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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승훈 시인과의 대담> 자아 찾기의 긴 여정 - 『사물 A』에서 『인생』까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8. 2. 4. 15:17

 

 

<이승훈 시인과의 대담>



자아 찾기의 긴 여정 - 『사물 A』에서 『인생』까지



♠ 모더니증과 자아 찾기

박찬일 : 시에만 국한시켜볼 때 선생님은 그동안 12권의 시집, 한 권의 그림 시집, 두 권의 시선집을 펴냈고 지금 또 한권의 시선집 『아름다운 A』가 황금북에서 나올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첫시집 『사물 A』가 1969년에 나온 이래 『환상의 다리』(1977), 『당신의 초상』(1981), 『사물 A』(1983), 『당신의 방』(1986), 『너라는 환상』(1989)이 출간되었습니다. 그후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1991), 시선집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 (1991), 『밤이면 삐노가 그립다 』(1993), 『밝은 방』(1995), 『나는 사랑한다』(1997), 『너라는 햇빛』(2000), 『인생』(2002)이 2~3년 간격으로 연이어 나왔습니다. 그림 시집 『샤갈』은 1989년에 나왔습니다. 혹시 누락되거나 연도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까?

이승훈 : 없습니다. 시집을 너무 많이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박찬일 : 선생님 하면 우선 모더니즘, 혹은 후기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떠오르게 됩니다. 모더니즘은 내적 독백의 문학입니다. 내면성의 문학입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주체가 살아 있는 문학입니다. 후기모더니즘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에서 처럼 주체를 부정하는 문학입니다. 선생님의 시들을 모더니즘과 후기모더니즘으로 나눈다면 어디까지가 모더니즘이고 어디까지가 후기모더니즘인지요. 선생님은 선생님의 초기의 시들을 "비대상시"라고 명명하면서 비대상시를 내면세계를 탐사하는 시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자연 선생님의 초기시들은 모더니즘의 영역에 있는 것이 됩니다. 후기모더니즘에 대해서는 따로 여쭙겠습니다.

이승훈 : 모더니즘이라는 말은 상담히 다양하게 쓰이잖아요. 근대, 혹은 근대성이라는 말도 그렇고. 내가 모더니즘을 볼 때는 "미적 모더니즘" 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20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의 시들입니다. 한국에 국한시키면 1930년대 식민지 시절의 이상, 정지용, 김기림 문학들이 거기에 속합니다. 나는 이들의 문학을 한국적 모더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혹은 좁혀서 식민지 모더니즘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20세기 초 서구에서 나타난 자아 추구의 경향이 이들 특히 이상에게 그대로 나타납니다. 달리 말하면 객관적인 세계를 노래할수 없는, 혹은 리얼리즘에 절망한 사람들이 가는 내면의 길, 이것이 한국적 문맥에서는 식민지 시절에 시작되었고 나는 이것을 모더니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나는 처음부터 내면의 세계를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나에게는 객관적인 세계를 노래할 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 우선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출발부터 반리얼리즘이었지요. 사회 현실을 노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연 서정을 노래한 것도 아니고. 20대부터 "나"란 누구인가, 라고 묻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우연하게 1960년대의 한국적 상황과 맞물렸지요. 4·19, 5·16 이후의 정치적 현실이 나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말은 아니고. 다만 근대화 초기에 한국이라는 땅에 서 있는 나에 대한 질문, 즉 나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의 화두가 되었다는 것이죠. 또 하나의 원인으로는 개인적으로 바깥 세계보다는 내면 세계에 집착하는 기질이 있었던 것 같고. 성장 배경에도 원인을 찾을수 있겠고. 한마디로 모더니즘이 취향에 맞았어요. 리얼리즘이나 전통주의보다는.

박찬일 : 선생님 개인적 시사를 볼 때 어디까지가 모더니즘, 혹은 미적 모더니즘의 시대라고 볼 수 있을까요. 후기의 시 경향들을 모더니즘으로만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승훈 : 초기 시집들인 『사물 A』 (1969), 『환상의 다리』(1977), 그리고 『당신의 초상』(1981)에 실린 시들이 주로 자아 찾기의 시들입니다. 구체적으로말하면 무의식 찾기의 시들입니다. 억압된 무의식을 들춰내야 "나"가 드러날 것 같았어요. 그 다음 단계가 "너"의 테마입니다. 『사물들』(1983), 『당신의 방』(1986), 『너라는 환상』(1989)이 여기에 해
당되는 시집들이죠. 너와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으려고했습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화두를 "너"로 잡았다는 것이죠. "나"만을 가지고는 나를 찾을 수 없었어요. 다음 시집들『길은 없어도 행복하다』(1991), 『밤이면 삐노가 그립다』(1993)에서, 특히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 』에서 "그"의 테마가 나타납니다. "그"라고 하는 것은 나를 물질로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조소적이고 냉소적인 태도입니다. "나"가 "그"로 치환된 것이죠.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 자아 찾기의 세 번째 단계에 해당됩니다. 결론적으로 『사물 A』에서부터 『밤이면 끄노가 그립다』까지가 모더니즘의 시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주제가 "자아찾기", "정체성 찾기"이니까 그렇다는 것이죠. 기법적인 면에서 초기시들은 상징주의, 쉬르리얼리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조금 내려와서는 환상적 세계를 다룬 시편들도 있습니다만.

박찬일 : 요약하면, 선생님의 시적 발전을 나의 세계에서 너의 세계로 또 그의 세계로의 발전이라는 코드로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60년대, 70년대의 『사물 A』(1969), 『환상의 다리』(1977), 『당신의 초상』(1981) 은 "나의 세계"와 관련되며, 80년대의 『사물들』(1983), 『당신의 방』 (1986), 『너라는 환상』(1989)은 거의 세대와 관련되며, 90년대의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1991), 『밤이면 삐노가 그립다』(1993)는 "그의 세계"와 관련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부 "자아찾기"의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문학평론가 정효구 씨는 그런데 『사물 A』, 『환상의 다리』, 『당신의 초상』에서 『사물들』, 『당신의 방』, 『너라는 환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독백의 회로에서 대화의 회로로의 변화로, 나아가 소승적 차원에서 대승적 차원으로의 변화로 이해했습니다. 선생님은 "나"에서 "너"로의 이동을 근본적 변화가 아닌, 자아 찾기의 서로 다른 형태라고 하셨는데.

이승훈 : 정효구 교수는 저의 시와 시론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저의 창작미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독백의 회로에서 대화의 회로로 변했다는 것은 양식적인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다만 나의 입장은 독백을 통해서 나를 찾으려한 것처럼 대화를 통해서 나를 찾으려 하였고 "그"를 통해서도 나를 찾으려했다는 것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같은 얘기입니다.

박찬일 : 선생님 시의 또 하나의 큰 줄기는 역설적이지만 "소통 불가능"에 대한 것입니다. 1980년대의 『사물들』, 『당신의 방』, 『너라는 환상』에서 너와 나의 관계의 복원에 대한 시도는 회의를 바탕에 깔고 있으며, 그리고 좌절로 점철되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2001년 『시현실』 가을호에 실린 "자선 대표시" 대부분이 소통불가능에 대한 것입니다. 소통불 가능은 양방향에서 제시됩니다. 시인 본인도 세상과 소통하려 하지 않고 세상도 시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자의 예를 들면 「당신의 방」과 「오토바이」가 있고 후자에 「1995년의 편지」 「겨울 저녁 일곱 시의 풍경」 「너」가 있습니다. 「오토바이」에서 "세상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두는 건/의자, 작은 방, 개미, 염소"라고 말하고 있고 「1995년의 편지」에서는 "수천 개의 불빛이 한 개의 의자를 밝혀주지 못하니 미래에 만날 사람들 또한 배반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방」은 이렇게 끝납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아마 당신의 방엔/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승훈 : 고립, 소외, 소통 불능 등은 현대인의 조건을 설명하는 말들이 지만 나는 그런 경우는 아닙니다. 현실로부터 도피해서 나만의 공간에 있을 때 나는 행복을 느끼고 구원을 느낍니다. 다시 말해 현실로부터 의 도피, 대화로부터의 도피는 자기의식적이었다는 거죠. "너"와 대화를 모색하다가도 미리 겁을 먹고 담을 쌓습니다. "대화"에서 초래될지도 모르는 고통이 두려워 나만의 세계로, 나만의 불안의 세계로 도피합니다. 이해될지 모르겠습니다. 담을 쌓아 놓으면 안심이 됩니다. 혼자만의 세계에 있으면 안심이 됩니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의 신경증적 증상?. 나에게는 질병이 구원이고 도피가 구원이고 단절이 구원이었습니다. 정신분석학적 관찰의 대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개인적 으로는 어린 시절 찾아왔던 불안감, 30대에 있었던 피해망상증들이 이런 "증상"의 원인이거나 이런 증상을 심화시킨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앓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죠. "너"와의 관계에서 생길지도 모르는 불안보다는 "의자, 작은 방, 개미, 염소"가 낫다고 하는 것을. 혼자 있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을.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병이 저에게 구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아프면 아무도 못건드립니다. 나의 시의 자아찾기의 과정은 그러니까 가는 누구인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는 왜 불안한 가, 가는 왜 자꾸 망상에 시달리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시도라고 보면 됩니다.


♠ 비대상, 표현주의, 불안

박찬일 : 선생님의 신조어인 "비대상시"에 대해 평소 궁금하게 생각하던 것이 있습니다. 세 번째 시집 『당신의 초상』(1981)에 실린 「비대상」이라는 시론에서 비대상시를 자연세계나 일상세계가 아닌 내면세계가 드러난 시로 정의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초상』을 포함한 앞의 『사물 (1969), 『환상의 다리』(1977)들의 시들을 비대상시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세계도 보이지 않을 뿐 "대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존재론적 내면세계를 다룬 시도 대상시가 아닙니까,

이승훈 : "비대상"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1981년 그 당시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대상이라는 말은 일종의 추상표현주의 계통인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서 온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당시 어느 학자가 잭슨 폴록의 작업을 비대상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자극 받은 것이고. 영어로는 non-object라고 하는 것이지요. 최근에 김춘수 선생은 비대상이라는 말보다 무대상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했는데 의미상으로 보면 무대상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말일 것입니다. 무대상은 대상이 "없음"이고 비대상은 대상이 "아님"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잭슨 폴록의 비대상이라는 용어에 매력을 느꼈었고. 그의 작업이 내면의 억압된 충동을 밖으로 터뜨리는 저의 시작업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마디로 내면의 억압된 충동, 내면의 억압된 무의식을 터뜨리는 시가 저의 비대상시입니다.

박찬일 : 김춘수 시인의 "무의미시"와 선생님의 "비대상시"는 어떻게 다릅니까. 혹은 같습니까.

이승훈 : "평론가들은 비슷한 것을 달리 표현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글쎄요, 크게 보면 같을 것입니다. 젊었을 때 나는 김춘수 선생의 무의미 시론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김춘수 선생의 무의미시는 관념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는 관념이나 의미와의 싸움이 아닙니다. 나에게는 "관념"이나 의미와 의 싸움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이 문제였습니다. 나의 억압된 무의식을 터뜨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나의 경우는 의미가 아니라 심리가 문제였던 거죠.

박찬일 : 선생님은 리얼리스트도 아니고 순수 서정시인도 아닙니다. 1997년 『나는 사랑한다』에 실린 「오토바이」라는 시에 "거울을 연구하는 교수"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외부가 아닌 내부를 바라보는 자라는 뜻일것입니다. 같은 시의 "현실 따윈 모른다", 라는 구절도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선생님은 현실주의자, 혹은 리얼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영태 시인은 선생님을 "이상한 토양에 이상한 거름으로 된 이상한 "이라고 하였습니다. "차가운 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강한 개성 때문에" 한국 시단에서 "혼자 동떨어진 존재" 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순수서정시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 시단에서 선생님의 시가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이승훈 : 아까도 얘기한 것 같은데 우선 나는 리얼리스트로서의 재주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역사적 현실을 보려는 노력도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자연을 서정적으로 노래하기에는 너무 늙어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집사람이 베란다의 꽃들이 아름답다고 봐보라고 하지만 나는 꽃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심리적으로 늘 쫓기는 사람들은 자연을 돌아다볼 여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면만 보고 살았습니다. 내면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처음부터 리얼리즘이나 리리시즘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나는 계속 새로운 것을 보려고 했고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나를 모더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옛날 시인들이 노래한 것을 또 노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리얼리스트나 서정시인들을 적대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길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습니다. 나에게 는 나의 내면으로의 길이.

박찬일 : 칸트는 그의 『판단력 비판』에서 문학예술은 "모든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에 대하여 페터 뷔르거는 칸트가 문학예술을 당시의 자본주의의 이윤 극대화의 원칙에서 제외시킨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선생님은 시를 혹은 시쓰기를 현실과 무관한 무용의 행위, 무상의 행위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

이승훈 : 미적 자율성 문제를 최초로 철학적으로 이론화환 사람은 칸트입니다. 칸트에 의해 과학적 진리, 도덕적 양심, 미적 상상력, 즉 진, 선, 미는 서로 분리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과학과 종교 그리고 예술이 분리되었다는 것이죠. 나는 이것을 칸트의 비판철학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과학이 아버지이고 종교가 어머니라고 하면 둘 사이에 예술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지게 되자 예술은 갈 데가 없어졌습니다. 근대 미학의 출발점은 그러므로 외로움이고, 분리이고, 고독이고, 다시 말해 자율성인 것입니다. 뷔르거가 예술의 자율성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를 용납하는 것이라며 비판적 입장을 취했지만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물을 먹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예술밖에 없었지요. 미적 자율성은 현대 시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조건" 이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1920년대의 동인지 활동이 미적 자율성 공간을 확보하는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미적 자율성의 공간이 그전에는 없었어요. 미적 자율성 이론은 그러나 후기모더니즘에서 흔들리게 되지요. 저는 『밝은 방』을 쓰면서부터 그 미적 자율성이라는 것을 깨보려고 했습니다. 한국의 많은 시인들은 아직 미적 자율성이 뭔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무용성, 즉 쓸모 없음의 문제인데, 이것은 모더니즘이나 후기 모더니즘과 관계없이 예술의 조건인 것 같아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예술은 현실에 쓸모가 없었어요. 쓸모 없기 때문에 쓸모 있다는 역설, 이 짓이 내 문학관입니다. 쓸모 없음은 놀이와 관계 있고. 나는 예술이 신선 놀음까지 가야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신선 놀음"은 최근의 나의 주요 화두입니다.

박찬일 : 80년대 변혁의 시대에는 문학 예술이 선전 선동의 도구로 쓰였었는데.

이승훈 : 역사적인 대 사건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작은 아픔들, 작은 고뇌들, 그것이 예술을 하게 만듭니다.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80년대의 격동기 때 나는 외로웠습니다. 리얼리즘, 목적문학의 시대에 학생들에게 미적 자율성을 강의했어요. "자아 찾기" 라는 테마를 갖고 내면의 시를 쓰는 것은 정말 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싫은 건 하지 않아요.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씁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고집스럽게 나의 세계만을 추구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찬일 : 선생님 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표현주의"입니다. 표현주의적 경향입니다. 인상주의가 "밖에서 안으로 향하는 것이라면 (impress), 표현주의는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것입니다(express). 제1 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절규"같은 것입니다. 절규할 때 문법은 파괴됩니다. 절규의 언어에는 형용사, 부사, 조사, 대명사들이 빠집니다. 절규의 언어는 주로 명사의 언어이거나 동사의 언어입니다.

이승훈 : 지금 하신 말씀이 옳아요. 내 시가 어렵다는 말을 듣는 이유 중의 하나이죠. 유년 시절 무의식에 새겨졌던 것들이 터져 나갔다고 봅니다. 『환상의 다리』(1977)에서 특히 그랬어요. 거기에 그냥 명사로만 연결되는 시들이 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론에 맞춰 쓰여진 건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온 거죠. 그래요, 표현주의적인 요소가 내 시에는 많아요. 또 표현주의가 나에게 맞는 것 같아요. 신표현주의의 잭슨 폴록을 좋아했고 20세기초의 표현주의 화가들도 좋아했어요. 뭉크라든지, 고흐라든지. 내면적인 것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나는 좋아했어요. 아마 초기에 그런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박찬일:그래서 선생님의 시를 관류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아까도 말씀하신 "불안"입니다. 대상이 있는 불안fear이 아니라 보다 근원에 닿아 있는 불안anziety입니다. 자전적 요소와 관계있다면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큰"사건"이 분명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승훈 : 밖에서 보면 내가 거의 모범적인 스타일로 보여질지 모르지만 심리적인 세계에서는 상처가 참 많은 사람입니다. 불안이라는 것은 아까 말했듯이 대상이 없는 거죠. 대상이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늘 불안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자전적인 연대기를 쓰면서 분석을 해봤는데 나의 불안이라는 것은 결국 나의 유년 시절에, 그러니까 나의 무의식에 기인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무의식인데도 어슴푸레하게 드러나는 조건이 있지요. 불안의 조건이라고 할까. 유년시절, 끊임없이 이사, 전학을 반복했고 대학시절에도 그랬어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이사가 계속 반복되었지요. 그래요, 느닷없이 어딘가로 계속 이사를 다닌 것이 불안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번도 중심이나 백그라운드가 있다는 생각을 못해 봤어요. 라캉식으로 말하면 아버지가 문제였던 것이죠. 거기다가 성격도 내성적이고. 지금도 해질 무렵 시 한 줄 쓰고 맥주 한 잔 마시는 것도 불안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어요. 불안이
무의식에 깔려 있은 것이죠.


♣ 흐름, 가벼움, 타자

박찬일 : 초기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의 시들을 관류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 를 저는 "흐름"이라고 봅니다. 의식의 흐름인ream of conciousness에 서의 그 "흐름"과 비슷합니다. 초기시들의 주요 경향인 모더니즘의 "자동기술법"과 90년대 시들의 주요 경향인 후기 모더니즘의 "기표들의 유희, 혹은 "환유의 연쇄"들은 다같이 흐름을 그 주요 특성으로 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승훈 : 참 지적을 잘하셨네요. 초기에는 거기에 대한 의식이 없었어요. 포스트모던한 경향을 띠는 『밝은 방』(1995)이라든지, 『너라는 햇빛』, 『나는 사랑한다』에서부터 그런 의식이 생겼지요. 시인이 시를 쓰는 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돌의 경우처럼 깎고 새기는 것입니다. 쓴다는 것이 사실 흘리는 게 아니고 새기는 것이죠. 대부분의 시인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발상이 왔을 때 그것을 흘러가게 하지 않고 깎고 새기고 다듬습니다. 나는 그렇게 시를 쓰지 않았어요. 나는 어떤 것이 떠오르면 앉은 자리에서 다 씁니다. 시를 흘린다고 할까요. 시를 쓰는 동안만이라도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종이 위에서 말입니다. 시를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둠으로써 어떤 구원 같은 것,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같은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런 데에 대한 자의식, 즉 "흐름"에 대한 자의식은 후기 구조주의나 후기모더니즘 미학에서 말하는 언어 기호를 구성하는 기표와 기의, 즉 씨니피앙과 씨니피에에는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는 인식을 받아들이면 서 비로소 확고하게 되었습니다. 시는 "씨니피앙의 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미 없이 낱말들을 흘러가게 하는 것 말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불교와 관계가 있습니다. 뒤늦게 불교를 믿으면서, "나는 없다", "그냥 흘러가는 시를 써야겠다", 라는 생각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요즘은 다듬거나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더 없어요. 나오는 대로 그방 흘려버리고 싶어요. 그게 시라고 생각해요. 요컨대, 초기에는 (흐름에 대한) 자의식이 없었고 중기 이후 후기구조주의나 후기모더니 즘 미학을 받아들이면서 그런 것들이 생겼다는 것이죠. 좀 다른 얘기지만 한국시단에서 김수영이나 서정주 같은 분들도 깎는 타입이 아닙니다. 그냥 흘리는 타입이죠. 김춘수 시인도 『처용단장』에 서 씨니피앙을 흘리고 있고.

박찬일 : 그래서 "가벼움"입니다. 선생님의 시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가벼움을 지향하고 있다고 봅니다. "경쾌한 행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인식론적으로는 허무주의인데 적극적인 허무주의입니다. 니체의 니힐리즘과 같습니다. "허무주의와 놀려는" 허무주의 말입니다. 선생님은 「 비빔밥 시론」에서 "예술은 업이고 사막이고 우리의 인생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고 해탈이고 그런 점에서 위대한 놀이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가벼움은 "주체의 소멸이라는 인식과도 분명 관계있다고 보여집니다만.

이승훈 : 흐름의 미학을 생각하다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가벼워지자는 것이었죠. 무엇으로부터의 해방 말입니다. 가벼움의 반댓말은 무거움인데 무겁다는 것은 집착이 많다는 것입니다. 나와 사물에 대한 집착 말입니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 흘러가면서 가벼워지고 싶었습니다. 공기처럼 위로 올라가고 싶었어요. 최근의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이런 가벼움에 대한 것이었는데. 가벼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역사적인 문제라든지 현실적인 과제, 이런 것으로부터 초월하고 싶은 게 한가지인데 내가 볼 때 시는 그런 것이 아닌 것 같거든요. 두 번째는 나로부터의 가벼움이죠. "자아 찾기"를 시작해서 중기에 "자아 없음이라는 자각을 했지만 정작 실천은 참 어려웠습니다. 정효구 교수도 지적한 것처럼 이론적으로는 "자아 없음, "무아(無我)"라는 것을 얘기하면서 시는 여전히 무거웠거든요. 가벼움이 최상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벼움을 지향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린아이나 모든 것을 비우려고 하는 스님들이 가벼워 보입니다. 박 시인이 지적한 것처럼 "허무주의와 놀려는 허무주의죠. 아름다운 예술, 위대한 예술들은 전부 가볍지 않았습니까. 장 쥬네! 얼마나 가벼웠습니까. 우리는 가벼움이 가지고 있는 무거움,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가벼움의 철학을 알아야합니다. 가벼움에는 가벼움에 맞는 기법이 생길 것이고. 가벼움은 참 소중한 테마입니다. 우리 시단은 너무 무겁습니다. 예술은 그게 아니거든요.

박찬일 :선생님이 여러 시론에서 밝혔듯이 후기모더니즘의 주요 개님들인 차연, 흔적 등은 데리다에서 온 것이고 기표들의 유희, 환유의 연쇄 등은 소쉬르를 거처 라깡에게서 온 듯합니다. 먼저 라깡과 선생님의 시와의 관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경우 발생사적 연구, 혹은 정신사적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선생님께서 주관하시던 계간지 『현대시사상』에서 "쟈끄 라깡" 특집을 꾸민 것은 1994년 여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랑한다』의 유명한 서시는 "나는 타자다" 라는 명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골똘해 있는 선생님의 사진이 나오고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시는 나의 의지를
넘어선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게 만든다"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시를 쓰게 한다는 것입니다. 고 김준오 교수의 지적처럼 "시쓰기란 타자의 글쓰기"라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타자라는 것입니다.

이승훈 : 한 이론가를 충분히 안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내가 이해하는 것이죠. 라깡은 내가 이해하는 라깡입니다. 실제 라깡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죠. 사실 라깡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내가 생각해오던 것이 라깡의 이론과 맞았어요. 처음에는 소쉬르에서 시작했습니다. 소쉬르 언어학을 보면 언어라는 것은 현실과 관계없는 씨니피앙과 씨니피에의 짝이라고 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것이 모더니즘 미학으로 갔고. 다음이 프로이트인데, 프로이트를 통해서 나의 무의식을,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 들어가다가 라깡을 만난 겁니다. 소쉬르와 프로이트의 결합이 라깡입니다. 소쉬르의 언어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결합이 라깡입니다. 물론 라깡은 소쉬르를 가지고 프로이트를 다시 읽은 거지요. 타자의 문제는 사실 참 어려운 개념입니다. "소문자 타자"가 있고 "대문자 타자"가 있는데 중요한 것은 "대문자 타자"입니다. 라깡은 "나"는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이 세상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조부모라는 가족체계가 이미 있었고, 이 가족체계란 것은 다름 아닌 언어체계로 존재하는 것이고, 이것이 라깡식으로 말하면 소위 상징계라는 것이죠. 라깡에 의하면 "나"라는 존재는 이미 이 상징계 속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 상징계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타자라는 것입니 다. 이것이 "대문자 타자" 개념입니다. 내가 시를 쓴다고 하지만 시를 쓰다보면 내가 쓰는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언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닌가, 언어가 있어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언어가 먼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언어가 없다면 나는 시를 못쓰지 요. 그러면 언어란 무엇이죠. 이것이 문제인데, 이것을 나는 "대문자 타자"로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언어는 대문자타자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타자는 알 수 없는 타자이지요.

박찬일 :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시를 쓰게 한다는 것의 단초는, 즉 타자가 시를 쓰게 한다는 것의 단초는, 이미 1993년의 시집 『밤이면 삐노가 그립다』에 나타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난폭한 그리움이」에서 "이 난폭한 그리움이/그를 낳는다[‥‥] 이 난폭한 그리움이/그를 낳고/이 난폭한 그리움이/시를 낳는다/이 난폭한 그리움이/바로 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는」에서는 "이 시는/바람이 쓴다/창백한 해가 쓴다/치정 같은 그리움이 쓴다/너의 방을 찾아갔던/어제의 마음이 쓴다 [‥‥] 이 시는 네가 쓴다/ 라고 하셨습니다. 『밤이면 삐노가 그립다 』의 여러 시편들을 "나는 타자다", 라는 라깡의 철학과 관련 시켜 해석해도 될까요.

이승훈 : 타자라는 것은 결국 "그것", 내가 알 수 없는 "그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알고 "그것"이 내가 되면 "그것"은 타자가 아닌 "그것","es"가 되죠. 결국 "그것"은 사실 무의식입니다. 결국 무의식이 타자인 거지요. 무의식은 나의 무의식이지만 내가 알 수 없는 무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는, 그러니까 "그것"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것"을 나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언어와 관련있다고 보는 것이 고. 라깡도 무의식은 언어로 직조되어 있다고 했었고.


♠ 메타시, 차연, 무아(無我)

박찬일 : 선생님이 메타시들을 등장시킨 것은 1995년의 『밝은 방』에서부터였습니다. 고 김준오 교수도 해설에서 메타시를 언급했습니다. 『현대시사상』에서 메타문학론에 대한 특집을 다룬 때는 1996년 여름이었습니다. 1997년 시집 『나는 사랑한다』에서 후기모더니즘의 주요 양식인 메타시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메타성이 분명하게 천명됩니다. 예를
들어 「이 시대의 시쓰기」에 "도둑질이다 자연파 시인들은 자연을 훔치고 나같은 자칭 언어파 시인들은 언어를 훔친다 오오 표절 속에 표절 속에 2월이 간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후기모더니즘의 방법론들인 패러디, 패스티쉬를 강조한 것입니다. 메타시입니다 그런데 모든 시는 메타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어느 시에서든 시인의 시에 대한 입장이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명백하게 시에 대한 입장을 개진한 것만 메타시입니까.

이승훈 : 그렇습니다. 시에 대한 자기 의식이 명백하게 천명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메타시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요. 즉 시 쓰는 사람에게 메타성에 대한 인식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시에 대한 자기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사실 메타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존재해왔어요. 내가 했던 것은 그것을 의식화하고, 그리고 미적으로 실천하는 노력이었습니다. 시란 무엇인가, 시쓰기란 무엇인가, 과연 내가 쓰는 시는 독창적인 것인가, 이런 끊임없는 질문들이 메타시 행위로 나왔던 것이지요. 사실 시쓰기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모두 도둑질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텍스트가 없고, 남들의 시를 읽지 않았다면 시를 못씁니다. 자연파들은 자연을 도둑질하는 것이죠, 내가 보기에는 말이에요. 언어파들은 언어를 도둑질하는 것이고. 그리고 난 이것을 상호텍스트성으로 봅니다. 텍스트 자체가 상호텍스트입니다. 바르트가 이미 말한 것처럼. 메타시는 허무주의자들의 "터"라는 것입니다. 후기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나타난문화적인 양식입니다. 후기산업사회에서 현실은 없고 기호만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상호텍스트성이 고. 그런 점에서 현재의 메타시는 대단한 발전인 것 같아요. 미학적인 점에서 특히

박찬일 : 『밝은 방』(1995) 이후 메타시, 혹은 시론시가 눈에 띄게 늘어남니다. 후기모더니를의 시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집 『나는사랑한다』의 "이만식 시인에게 보내는" 「답장」이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쓴다는 것은 나를 버리는 행위입니다. 종이 위에 나를 버리고 나는 하나의 차이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쓴다는 것은
나를 계속 연기시키는 일입니다. 종이 위에서 나는 계속 연기됩니다. 나는 이미 내가 아닙니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무수한 텍스트 방 속에 드러나는 이 흔적!" 차이, 연기, 흔적 등 데리다. 혹은 후기모더니즘의 주요 개념이 아주 명징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메타시입니다. 데리다가 끼친 영향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이승훈 : 지금 인용한 그 시가 당시의 내 생각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시입니다. 데리다의 차연 개념이 그동안 제가 수행해왔던 자아찾기 과정의 결론인 "자아 없음"과 맞아 떨어졌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이라는 개념도 그렇고. 예를 들어, "어제 명동을 걸었어, 맥주를 마셨어, 서초동으로 왔어", 라는 텍스트 속에는 몇 개의 나가 있는 것입니까. 나는 (공간적) 차이로 존재하고, (시간적으로도) 계속 연기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흔적으로만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없다, 즉  "무아"라는 개념이 시쓰기 행위를 통해서 확인이 된 것입니다. 저는 60년대에는 실존주의, 70년대에는구조주의, 그 이후에는 후기 구조주의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실존주의에 대한 생각은 그 와중에서도 계속 떠나지 않았습니다. 실존주의 역시 "본질을 부정한다는 점에 서 자아의 부정과 관계었습니다. 이후에 불교의 머뭄이 없다는 뜻의, 즉 무주(無住)사상과 데리다의 차연사상을 만나게 되면서 보다 확고한 인식이 성립되게 된 거죠.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데리다 이해는 나의 데리다 이해라는 것입니다. 텍스트는 읽는 자의 짓입니다. 읽는 자아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데리다와 라깡을 비교하면 제 생각으로는 데리다의 철학적 사유가 한 수 위라는 생각도 듭니다. 데리다는 불교적 사유에 근접해 있습니다. 포우의 『도둑 맞은 편지 』의 "편지"에 대해 라깡은 그 편지가 결국 여왕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강조했는데 데리다는 편지의 주인이 계속 바뀌었다는 것을 강조했거든요.

박찬일 : 그렇지만 라깡과 데리다는 주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만나는 점이 있다고 보는데요.

이승훈 : 그렇지요.

박찬일 : 조병화 시인은 어떻게 대상이 없는 시, 의미가 없는 시가 있을 수 있는가, 라는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근자에 김춘수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의미가 가미된, 말하자면 주제가 뚜렷한 시를 쓸 것입니다. 인간존재의 허무함, 무상함, 있는 것의 덧없음을 노래할 것입니다", 라고 밝혔습니다. 선생님의 가장 최근의 시집 『인생』(2002) 은 불교적 세계관의 세례를 받은 흔적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日月」, 같은 시는 인생의 덧없음과 "삶에 대한 애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변화로 보아도 좋겠습니까

이승훈 : 삶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삶에서부터 벗어나려고 한 것 인데요. 모든 것을 다 버리자고 한 것인데요.

박찬일 : "닦아야"한다는 구절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러므로 日月이여/좀더 닦아야 하리/이 책상도 닦고/벽도 닦고 거울도 닦고/가으내 아픈/이 팔도 닦고/책 속의 글자들/오오 글자들도 닦아야 하리", 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글자들을 닦아야 한다는 것은 책들을 더 보아야겠다는 것 아닙니까. 아픈 팔을 닦는다는 것은 참에 대한 참여를 얘기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승훈 : "닦기"라는 것은 다른 의미의 닦기입니다. 거울을 닦듯이 나를 비워내려는 노력으로서의 닦기, 나를 덜어내려는 작업으로서의 닦기입니다. 먼지나 무거운 것을 털어버리려는 소승불교적인 노력으로서의 닦기같은 거죠. 일월이라는 천체우주를 놓고 볼 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죠.

박찬일 : 『반야심경』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상은 본질의 그림자이나 본질 또한 현상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원효는 "저잣거리 사상가로서 현상에 더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생님은 어떠십니까. 본질에 가까운 空, 無, 虛 등에 더 의미를 부여하십니까. 현상의 의미인 색, 곧 살에 더 의미를 부여하십니까. 아니면 저의 질문이 틀렸습니까.

이승훈 : 저는 『반야심경』보다는 『금강경』을 더 관심을 갖고 읽고 있는데요. 물론 『반야심경』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하면 안될 것 같은데요. 플라톤식의 물질과 정신, 현상과본질로 나누면 안될 것 같습니다. 이원론적으로 접근하면 안됩니다. 거기에는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두 개이며 동시에 하나다, 즉불이(不二)사상으로 이해해야 옳습니 다. 색과 공의 분별심, 있음과 없음의 분별심을 깨야합니다. 상대주의를 깨야 합니다. 원효는 대승불교의 위대한 사상가요 철학자요 스님이 었습니다. 원효가 저잣거리로 내려와 결혼도 하고 술도 마신 것은 십우도(十牛圖)의 맨 마지막 그림인 무애행(無碍行)으로 이해됩니다. 거리낌없이 행동하는 것이죠. 예를들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기도 합니다. 불교적 사유로는 있음은 없음이고 없음은 있음이기 때문입니다.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큰 깨달음의 단계에 오면, 성철 스님처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더 큰 깨달음의 단계라는 것은 생각이 없는 단계입니다. 어린애처럼, 꽃처럼, 생각이 없는 단계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계!? 산은 산이요, 물은 물!? 생각이 집착을 낳고 번뇌를 낳습니다. 처음에 절로 가면 스님들 밥 해주고 불 때주는 행자 단계가 있는데 나는 여기까지만 가도 행복할 것 같애요. 다음 단계인 사미까지는 못갈 것 같은.

박찬일 : 사미 다음 단계인 비구까지 가실 것 같은데요. (웃음)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생각이 집착을 남고 번뇌를 낳으니 생각을 없애는 것이 좋다고 하셨는데 집착하고 번뇌하는 것이 생각 없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행복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승훈 : 그러니까 내가 달라진 겁니다. 옛날에는 내가 허무로의 도망, 질병으로의 도망, 불안으로의 도망을 감행했는데 이제는 생각 하나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불안, 허무등이 현대 예술의 조건이기도 하지만 불경을 읽으면서 어린애와 같이 되는 것이 제일 행복이 아닌가, 시도 그런 쪽으로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예를 들어 불안이라는 말이 없으면 불안도 없습니다.


♣ 불안이라는 말이 없으면 불안도 없다

박찬일 : 그러니까 행복을 원하시는 거죠?

이승훈 : 아니,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분별심을 없애자는 겁니다. 아이들은 그것을 모르잖아요. 밥을주면 밥을 먹는 식이죠. 있는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글을 쓰면 됐지 왜 쓰느냐 하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겁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그때 그때 사는 것, 가르치라고 하면 가르치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술을 마시고.

박찬일 : 송준영 시인은 선생님의 『인생』에 실린 시편들을 불교의 "선시" 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들이 불교의 사법인(四法印』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精)에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이승훈 : 그런 식으로 내 시를 읽어주면 고마운 거죠. 텍스트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잖아요. 송준영 시인은 그쪽 방면에 조예가 깊고, 그는 나의 불교적 인식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박찬일 : 『인생』에는 후기모더니즘에서 이야기하는 주체의 소멸, 나아가 데리다의 차연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시가 여렷 있습니다. 대표적 인 시가 「서울에 오는 눈」입니다. "서울에 오는 눈이 춘천에도 오고 (‥‥) 오늘 오는 눈은 어제 오던 눈"이라고 한 것은 공간적 차이 및 시간적 연기에 대한 것입니다. 즉 흔적으로의 눈을 "설법"한 것입니다. "눈발이 나를 덮네 간절함도 애절함도 눈발에 파묻히는 불빛일 뿐"이라고 한 것은 주체의 소멸을 피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사상과 데리다, 선사상과 후기모더니즘의 관계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모더니즘, 후기모더니즘의 세계에서 하산하시는 것 같더니 다시 선의 세계로 입산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승훈 : 하산, 입산이 아니라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같습니다. 아니 올라감 내려옴도 없습니다. 모더니즘, 후기모더니즘, 해체주의를 거쳐 불교의 선사상까지 온 것이죠. 그리고 일관된 목표가 "자아찾기"였습니다. 40년 동안 줄곧 나는 "나는 무엇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선사상을 만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고 봅니다. 앞으로 이 방면의 공부를 계속 할 것입니다 데리다의 차연개념과 불교의 空사상은 분명 서로 관계있습니다. 데리다는 언어에서 출발한사람이죠. 소쉬르의 언어관을 비판하고 언어에는 시니피앙, 즉 기표만 있다고 주장합니다. 차이와 연기만 있다는 것이죠. 차이와 연기만 있다는 것은 자아는 없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흔적만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불교의 궁극적인 원리가 무엇입니까. 자아없음, 무아(無我) 아닙니까. 그리고 나라는 게 뭡니까. 색신(色身) 아닙니까. 물질 아닙니까. 물질이 어떻게 나입니까. 영원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데리다와 불교의 차이는 데리다의 무아개념은 언어 연구에서 온 것이고 불교의 무아개념은 도 닦음, 즉 자기 수양에서 오는 것이라는 거죠. 「서울에 오는 눈」은 물론 계산해서 쓴 것은 아닙니다만 - 시는 나오는대로 쓰는 것이잖아요 - 데리다의 차연개념으로 설명 가능합니다. 서울과 춘천은 그만큼 차이가 있는 것이고, 어제는 오늘로 연기된 것이고, 결국은 자아는 없다는 것이죠. 그점에서 불교와 만나는 것이고. 간절함과 애절함은 번뇌와 집착을 얘기한 것이고, "애절함도 간절함도 눈발에 파묻히는 불빛" 이라고 한 것은 애절함과 간절함 이후의 구원을 말하는 것 같고.

박찬일 : 소멸 아닙니까. 혹은 소멸이면서 구원 아닙니까. "눈발에 파묻히는 불빛"이라고 하셨으니까요.

이승훈 : 아니, 소멸이니 생성이니 하는 그런 것이 없는 세계입니다. 시간과공간, 번뇌와 집착을 벗어난 세계죠. 내 시에 보면 눈이 많이 나와요. 눈은 무거움을 없애버리고 무로 돌아가는 것이거든요. 달마대사 다음의 혜가 스님은 눈내리는 밤에 팔을 잘랐다고 해요. 불교의 배경은 히말라야 설산이고. 뭐 그런 것을 의식하고 시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인생』이라는 시집은 후기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입니다.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자아없음이라는 깨달음이 궁극적으로는 실천적인 단계까지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나는 미적 실천에 머무르고 있고.

박찬일 : 여태까지 먼길을 오신 것 같은데 앞으로도 그 이상의 먼길을 가실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선생님의 지적 여정이 어디까지 가게 될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궁금합니다. 긴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승훈 : 고생 많았습니다. 재미있는 글이 나올 것 같습니다.

 

 

출처 : 시와산문 그리고 시와녹색
글쓴이 : 이충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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