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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정부는 왜 인문학을 지원해야 하는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7. 14. 20:43

국가의 R&D 예산 가운데 1.2% 남짓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인문ㆍ사회과학은 끊임없이, 이에 대한 '국가 지원의 정당성'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문·사회과학은 준정부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의 설립 목적, '학술 및 연구개발 활동과 관련 인력의 양성 및 활용을 보다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수행함으로써 국가의 학술 및 과학기술 진흥과 연구역량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요구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실용성과 거리가 먼 인문학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인문학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존립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일 뿐만 아니라, 연구재단의 입장에서도 제한된 자원(예산)으로 인문학의 모든 부분을 지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하다.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면,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도대체 정부는 왜 인문학을 지원해야 하는가? 정부가 왜 과학기술을 지원해야 하는가? 지원한다면 어떤 부분을 지원해야 하는가? 과학기술의 지원과 달리 인문학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과학기술자들은 '우리는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있고, 국가 발전의 원동력은 과학기술이기 때문에 국가는 당연히 과학기술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1953년 67달러에 불과하던 연소득을 60년 사이에 2만 달러로 끌어올린 것이 과학기술인데, 그동안 인문학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런 비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인문학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인문학은 세계의 변화에 발맞추어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닫힌 세계에 매몰되어 스스로 몰락을 자초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보편적 진리의 추구'라는 고상한 이념에 사로잡혀, 당대의 현실을 설명하고 개혁하기 위해 제시한 이론들에서 역사성을 사상(捨象)하고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담론으로 박제화하였다고 인문학을 비판한다.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인간을 외면하고, 이상적 인간상에만 몰입함으로써 스스로 현실과 담을 쌓았다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정신과 물질을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경제적인 요소가 정신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무시했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맹자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문명의 발전에 기여는 고사하고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인문학이 구체적인 생산 과정에서 어떤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고 고립과 위축을 초래했다고 진단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생산과정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의 의미 창출을 곧바로 상품 생산의 라인에 연결시킴으로써 그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니메이션이나 컴퓨터 게임과 같은 문화 상품의 질이 높아지려면 좋은 시나리오가 필요한데, 인문학은 이러한 필요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인문학이 '문화 산업'을 일으킴으로써 국가의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정부는 과학기술을 지원하듯이 인문학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인문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인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문학이 문화 산업으로 변신하는 것은 인문 정신을 죽이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이들은 서점에서 실용서만 팔리고, 대학에서 인문학 지원자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실용성이 없는 인문학 과목을 기피하여 폐강이 속출하고 있는 것은 속된 가치의 확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정부가 인문학을 경시하는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을 대학 평가의 잣대로 도입하여 인문학을 말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연구재단은 응용 가능한 인문학이 아니라 순수 인문학을 지원해야만 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인문학은 과학기술처럼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가 아니면 순수학문의 위상을 유지하면서, 정부가 과학기술과 다른 인문학의 특성을 인식하고, 시장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없는 인문학의 존립과 번성을 위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얻으면 기쁘게 생각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법의 핵심이다"라는 행복한 삶에 대한 통찰을 확산하는 역할을 인문학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정부를 설득해야 하는가.

인문학에 대한 정부 지원의 정당성과 예산의 제한성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과 집중'의 기준에 대한 합의를 모색하는 것은 인문학자의 과제이면서 연구재단의 과제이기도 하다. 연구재단도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의 목적과 지원 방식, '선택과 집중'에 대한 설득력 있는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 정부ㆍ인문학계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물론 연구재단은 지금도 연구자 간담회, 설명회, RB제도 등을 통해 연구자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의 장을 열어놓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만남을 더욱더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를 대신해서 학술 연구를 지원하는 연구재단은 우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분명하고 확고한 '지원 철학'을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연구 지원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세부적인 항목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까지 연구재단이 제한된 예산으로 '국가의 학술 및 과학기술 진흥과 연구역량을 제고'하여 왔지만, 이것에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는 자기 쇄신을 통해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여, 국가가 '과학기술 육성 정책'에 버금가는 '인문학 육성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철학적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 이 글은 한국연구재단의 의견 및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