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산문 읽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1. 1. 18:34


전 예 숙 ․ 소설가




 지원은 의자에 앉자마자 컴퓨터부터 켠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자 판매 상담원 어플리케이션 화면이 물결무늬 춤을 추며 열린다. 지원은 화면 상단 우측에 자신의 이름과 내선번호가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깊은 숨을 내쉰다. 백여 명의 상담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어플리케이션 화면이 열린 것에 대한 안도의 숨이다. 마우스를 움직여 공지사항을 클릭해 본다. 새로운 것은 없다. 지난밤은 고객들의 불만이나, 잘못된 상품 설명 없이 고요하게 지나갔다는 뜻이다. 

  지원은 또 한 번의 깊은 숨을 내쉬며 의자에서 일어난다. 하룻밤 사이 책상과 컴퓨터 위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닦기 위해서다.

  화장실은 산세베리아, 자메이카, 세이브리치, 아레카 야자, 고무나무 화분이 놓인 복도식 통로 끝에 있다. 상담센터에 놓인 화분들은 사무실의 건조함을 방지하는 게 목적이라지만 나무가 늘어선 통로를 걷는 기분은 언제나 상쾌하기만 하다.

  지원은 신고 있던 실내화를 벗고 화장실 안의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창틀에 걸려 있는 바짝 마른 걸레를 걷어 물을 적신 뒤 같은 길로 돌아온다. 코로 깊은숨을 들어 마신다. 나뭇잎에서 나는 미약한 향기가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걸레를 탈탈 털어 컴퓨터 화면과 책상에 쌓인 먼지를 구석구석 닦아낸다. 10개월째다. 그 10개월 동안 지원은 에이스 홈쇼핑 전화 상담원으로 일해 오며 물질적인 압박감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었고 자신만의 공간을 차지할 수도 있었다. 두 팔을 벌린 만큼의 너비와 한 팔을 쭉 편 만큼의 폭을 가진 책상. 비록 마감 바가 둘러 있기는 하지만 그 공간만은 오롯이 지원의 것이 다. 

  어릴 적부터 지원은 혼자만 쓸 수 있는 책상과 방을 가지고 싶었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혼자만 가질 수 있는 비밀을 항상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뜻이었다. 내밀한 것 하나쯤 숨기고 싶었던 지원이 선택한 것은 고작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이었다. 그 일기장의 열쇠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쉽게 풀렸다. 지원은 강지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상을 닦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어 사진이 끼워진 명패를 닦고 또 닦는다.

  상담원들의 책상 위에는 컴퓨터 본체, 17인치 LCD 화면, 전화기 그리고 A4 크기의 거울이 놓여 있다. 몇몇 상담원의 책상에는 로즈마리 화분이 올려 있기도 하고, 책이나 쇼핑 카탈로그가 차곡차곡 쌓여 있기도 하다. 지원은 걸레질을 하며 책상 위에 불필요한 물건이 올라와 있지 않나 확인한다. 이번에도 거울이 문제다. 관리자들은 고객들이 상담원의 얼굴은 보지 못하더라도 표정을 읽을 수 있다고 믿는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거울을 보며 웃는 얼굴로 상담 전화를 받으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원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불편하다. 거울은 자신의 얼굴을 비추지 않을 때도 뒷사람의 행동을 무심코 비춘다. 뒷사람의 모습이 거울 안으로 들어오면 지원은 왼쪽 가슴이 쿡쿡 찔리는 고통을 느낀다. 거울 속에는 수심을 가늠할 수 없는 물길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눈동자가 있다. 그 눈동자를 거울로 만나는 것이 민망하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거울 속의 얼굴은 견고한 벽처럼 보인다. 평소에 웃지 않아서인지 안면근육을 푸는 아, 에, 이, 오, 우 발성 연습을 하려해도 얼굴 근육이 당겨 포기하고 만다. 지원은 거울 위에 앉은 먼지를 닦아 내고는 LCD 화면 뒤로 거울을 밀어 넣는다.

  먼지 닦은 걸레를 들고 다시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 문 앞에 실내화 한 켤레가 반듯이 놓여 있다. 지원은 실내화 발등에 선명하게 쓰인 고, 라는 글자를 본다. 책상을 닦는 사이에 고영민이 왔구나. 순간 어제 퇴근 무렵 주문팀장에게 불려갔던 일이 떠올랐다. 팀장은 지원의 업무 성적표를 보며 말했다.

  “강지원 씬 콜 성적이 왜 이 모양이야?”

  팀장은 지원의 코밑에 컬러 프린트된 상담원들의 성적표를 내밀며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계속 이러면 곤란하다는 거 강지원 씨가 더 잘 알잖아! 콜 성적도 그렇고 매출성적도 그렇고. 반품 건수도 그래. 어쩌자는 거야? 옆에 앉아 있는 고영민 씨를 보고 좀 배워!”

  지원이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팀장은 성적표를 흔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한 달만 더 지켜볼 거야!”

  출근 전에 마신 우유가 식도를 타고 거꾸로 올라오는 것만 같다. 영민은 매출이 가장 많은 상담원이다. 주문 전화도 가장 많이 받는다. 모든 상담원들은, 전화 통화건수와 매출액이 가장 많은 직원에게 돌아가는 <이달의 우수 직원>으로 선발되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번번이 영민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지원도 그런 영민이 부럽기만 하다. 매출성과에 따라 주는 30퍼센트의 인센티브를 받지 않아도 좋다. 최선을 다해서 주문전화를 받고 있으니, 그 마음을 관리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데 직장은 언제나 매출이 우선이다. 콜 성적이 저조하면 지원의 월급도 줄어들게 되고 그렇게 되면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고 매월 붓는 주택부금을 넣을 수가 없다. 지원은 자신도 모르게 한 달, 하고 되뇐다.   

  화장실 문을 잡아당기자 소금물로 가글하는 영민의 모습이 보인다. 언제 왔어요? 지원이 거울에 비친 그녀에게 아침인사 겸 묻자, 애교 넘치는 눈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지원은 영민 옆의 세면대로 가서 걸레를 손등에 치대 빤다. 그녀는 이제 입을 크게 벌리며 발성법으로 안면 근육을 풀고 있다. 걸레를 빨아 창틀에 걸어 두고 나가려는데, 영민이 지원을 부른다.

  “지원 씨, 아침에 내 책상도 좀 닦아주면 안 돼? 내가 근사한 저녁 살게!”

  그녀의 표정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시원한 눈매로 눈웃음을 치면 손바닥이 근질근질하면서 전기가 오는 것 같다. 어떻게 그녀의 눈웃음을 비껴갈 수 있을까. 지원이 거절할 말을 떠올리기도 전에 영민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옆자리잖아!”

  지원은 대꾸도 없이 화장실 손잡이를 꼭 잡아 쥐고는 화장실을 나온다. 마음 같아서는 책상을 아침저녁으로 닦아줄 테니 매출 올리는 비법 좀 알려 달라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다. 그러나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자존심이 입술을 앙다물게 만든다.

  상담직원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통로로 들어오고 있다. 지원은 서둘러 자신만의 칸막이 공간으로 돌아간다. 칸막이 벽면에 붙은 메모지들이 너풀거린다. 그 중 하나를 집어 든다. 어제 오후에 걸려온 전화였다. 아주 작은 목소리여서 전화기의 볼륨을 서너 단계 올려야했다. 여자가 찾는 것은 에어컨 커버다. 높이 180센티미터, 가로 63센티미터, 너비 38센티미터에 맞는 에어컨 커버. 에이스 쇼핑에 있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크기보다 몇 센티미터씩 크거나 작았다.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없고, 다른 쇼핑 콜 센터로 전화해도 못 찾겠더라고요.”

  그녀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단숨에 말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없었다면, 홈쇼핑에도 없다는 것을 알 터인데 굳이 전화를 건 이유가 무엇일까. 지원은 답답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어 낮은 기침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교육 받은 대로 쿠션 언어를 동원하여 ‘그러시군요, 고객님’ 하며 숨을 골랐다. 죄송하지만 에이스 쇼핑에도 없노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끊어버리고 싶은 데, 전화 저쪽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작고도 자분자분한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지원은 자신도 모르게 여자에게 확인해 보고 전화 드리겠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왜 그 순간 골목의 가로등 밑을 빠르게 지나가는 여자를 떠올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에어컨커버’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러본다. 그녀의 말대로 높이가 180센티미터를 넘는 것은 없다. 쇼핑몰마다 클릭해서 확인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수공예 화원’을 클릭한다. 사진으로 보아도 수려한 꽃무늬 장식의 사진들이 화려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 아이보리 바탕에 연두색 테두리가 있는 커버가 돋보인다. 커버 윗부분은 아이보리색 장미 송이를 탐스럽게 만들어 붙이고, 아랫부분은 레이스를 풍성하게 넣었다. 우아한 멋이 두드러진다. 지원은 주문 생산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확인한다. 가격과 상품번호, 전화번호를 메모지에 적으며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으면 한다. 그러다 지원은 자신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다 도리질을 한다. 집에 에어컨이 놓일 자리는 없다. 18평 임대 아파트에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이모와 지원이 열 마리가 한 둥지에서 산다는 십자매들처럼 몸을 바짝 움츠리고 산다. 좁은 공간에서 옴나위없이 살다보니 목소리까지 작아져 아무리 화가 나도 소리 지르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아파트는 방음이 되지 않아 위 아래층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다. 특히 바로 위층인 502호의 발걸음 소리는 할머니 선잠의 원인이다. 할머니는 잦아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놈의 인간, 발모가지를 확 분질러 버리고 말 테야. 외할머니의 목청이 조금만 컸더라면 험하게 들릴 말이지만, 자분거리는 목소리는 한낱 투정에도 미치지 못한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그렇게 자분거려야만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출가한 딸집에서 혼기를 훌쩍 넘긴 막내딸을 데리고 얹혀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친정 식구 때문에 아버지에게 항상 미안해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입 안으로 말린다.

  여자는 무슨 이유로 수화기의 볼륨을 올려야할 만큼 작게 말했을까. 에어컨 커버를 구입할 사람이라면 좁은 집에서 살지는 않을 것 같다. 지원은 인터넷에 도메인한 쇼핑몰을 마우스로 클릭하여 에어컨 커버를 찾고 또 찾아본다. 여자에게 ‘수공예 화원’ 외에는 알려 줄만한 정보가 보이지 않는다. 지원은 메모지를 꺼내 그녀의 전화번호를 적고 11시, 라고 쓴다. 11시라면 그녀에게 콜백할 시간으로 적당할 것이다.

  8시 55분. 지원은 목청을 가다듬고 헤드셋을 머리에 쓴다. 이 시간이 되면 잡담을 하던 상담원들도 의자를 바짝 당겨 앉는다. 오케스트라의 공연 직전 연주자들이 악기의 음을 고르듯 상담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가다듬고 거울을 보며 안면 근육을 푼다. 상담센터의 전광게시판도 직원들과 더불어 긴장한다. 붉은색과 노란색, 검은색의 불들이 글자를 만들어 분주히 물결무늬를 이루며 지나간다.

  9시. 여기저기서 가는 빗줄기 소리가 들린다. 전화 신호음들이 상담 센터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상담원들마다 가장 낮은 단계를 알리는 1에 전화기 볼륨을 맞추어 놓았어도 전화벨 소리는 늘 비 내리는 소리로 들린다. 때로는 그 빗소리 때문에 화창한 날에도 우산 걱정을 한다. 지원의 컴퓨터 화면에 제일 먼저 “전화 왔습니다” 라는 멘트가 떠오른다. 지원은 낮은 기침을 한 뒤 맑고 청아한 목소리를 내본다.

  “항상 고객님 곁에 있는 에이스 홈 쇼핑 강지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카탈로그 보고 전화한 건데요,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지원은 걸어온 전화번호의 이력을 클릭해 본다. 늘 궁금한 것만 있는 20대 초반의 여자 고객이다. 옷, 액세서리, 구두 등 궁금한 것만 물어보고 구입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지원은 맥이 빠진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왜 아침부터 전화를 하는지. 그렇지만 이번에는 상담 후 상품 주문을 할 지 모른다는 기대를 가진다.

   “상품번호 1192-1533번 사이즈를 알고 싶은데요.”

   지원은 저편에서 말해 주는 상품 주문 번호를 빠르게 검색해 본다. 퀼롯 8부 팬츠로 에이라인 형이다. 발목으로 내려갈수록 통이 넓은 게 특징이다. 올해 다시 통바지가 유행하는지 주문량이 꾸준히 오르는 상품이다. 키가 큰 사람에게 잘 어울리고, 가죽 부츠를 함께 신어 준다면 한층 멋스러울 것이다. 

   “사사부터 팔팔까집니다, 고객니임! 색상은 블랙과 카키 그리고 브라운이 있고요, 골반에 걸쳐 입습니다.”

  지원은 상품번호에 대한 안내 문구를 헤드셋에 달린 마이크에 대고 설명한다. 카탈로그를 보고 걸어온 전화라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데 사이즈만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아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았다. 상대방은 아, 그렇군요 하며 수화기를 놓아버린다. 상품 주문을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나. 첫 통화부터 맥이 빠진다. 지원은 상담원 어플리케이션 화면의 고객 관리란에 “사이즈 확인만”이라는 멘트를 빠르게 입력하고, 다음 전화를 기다린다.

  전광게시판에는 대기중 콜을 알리는 붉은색 불이 6자를 기록하고 있다. 6명이 신호음을 들으며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통화중임을 알리는 노란 불빛이 25를 만들고 있다. 전화벨은 순서대로 빈곳에 연결된다. 지원의 컴퓨터 화면에 다시 “전화 왔습니다” 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이번에도 카탈로그를 보고 하는 문의다. 모델이 입은 바지의 뒷면 그림이 없다며 엉덩이 부분이 어떻게 생겼느냐는 질문이다. 순간 난감하다. 상품번호를 컴퓨터에 저장하고 검색을 해 봐도 뒷부분에 대한 안내가 없다. 이런 경우는 업체 쪽으로 확인해서 콜백해야 하는데, 정보를 확인하려면 다른 전화를 포기해야만 한다. 하루 통화량이 세세히 기록되는 마당에 정보를 확인하여 콜백하는 20여 분의 시간은 받을 수 있는 전화 다섯 통은 놓치게 된다. 지원은 순간적으로 영민이 쪽을 쳐다본다. 영민은 상담한 내용을 기록하는 후처리 중이다. 지원은 이달의 홍보책자를 빠르게 편 뒤, 조그마한 소리로 바지 뒷모습을 물어본다.

  “엉덩이에 호주머니 두 개 있어.”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웃음기가 묻어 있다. 그녀가 웃지 않을 때도 있을지 의문이다. 지원은 기다리고 있는 고객에게 영민이 말해준 대로 양 엉덩이 부분에 호주머니가 달려 있으며, 그로 인하여 엉덩이 부분이 약간 업 된다고 설명한다. 상대방이 주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지원은 어플리케이션 화면을 보며 고객이 원하는 사이즈와 색상, 가격을 입력하고 주소와 연락처를 기입한다. 업무시작 30분도 되지 않아 매출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오늘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지원은 전화를 받고 있는 영민에게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그녀는 다시 실눈을 만들어 웃음을 보낸다.

  지원은 자신이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관리자의 말대로 굳은 표정 때문에 말도 퉁명스럽게 나가는 것인지, 상품에 대한 이해 부족인지. 지원은 쉬는 시간이 되자 1년여 동안 발행된 카탈로그를 가슴에 안고 휴게실로 들어선다. 홍보 책자를 보면서 상품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이다. 


  사십을 훌쩍 넘긴 지원의 이모는 홈쇼핑에서 보내 주는 카탈로그를 보고 또 보는 것과 입을 꾹 다문 채 과일 잼을 만드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이모는 주로 주방용품이나 침구류를 꼼꼼하게 살폈다. 할머니는 카탈로그를 보는 이모가 밉기만 한 모양이다. 한 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시집을 가면 어련히 해 줄까. 허구헌날 집구석에 처박혀 있으니 어떤 놈이 굽어다 볼 수나 있나. 이모도 할머니에게 구시렁거린다. 유일한 취미생활이야, 시비 걸지 마. 언니 생각해서 뭐 하나 사주려고 해도 놓을 자리가 없네. 두 사람의 말싸움은 탁구 경기를 보는 것만 같다. 할머니는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다시 쏜다. 고양이 쥐새끼 생각하네. 니년이 없어지면 물건 놓을 자리가 저절로 생겨. 남들 다 가는 시집은 왜 못 가고 저럴까. 이번엔 이모 차례다. 엄마는 왜 얹혀 살우? 이쯤 되면 할머니의 울음보가 터지게 마련이다. 일찍 잃은 남편으로 인해, 머리에 짐을 지고 행상하던 이야기가 호박 덩굴처럼 줄줄이 이어졌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귓가로 스쳐 보내는 이모는 경쾌하게 카탈로그를 넘길 뿐이었다. 가끔씩 검지에 침을 퇴, 뱉기도 했다. 우라지게 비싸네. 그림도 촌스럽고만. 지원아, 근데 이런 것도 사는 사람 있니? 이모가 뭘 보고 그러는지 지원은 보지 않고도 안다. 지원은 발톱 깎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거기에 나와 있는 건 인기짱, 매출짱이야.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고. 이모는 어린애처럼 볼멘소리를 했다. 중국에서 만들어 오는데도 그래? 지원은 발톱을 깎다말고 이모가 말하는 커튼 그림을 쳐다봤다. 황금빛이 돋보이는 커튼이라 그런지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웠다. 대형 겉 커튼과 하늘하늘한 속 커튼, 거기에 따르는 부속품으로 로만쉐이드나 루프 타이백 등이 빠짐없이 구성된 것을 생각한다면 삼십만 원대 치고는 싼 편이었다. 이모는 그 상품의 재질이 무엇이고, 구성 품목이 무엇인지, 디자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가격이 비싼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지원은 이모가 보던 커튼을 다시 꼼꼼히 살폈다. 겉 커튼과 속 커튼의 배색도 세련되고 거실에 걸어두면 집안이 넓어 보일 듯싶었다. 폴리에스테르 재질이라 물세탁도 할 수 있어 실용적이기까지 했다. 지원은 카탈로그의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는 이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려한 이목구비를 가졌다. 키도 크고 예쁘다. 흠이 있다면 직장이 없다는 점과 할머니와 싸움을 잘 한다는 것 일뿐.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과일 장사를 나서기도 한다. 팔다 남은 과일을 가지고 잼을 만들어 유리병에 담아 차곡차곡 쌓아 두는 것을 보면 할머니 말대로 시집을 수십 번 가고도 남았을 터였다. 지원은 이모에게 장난삼아 잼을 내다 팔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이모의 얼굴이 금세 상기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어디에다가? 이모의 눈빛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그냥, 아버지에게 팔아달라고 하면 되지, 뭐. 과일도 팔고, 잼도 팔고. 그래. 그림이 나쁘지 않다, 지원아. 그치? 그럼. 꿩 먹고 알 먹고. 이모는 잼 병을 하나 들고 부리나케 나갔다. 지원도 덩달아 이모가 가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아휴, 답답해!”

  이모는 카탈로그를 소리 나게 덮어버렸다. 할머니의 잔소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모의 깊은 한숨에는 사랑을 받아 주지 않는 남자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엉켜 있다가 터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 답답함을 날려버리기도 할 듯이 이모는 한겨울에도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곤 했다.

  지원은 깎아놓은 발톱을 휴지 조각 위에 하나씩 담다가 화들짝 놀라 이모를 불렀다. 이모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이모는 들어오지 않았다. 병이 또 도졌나 보네.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는 이모를 향해 혼잣소리를 했다. 이모는 몽유병 환자처럼 밤새 걷고 걷다가 초주검이 되다시피 돌아오곤 했다. 어머니는 이모의 병을 상사병처럼 생각했고, 할머니는 정신병으로 치부했다. 분명한 것은 이모의 정신 상태가 극도로 예민하다는 것이었고 기분 상태가 급격히 상승하다 하강한다는 점이었다. 집에 돌아온 다음에는 죽은 듯이 잠이 들었고 아무도 지난밤의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카탈로그를 꼼꼼하게 보고 있는데 상담원 하나가 전화를 받으라 한다. 어제 에어컨 커버를 찾던 그 여자다. 지원은 ‘수공예 화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주문생산이 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녀는 속삭이듯 말한다. 언제쯤 배달이 돼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온다. 지원은 숨을 가다듬고 여자에게 말한다. 고객님! 그 쪽으로 직접 전화를 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주문생산이 가능하다고 하니까 고객님께서 원하시는 모양으로 만들 수도 있을 거예요. 지원은 서둘러 전화를 끊고 싶다. 여자는 그렇군요, 하며 말끝은 흐린다. 지원이 편안한 하루를 보내라는 끝인사를 하려던 참에 여자가 다급하게 말한다. 아가씨, 잠시만, 잠시만요. 미안하지만 저한테 전화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지원은 화면에 떠오르는 전화번호를 바라본다.  

  퇴근 무렵 지원은 영민에게 쪽지를 보낸다. 퇴근 후에 약속 있어요? 곧 컴퓨터 화면으로 함께 저녁 먹으러 가자는 쪽지가 도착했다.

  영민이 앞장선 곳은 곱창 집이다. 근사한 저녁 운운하던 그녀의 말과 다르게 다소 누추해 보이는 집이다. 곱창이 구워지는 냄새가 시장기를 한층 돋운다. 영민이 익숙한 솜씨로 곱창 2인분을 시키고 소주도 한 병 시킨다. 영민은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처럼 잔에 소주를 따른다. 최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 그러는 의미에서 코 한번 삐뚤어져보자. 영민이 소주잔을 단숨에 비워버리고는 눈웃음을 친다. 팬 위에서 하얗던 곱창이 자글자글 노랗게 익으며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영민은 나무젓가락으로 곱창을 이리저리 뒤집어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우리 좀 잔인하지. 동물의 내장까지 먹다니 말야.”

  “그러게요. 아침에는 고마웠어요.”

  지원은 영민에게 술을 한 잔 따라 준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사실 나도 그 바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그냥 바지 뒤에 작은 주머니가 두 개 붙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지원은 앗, 소리가 나는 것을 꾹 참는다. 얼른 소주를 입 속에 털어 넣는다. 알싸한 느낌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단숨에 마신 소주가 꼬불꼬불한 내장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만 같다.  

  “지원 씬, 우리가 파는 상품에 대해 얼마나 아니? 한 번이라도 본 적 있어, 만져보길 했어? 전화한다는 건 상품에 관심이 있고 사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 아냐? 그럼 그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좋은 이야기만 해 주면 되는 거야, 안 그래?”

  영민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그렇다고 고객에게 거짓된 정보를 주고 싶지도 않다. 카탈로그를 읽고 또 읽는 이유는 바른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영민은 지원의 고민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소주를 거푸 들이킨다.

  “이 집 곱창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 쫄깃쫄깃한 게 일품이고. 지원 씨도 먹어봐. 우리가 안 먹으면 다른 사람에게 먹혀. 그러니까 꼭꼭 씹으란 말야. 콜도 그렇고 세상일 다 그래.”

  영민이 지원에게도 익은 곱창 한 점을 건네며 눈웃음을 친다. 영민의 눈웃음을 바라보는 지원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상담원 교육 때 관리자들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상품 파악이 최우선임을 강조했다. 물건을 보고 만져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보고 판매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상품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라며 조회시간마다 교육했다. 그런데 영민이 무시한다? 무시함으로 항상 매출 1순위 최우수 직원이 된다? 언제나 친절하고 정성을 다해 고객을 관리해야 다음에 또 에이스 쇼핑을 찾는다는 팀장의 말이 귀를 간질인다. 영민이 입속으로 소주를 다시 털어 넣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은정아, 요즈음은 필요한 거 없어? 에이스 쇼핑으로 전화해서 나 바꿔 달라고 해. 곧 겨울이 되는데 필요한 게 많을 거 아냐. 지원은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인다. 꼭 전화해서 나를 바꿔달라고 해야 내 실적이 오르고 너도 내 덕에 소주도 한잔하고 그런 거잖아. 아줌마, 여기 곱창 2인분 더 주세요.

  영민이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한다.

  “지원 씨, 이번에도 꼴찌라며? 내가 비결 좀 알려줄까?”

  지원의 성적이 꼴찌라는 것은 월별 성적표가 게시판에 붙기 때문에 상담원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눈앞에 두고 확인하는 건 또 무슨 심술인가. 지원은 말없이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다. 쌉싸래한 맛이 입안으로 들어와 얼른 곱창을 한 점 집어 입속에 넣는다. 영민이 말하지 않아도 매출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 속이 타 들어간다.

  “나는 표정이 없는 네가 좋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야. 자꾸만 궁금해지거든. 그런데 웃기지. 나 너한테 부탁 좀 하려고 해.”

  지원은 말없이 그녀를 본다. 사무실에서와는 전혀 다른 표정의 영민이 낯설기만 하다. 영민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정보 좀 빼줘!”

  지원은 그녀의 말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지원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영민은 또박또박 말을 이어간다.

  “일 주일 시간을 줄게. 그 동안 전화 받은 고객 정보를 빼 줘. 그럼 지원 씨가 원하는 걸 주겠어. 돈이라도 좋고, 매출 1위도 올려줄 수 있어.”  

  지원은 뜻밖의 제안이라 어안이 벙벙하다. 그녀의 입술만 바라볼 뿐이다. 영민의 얼굴에 야망이 서려있다. 영민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곱창을 질겅질겅 씹으며 소주잔을 입가로 들어올린다. 표정이 굳어진 것은 영민도 마찬가지다. 지원은 팀장의 말을 떠올린다. 한 달만 더 지켜볼 거야. 그 한 달 동안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지원은 고개를 흔든다.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인 동시에 직장을 떠나야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원은 자신의 공간을 확고하게 세우는 일이 무엇인지 자못 의심스럽다. 영민이 지원에게 야릇한 눈웃음을 친다. 항상 보던 눈웃음은 온데간데없다. 썩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기분이다.

  “지금 결정해 달라는 거 아냐. 하지만 언제까지 꼴찌로 수모당하며 살래?”

  영민의 몸이 점점 흐트러지기 시작하자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밖으로 나오니 술기운이 쏴하게 온몸으로 퍼진다. 영민이 등 뒤에서 소리친다.

  “넌 왜 표정이 없는 거니?”

  무표정이 답답함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직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영민이처럼 친구나 가족을 이용해서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 더 답답할 뿐이다. 매출을 올려서 인센티브를 받고 그 돈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선물도 주고, 회사는 매상을 올리고. 왜 그렇게 단순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을까. 남이 먼저 삼키기 전에 자신이 먼저 먹어야 한다는 것을 왜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지원은 카탈로그를 꼼꼼하게 읽어대는 이모를 떠올렸다. 어젯밤에 집을 나선 이모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비몽사몽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의 말대로 사랑했던 남자의 집 창문 밑에서 밤새 남자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호기심으로 이모의 뒤를 쫓던 날, 이모는 딸기잼을 가슴에 안고 골목길로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가 남색 칠을 한 대문 앞에 우뚝 섰다. 이모는 숨을 고르고 초인종을 눌렀다. 또 한참을 기다리자 말라빠진 꺽다리 사내가 대문 밖으로 나왔다. 그가 나오자 이모는 가슴에 안고 있던 딸기잼을 그의 가슴팍에 내밀었다. 사내의 무뚝뚝한 표정이 오후의 늘어진 햇살 사이로 드러났다. 희멀건 얼굴에서 조소의 빛이 일었다 사라졌다. 너, 자꾸 왜 그러는데? 난 네 상대가 아니라고 말했잖아? 아직도 못 알아들었냐? 왜 그렇게 답답해! 이모가 남자에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거, 내가, 내가 만든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먹으란 말야. 사내가 한심하다는 듯이 이모를 쳐다보다가 아직 이모의 손에 들려 있던 딸기잼 병을 빼앗아 길바닥에 냅다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잼 병이 박살나고 검붉은 딸기잼이 길바닥 이리저리로 튀었다. 남자는 대문을 쾅, 닫았다. 화가 난 이모가 남색 대문을 발로 쾅쾅 차댔다. 문 안쪽에서 아무런 대꾸가 없자 이모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손바닥으로 딸기잼을 쓸어 모으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개새끼. 내가 가만 두나 봐라. 나쁜 새끼.

  해질녘 골목길 수은등이 켜질 때서야 이모는 집을 향해 느릿느릿 걸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이모는 일주일을 꼬박 앓아누웠다. 그 남자가 이모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단지 이모의 답답함을 견딜 수 없었던 거라면, 그리고 이모가 자신의 답답함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이모는 유리병에 갖가지 과일 잼을 만들어 담고, 예쁜 커튼을 두른 집에서 알콩달콩 살 수 있었을까.

  초겨울 바람이 숨을 들이킬 때마다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지원은 웃옷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걷는다. 내일은 이모에게 에이스 쇼핑으로 전화를 해서 자신을 바꿔달라고 하게 할까. 영민은 말했다. 전화만 걸어 달라고. 그러면 자신의 이름으로 실적이 오르는 것이라고. 매출액도 중요하지만 매출 건수도 중요하다고. 그러고 보니 여자가 전화를 걸어 달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내일 아침에는 제일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지원은 왜 자신이 여자의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닮았을까.

  아버지가 크게 눈을 치켜뜨면 어머니의 고개가 금세 숙여졌다. 어머니가 차에 올라 조수석의 손잡이를 잡으면 아버지의 타이탄 트럭이 출발했다. 주로 아파트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어머니. 호객행위를 할 줄 모르는 어머니와 이윤을 남길 줄 모르는 아버지의 트럭에는 팔지 못한 과일이 쌓여갔다.

   이모는 상자 안에서 썩어가는 과일을 보며 말했다. 가망 없어. 이모의 말은 언제나 시니컬하게 들렸다. 동정도 연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모는 방바닥에 신문지를 널찍하게 깔았다. 할머니가 입술을 꾹 다문 채 과도를 들고 신문지 모퉁이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할머니의 역할은 성한 것과 버릴 것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이모는 과일의 육질이 썩은 부분을 과도로 도려낸 다음 준비한 함지박을 향해 던졌다. 이모는 어떤 과일이든지 찬물로 씻어내고 물기를 뺀 다음 마른 수건으로 정성스레 닦았다. 과일이 큰 것은 조각을 내어 냄비에 넣고는 설탕을 넣고 가열했다. 잼을 만드는 동안 이모는 나무주걱으로 과일 응어리를 쉬지 않고 풀었다. 그 동안 이모는 이마에 흐르는 땀조차 닦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무주걱에 묻은 잼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는 행위까지도 진지해서 누구 하나 이모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때로는 과일 잼에 꿀을 살짝 넣기도 하고 레몬즙을 짜 넣기도 했다. 잼을 만드는 그 순간만큼은 이모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이모가 만든 갖가지의 잼은 형형색색의 유리병에 담겨 부엌 한 편을 차지했다. 언제부터인지 이모는 자신이 만든 잼 병에다 번호를 매기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50이 넘어서자 이모는 502호 할아버지에게 집에서는 제발 살살 걸어달라는 부탁을 하며 선물을 하기도 했다. 502호 할아버지는 이모의 잼을 받을 때마다 치매 환자처럼 눈빛을 흐릿하게 만들어 이모의 말을 못들은 체 했다. 이모는 그럴수록 눈에 힘을 넣어 살살 걸어달라는 말을 줄기차게 해댔고, 할아버지는 여전히 딴청을 피웠다. 지치는 쪽은 늘 이모였다. 살살 걸으란 말이에욧. 할아버지 땜에 우리 엄마가 잠을 못 잔다고요. 알아들었어요? 에이 신경질나게시리! 이모는 잼이 든 유리병을 할아버지 가슴에 힘껏 안겨주고는 쿵쿵거리며 돌아왔다.

  

  지원은 책상을 닦은 걸레를 들고 화분들이 놓인 복도식 통로를 따라 걷는다. 화장실 앞에는 고, 라고 쓰인 슬리퍼가 놓여있다. 영민이 화장실에서 가글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원은 어젯밤에 잘 들어갔느냐는 인사를 건넨다. 그녀는 눈웃음으로 대답한다.

  “내가 좀 바보 같기는 하죠?”

  영민이 발성연습을 하다가 지원을 빤히 바라본다.

  “표정이 없어서 그래.”

  지원은 걸레를 빨다 말고 거울을 들여다본다. 입을 크게 벌려 아, 에, 이, 오, 우를 외쳐본다. 그 소리가 화장실을 울린다. 턱이 얼얼하고 입 주위가 한동안 당겨온다. 거울 속 얼굴의 눈에 붉은 핏발이 섰다. 

  “점심이나 같이 할까?”

  “그러죠.”

  화장실에서 나온 지원은 여자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전화기의 볼륨 버튼을 3단계 높인다. 신호음이 가자 여자가 전화를 받는다. 여자는 잠시 주저하다가 빠르게 말을 내뱉는다. 저기, 저기 말이에요. 제가 구입한 물건들 다 반품할 수 있나요? 지원은 할 말을 잊는다. 작고 여리고 쫓기는 듯한 목소리 때문에 그녀의 이력을 살펴보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난감할 때는 외워둔 쿠션언어가 다소 위안을 준다. 문제가 있으셨나요, 고객니임? 여자가 울먹이는 소리로 말한다. 이제 다 필요 없어졌단 말이에요. 모두! 반품해 주세요. 여자의 울음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울린다. 지원은 막막하다. 길바닥에 퍼더버리고 울고 있던 이모를 보는 것만 같다. 

  지원은 여자에게 반품팀장에게 여쭤보고 전화 드린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지원은 여자가 구입한 물건들을 출력해 본다. 주방용품과 주방가전이 대부분이다. 지원은 반품팀장에게 통화기록과 구입물품 기록을 출력해 가지고 갔다. 그는 지원에게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은 뒤 말한다. 

  “시장통에서 물건 구입하는 것도 아니고, 반품 가능일자를 알고나 온 겁니까? 도대체 어떤 상품을 반품하겠다는 거죠? 반품 기간이 남은 게 하나도 없잖아요. 십오 일 안에 반품 처리를 해야 하는 거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아서…….”

  지원은 말끝을 흐린다. 반품팀장은 지원을 답답하다는 듯 바라보며 짧게 말한다.

  “정 반품하고 싶다면 본인에게 직접 업체로 전화하라고 해욧.”

  지원은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여자에게 말려들어간 것이 답답하기만 하다. 지원은 여자에게 콜백을 한다. 반품 기간이 지났다는 말과 함께 구입한 물건들에 대한 업체 전화번호를 하나씩 알려준다. 여자가 전화번호를 적건 말건 지원은 상관없다. 여자는 가까스로 말을 잇는다. 아가씨가 업체로 전화해 주면 안 되나요? 지원은 단호하게 거절하고만 싶다. 이미 반품 시일이 지났습니다, 고객니임. 여자는 물고 늘어진다. 물건이 필요 없다고요, 이제는. 옆에서 영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원 씨. 점심 먹으러 가요. 헤드셋 속에서는 울먹이는 소리가 다시 윙윙거린다. 필요 없어졌다고요. 갑자기 전화가 끊긴다. 영민이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 버튼을 눌러버린 것이다.

  “그런 전화에 매달릴 필요 없어, 지원 씨,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상담 중 끊어졌다고 기록해 버려.”

  지원은 고객란에 “상담 중 전화 끊김” 이라고 빠르게 입력하고 영민을 따라 나선다. 그녀가 데리고 간 곳은 횟집이다. 그녀는 동태찌개를 잘 해서, 하며 뒷말을 흐린다. 미리 시켜 놓은 모양이었다. 자리에 앉자 영민이 먼저 말을 꺼낸다.

  “나 다음 주면 그만 둬. 텔레비전 홈쇼핑 호스트하게 됐어.”

  지원은 영민의 입술을 바라본다. 어항 속에서 유영하는 몸집 큰 물고기가 입을 벌렸다 다무는 것만 같다. 애벌로 끓여 온 동태찌개가 가스 불속에서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그렇군요.”

  지원은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다. 그녀는 국자로 지원 앞에 있는 개인 접시에 동태 한 토막을 담아 주며 말한다. 

  “어제 한 말, 생각해 봤니?”

   지원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찌개 국물을 소리 나게 먹는다.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고만 싶다. 식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영민은 찌개 국물에 밥을 말아서 천천히 먹기 시작한다. 지원은 그녀의 수저 놀림을 곁눈질한다. 하얗고 길죽길죽한 손가락과 어머니의 뭉툭한 손가락이 겹쳐 보인다. 그녀는 밥을 입속 가득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말한다.

  “난 십 년 안에 이십 억만 벌고 싶어. 그런 다음 실컷 여행 다니는 게 꿈이야.”

  지원은 자신에게 꿈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꿈? 비밀 하나 갖는 거? 초라한 생각이 든다. 그 말을 영민에게 해 주려다 피식 웃음이 나오고 얼굴이 자꾸 실그러진다. 영민이 지원의 웃음을 보고는 수저를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는다. 지원은 엉뚱하게 영민에게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자가 반품한다는 상품은 토스트기, 주서기, 밥솥 등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혼수용품 같았다. 할부 하나 끝나면 또 다른 상품을 구입하곤 했다. 상품 속에는 44 피스짜리 코렐접시도 있었다. 그 상품 목록을 보니 불현듯 이모 생각이 났다.

  어젯밤에도 이모는 답답하다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집 안에서 소리를 지른 것은 처음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밖으로 나가려는 이모를 잡아 앉혔다. 그 사이 아버지는 소리 없이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나가자 이모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휴, 답답해. 죽을 것 같애. 참을 수가 없어. 이모는 방문과 창문을 다 열고 다녔다. 그래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지 옷을 훌렁 벗어던졌다. 저년이 미쳤나. 할머니는 미쳐가는 이모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번에 이모가 주방으로 가서 만들어 놓은 잼을 부엌바닥으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울긋불긋한 잼들이 예리한 유리조각과 함께 야릇한 빛을 발했다. 이모는 유리조각을 집어 들어 형광등 불빛에 이리저리 비춰보며 숨을 골랐다. 지원은 아슬아슬한 장면을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그 동안 만들어 놓은 모든 잼 병을 바닥으로 내던진 다음에야 이모는 큰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이모가 제 정신이 들었을 때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듯 했다. 이모가 잠이 들자 할머니는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병원에 처넣어야지, 원. 그러자 어머니가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돈이 어디에 있어요.

  지원은 진저리를 치며 현실로 돌아온다. 

  영민이 지나가는 투로 말한다.

  “반품해도 매출에 잡히는 거야. 그리고 그 여자에게 그만 좀 끌려 다녀. 내가 해결해 줄까?”

  지원은 눈을 크게 뜬다. 지원은 그 여자가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반품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영민이 말한다.

  “반품만 시켜주면 될 거 아냐?”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해요. 이상하게 동정이 가네요.”

  “그럼 그 물건 내 앞으로 보내라고 해. 대신 가격이 다운되었으면 해. 지원 씨가 트라이해 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면 되고.”

  점심을 먹고 온 뒤, 지원은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사용한 적이 없는 상품이라면 반품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 원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말에 여자는 한숨으로 대꾸한다. 지원은 반품을 할 의사가 있다면 고영민 앞으로 물건을 보내준다면 반품처리 해 주겠다고 말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심호흡을 한다. 전화 상태를 휴식에 두고 어플리케이션 화면을 조작한다. 며칠 전 보아두었던 커튼을 이모의 이름으로 주문한다. 결제방법은 지로로 선택하고 10개월 할부란에 마우스로 클릭한다. 상품은 이모 앞으로 삼사일 후에 배달될 것이다. 그러면 지원의 이름으로 매출 실적도 올라간다.

  지원은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쉰다. 미리 준비한 1기가바이트의 유에스비메모리 포트에 자신이 10여개월 동안 받은 전화의 이력을 다운 받는다. 그리고는 영민을 불러 그녀의 손에 메모리 포트를 쥐어준다.


  불안감이 가슴을 쿵쿵 울리고 있다. 지원은 부리나케 사무실을 나와 택시를 잡아탄다.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 때문에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서다. 이모가…… 이모가 ……. 검은 그림자가 지원의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빨리 가달라고 택시기사를 재촉하지만 차는 같은 자리에서 맴 도는 것만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를 모은다. 주차장 쪽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지원은 그 쪽으로 몸을 돌린다. 등이 굽은 할머니가 사고 장소에서 퍼더버린 채 울부짖고 있다. 지원은 흔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할머니 곁으로 다가간다. 이년이 기어이 일을 저질렀어. 일을 저질렀어. 등 뒤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파트에서 뛰어 내렸대.

  아파트 뒷담은 담쟁이 넝쿨이 빽빽하다. 지원은 담에 달라붙어 담쟁이 넝쿨을 쥐어뜯기 시작한다. 핏물 같은 진이 손바닥으로 퍼지고 잎들이 뜯겨 나온다.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 지원은 미친 듯이 담쟁이넝쿨을 물어뜯는다. 눈물과 콧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누군가가 담에 붙어 있는 지원의 손을 잡아당기며 울부짖는다. 너, 미쳤어? 너까지 왜 이래. 그 소리가 어머니 같기도 하고 할머니 같기도 하다. 지원은 자신의 손등을 이빨로 힘껏 물어뜯는다. <끝> (98.4매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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