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覆面 속에 감춰진 일상의 우화寓話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삶에 목표가 없다면 그것이 허무주의다.
왜 사는지 대답할 수 없다면 허무주의에 빠진 것이다.
-니체
1.
모든 예술은 삶에 대한 지극한 질문에 다름 아니다. 해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허공을 부여잡으려는 손짓처럼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서 지나가는 하루의 무심에 (시「지나가고 있다」참조) ‘쌀쌀하고 감각 없던 눈빛’(「마지막에 보게 될 눈빛」)을 투영投影하는 일인 것이다. 그 투영은 감각의 일차적 반응이 아니라 재현再現을 통해 추상화된다.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 공포, 두려움 그리고 고통과 후회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아픔이다.
국수연의 첫 번째 시집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는 이런 존재의 아픔을 스스로에게 되묻는 흔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의 곳곳에 숨어 있는 통점痛點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씩 짚어가는 순례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독백으로 이루어지는 문장들은 시인이 마주한 풍경 속에서 건조한 목소리를 내뿜고 있다. 절규도 아니고 한숨도 아닌 그 목소리는 시인의 내면에 감춰진 서사敍事를 함축하고, 동시에 생략하고 있다.
따라서 시집『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는 대상의 치밀한 묘사보다는 어떤 사건이나 풍경을 서술하므로써 심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감춰진 단속적斷續的인 비극의 국면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섣부른 달관이나 체념이 아니라 그러한 단속적 비극悲劇의 국면을 뚫고 나가려는 – 비극의 극복과는 차원이 다른- 투지를 시로 재현하려는 노력을 펼쳐나가려는데 시집『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밝음보다는 어둠을, 열림보다는 갇힘을, 상승보다는 하강의 이미지가 가득한 각각의 시들은 한 권의 시집으로 모여들면서 커다란 허무의 집을 완성하고 있다. 그 허무를 가끔씩 잊어버리는 우리는 그 지붕 꼭대기에 홀로 앉아 무서움을 느끼며 그 무서움을 설명할 수도 없다. 생각해 보라! 그 누가 파편화된 개별적 삶의 정답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
모두가 그에게 내려오라고 손짓하지만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망각의 늪」 3연
허무는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일상에서 복용해야 할 존재다움의 약이다!
2.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등장하는 화자話者인 ‘나’는 대부분 시인의 생활 배경을 짐작할 수 없는 가공의 ‘나’이다. 그러나 몇몇의 작품들,「아버지와의 약속」,「내리사랑」,「평상 이야기」등의 시편은 시인의 직접적인 체험이 드러난 시편들이다. 그 중에 ‘내 속에 소금이 한 말 부어지고 말았습니다’로 시작하는 시「슬픔이 또 삼키는 날」은 조심스럽게 시인이 마주친 어떤 슬픔이 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듯도 하다.
시인이 직접 화자가 되어 감정을 드러내게 될 때 심리적 거리 조정이 되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그 감정을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감정과잉을 피할 수 있는 길은 그 슬픔의 전모를 생략하는 것이다.
시인은 단지 간접적으로, 광기狂氣의 삶을 살다가 27살에 알콜 중독으로 사망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를 통해 ‘그녀의 세상을 향한 부르짖음은 / 방황하는 사람들의 짙은 멍을 흡수하는 날달걀’(「날달걀」마지막 부분)이 필요한 존재임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시력詩歷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서사를 과감히 사상捨象할 수 있는 능력은 앞으로의 시업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너처럼 허무의 속내를 모르는 척
다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을까
너를 생각하며 모래시계
뒤집기를 열 두 번
- 「너를 생각하며」 마지막 연
위의 시에서의 ‘너’는 파도이다. 끊임없이 절벽을 향해 달려드는 파도는 무모한 사랑을 꿈꾸는 어리석음 같고, 그러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모래를 쓸어내는 헛된 일인데 우리 삶은 그와 같은 끈기, 그와 같은 한결같음을 가질 수 없다. 허무는 나눌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삶의 족쇄이기에 시간을 곱씹을 뿐이다.
길은 또 있다고
용기 내라고 하시더군요
나도 세상 속에 정말 잘 섞이고 싶어요
물과 기름은 잘 섞일 수 있을까요
- 「물과 기름」끝연
그러나 이런 허무감은 그저 정신 속에 맴도는 유령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실례를 통해 축적된 감정이다. 「나비의 멜로디」,「정처를 잃고서」 등의 시편에서 보이는 정처 없는 헤매임, 더 나아가 망상에서 일어나는 낭패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시 「노을」을 읽어보자.
세상에는 셀 수 없는 과녁들이 먹음직하게 널려 있었어
그 표적들을 향해 쏘느라 해가 기우는 것도 몰랐지
지친 팔을 늘어뜨린 채 호수에 나를 비추다가
지금껏 쏜 화살들이 내 몸을 뚫고 부르르 울고 있었어
그 많은 표적물들은 거울이었어
지금 내 발밑은 나의 지난 날은
저 종소리에 화답하는 핏빛 노을이지
- 「노을」 전문
엄밀히 따져보면 시에서의 과녁은 스스로 만든 꿈이 아니라 수동적인 사회의 관습이 만든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출세, 명예, 부귀의 등위를 스스로 만든 사람은 없다. 내가 던진 화살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는 부메랑이고, 선혈이 낭자한 과거의 죽음이다. 이렇게 우리는 복면의 일상을 쳇바퀴 돌린다. 그저 안전이 보장된 폐쇄된 공간과 개방되어 있으나 위험이 도사린 사각지대 그 사이를 오간다. 방房이라는 폐쇄된 공간은 낮인지 밤인지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는 무력함(시「하루」 참조)을 주고 위험한 사각지대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길바닥에 시글시글 굴러다니는 소음의 장소이다. 그래서 슬그머니 허무가 몰고 오는 적막에 몸을 누이고 싶기도 하다.
시작의 설레임과 마무리의 안도 사이에
어깨를 맞댄 연인의 마주보는 시선 사이에
빗물을 튕기는 저벅거림과 움추린 코트 깃 사이에
보고픈 그가 있다.
오래되어 상한 그리움 한 웅큼과 새파랗게 무감동한 구름 한 가닥 틈새에
홀로 된 외발 기러기가 산다
어둠을 부둥켜 안고 걷는데 방향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할까
가장 낯 선 곳으로 가자
저 멀리서 울리는 종소리를 향해서
- 「가장 낯선 곳으로」 전문
위의 시는 시집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중에서 정신의 기도처인 적막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시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적막은 ‘멀리까지 오지 않아도 집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시「적막」 부분)는 것이기도 하고 의식 안에 오아시스처럼 자리 잡은 가장 낯선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낯선 곳은 어디일까?
보이지 않는 벽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도 벽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
- 「벽 」마지막 연
이곳과 저곳을 나누는 경계인 벽은 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편견일 경우가 많다. 시기와 질투가 다르듯이, 서로를 가로지르는 벽은 도덕의 이름으로 윤리라는 구호로 우리를 옥조인다. 이런 벽이 사라진 곳, 그곳이 바로 낯선 곳이고 적막이다.
이 적막은 공유할 수 없다. 도道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형용할 수 없듯이 자신을 성찰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다. 혈연이라는 벽, 사회라는 벽을 허물거나 잊어버릴 수 있을까? 타자他者와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느끼는 것은 외로움이다. 그러나 고독은 외로움과 달리 온전히 자신을 ‘쌀쌀하고 감각 없던 눈빛’(「마지막에 보게 될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그래도 죽도록 베이지 않고
내 폐를 친친 감고 호흡하는 지겨운 끈이 있다
백만 번이라도 천만번이라도 죽어도 못 보내는
고독이라는 끈
- 「죽어도 못 보내는」 끝 연
시인은 부조리하고 불가해한 일상의 복면을 벗겨내면서 허무를 만나고 적막을 만났으며 그 적막의 또 다른 이름인 고독을 만났다. 이 고독과의 조우를 통해서 시인은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았다.
3.
해가 붉은 치마 거머쥐고 돌아서서
서쪽으로 살랑살랑 사라져가고
외등에 날벌레 나방들이 모여 춤을 추어요
모기향이 실배암처럼 꿈틀거리며 올라갈 때
남자들은 마루에서 겸상으로
여자들은 평상에서 저녁을 먹지요
수돗가 물통에선 수박 참외 둥등 동실
작두 펌프는 꼬리 내린 채 한숨 돌리고요
석류나무 아래 늙은 쉐퍼드 워리는
엎드려 눈만 굴리며 우릴 지켜보고 있어요
평상에 누워 밤하늘 별을 향해
길게 손을 내밀어 만져보고
손 끝 아득한 별들을 헤아리다가
외할머니 부채 바람에 잠이 들어요
이제는 아득한 꿈속에서만
외할아버지 별,
외할머니별,
큰 외삼촌 별,
막내 외삼촌 별을
볼 수 있지요
- 「평상 이야기」 전문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여러 사실이 숨어 있다. 삶의 불가해한 더께가 얹혀지지 않은 동심童心과 남녀유별의 은근한 차별과 죽음이라는 냉엄함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시집『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읽기는 이와 같은 순수한 감성의 회고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어쩔 수 없이 오염된 의식을 환기하면서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는 자아의 회복을 꿈꾸는 행로가 시집의 얼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곱 편의「마음 일으키기」연작은 타자화他者化 된 일상의 복면을 벗기려는 의식의 깨어남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어쩌면 극히 평화롭고 평탄해 보였던 무심한 일상이 수많은 이야기를 감추고 있다는 경이를 마주했을 때 시인은 비로소 붓을 들어 자신이 걸어왔던 시간과 길과 발자국들을 증언하기로, 마음을 일으키기로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마음 일으키기의 한 작품을 읽어보자. 여명黎明 은 완전히 밝지 않은 새벽이다. 그러나 해가 솟아오르기 전에 집을 나서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째든 하루의 시작은 치열한 삶을 예고하는 것이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고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마음에 달구어진 바늘 위에서 불타는 고통을
오래오래 간직한 서늘한 책이 있다
날 샐 무렵 어느 섬에서 들려오는 어미 소의
창자 끊어지는 울음과 심장 갈라지는 소리 들어본 적이 있던가
부엌문 틈으로 숨 멈춘 채 떨리는 눈동자 들이대고
버둥거리는 오리의 목 베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부끄러운 책장 뜯어내는
덜그덕거리는 괴로움의 뻐근한 몸짓
그를 달래주려 뜨끈하게 차 우려내는 여명黎明
파르스르 붉으스르
- 「마음 일으키기 2」전문
이 시의 압권은 마지막 행 ‘파르스르 붉으스르’에 있다. 완전히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섞인 듯, 섞이지 않은 듯한 빛이 여명이라고 하는데, 우리 생애의 여명은 과연 존재하기는 했던 것인지, 여명이 품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삶의 여러 장면들을 기쁨인지 슬픔인지 확연히 가늠할 수 없음을 깨달은 시인의 고백이 신선함을 느낀다.
과도한 추리인지 모르겠지만 국수연은 시인이어서 당연하게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되기 위해서, 즉 시인의 사명이 궁극적 자아의 탐색에 있다고 자각하는 순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사람이다.「마음 일으키기」는 마음의 평안을 얻은 결과물이 아니라 마음이 가닿지 않았던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로부터 시집『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에 수록된 시들은 삶의 통점을 짚어내면서 허무와 적막과 고독이라는 국면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념들은 시인 자신이 인간임을 깨닫게 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절망이 없으면 희망이 솟아나지 않듯이 시인의 자각은 삶의 새로운 가치를 향해 가는 힘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 짐작하건대 국수연 시인은 태생적으로 섬세하고 긍정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그런데 이 시집에 드러난 암울한 장면들은 결코 시인이 함몰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태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평온 속에 감춰진 불안, 웃음 뒤에 여운으로 남는 눈물이 있음을 적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집의 표제시인「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는 기쁨과 슬픔의 양극을 모두 포용하는 자세를 확인하게 하는 이정표이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악마의 미소인가 골수를 파고드는 이 우윳빛 습기의 아릿함을
산허리 감고 내려와 여인네 치마 속 어지럽히는 이 하늬바람의 분주함을
버짐꽃으로 번져가는 불안 눅눅함으로 다독거리는 이 연둣빛의 찰짐을
-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끝연
국수연 시인의 미덕은 상상과 연역적 추리로 빚어지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복면을 벗기고, 전복 顚覆시키면서 마침내 드러나는 새로운 삶의 양상을 기록하는 직설적 어법을 구사하는데 있다. 이 직설적 어법은 치밀한 묘사도 아니고 언어의 실험도 아니면서 낯선 풍경을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앞서 언급한「평상 이야기」와 같은 절제된 서정을 빚어내기도 한다. 빗방울을 소재로 쓴 시 「떨어지는 빗방울로」도 기억에 남는 수작秀作이다.
누르면 누를수록 세게 튀어오르는 너
몸 한쪽만 누르면 구르는 재주가 있고
멀리 던져져도 그대로 죽지 않는 너
잡동사니들이 내 발을 걸어서 넘어뜨릴 때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주저앉고 싶을 때
관습이라는 이름이 나를 억누를 때
느닷없이 떨어지는 빗방울로 너는 나에게 다가오지
누르면 튀어 오르는 거야
기울면 구르는 거야
소낙비가 우산 위에서 길바닥 위에서
통통통 튕겨 나간다
- 「떨어지는 빗방울로」 전문
빗방울의 환원성, 역동성, 유연성을 포착한 유쾌한 발상이 지친 일상을 솟구쳐 오르게 하는 힘으로 구현된 작품으로 이런 경쾌한 행보를 지닌 시가 앞으로 시인이 걸어가야 할 길을 새롭게 열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억센 바람에도 끄떡없는 낭창낭창한 버드나무가 되고 싶’(「억센 바람에도 끄떡없는 낭창낭창한 버드나무가 되고 싶습니다」참조)다는 시인의 희망이 움추린 자아에서 타자에게로 열린 자아로 외연이 넓어져 갈 때 더욱 빛나는 시인이 될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미래에는 이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버려진 생명들을 품이 넓은 세상과 연결해 주는
나도 아프게 잘려 나가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말입니다
- 「탯줄」 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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