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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와 암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1. 1. 17:11

 청기와 암자


                                             김경                 

  

  그믐날 밤이다. 어둠은 하늘만 분간하기 어려울 뿐, 경내는 그 어느 대낮보다 더 밝다. 요사채의 방문이 열리면서 황색 행자복 차림의 여행자(女行者)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소리 없이 배롱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줄줄이 대웅전을 향한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좁장한 계단은 금세 황색 물결로 넘실거린다. 대웅전은 벌써부터 열기로 후끈거렸다. 성미 급한 남행자(男行者)들이 일찍부터 들어와 합장을 하고 서서 경을 외고 있다. 내일 있을 회향식을 앞두고 이제 곧 철야 정진에 들어갈 시간이다.     

  나는 활짝 열린, 법당 한가운데의 문 앞에 서 있다. 봄이 한창인 4월인데도 산사의 밤공기는 아직도 쌀쌀하다. 나는 목을 움츠리고 점퍼의 깃을 세우면서 곁에 있는 변 기자를 흘끔거린다. 비디오사진기에 가려진 그의 얼굴도 보나마나 좀 파르스름할 것이다.

  변 기자와 내가 이곳 보명사에 온 지도 3주일이 훌쩍 지났다. 잡지의 속사정은 다 뻔한 것으로 늘 판매 부수에 사활을 건다. 독자의 눈길이라도 잡으려면 ‘특집’ 운운하는 타이틀이라도 내걸어야 한다. 편집부장이 모처럼 활기에 넘쳐 동분서주했다. 성역 같은 보명사 행자교육원 출입을 모 방송국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어렵사리 허가 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한 거였다. 마침 다음 달이 부처님 오신 날이니 행자 교육원의 얘기만으로도 5월 호 특집을 풍성하게 꾸미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나와 변 기자는 방송국팀의 일원인 양하여 이곳에 내려왔다.   

  적막한 경내에 목탁 소리가 일정한 톤으로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받아 석가모니불을 염하는 행자들의 목청 또한 일정한 톤으로 법당을 울린다. 편집부장은 편집실을 나서는 내 등에 대고 사뭇 들뜬 목소리로 신신당부를 했다. 고지식하게 교육 과정만 기록하지 말고 행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살펴서 기록해 오시오. 편집부장의 주문과는 상관없이 나는 문득문득 내 자신이 저들 행자인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매일, 촉수를 곤두세우고 그들을 쫓다 보니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일 거였다. 나는 발돋움을 하고 행자들 사이로 시선을 보낸다. 여전히 불전의 촛불은 일렁거리고 있다. 갑자기 목탁 소리가 빨라지면서 행자들의 큰절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팽팽한 속도감이 느껴진다. 새벽 예불 시간에 맞춰 끝내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진행 속도는 지녀야 할 것이다.

  얼마쯤이나 지났을까. 행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조금씩 흐트러진다. 

  "선배님, 이 시간에도 낙오자가 나올까요? 여기서 돌아선다면 그야말로 도로 나무아미타불이네요."

  변 기자가 사진기를 땅에 내려놓으며 주절거린다.  

  "글쎄, 어제까지 정확히 열세 명이 포기했는데……. 그건 그렇고, 자네 오늘도 짝사랑 애인은 렌즈에 잘 포착했겠지?"

  "아니, 애인은 무슨…… 누구라도 들으면 정말 큰일 날 소립니다."

  나는 정색을 하는 변 기자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다. 애인 운운하는 말은 다큐멘터리 제작팀 탓에 나온 말이다. 변 기자가 전용 사진기 외에 별도로 무거운 비디오 사진기를 가져온 것이나 또 그것으로 찍은 테이프를 여기서 미리 본 것이 순전히 그 팀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변 기자는 출발할 때부터 내심 별렀다. 좋은 기회라며 꼭 다큐멘터리 제작팀에게 한 수 배워서 제대로 된 테이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역시 그들은 달랐다. 매사에 철두철미했다. 그날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는 반드시 취침 전에 화면으로 확인해 미진한 부분을 체크하곤 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그들을 흉내 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에 온 지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그들과 한 자리에서 변 기자가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았다. 특이하게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한 여행자가 장면마다 매번 등장하고 있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일주문 바깥쪽에서 시작된 삼보일배 교육 때에는 무려 세 차례나 화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땅바닥에 엎드렸다가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삼보일배. 해탈문을 지날 때에는 여행자의 이마가 클로즈업되면서 뚜렷한 생채기까지 보여 주었다. 여행자는 눈길을 끌 만했다. 푸대자루 같은 헐렁한 승복을 입었을망정, 합장한 손목이 한 줌밖에 되지 않았다. 그 몸매가 대번에 가늠되었다. 게다가 턱 아래 목선이 곱고 눈매가 서늘해 여럿 가운데서 단연 돋보였다. 나는 그때부터 그 여행자를 변 기자의 애인이라 칭하며 놀려댔다. 

  그 다음날이었다. 해우소를 가다가 그녀와 맞닥뜨렸다. 자칫하면 그녀에게 다가가 알은 체를 할 뻔했다. 화면에서보다 훨씬 더 아리따운 모습이었다. 맨 얼굴빛이 서러울 정도로 말끔했다. 퍼뜩, 오래 전 어느 비롯됨에선가 마주쳤던 얼굴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가슴속에서 매서운 돌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나는 허겁지겁 변 기자에게 달려갔다. 그 여행자를 본 순간의 내 심경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는 껄껄거리며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아니 깐죽거리기까지 했다.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심히 인상적으로 각인됐기 때문에 일어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로 틈만 나면 눈으로 그녀를 더듬는 버릇이 생겼다. 행여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고 엉뚱한 상상에 빠져들곤 했다. 그녀가 수행 교육을 마치지 못하고 절을 떠나는 모습이 연상되는가 하면, 스스럼없이 내가 그녀를 포옹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람이 제법 속도를 실어 절간을 휘저어대는 새벽이었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방을 나왔다. 바닥이 훤한 시멘트 우물 수면이 빗살무늬를 그리고, 파릇파릇한 앵두나무 잎들이 분간 없이 까불거렸다. 나는 라일락 꽃잎을 짓밟고 서성이다가 불현듯 연주를 떠올렸다. 그 여행자는 연주의 이미지를 그대로 표출하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일주문을 빠져 나와 줄담배를 태웠다. 대학 시절이 생각났다. 나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친구 재호, 그리고 재호와 한 몸처럼 어울렸던 연주. 그렇다. 까마득한 세월 저편에서 연주를 데려오려고 그 여행자가 알짱거렸는지도 몰랐다.

  ‘매 맞는 법’의 강의가 있던 날이었다. 우선 그 제목이 생소해서 괜히 내가 먼저 긴장이 되었다. 발우공양하는 법, 걷는 법, 신발을 벗고 신는 법, 해우소에 가는 법 등을 다 익힌 뒤였다. 서른여덟 명의 여행자들은 연단의 강사 스님을 향해 딱딱한 마룻바닥을 방석 삼아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하나 같이 자세가 돌부처처럼 굳어 있었다. 선배 스님이 단 위에서 매 맞는 시범을 보였다. 죽비로 어깨를 내리칠 때 먼저 어깨를 내려 맞을 준비를 하는 동작이었다. 행자들도 한 명씩 단 위에서 실습을 했다. 지극히 단순한 동작인데도 대부분이 서너 번씩이나 어깨를 맞아야만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딱딱, 하는 죽비 소리는 의외로 맑고 경쾌하게 들렸다. 그 여행자도 석 대를 맞고 나서야 통과를 했는데, 맞을 때마다 한결같이 표정이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고서도 하릴없이 앉아있던 연주의 눈길이 여행자의 표정 속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날, 기진맥진해 쓰러진 사람은 오히려 가해자인 재호였다. 나는 연주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재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침대에 엎어져 코를 골고 있었다. 소아마비로 온전치 못한 녀석의 왼발이 삐죽이 침대 밖으로 나와 있는 게 섬뜩했다. 연주의 몰골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터진 입술이 부어올라 앞니가 훤히 드러나 보이고, 갈가리 찢어진 블라우스 사이로 브래지어 끈이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연주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에 나는 정신이 퍼뜩 든 느낌이었다. 그녀를 위로해 주려던 마음이 스러지면서 야릇한 오기가 뻗쳤다. 무슨 증거라도 찾으려는 수사관처럼 눈을 번뜩였다. 방바닥은 이불에서 터져 나온 솜뭉치로 엉망이었다. 목구멍에 솜먼지가 덕지덕지 엉켜 붙을 것처럼 금세 목이 조였다. 거실은 박살난 기타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지판에서 떨어져나간 줄은 제멋대로 휘어지고 산산조각난 통의 앞뒤 면이 뒤죽박죽인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이상하게 피범벅인 채로 나뒹구는 짐승의 시체를 보는 기분이었다. 기타는 녀석이 애지중지 그러안고 다녔던 것이었다. 나는 된숨을 몰아쉬었다. 바로 발아래에 검은 색 지판 조각이 있었다. 나는 지판 조각을 힘껏 걷어찼다. 거실 유리문이 박살이라도 나는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연주는 작정이라도 한 듯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몰랐다. 나는 어쩌자고 연주의 전화를 받으면 무작정 달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나는 거리를 배회했다. 잘못 그린 추상화처럼 시퍼런 멍으로 얼룩진 그녀의 팔다리가 눈앞에 오락가락했다. 연주를 좋아한다고 재호에게 고백한 내가 바보였다. 연주는 녀석의 발광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제아무리 잘난 체해도 어쩔 수없이 꿈틀대는 열등의식까지 덮을 재주는 없었던 것이다. 만취한 상태의 광기일지라도 그 속내는 뻔했다. 나는 어둑신한 거리에서 가차 없이 녀석을 도마에 올려놓았다. 냉소로 무장한 녀석의 상판때기부터 짓이기기 시작했다. 보기 좋게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 여자처럼 도톰한 입술에 쇠붙이처럼 단단해 보이는 콧대, 반지르르한 머리칼이 나풀거리는 널찍한 이마. 다음 순서로 나는 녀석의 배경에 석유를 들이붓고 서서히 불을 지폈다. 외과의사인 아버지, 계모, 생모의 재혼, 녀석의 독립, 24평 아파트, 풍족한 생활비……. 

  재호는 고등학교 2학년 봄부터 혼자 살면서도 매사에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다. 절름발이라는 신체적 결함은 애초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원만한 성격에 머리는 그 누구보다도 명석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도 움베르토 에코니 보르헤르트니 하는 이들의 책만 들여다보았지만, 나와 나란히 명문대 인문학부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런 녀석이 연주를 사랑하면서 몰라보게 변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연주를 좋아했다. 연주가 재호와 동거를 시작했어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의 사랑이 그렇게 연주를 할퀴는 식으로 번져나가는 것은 당연했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환상의 맹점을 떨치지 못한 채 만났던 것이다. 연주는 영악했다. 내 절절한 사랑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시치미를 뗐다. 내게는 거북이처럼 딱딱한 등을 들이댄 반면, 녀석에게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가슴을 선물했다. 연주는 여자의 속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데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던 거였다. 연주가 녀석에게 쏠린 이유는 간단했다. 불구에 대한 동정, 혼자 사는 자유인, 넉넉한 돈…… 돈. 연주는 무엇보다도 돈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녔던 게 틀림없다. 고아로, 작은 절인 상인사에서 자라면서 얼마나 돈에 굶주렸겠는가.   

  우리는 교내 연극 동아리 ‘아프로디테’에서 만났다. 대학의 타성에 푹 젖어있던 3학년 때였다. 재호와 나는 1학년 때부터 ‘아프로디테’에서 살았고, 연주는 그 해에 처음으로 우리 동아리를 기웃거린 햇병아리였다. 연주의 첫인상은 짧은 커트머리에 화장기 없는 앳된 얼굴이 대학 새내기처럼 상큼했다.

  라일락 향기를 밀어낸 아카시 향기가 교정에 짙게 깔린 5월이었다. 내가 쓴 어줍잖은 희곡 <갇힌 자의 분노>가 교내 문학상에 가작으로 뽑혀, 축제 행사에 그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대학 들어와 연극에 미친 재호가 연출을 맡았고 연주는 소품 담당이었다. 처음에 녀석은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내 처녀 작품을 자기가 주물럭거린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불만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우선 작품이 부적합하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된 무대 장면에다 등장  인물이 기껏 다섯 명뿐이라는 게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꼬집었다. 한 마디로 지루한 연극이 되기 십상이라고 단정했다. 녀석은 소설이라도 각색하듯 사정없이 칼을 들이댔다. 결국 <갇힌 자의 분노>는 리허설을 하루 앞둔 날까지 삭제되고 덧칠하느라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공연 때마다 관객들이 통로에 신문지를 깔고 앉을 정도였다.

  마지막 공연을 마친 회원들은 뒤풀이를 하자며 모두 일산 호수 공원으로 향했다. 평일 밤 아홉 시의 자유로는 아우토반이 따로 없었다. 길가의 야광선이 우리 차를 따라오느라 쉴 새 없이 깜박거렸다.

  어둠을 머금은 호수는 호수 가의 불빛을 받아 마치 생명체처럼 팔딱거렸다. 그 가운데 새치름한 연분홍 봉오리를 내민 수련. 그 봉오리를 받치고 수면에 누워 있는 수련 잎. 자연은 평화 그 자체로 다가왔다. 우리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 팔각정으로 올라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둠은 더 여유를 부리며 우리를 끌어당겼다. 소주잔이 서너 순배 돌면서 화기애애한 술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회오리바람이 판을 덮쳤다. 분위기가 돌변했다. 재호가 일부러 판을 깬 것은 아니었다. 소주에 맥주를 섞어 마신 게 화근이었다. 녀석은 취하면 가끔 미친개 행세를 했지만, 그날은 미친개 중의 상미친개였다.

  모두들 벗기 시작했다. 녀석의 말대로 가식의 껍데기, 욕망의 누더기, 위선의 탈은 ‘옷’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 모든 것을 떨쳐버릴 때에야 우리는 진실을 내보일 수 있을 것이었다. 녀석만 취한 게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지독하게 취했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연주였다. 연주는 브래지어를 벗으려다 말고 녀석을 노려보았다. 미친 놈, 넌 악마야. 그러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들었다. 녀석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갑자기 판이 살벌해지고 말았다. 녀석은 쩔뚝거리는 건지 비틀거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몸놀림으로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쩌렁쩌렁 고함을 질렀다. 너희들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다 죽여 버리고 말겠다. 어디서 지금 반항을 해? 죽음도 때론 황홀한 만족임을 보여주지. 특히 연주 넌 오늘 내 밥이다. 따위의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결코 횡설수설하는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무슨 주술에라도 걸린 듯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구도 녀석에게 맞서지 못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마치 각본에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느닷없이 술잔을 치켜들고 부라보, 라고 외쳐댔다. 어렴풋이 연주의 젖가슴과 엉덩이를 본 것도 같았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여관방이었다. 해는 하늘 한가운데서 굵고 긴 햇살을 힘차게 뿌리고 있었다. 취중에도 누가 조를 짠 모양이었다.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이 방 저 방에서 문을 열고 기어 나왔다. 재호와 연주는 그 어느 방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털썩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는다. 숨조차 내뿜지 못할 정도로 고요함을 느낀다. 경내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파스락파스락, 행자들의 넓은 소맷자락 나풀거리는 소리가 고요를 깨뜨린다. 그간의 수행을 말해주듯 동작이 유연하고 뒷모습도 무척 편안해 보인다. 철야 정진을 마치고 나면 모두 가사를 걸치고 구도의 길을 떠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처마 끝을 바라본다. 풍경이 소리 없이 팔랑거리고 있다. 변 기자가 내 앞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카메라로 오른쪽 귀퉁이를 가리킨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빙 둘러서서 무엇인가를 의논하고 있는 눈치다.

  "신경쓸 거 없어, 저 팀은 모든 것을 영상으로 보여줘야 하잖아?  변 기자, 오늘은 대충 이쯤하고 말자고. 우리도 회향식을 해야 할 거 아냐? 내려가서 소주나 한잔 하지."

  "글쎄요"

  "내 말대로 해. 이 철야정진이란 걸, 누군 소싯적에 안 해 본 줄 알아?  다 그게 그거야. 더 이상 찍을거리도 없어. 새벽 세 시쯤 잠깐 와서 땀에 전 얼굴들 몇 컷 찍으면 돼."

  나는 말을 건네면서 그 여행자를 애써 찾아본다. 어디쯤에서 정진을 하고 있는지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조갈증에 걸린 사람처럼 괜히 목이 탄다. 변 기자가 내켜하지 않으면 혼자라도 내려가 소주를 들이켜야 할 것 같다.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가 가슴을 마구 휘젓는 것 같다. 울컥 짜증이 인다. 내일이면 그 여행자가 어느 사찰인가로 반드시 떠나야함이, 그리고 이렇게 그녀에게 엮어들지 못해서 안달이 난 내 속내에 부아가 치민다. 

  목탁 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나는 손전등을 변 기자에게 주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담배 연기를 입 안 가득 모았다가 허공에 내뿜는다. 

  "아 참, 또 휴대용 사진기를 잊고 왔네요. 그날 있잖습니까. 그 남행자 뒷모습을 담아두지 못한 게 두고두고 서운했는데요. 근데 그 행자의 바랑 덩치가 왜 그렇게 큼지막했을까요?"

  변 기자의 진지한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수행자들이 온종일 참선을 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겹겹이 내려앉은 구름은 그대로 오후까지 이어졌다. 취재거리도 없고 그렇다고 그들과 함께 참선도 할 수 없고, 날씨만큼이나 답답하고 따분했다. 모처럼 사우나라도 하면서 땀을 흘리고 싶었다. 우리는 저녁 공양을 포기하고 절을 나섰다. 절 입구 주차장에 세워둔 변 기자의 차로 갈 요량이었다. 이끼가 잔뜩 낀 부도전 앞을 지날 때였다. 얼핏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내가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가 쏜살같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수행 중인 남행자였다. 어찌나 걸음이 빠르던지 물끄러미 그 뒷모습만 바라보고 말았다. 취재거리를 놓친 꼴이었다. 언뜻 보기에 꽤 나이가 들어 보였다. 이번 행자들의 나이는 천차만별이었다. 열여섯에서 마흔일곱 살까지 분포되어 있었다. 여행자들은 삼십 대가 다섯 명, 나머지는 전부 이십 대로 대체로 나이가 엇비슷했다. 최연소와 최고령 행자는 모두 남행자였다. 현재 함께 교육을 받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대학 2년을 중퇴하고 출가한 아들을 따라 아버지가 출가를 했다. 또한 이 아들의 어머니는 엊그제 절에 왔다. 부자의 회향을 지켜보려는 거였다. 나는 이 가족에 초점을 맞추고 살펴보았다. 어머니에게서 얼핏 이중 삼중으로 쌓인 고뇌의 그림자가 엿보였다. 또한 행자들의 이력도 다양했다. 불교학을 전공한 사람, 교사, 요리사, 상인……. 아무튼 중도 탈락자인 그 수행자는 꽤 큰 바랑을 짊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해어름에 내려가는 일도 특기할 만했다. 그전에 떠난 탈락자들은 모두 새벽 예불 전에 슬금슬금 절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글쎄, 나도 실은 궁금했어. 뭐가 잔뜩 들었는지……. 결국 그 행자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고 만 셈이지. 모두들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출가본사에서 6개월 이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말이야. 물론 기간은 짧지만, 여기 교육이 훨씬 힘들다고들 하더군. 그래, 꼭 수행이 고달파서만은 아닐 거야. 마음이 문제지. 미처 버리지 못한 아집과 욕망……. 혹 그 바랑에는 애욕과 번뇌의 덩어리가 그득했을까?"

  "하지만 그들이 절집에 들어왔을 땐, 일단 세속에 대한 집착을 끊은 상태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혹, 더 정진한다고 여기 교육원에 들어왔다가 새로운 번민에 휩싸인 것 아닙니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초심을 잃지 않으려면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른다고들 하지. 정말 예비 스님이 되는 과정이 이토록 어려운 줄은 몰랐어."

  그렇다. 실제로 이번 교육을 마쳤다고 해 곧바로 스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예비스님일 뿐이다. 회향식을 끝으로 다시 강원이나 선원으로 가서 종단의 기본 교육 기간인 4년을 수료해 구족계를 받아야만 비로소 스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상가에 들어서자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평소와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다. 더군다나 이 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는 가게들이 즐비하다니. 우리는 몇 차례 들렀던 가게로 향한다.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아 주춤거린다. 주인 남자가 대뜸 우리를 알아보고 안쪽으로 안내한다. 시끌벅적해서인지 술이 입에 당기지를 않는다. 변 기자도 내심 나와 같은 기분인지 일찍 돌아가자고 한다. 우리는 소주 두 병을 비우고 일어선다. 나는 술값을 치르면서 웬 사람들이냐고 주인에게 묻는다. 아니, 모르셨어요? 내일 회향식 하잖아요, 다 스님들의 가족들이죠. 주인은 내 물음이 의외라는 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목청을 높인다. 며칠 전부터 가족이라며 경내에 낯선 사람이 한둘씩 보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다. 예전에는 가족 몰래 수계식을 치르곤 했는데, 시대가 변하긴 변했다. 현 시대다운 풍속도다. 

  흠뻑 취하고 싶었는데 정신이 너무 말짱하다. 이런 내 자신이 낯설다. 문득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내 가족이 생각난다. 집을 나온 지 벌써 4년째다. 형이 결혼할 때는 무감각했는데 동생이 결혼 상대자를 집에 데려오자 좀 난감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내 눈치를 보는 게 부담스러웠다. 나는 본의 아니게 독신주의자가 되어 보따리를 쌌다.  

  "변 기자, 집 생각 안나? 이렇게 오래 나와 있으면 마누라가 된통 바가질 긁어댈 텐데 말이야. 얘들도 아빠 얼굴 잊어버리겠다."

  "아니 장가도 안 드신 분이 남의 집 사정은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 사실 마누라 엉덩이 생각나서 통 잠을 설칩니다. 근데 선배님은 무슨 연유로 밤새 뒤척이시는지 궁금하네요."  

  "뭐라구? 내가 언제? 그건 그렇구, 왜 자기 잠 설친 걸 마누라 핑곌대? 카메라 렌즈 속에서 숨 쉬는 애인은 어떡하구서. 사람이 좀 솔직해 봐라."

  갑자기 변 기자가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나는 당황해 그만 말문이 막힌다. 

  "사실 첫눈에 쏙 들어오는 얼굴이었죠. 카메라만 들이대면 그 행자의 얼굴이 어느새 렌즈에 자리 잡고 있는 걸 어쩝니까. 하지만 다 부질없다는 거 압니다. 서로 길이 달라도 너무 다른데요, 뭐."  

  잠깐 변 기자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지나간다.

  상가를 빠져나오니 칠흑 같은 어둠이 또 도사리고 있다. 무성한 숲을 양쪽에 낀 탓인지 눅눅한 기운까지 엄습한다. 연주와 나도 애초에 길이 달랐는지 모른다.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시험 준비로 경황이 없던 때였다. 재호가 도서관 앞까지 차를 몰고 와서 다짜고짜 나를 차에 태웠다. 머리도 식힐 겸 이천에 있는 상인사에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나는 대뜸 상황을 파악했다. 연주가 떠나버린 것이었다.

  상인사 경내는 온통 새하얀 눈밭이었다. 헐렁한 회색 스웨터에 승복 바지 차림을 한 연주는 무척 수척해 보였다. 그날 밤이었다. 우리는 백팔 배를 한답시고 법당에 들어갔다. 연주가 권한 것은 아니었지만, 연주의 흉내라도 내보고 싶었는지 몰랐다. 나는 나비처럼 사뿐사뿐 큰절을 하는 연주를 힐끔거리면서 큰절을 시작했다. 재호도 곧잘 따라하는가 싶었는데 얼마 가지 못해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한 마리 곰이 되어 끝까지 어기적어기적 백팔 배를 마쳤다. 

  법당에서 나온 우리는 말없이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뒤뜰로 갔다. 대나무들이 바람에 서걱서걱 몸을 부딪쳤다. 연주의 말소리도 그 소리에 섞여 서걱거렸다.  "내 부모, 아니 내 어머니가 누군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야. 그래, 주지 스님이 데려올 때, 난 겨우 두 살배기였대. 중학교 2학년 땐가, 난 내 뿌리를 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어. 스님께 생떼를 쓰는 것도 모자라 걸핏하면 반항을 하느라 절을 나가기도 했어. 하지만 스님도 막막할 밖에.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날 안고 온 게 전부였으니까. 스님이 얼마나 날 달래줬는지 몰라. 사람이 태어나는 것 자체가 무라고 했어. 잠시 어머니의 몸을 빌려 태어난 거라며 불법을 빌어 여러모로 깨우쳐 줬는데도…… 아직까지도 모르겠어. 스님은 이제 절을 떠나건 말건 다 내 자유라고 하지만 모르겠어, 그것도. 난 정말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나는 흘낏 재호를 돌아보았다. 녀석도 순간 내게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눈에서 불꽃이 톡톡 튀었다. 내가 녀석에게 뭔가를 묻고 있었다면 녀석은 뭔가를 답하고 있었을 거였다.  

  연주를 닮은 그 여행자가 보고 싶다. 그녀는 아직도 법당에서 절을 하고 있는 것인가. 느닷없이 눈이 시려온다.

  "아, 내일이면 모두 이별이구나. 변 기자, 마지막으로 애인 얼굴이나 실컷 봐두는 게 어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대웅전에나 들러보자."

  "미쳤습니까? 술 냄새 팍팍 풍기며 대웅전은 무슨……. 그리고 제발 애인, 애인 좀 하지 마십시오. 수도하는 사람을 두고 말입니다." 

  해탈문에 들어서자 염불 소리가 쟁쟁하게 울려 나온다. 어딘지 모르게 힘 있고 우렁차게 들린다. 진정한 기도는 소리로부터 나오는지도 모른다. 하늘은 여전히 어둠 속에 몰입해 있지만 경내의 불빛에 따라 크고 작은 나무 그림자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나는 나무 그림자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몇 걸음이나 뗐을까. 뺨에 차가운 물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진다. 빗방울이다. 하늘은 기어이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나는 멈칫 서서 변 기자의 등을 대웅전 쪽으로 떠민다. 변 기자는 못 이긴 체 몇 걸음 떼다가 요사채 쪽으로 몸을 튼다. 빗방울의 낙하 속도가 빨라진다.

  "그래, 우리 들어가서 잠깐 눈이라도 붙여볼까?"

  나는 변 기자와 나란히 발을 맞춰 걷는다.

  "선배님, 뭐 하나 물어도 됩니까? 곁에서 보니 선배님은 유독 수행자의 출가 동기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던데, 그 이유가 갑자기 궁금합니다." 

  "궁금하긴……. 난 수행자들이 그 까다로운 계율을 익히느라 혼신을 다하는 걸 보면서 처음부터 회의에 빠졌어. 수행의 의미나 가치를 무시해서가 절대로 아니야. 반드시 중생을 떠나서 수행을 해야만 구도자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게 쉬이 와 닿지 않았던 거야. 일종의 치장 같더군. 그러다 보니 내실을 찾을 수밖에. 거기에서 출가 동기가 중요하게 부각된 거지. 동기가 명확하고, 또 그 동기가 자기의 깨달음으로 이뤄진 자만이 끝까지 수행을 견뎌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 그렇군요. 어렴풋하지만 뭔가 좀 알 것도 같습니다."

  우리는 요사채 앞의 우물가에 멈춰 선다. 우물물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넘쳐흐르고 있다.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물무늬가 그려졌다가 지워지곤 한다. 내 얼굴이 물무늬 사이에서 찌그러진다. 나는 조롱 바가지로 물을 가득 떠서 변 기자에게 내민다.

  "저기, 저기 좀 보십시오."

  나는 변 기자의 손끝으로 시선을 보낸다. 한 행자가 서서히 사천왕문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 조그마한 바랑은 등에 착 달라붙어 있다. 보나마나 회향을 포기한 행자다. 아마도 이번 수행 교육을 포기한 마지막 행자가 될 듯싶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낯익다. 반듯하게 걷는 폼이 분명히 바로 그 여행자다. 아직까지 뾰쪽 구두 신고 걷던 세속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단 말인가, 하던 강사 스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 호통 소리에 느릿느릿 발을 떼던 여행자였다.        

  "그 여행자 맞지?"

  나는 변 기자에게 한 발 다가서며 다그친다. 변 기자는 틀림없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변 기자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한 뒤 황급히 여행자의 뒤를 쫓는다. 어둠은 빗줄기를 감추려는 듯 더욱더 기세를 떤다. 나는 어느새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선다.

  "저, 잡지 ‘보리수’의 기잡니다. 이렇게 뒤쫓아 온 건 순전히……."

  "취재 때문이라구요?"

  여행자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 말을 중도에서 여지없이 동강낸다.

  "이렇게 절을 나온 제가 아직도 취재 대상이 될 수 있나 보죠"  말끝을 야무지게 마감하고서 여행자는 가던 길을 재촉한다.

  "내일이면 회향인데 왜, 여태 잘 견디다가 이렇게……."

  나도 모르게 말이 마구 엉킨다. 여행자는 입을 다문 채 계속 앞만 보며 걷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손전등 불빛에 바스러져 은가루처럼 흩날린다. 여행자의 흰 운동화에도 내 까만 구두에도 은가루가 소복하게 쌓인다. 나는 갑자기 할 말을 잃어버린다. 매표소를 지난다. 텅 빈 정류소가 눈에 들어온다. 새벽 여섯 시가 되어야 첫 버스가 들어올 것이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내게 시선을 준다. 그녀의 얼굴이 빗물로 반들거린다.

  여관방에 들어서자마자 여행자는 그대로 잠에 떨어지고 만다. 그 동안의 부족한 잠을 벌충이나 하려는 듯 미이라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잠이 오기는커녕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다. 술기운도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여행자가 여관에 들어서기 전에 한 말이 귓가에 되살아난다.

  "전 조금 전까지도 회향을 앞둔 이 길을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염불을 외는 한 순간, 그만 목이 꽉 잠기는 거예요. 이 길을 반드시 가야 하는지…… 운명일지라도 말예요. 영원히 행자로 살 수도 있고, 아니면 머리를 다시 기를 수도 있구요. 어떤 노스님이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자기를 얽매지 않으려고 선택한 구도자의 길이 또 다르게 자기를 얽매는 길이 될 수도 있다구요. 한 잠 자고나서 계룡산에 갈 거예요. 갑사에서 오른쪽 계곡을 끼고 오르다 보면 쌍둥이 바위가 나오는데, 거기서 왼쪽으로 한 200미터쯤 더 올라가면 청색 기와를 얹은 암자가 있어요. 제가 머리를 깎고 은사 스님과 함께 들렀던 곳이에요. 자식을 셋이나 둔 대처승 암자죠. 보통 대처승과는 달라요. 부부 대처스님……. 처음 출가한 사람은 부인이었대요. 그런데 가끔 들르던 남편이 어느 날 머리를 깎고 나타났대요. 부인은 그 즉시 환속해 절을 떠났다는데…… 일 년도 못 돼 다시 돌아왔다더군요. 아,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 머리가 좀 복잡해지네요. 그들이 과연 대처승인지, 세속의 부부인지……."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나는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한참 동안 주시한다. 여행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하마터면 절름발이 스님이 아니냐고 물을 뻔했다. 내가 연주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시원하게 느껴지던 초여름쯤으로, 입대 후 첫 휴가 때였다.  

  재호는 졸업 후 연극판에 뛰어들었고, 그 즈음 무대에 올릴 작품을 맹연습 중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해는 점심 무렵이 되니 이글이글 녹아 내렸다. 그날 그 일은 정말 날씨 탓이었을까. 그날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무참하게 우리를 짓밟기에 급급했다.  

  동숭동에 있는 재호의 사무실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옆 사무실 직원의 말에 의하면 며칠 전부터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한달음에 녀석의 아파트로 갔다. 대여섯 번이나 초인종을 눌러도 기척이 없었다. 막 돌아서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녀석이 부스스한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불청객이 된 걸 직감했으나 그냥 돌아설 수는 없었다. 천천히 거실로 올라서자 연주가 방에서 소리도 없이 나왔다. 중병이라도 앓은 듯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납빛이었다. 게다가 비척거리기까지 했다. 녀석이 당황한 표정으로 연주를 향해 서둘러 발을 놀렸다. 녀석의 발이 평소보다 더 심하게 쩔뚝거리는 것 같았다. 연주는 녀석을 한 번 쏘아보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녀석과 마주앉아 멍하니 베란다 유리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 몰려왔는지 파란 하늘에는 두꺼운 먹구름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연주가 어디 아픈 거냐?"

  녀석의 눈썹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온전한 오른발로 탁자를 거세게 찼다.

  "제기랄, 네가 직접 연주에게 물어봐. 한 번이면 말도 안 한다. 그래 두 번씩이나 제멋대로 아길 죽여? 너라면 어때, 그냥 지나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놓고 뭐, 절에 들어가면 그만이라고 큰소리까지 쳐?"

  언제 나왔는지 연주가 유령처럼 나타나 방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만해, 제발. 넌 분명히 결혼을 회피했어. 난 너하곤 달라, 난 가족을 먼저 이루려고 했단 말이야."

"뭐 가족? 네가 허구한 날 얼마나 네 어머닐 증오하고 있는데? 그런 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니가 되길 거부해? 낳아서 버린 것보다 뱃속에서 생명을 끊어버린 게 더 잔인하다는 거 몰라?" 

  녀석의 눈에 핏발이 섰다. 녀석은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더니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연주는 그때까지 제자리에 붙박은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냉큼 꺼져버려, 꼴도 보기 싫으니"  녀석은 소주병을 연주에게 내던질 기세였다. 그때였다. 천둥소리가 무섭게 진동했다. 뒤이어 번개가 유리창을 매섭게 갈랐다. 금방이라도 아파트가 무너질 것 같았다. 우리는 순식간에 암흑 속에 파묻혔다. 숨을 내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천둥과 번개가 발악을 했다.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울렸다. 가까운 데에 벼락이 떨어진 듯싶었다. 나는 간신히 거실 등의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그녀가 벌벌 떨면서 녀석을 지나쳐 내 앞으로 왔다. 내가 손을 뻗치기도 전에 그녀가 돌연 고꾸라졌다. 동시에 유리창이 산산조각이라도 날 듯 거센 빗줄기가 퍼부었다. 연주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나는 얼마나 오래 연주를 안고 있었던가. 그리고 녀석은 얼마나 술을 마셔댔던가. 녀석은 끝내 연주가 깨어나는 것을 보지 않고 비가 내리는 까막하늘 아래로 나가버렸다. 나는 밤을 꼬박 새며 녀석을 기다렸다. 아니 연주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해 밤을 새웠다.

  나는 그날 이후 여태까지 연주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재호도 마찬가지다. 제대를 하고 들은 풍문으로는 연주가 절에 들어가 버렸다고도 하고, 가끔 녀석이 연극가를 기웃거리기도 한다고 했다.        

  비는 멈추지 않고 유리창을 훑어 내린다. 벌써 새벽 다섯 시다. 청기와 암자를 찾아가는 내 모습이 유리창에서 흔들린다. 나는 진땀을 흘린다. 빗물에 쓸린 산길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여행자는 잠깐 몸을 뒤척이더니 또다시 잠에 빠져든다. 문득 편집부장의 펄펄 뛰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다. ‘출가’에 못지않게 ‘환속’도 또 다른 구도자의 길임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행자 교육원의 원고를 정리하지 않을 작정이다. 대신 ‘환속’이라는 제명으로 청기와 암자 얘기를 쓸 것이다. 특집 기사를 내 단독으로 기획, 정리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천천히 변 기자의 핸드폰 번호를 누른다.   (원고지 8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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