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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문화원의 역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8. 7. 22:28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문화원의 역할

 

나호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역문화위원)

1.

 

  여러 갈래로 개념의 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문화라는 복합어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해 보인다. 그러나 지역의 정의가 무엇이고, 문화의 내포가 어떻게 되는 지 엄밀하게 따져 보지 않으면, 일단 그 정의와 내포에 대해서 합의를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논의도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할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중앙이라고 한다면 그 밖의 지역은 중앙의 대립 항으로 지방이라는 표현으로 인식된다. 문화 또한 거시적 정의와 미시적 정의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온 생활의 양태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면, 좀 더 적극적인 국면에서 하나의 산업 동력으로 받아들이거나 어떤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민중 계몽적 성향으로 흘러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역문화”를 거론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역은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각각 독립적인 정책과 권한을 지닌 하나의 조직이라고 정의함이 마땅하다. 문화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지닌 양상을 띠게 되는데 지역의 지리적 환경, 경제적 총량, 사회 인프라의 구축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지는 무형적 가치를 포괄하면서도 가끔 표준적 목표가 시야에 잡힐 듯한 환상의 덩어리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생활을 충분한 교육과 가계수입, 여가에 대한 인식과 충분한 활용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또 여가활동을 통해서 충분한 자기존재감과 생의 충만함을 느끼는 것으로 단정해도 좋을까? 이런 질문은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오늘날과 같이 세대 간의 인식차가 크고, 다양한 층위를 지닌 이념들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문화의 양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다시 문화에 대한 정의를 부연하다면 “삶을 꾸려가는 한 개인이 존재해야할 필요성을 감지하고 필요의 목표치를 향해 다가서는 인간 활동의 전체”라고 말해야겠다. 이렇게 우회해서 내린 지역문화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이해하고 애착을 가지며 좀 더 세련되고 풍족하게 자존감을 생성시키는 일련의 활동”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2.

 

문민정부에서 시작한 지방자체제도는 지역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순기능이 작동하면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거에 의해서 선출되는 지방정부의 수장은 과거의 임명제 관료들과는 달리 민의를 가까이에서 수렴하고 가시적 성과를 임기내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과거에 찾아볼 수 없는 지역발전에 관련된 참신한 프로젝트가 파생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예상 밖의 성과를 올린 것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성과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좁은 국토를 종합적으로 관리 운영할 수 있는 체제가 무너짐으로써 지역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지방정부간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시적이고 전시적인 사업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는 역기능을 감당할 수 없기도 한 것이다. 거기다가 지역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목표는 더욱 더 심화되어가는 수도권 인구와 경제력 집중 현상 앞에 무기력한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풍부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수도권은 교통, 통신의 비약적 발전을 발판으로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묶어 놓으므로서 지방의 자생능력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들어서면서 중점적으로 검토된 것이 “지역문화의 창달”이라는 캐치프레이즈이다. 이 캐치플레이즈는 매우 유기적인 여러 단계의 조건이 부합되어야만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인데, 말하자면 공공기관 및 산업시설의 지역 균등 배치로 수도권 인구집중을 억제하고 그에 따라 교육시설, 문화공간 등의 기반시설을 확충하여 지역의 자급자족 능력을 배가시킴으로써 지역에서 충분히 자존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문화’의 개념이다. 앞서 ‘문화’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 여기 있다. 문화를 축적의 개념으로 보느냐 아니면 가치를 새롭게 창조하는 생성의 원리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지역문화의 수행의 주체가 결정되게 되는 것이다. 도시와 농촌, 산간지역, 도서 島嶼, 접적지역 등의 다양한 경계는 지역문화 수행의 주체를 결정하는 잣대가 된다. 이를테면 광역시 단위에서는 구민센터, 정보도서관, 청소년수련관 , 주민센터 등이, 산간지역이나 군소도시, 농촌에서는 문화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교적 토착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의 문화와 인구 유입, 전출이 활발하고 개발이 일상화되어 있는 대도시에서의 성향이 행복하게 일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역 특성에 따라서 어느 단체는 지금보다 더 많은 역할을 부여받고, 어느 단체는 지금보다 축소된 활동영역을 지키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으며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온 전통마저 붕괴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국면에 마주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3.

 

문화원은 해방 이후 급속하게 이행되어가는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도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여 왔다. 200 여개가 넘는 문화원은 그동안 지역 주민의 애향심을 고취하고 자긍심을 일깨우는데 앞장 서 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문화원이 처한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인다. 무엇이 문화원이 처한 오늘의 현실인가? 우선 그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첫 째 문화원의 정체성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문화원의 활동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다양한 문화단체의 출현으로 축소되어가고 있고 지역적 편차에 따라 문화원에 부과되는 역할이 분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에 유적이 아니 곳이 없고, 유물이 아닌 것이 없지만, 보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문화담당자들이 배출됨으로써 한정된 인력으로 업무를 수행해 왔던 문화원의 전문성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 째, 자율적 운영의 어려움이다.

 

현재 문화원은 국고보조나 지방정부의 보조긍으로 사업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또한 일정부분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교육사업이나 기타 부대사업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한정된 인력으로 전통적인 문화원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독립채산제에 입각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이 문화원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으며 자칫 실적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민간기구화 되면서 지역문화 분과를 두고 지역에서의 다양한 문화활동과 예술의 현장성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활착시키려 하고 있음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와해된 지역 공동체 문화의 재생과 확대 재생산에 새로운 시각을 가진 신진 활동가들이 지역주민들과의 유대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 결코 문화원의 역할과 무관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셋 째,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 연구활동 등의 고유한 문화원의 업무가 대학 박물관, 연구소, 문화예술단체 등의 업무와 중복, 충돌되므로서 자칫 문화원의 역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를 뒤집어 본다면 문화원이 과거의 영역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문화원의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민중의 욕구를 감지하고 선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 하느냐의 여부가 앞으로 문화원의 중요성을 가늠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양상은 이미 문화원 내부에서부터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에 그치고 있지만 문화에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인력이 문화원내로 유입되고 있고 문화원의 역할을 바꿔 보려는 시도가 감지되고 있는 것은 위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4.

 

문화원은 지금보다 더욱 확대된 조직과 독립적인 운영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지방정부가 주관하고 있는 축제가 600개가 넘는다. 모든 축제의 동기는 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려는 데 있다. 그러다보니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지역주민의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큰 목표는 실종되고 전시적이고 소비향락적인 행사로 전락해버리는 예를 허다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방정부의 편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하나의 희망을 제시해 보자. 지역 축제의 중심 축은 문화원이 되어야 한다. 행사의 기획과 결과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문화원에서 시작해서 문화원에서 끝나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몇 가지 전제가 충족될 수 있다면 성취 가능한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결론에 다가서는 느낌이 들지만 각 지역이 가지고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충분한 자료를 축적하고 있으며 토착민의 정서를 지니고 있는 문화원의 인력이야말로 지역 축제를 축제답게 만들고 계승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앞으로의 문화원의 활동 방향과도 연관이 있는 사항이지만 지역문화 현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는 문화원이 수행해야할 문화 인력, 시설, 활동내역, 지역민의 문화 향수 실태 조사 등의 연구 활동의 활성화에 달려 있다고 본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시행하다가 중단한 “문화의 집”의 선례를 보더라도 새로운 시설을 건립하거나 조직을 신설하는 것은 비용절감의 측면에서나 사업의 집중도 면에서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조성되어 있는 문화원의 조직을 지역의 문화 활동의 허브로 정착시키는 일은 전적으로 지방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곧, 문화원의 활성화는 지방정부의 지역문화 창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서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지역문화활동’을 한갓 치적으로 생각하거나 예산 집행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문화원을 지방정부의 산하기관쯤으로 여긴다면 궁극적인 지역문화 창달은 이루어질 수가 없음은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 적어도 문화 창달에 관련되는 정책은 조령모개식이거나 전시적이거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집행되어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반드시 문화원을 비영리단체로 인정하고 독립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지역주민의 평판에 구애됨이 없이 지역의 특수성과 독창성을 찾아내고 존속시키는 활동 영역을 보장해 주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기도 하다. 전국 단위의 조직을 가진 문화원 연합회는 산재한 지방문화원간의 편차를 좁히거나 아니면 각각의 특성을 살려 차별화하는 정체성 확립을 도출하는 작업을 시행하여야 한다. 표준화된 사업 매뉴얼이 마련되어야 하고 문화원 인력의 균등화와 더불어 전문화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문화원의 이념 설정은 문화원을 구성하고 있는 인력들의 성향에 끌려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작금의 문화원의 운영 실태는 앞 서 지적한대로 독립채산경영방식의 도입으로 타 문화 교육 시설 및 단체들과의 프로그램 중복, 백화점식의 프로그램의 나열로 문화원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현상을 야기하기도 한다. 국회나 중앙정부에서 원칙 없이 입안하고 있는 문화원에 관련된 법률의 개정이나 신설 시도는 이와 같은 문화원의 정체성이 흔들리는데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고 판단된다.

 

진정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사랑받고 지역의 문화를 창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문화원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문화원을 구성하고 있는 인력들이 현재의 문화원의 위치를 냉정하고 바라보고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드러낼 때 가능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