었다. 그가 주창한 '온생명’은 이 같은 학문의 통합과 소통의 결실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배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또 우리는 왜 배워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재승 교수(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가 장 교수를 만났다. 중앙일보와 예스24가 공동 기획한 '희망의 인문학'의 첫 특별 공개 대담에서다. 2003년 퇴임 뒤 충남 아산에 살고 있는 장 교수는 독자들과 만나려고 기차를 타고 서울을 찾았다. 25일 오후 7시30분 서울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열린 대담에서 장 교수는 "따로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연구하던 과학을 삶과 연결해 고민하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나를 인문학자로 불렀다. 과학과 인문학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승 <공부도둑>은 보통 과학자들이 쓴 자서전과 달랐습니다. 우리도 외국학자들이 쓰는 그런 자서전이 나왔구나 했죠. 너무 즐겁게 읽었고, 많이 권했던 책입니다. 공부해 온 이야기, 소소한 에피소드가 담겨 당시에도 화제가 되었죠. ‘학문이 담긴 창고의 열쇠를 훔치는 공부도둑이 되길 원했다’고 하셨는데요. 교수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장회익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하시는데요. 결코 그렇진 않습니다. ‘대단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냥 공부를 즐기는 사람이었지요.

온생명 녹색사상가 장회익의 70년 공부인생 이야기



▶정재승 공부가 제일 쉬웠나요? (웃음)
▶장회익 그건 아니고, 시험 때만 되면 괴로워하는 보통 사람이었어요.



▶정재승 언제부터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가진 공부꾼이 되셨나요?
▶장회익 초등 6학년 때 중퇴를 했어요.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공부하려면 학교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때까지 공부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정신이 얼얼해졌어요. 다들 학교에 가는데 나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온다거나 이런 일을 했거든요. 남다른 공부를 한 거죠. 그런 시간을 겪으면서 ‘그래도 공부는 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학교 공부가 아니라 나 혼자 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1년 정도 공백이 있었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칠 수가 없어서, 서당 비슷한 곳에서 공부를 배웠어요. 2학년 2학기가 되어 정식 편입을 했습니다. 그 과정이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공부하는 습성, 동기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정재승 과학자가 예순 넘은 삶을 정리한다면,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기술할 법도 한데요. 공부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겸손하게 느껴지거든요. 공부는 뭔가를 하기 전에, 준비과정으로 보이기도 하잖아요. ‘공부’라는 단어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연구자나 학자보다는 ‘공부꾼’으로 불리길 원하는 물리학자

▶장회익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삶이죠. 내가 알아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줘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뭘 하다 보면 이런 걸 더 알고 싶고, 책을 펴고, 또 읽고 그런 일들이 반복됩니다. 그걸 뭐라고 할까요. 연구? 그것보다는 가볍게 ‘공부’라고 하는 게 맞죠. 내 생의 대부분이 그렇게 보낸 시간입니다. 그러니 연구자나 학자보단 ‘공부꾼’에 가깝죠.

▶정재승 서울대 교수가 되시고 난후, 양자역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셨어요. 점점 인문학과 가까워지셨는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장회익 어떤 학문을 받아들일 때, 확실하게 알기 전까지는 만족하질 않아요. 그렇게 했던 것 중 끝까지 나를 힘들게 한 게 양자역학입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나니 달랐어요. 알고 가르쳐야 했으니까요. 듣는 사람도 알게 만들어줘야 하니, 간단하게 줄이고 요리하는 법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양자역학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걸 철학, 인문학이라고 했어요. 스스로가 만족하고, 학생들한테 도움이 되는 걸 하다 보니 절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정재승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모르실테니, 선생님의 해석이 얼마나 새로운지 간단히 한 3분 만에 설명이 가능할까요? (웃음)
▶장회익 자... 이렇게 보면 돼요. 처음엔 도대체 역학이라는 게 뭔가, 물리학이라는 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학문의 구조부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대상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인식론적인 틀을 먼저 짰죠. 고전 역학, 양자 역학 양쪽에 다 맞는 걸 만들어야했습니다. 중요한 건 인식 주체와 대상이었죠. 그 사이에 정보는 어떻게 들어오고, 이론은 어떻게 만든다, 그 틀에서 양자역학은 이것이다, 이렇게 재규정을 한 거죠. 저와 제자들이 만든 결과물이라 고전적인 코펜하겐식 해석이 아닌 ‘서울 해석’이라고 하신 것 같아요.

▶정재승 양자역학이 얼마나 어려운지 배우셨습니다. (웃음) 거시적인 세계에선 빛을 쏴서 측정을 할 수 있는데, 아주 작은 양자역학의 세계에선 빛을 쏘는 행위 자체가 결과값에 영향을 미치니 측정하는 사람이 관측 결과에 개입되는 상황이 되는데요. 관찰의 주체와 대상이 모호해지는 거죠. 반드시 관찰자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기도 하고, 관찰자에 대해 재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새로운 해석, 참 어렵기도 한데요.
▶장회익 양자역학에선 주체와 대상이 불분명해진다고 했죠. 이게 전형적인 코펜하겐식 해석입니다. 그게 아니고,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관계를 맺게 해야 한다. 이게 제 해석이었습니다.




▶정재승 <온생명에 대하여>(통나무, 2003)를 읽고 크게 놀랐습니다. 생명을 재정의 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장회익 물리학은 알고 싶은 사물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어렵다, 힘들다면서도 재미를 느끼죠. 예컨대 다이아몬드가 뭔가? 이런 질문을 갖게 되면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와 그것을 지배하는 일반적인 자연법칙만 갖고 다이아몬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탄소원자가 모여 어째서 그렇게 반짝반짝하고, 투명하고, 전기도 통하지 않는 다이아몬드가 되는가? 이 문제에 답해야 하죠. 난 ‘캘리움 안티모나이드’라는 반도체를 연구했는데. 그것이 왜 그런 성질을 가졌는가를 양자역학으로 보여주었어요. 그런데 저도 그걸 본 적은 없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아는 거죠. 보지 않아도 설명 할 수 있었으니까요.

장회익 교수가 주창한 학문의 통합과 소통의 결실



물리학자가 생물학을 거쳐 인문학자로 불리다

▶정재승 여기에 계신 분들 표정은 속은 느낌인데요? (일동 웃음)
▶장회익 그런데, 그걸로 만족이 안 되었어요. 가장 중요한 걸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바로 생명이었죠. 내가 살아가는 이 생명이란 게 무엇일까. 이 문제를 보다 깊이 고민한 거죠. 그때까지 생물을 공부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때도 물리는 좋아했지만, 생물을 싫어했습니다. 생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생물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분자생물학을 통해 DNA를 보기 시작했어요. 도서관에 가서 <분자생물학>이란 책을 읽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무언가가 열리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생물학자로 가볼까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때부터 진짜 생명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싶어진거죠.

그때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궁리, 2007)를 읽게 되었어요. 책은 별로였어요. 내가 알고 싶은 답이 없었거든요. 사기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이후에도 같은 이름의 책이 나왔죠. 린 마굴리스, 도리언 등이 썼는데 모두 슈뢰딩거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슈뢰딩거의 책은 과학사에서 연구과제로 삼고 있어요. 현대 분자생물학의 기틀을 잡는데 중요한 기틀을 마련해 준 책이죠. 거의 대부분의 학자가 그 책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답하는 데 큰 기여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힌트만 있는 거죠.

“생명이란 네거티브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 이런 주장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뭘까?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답을 찾기 어려웠어요. 어려운 문제를 풀 때는, 가장 간단한 걸 골라 접근해야 해요. 예를 들어 정재승 씨를 골라 왜 생명인가를 연구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복잡하겠어요?

▶정재승 생명이 아닐 수도 있고요. (웃음)
▶장회익 그건 너무 심하다! 가장 간단한 건 아메바, 박테리아, 바이러스죠.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생명이 아니다, 그런 결론에 도달했어요. 생명은 다른 거다. 뭐냐? 바로 온생명이다. 정재승, 박테리아, 이 모든 게 연결된 것, 그게 바로 온생명입니다. 한 생명이 존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걸 다 연결시켜 완성되는 것이 온생명입니다. 그 중 한 부분만 떼어서 증명하려니까 생명이 무엇인지 답을 내릴 수 없었던 거죠. 하물며 슈뢰딩거조차도! 물리학적 입장에서 상호작용, 인과관계를 보다 보니 온생명에 도달했습니다. 낱생명(Individual Life)과 온생명(Global Life)을 구분했습니다.


칸트와 물리학의 관계를 논하다



낱생명(Individual Life)에서 온생명(Global Life)으로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

▶정재승 제가 생명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네요. (웃음) 그렇다면 온생명이 우리에게 주는 통찰력은 무엇일까요.
▶장회익 내가 곧 온생명입니다. 30,40억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죠. 내가 먹는 음식은 무엇으로 만들어진 거죠? 태양에너지죠. 그러니 결국 태양부터 나까지 모두 연결됩니다. 말하자면 생명의 자족적인 당위를 말하는 겁니다. 올해 정재승 교수 나이가 어떻게 되죠?

▶정재승 우리나이로 40세입니다.
▶장회익 온생명으로 말하면 40억세에요. 이것이 ‘나’에요. 동시에 개체로서의 나도 있죠. 말하자면 이중적인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습니다. 온 생명이 살아있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다, 그런 뜻도 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이어달리기의 경주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정체성이 있죠. 팀으로서의 정체성, 개별선수로서의 정체성. 경기에 대입하자면, 팀이 이기면 나도 이깁니다. 하지만 나도 그 팀에 기여를 하죠. 이렇게 설명 드리면 이해가 좀 쉽죠. 그것이 온생명으로서의 삶입니다. 큰 의미에서의 내 생명은 ‘온 생명’ 속에 있습니다. 현역으로 뛰는 삶 뒤엔 쉴 날이 오겠죠. 그래서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단지, 살아있는 한 얼마나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인가가 화두겠죠.

▶정재승 <온생명에 대하여>는 퇴임하실 때 쓰신 책인데요. 너무 놀라고 감동 받았습니다. 온생명 이론과 그 비판자들의 생각이 함께 담긴 책이에요. 보통 정년퇴임 책은 주례사와 칭찬, 업적으로 꾸며지는데 선생님 책은 전혀 달랐습니다.
▶장회익 난 좋게 써줄 줄 알았죠. (일동 웃음)

▶정재승 여러분,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검열하지 않으셨다는 거죠.
▶장회익 그 분들이 성의 있게 글을 써주신 것, 토론한 것은 너무 감사했죠. 하지만 실망한 글도 있습니다. 아직 온생명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을 한 부분도 있습니다. 과학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틀 자체를 바꿔야 하는 순간이 있어요. 온생명은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우린 저절로 생명이란 무엇인가 알게 됩니다. 살아있는 것, 그렇지 않은 것, 이렇게 알게 되죠. 거기서 전 ‘살아있는 것 간의 공통점’ ‘살아있지 않은 것 간의 공통점’을 나눠 본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된 것을 ‘자득적 개념’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알고 비판해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된 것이기 때문이죠.


▶정재승 여기 오신 분들 중에는 이공계 전공, 과학 전공자도 있을 텐데요, 이 분들도 인문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장회익 인문학을 따로 한다는 생각은 너무 기계적인 것 같습니다. 앎 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삶에 어떻게 관계되느냐에 관심을 갖고 하다 보면 인문학자라고 해요.


▶정재승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장회익 즉 인문학자이니 이런 책을 읽어라! 이런 식은 아니라는 거죠. 우리 삶과 연관지어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대학 2, 3학년 때 철학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대성이론을 공부하기 위해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죠. 철학을 하고 나니 물리학이 쉽게 느껴진 건 아니지만, 도움이 된 부분이 있습니다. 양자역학, 상대성이론을 계속 들어가다 보면 철학적인 질문과 마주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 두 학문이 분리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요.


이분법적 사고를 허물어야 한다!



과학도 계속 하다 보면 철학적인 질문과 대면하게 돼…

▶정재승 공감합니다. 대상에 대해 기술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는 과학자,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적 맥락을 부여하려면 그걸 인문학적 사고라고 말하더라고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고민해야 할 부분이겠죠.
▶장회익 한 가지 더 붙이자면, 인문학을 처음부터 한 사람들은 과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아쉬워요. 그러다보니 허점이 있어요. 인문학에도 과학이 담겨야 해요. 과학이 담긴 인문학이 가능해져야겠죠. 여기 과학을 공부하려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점을 기억해주세요. 인문학, 순수과학, 엔지니어 무엇이든 제대로 과학을 해봐야 합니다.

▶정재승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인문학자들에게 욕을 먹을 텐데, 선생님이 해주시니 너무 좋네요. (웃음) 독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독자 1)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강연을 듣고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온생명이란 모두가 함께 이뤄 존재하는 것인데, 생명의 일부는 자각을 하고 그렇지 못한 게 있겠죠. 인간은 자각을 하기 때문에, 다른 생명을 이용할 수 있다는 당위성을 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드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회익 온생명 중에서 정신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죠. 어떻게 보면 놀랍고, 다행인 일입니다. 문제는 그조차도 인식을 못하고, 나 혼자 잘 살아야겠다, 온 생명의 일부를 내 주머니에 챙겨놔야겠다 생각하며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죠. 이런 사람들은 온생명에서 암세포 같은 존재입니다. 과학기술의 힘 때문에 이렇게 된 측면이 있어요. 힘이 생기니, 다른 것들을 이용하려고 하는거죠. 다른 생명을 살리려고 하지 않고, 나를 위해 다른 것을 죽이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는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내가 조금 잘 못하면 생명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이런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독자2) 과학자로서 연구를 하다 보면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지 않을까요? 과학자로서 종교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으신지요.
▶장회익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선 신을 제외하고, 그 자체로 질서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내가 신이 되어 우주를 창조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봐요. 자연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자연의 보편적 질서를 바탕으로 보게 되는데, 빅뱅 이후에 140억년이 되었는데요. 그 수많은 현상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이 생명현상 중 어떻게 정재승 박사 같은 사람이 나왔느냐, 이런 문제는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마도,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신적인 존재가 있어 무언가를 잘 만들어가려는 중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과학을 이해하는 과정과 충돌을 일으키진 않아요. 그런데 성경에 나온 말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꼭 그렇진 않을 거예요.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한 누군가의 생각이 반영된 부분일 거에요. 생태계, 역사 모든 상황이 달랐던 때의 기록이니 그 차이는 인식해야 할 부분이 있죠. 되도록 현대적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찬으로 성장을 했고, ‘논 크리스찬’이란 선언을 해본 적은 없어요. 40-50년은 교회를 안 갔지만 최근엔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웃음)

▶독자3) 두 아이의 엄마구요. 파트타임으로 일도 하고 있습니다. 과학문명, 기계문명은 발달했죠. 그러나 정신문명은 쇠퇴했습니다. 인간이 온생명의 일부분으로 타 온생명을 지배하려고 하는 중, 지구문명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의 연구가 계속 되면 지구 온생명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더 이상 과학자들이 과학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될까?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연에 해를 입히는 건 인간밖에 없다’는 말이 자꾸 생각납니다. 계속적인 과학문명의 발달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생명을 공동체와 관련하여 사유하다



과학문명의 폐해 온생명 정신으로 극복해야…

▶장회익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과학을 이해하며 힘을 갖게 된 측면이 있습니다. 동시에, 전통적인 가치관에 손상을 입히는 것도 있죠. 전통적 가치관을 설명하는 체계가 비과학적인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과학의 눈은 과거에 비해서 밝아지고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힘만 얻고, 과학이 주는 눈은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물리라는 사람도 많아요. 과학이 주는 지혜, 눈을 피하고 그것이 주는 물질적인 편리는 이용하려고 하죠. 이 점이 안타깝습니다. 온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과학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병든 부분을 치유해야 할까를 고민해야겠지요. 그래서 전 과학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기술적인 부분만 고려합니다. 그런데, 과학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 자체를 회피합니다. 비과학적인 부분만 갖고 와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싸움이 되나요? 안되죠. 먼저, 과학을 이해한 후에 싸움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니, 과학 자체를 피해선 안 됩니다. 정재승씨처럼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려주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좋은 과학자, 삶이 필요로 하는 인문학적 소양 갖춘 사람

▶독자4 생물을 공부하고 싶은 학생입니다. 좋은 과학, 좋은 과학자란 무엇일가요?
▶장회익 과학이란 사물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생물을 공부하고 싶다면,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삶이 필요로 하는 과학자에겐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 사회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과학자라고 생각합니다.

▶독자5 과학을 하는 사람은 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회는 대부분 비이성적인 사람이 구성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비이성의 인간이 합리적 사고, 과학적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게 어디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인문학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과학자도 인문학을 알아야 하듯이 인문학자도 과학 알아야…

▶장회익 제 이야기가 잘못 나가면, 인문학자들에게 매를 맞겠는데요. 인문학자들의 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과학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합리적 사고를 합니다. 직관과 감성도 있지요. 문제는 그것이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이죠. 일단은 과학의 입장에서 보는데, 머리로는 가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뭔가가 부족한 겁니다. 결국,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정말 마음에 와 닿고, 실천하도록 움직인다면 좋겠습니다. 과학과 인문학은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재승 즐겨듣는 음악이나 취미가 있으신가요?
▶장회익 그냥 음악을 즐기는 것뿐이에요. 알려고 하면 너무 복잡해질 것 같아요. 그냥 듣고 있으면 좋은 거죠. 가벼운 등산, 산책도 좋아합니다. 경쟁하는 것보단 혼자 자연을 접하는 시간을 즐기죠.

▶정재승 전형적인 물리학자이십니다. (웃음) 과학과 인문학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학자들과 대화를 잘 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어떻게 해야 생산적인 결론에 도달해야 하고, 소통이 가능할까요?
▶장회익 그런 면에서 특별히 잘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일반적인 기준이 있다면 우선 그 분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어야 해요. 어떤 시각에서 저런 말을 하는가? 그걸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보탤 부분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까요. 동시에, 나는 무엇이 부족한데 상대에게 어떤 걸 얻을 수 있는가, 이런 부분을 살펴야 합니다.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걸 얻는 과정인거죠. 그래야 서로를 배려하며 대화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점심에 그걸 써놓고’ 저녁에 가야 한다”

▶정재승 앞으로 꼭 성취하고 싶은 일, 어떤 게 있을까요.
▶장회익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다음 세대에게 넘겨줘야 할 것 같아요. 이대로 사라져버리면, 온생명 입장에선 그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난 온생명에 빚을 지고 있으니까요. 꼭 갚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마지막까지 정리해서 내놓을 수 있는가 고민해봅니다. 공자님 말씀에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런 부분이 있는데요. 나는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점심에 그걸 써놓고 저녁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그걸 알려야지, 혼자 알고 없어지면 안 되죠. 알기 쉽게, 읽으면 이해 될 수 있게 정리해야겠지요. 남은 시간 하고 싶은 일입니다.

▶정재승 요즘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장회익 읽고 싶어 보는 책도 있지만, 숙제로 보는 경우도 있어요. 오늘 오전에 읽은 책은 서평 때문에 본 <우주이야기>(대화문화아카데미, 2010)입니다. 토마스 베리, 브라이언 스윔이 함께 쓴 책이죠. 우주가 만들어진 과정과, 그것이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보여준 의미 있는 책입니다.

젊은 청춘들, 삶의 목표는 높이 가지되, 과정의 목표는 낮게 가져야

▶정재승 아파하는 청춘들을 위해 ‘공부도둑’으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장회익 삶의 목표를 되도록 높이 가지세요. 마지막 바통은 아주 중요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살아 있는 힘이 없어요. 내 삶이란 가벼운 게 아닙니다. 높은 목표를 세우라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진행하는 목표는 낮추세요. 과정의 목표가 높으면 멀리 못갑니다. 예컨대, 꼴찌에서 두 번째 하겠다는 목표를 하면,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어요. 그런 성취감을 맛보세요. 욕심을 부리면 실망하고, 의기소침해지고, 하기 싫어집니다. 앞에 닥친 목표는 작게 만들고, 그것의 달성 또는 초과달성을 즐기세요! 하지만, 최종 목표는 가장 높게! 그 목표를 위해선 아무것도 양보하지 마세요.

▶정재승 너무나 열정적인 교수님의 말씀에 감동했습니다. 내내 청년의 눈빛을 보여주셨어요. 과학자가 어떤 인문학자의 태도를 가져야 하고, 그것이 어떻게 희망의 인문학의 씨앗이 될 수 있는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시간 내 주신 장회익 교수님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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