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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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내려가는시냇물(산문)

가족에 대하여 1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5. 9. 23:53

오늘 저녁 밥상머리에서 작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행복한 줄 알아라. 이 나이 되도록 부모가 살아 있다는 것을 말야"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밑의 동생은 초등학교 3 학년 막내 여동생은 초등학교에 입학 하기 전이다.

아버지의 말년은 쓸슬했다. 은행을 퇴직한 후 몇 년 뒤 가장으로서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집안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시내에 있는 은행 본점에 근무하던 아버지는 어김없이 6시 전에 집으로 돌아왔고

책이 가즉했던 서재에는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침실은 2층에 있었고, 우리 형제들과 어머니는 아래 층에 기거했는데

날이 가면서 깔끔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쇠약해져 갔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 집 앞 마당에는 벚 나무 한 그루와 그네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네를 밀어주곤 했었다.

지금은 서울 극장으로 바뀐 세기 극장에서 <사막은 살아 있다>(?)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고

온 가족이 함께 정능 청수장 계곡에 나들이 갔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오십이 갓 넘은 나이에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 후로 우리 가족이 겪은 신고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정말 가슴 아픈 일은

동생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3형제가 모두 오십이 넘은 나이가 되었지만 왠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나만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아무리 못난 부모라 해도 살아 잇다는 것만으로도 자식들에게는 축복이라는 것을

불화를 겪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문득 아들에게 던진 말 한 마디에는 내가 살아온 삶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