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3]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을 때정수윤 작가·번역가입력 2024.01.18. 03:00업데이트 2024.03.22. 16:54 꾸벅 졸면서나에게로 숨을까겨울나기여 居眠[いねぶ]りて我[われ]にかくれん冬[ふゆ]ごもり 아아,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당시 도쿄에서. 일본 친구와 함께 그날 본 조조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시다가 심상치 않은 진동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온 세상이 흔들린다. 신주쿠의 빌딩 숲. 도망칠 곳이 없다. 숨을 곳이 없다. 땅이 파도치니 뱃멀미하듯 속이 울렁거렸다. 눈앞의 고층 건물이 앞뒤로 흔들리며 윙윙 소리를 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벽 울림이다. 저 벽이 무너지면 나는 죽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