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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시의 대중화를 위한 길찾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9. 23. 17:32

 

시의 대중화를 위한 길찾기

- 나유성의 시노사(시를 노래하는 사람들) 운동

나호열

 

 

예술 장르 간의 벽 허물기는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그보다는 인류가 예술이라는 관념을 의식할 때부터 퓨전 fusion 은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정확한 것인지 모른다. 한 편에서는 시가 어렵다고 말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당연히 시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목에 힘을 준다. 어째든 분명한 것은 이 시대의 대중들은 삶의 교양서로서의 시읽기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서 대중들은 창작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려는 당찬 욕구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시는 대중들에게 배척 받으면서도 예술의 원형으로 모든 이들의 심상에 깊이 박혀있는 형국이다. 이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한 현대시를 보다 친숙하게, 그러면서도 시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음악을 배경으로 낭송하는 것은 너무 지루하다. 퍼포먼스의 기법은 너무 소란스럽고, 시에 그림이나 사진을 곁들인 시화전詩畵展 이나 시사전 詩寫展은 독자들의 현장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의 통로, 시와 음악의 만남은 어떨까?

시와 음악은 예술 장르 중 혈통 상 가장 가까운 친족이다. 문학과 철학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와 음악도 때로는 화합하고 때로는 반목하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우리에게도 시와 음악이 결합해 온 여정은 짧지 않다. 김소월의 「초혼」 이라든가 김동명의 「내 마음은 호수요」등등 가고과 어우러진 시가 있는가 하면 고은의 「세노야」는 양희은에 의해서, 「가을편지」는 샹송 가수 최양숙에 의해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 시의 산문화 두드러지고 은유가 깊어지면서 음악의 형식 안에 시를 담는 작업은 훨씬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관념과 은유가 두드러지는 시의 속살을 음악이 감싸안으며 깊고 은은한 여운을 대중들에게 선사하려면 어떤 통로가 개척되어야 할 것인가?

 

 

나유성은 대중음악 작곡가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곡에 가사를 붙이는 작사가의 일도 병행하고 있는 사람이다. 유행가라고 불리는 대중음악은 강한 일회적 소비성을 지니고 있어 곡도 가사도 광고처럼 특별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도 제법 대중들에게 알려진 히트곡 몇 곡을 가지고 있다. 나유성, 그는 누구인가?

우리의 삶은 대개가 우연에서 시작하여 필연으로 이끌리는 궤적을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그가 음악에 매달렸던 것은 아니다. 음악에 입문하게 된 동기를 들어보자.

 

형 중 한 명이 음악을 했었습니다. 그 형님은 어려서 돌아가셨어요. 형이 죽고 난 후 남은 기타가 형을 대신했죠. 기타를 연주하는 것은 형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작곡을 마음먹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악보 그리는 법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중 3때 손도 못 잡아본 첫사랑에게 고백을 했지만 거절당한 뒤 ‘첫 사랑의 종말’ 이라는 제목으로 첫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70년대 중반이었고 통기타와 청바지가 유행하고 있었죠. 통기타 몇 소절을 치지 못하면 젊은이가 아니었던 시절이었고 양희은과 김민기가 주름잡은 때였지만 어렸기 때문에 그쪽 음악, 포크에는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뒤 고등학교에서도 그룹을 결성하고 음악활동을 했어요. 자연히 대학에서도 동아리 형식의 그룹을 결성해서 활동했고요(전공은 기계공학이었습니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었지만 계속 에선에서 탈락했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창작곡 위주로 활동했었죠.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나유성의 삶은 가파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소원이 남들처럼 월급받아 오는 것이었다고 그가 말할 때 그것이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그도 제법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십 여 년 전부터 그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현대시를 배우는 문학청년이었다. 대중음악과 본격적인 시 수업은 웬만해서는 그 갈피를 찾기 가 힘들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는 지금도 일 년에 몇 편쯤 습작시를 쓴다.

 

시노사, 즉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의 회장을 맡게 된 것도 그리보면 우연한 일은 아니다. 계간 『리토피아』는 장종권 시인이 발행하고 있는 순수 문예지이다. 1회 시낭송회를 개최한 이후, 2회 때에 시를 같이 공부하던 장성혜 시인이 나유성 작곡가를 『리토피아』에 소개하면서 시노래 작업을 시작했다. 아름다운 노랫말, 시에다 곡을 쓰는 것도 의미가 있고 그렇게 쓴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시노래는 대개 가곡으로 되어 있거나 무거운 이미지여서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없었지만, 대중가요를 작곡하는 입장에서 ‘대중적인 시노래’를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끝에 일곱 개의 시에 곡을 붙이는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2회 때에는 참가 시인들이 직접 노래를 했었다. 대개의 시인들이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기 때문에 박자를 놓치거나 음정이 고르지 않거나 하는 해프닝이 많았다. 3회부터는 노랫말도 살리고 곡도 살리기 위하여 전문 가수들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리토피아』와 연관된 시인이 자연히 많다. 작곡가도 몇 명 있지만 주로 활동하는 것은 나유성 작곡가이다. 시를 노래로 만드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무대예술가, 가수, 무대연출자, 연주자들과의 연대와 혐동 없이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시와 노래의 결합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우선 작곡을 하기 위해서는 시의 명징한 분석과 이해가 필수적이고, 시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음율에 싣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전부터 소월시의 노래화 작업등 시의 대중화 작업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대중음악과 시의 서정성을 작 접합된다. 하지만 시노사의 시들은 자유시였기 때문에 시노래로 만드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정해진 운율이 없는 시는 어느 정도의 수정이 불가피한 것이다. 수정을 끝까지 거부하는 시인들도 물론 있다. 그래서 한 사람 당 서너 편의 시를 받아서 그 중에 멜로디를 붙이기 좋은 시를 골라 작업한다. 가능하면 시의 본의를 다치게 하지 않는 방향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노래로 만들 수 없는 시는 없다. 다만(운율적으로) 고충은 있을 수 있다. 시인이 작사가는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양성모음은 고음에서 살리기 좋지만 음성모음은 힘들다. 하지만 시인은 작사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잘 알지 못하여 조금 힘들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시노사의 공식적인 활동은 1년에 한 번으로 제한되어 있다. 『리토피아』 주관으로 1년에 한 번 늦여름에 행사가 있다. 4회 공연은 지난 8월 26일에 있었다. 열광적인 행사가 끝난 후 9월 23일 ‘오산 시민의 날’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외부 행사에 초청을 받기는 처음이었고 시노래운동의 확산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오산 문협’의 초청이었다.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보다 의미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무료공연으로 성대하게 치러냈다.

제 3회 창작시 노래 한마당에서는 painrark(락 그룹)과 공연을 했었다. ‘창작시 노래’라는 용어는 아무래도 격이 맞지 않는다고 나유성은 생각한다. ‘시노래’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지 않을까?. 창작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에 노래가 새로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창작’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은 하지만, 아무래도 ‘시노래’라는 표현이 훨씬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다. 6인조 남성 락 그룹과의 공연 이후의 결론은 시와 락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의 서정과 락 rock의 무거움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젊은 관객들에게 반응은 좋았다.

그러나 나유성은 시를 노래하는 것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안되는 것을 억지로 꿰맞추려 할 때 빚어지는 파열음과 불협화음을 그는 냉철하게 비판한다. 현대시는 어렵다. 시를 시노래로 만드는 것이 시 속에 숨어있는 운율을 꺼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노래는 작곡한 것이 아니라 이미 시인이 작곡한 것이다. 냉철하게 그가 말하는 바는 이렇다.

 

음악적 요소가 빠진 시는 곡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 속에 노래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많은 시인들은 그들의 시가 노래로 불리워지는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자신의 시에 곡이 붙는다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감격하는 시인들도 있었다. 3회 때인가, 남태식 시인은 공연 중 뛰쳐나가 춤을 추기도 했다. 김지연 시인은 시노래를 녹음한 CD를 담은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나유성은 좀 더 아름답고 심오한 가사를 쓰기 위해 시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미안한 얘기지만 시의 대중화와는 역방향이다. 그러나 대중음악을 창작하는 것이 본업이라는 데에 이견을 달 수는 없다. 그느 최근에는 예술치료의 한 분야인 음악치료도 하고 있다. 음악치료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음악을 들려주거니 음악을 연주하거나, 유럽에서는 80년대에서부터 연구되고 대중화되었다는 음악치료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체계화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그는 주로 사회복지단체나 자폐아동들에게 무료봉사의 개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음악을 통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능력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음악치료는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병원에서 마취를 할 때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거나 백화점에서 고객의 구매 심리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는 3주간 자폐아를 치료한 경함을 이야기 해주었다. 자폐아들은 타인과 눈을 마주치거나 피부의 접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3주 치료만에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피부 접촉도 할 수 있었을 때, 그는 음악치료의 힘을 느꼈고 보람도 느꼈다고 했다.

나유성은 부지런하고 욕심도 많다. 연극음악이나 뮤지컬 등 음악창작에 관련된 활동들을 쉴 새 없이 하고 있다. 공주 백제문화예술제에 공연될 도솔천 뱃노래의 음악을 준비 중인가 하면, 전통과 현대 음악의 퓨전을 부단히 시도하고자 한다. 재작년 그는 구전되는 정선 아리랑을 채보하고 음반으로 내는 책임을 훌륭하게 수행한 바도 있다.

가수들의 음반 작업에 몰두하면서도 건국대 사회교육원 가요지도자과정의 강의와 경기북부연예협회 창작분과 지부장직도 욕심만큼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시노사활동은 무엇보다 시인들 자신이 시의 노래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흥겨워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시인이 흥겹지 않은데 독자나 청중이 어떻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는가. 시인들이 자신의 노래를 어디서나 청중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 시인과 청중과의 거리는 한결 가까워지지 않을까?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비용이 발생한다. 작곡이야 나유성 작곡가가 무료로 하고 있지만, 음향장비나 편곡, 녹음, 연주, 대여료 등의 문제가 남는다. 그런 문제로 공연을 많이 할 수 없다. 아직 시노사가 동호회 수준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후원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도 생활인이기 때문에 이 일에 전념할 수 없는 난점도 있다. 오산 초청 공연에서는 건국대에서 가요지도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을 연습시켜 공연을 치러냈다. 물론 공연료는 없었다. 오산 공연이 끝난 후 몇 군데서 출연 요청이 왔다. 아마도 시노사의 출발은 지금부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노사 이외에도 시와 노래의 결합을 꾀하는 모임들은 많다. 그러나 시의 순수성을 지키고 대중들과 거리낌 없이 함께 하면서 짜임새 있는 공연을 해내고 있는 모임은 그리 많지 않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을 이 글의 끝머리에 놓는다.

 

음악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료를 봤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대중음악이었다고 합니다. 더욱 영향력이 큰 것은 멜로디보다는 가사라고 합니다. 그 자료를 보고 각성을 많이 했습니다. 가사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가사를 쓰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즈음의 대중음악 중 70% 이상이 독 毒 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위안하기는 커녕 오히려 아프고 악하고 슬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사가 문학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잔잔한 행복을 주거나 대중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사람의 심성을 더 모질게 만드는 가사들이 너무 많은 현실 속에서, 시인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시인들은 인간에 대한 신뢰와 긍정,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는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나유성

1962년생, 작사,작곡가, 음악치료사, 건대 사회교육원 가요지도시과정 출강 I TV 경인방송 “열린 가수왕”심사위원 역임, 사운드리필 스튜디오 운영

 

예술세계 2006년 10월호 <예술현장을 찾아서> 에 게제

 

덧글

2012년 나유성은 계간 『다시올 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시인이 되었다.

 

 

2012년 5월 나유성 작곡가의 등단  기념식장에서 필자와 나유성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