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그곳이 가고 싶다(신문 스크랩)

해남의 숨은 매력 (下)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3. 27. 13:24

정돈된 정원 너머 호젓한 바다… 33년 만에 채워진 ‘땅끝’ 풍경[박경일기자의 여행]

  • 문화일보
  • 입력 2025-03-27 09:41
  • 업데이트 2025-03-27 09:42

 

해남 126 오시아노호텔의 자연지형을 살린 정원. 시아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자리다. 호텔은 바다와 가깝다. 당초 환경영향평가 기준은 ‘해안선에서 100m 이격’이었는데, 공사과정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해안선 80m 이격으로 기준을 완화해 지었기 때문이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덜 알려져서 더 멋진… 해남의 숨은 매력 (下)

수십년 진척없던 관광개발 단지
화원반도 언덕에 공공예산 투입
호텔 ‘해남 126 오시아노’ 건립

낮은 담·처마 등 한옥식 구조에
간결한 선 · 색감으로 ‘절제미’
섬풍경 어우러져 오션뷰 빼어나
국내 최초 ‘무장애 인증’ 받아

간척지 위에 들어선 ‘솔라시도’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개발
도시정원·데이터센터 등 설립

핫한 관광지로 뜨는 산이정원
미래·친환경 중심가치 내세워
탄소 저감 수종만 골라 심어
황토밭 동백나무도 ‘이색적’

해남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시아바다’를 보는 조망의 명당

전남 해남의 화원면 앞에 ‘시아바다’가 있다. 시아바다는 안좌도에서 해남 화원반도까지의 바다를 부르는 이름이다. 목포에서 출항한 배가 좁은 물목을 빠져나와 큰 바다를 만나 파도가 갑자기 거세지는 곳. 거기가 바로 시아바다다.

시아바다란 이름에 두 가지 유래가 있다. 유래 1. 동력선이 없던 시절에 이 바다를 가로지르려면, 썰물까지 기다려야 했다. 물이 큰 바다 쪽으로 밀려 나가는 힘을 빌려야 해서다. 기다렸다가 건너가야 하는 바다, 그래서 ‘때 시(時)’ 자에 ‘물 하(河)’ 자를 써서 ‘시하바다’라 불렀는데, 입을 건너가면서 시아바다가 됐다는 것. 유래 2. 화원반도 앞에 손바닥만 한 작은 섬이 있다. 시계가 없던 시절, 밤에 이 섬에 불을 밝혀서 뱃사람들이 조석간만의 차이로 시각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섬에 불을 밝혀 시각을 알게 해줬다는 의미로 이 섬을 시하도(時下島)라 불렀고, ‘시하도가 있는 바다’가 시아바다가 됐다는 얘기다.

이름의 유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행자들에게 시아바다의 매력은, 넓은 품의 바다가 크고 작은 섬과 어우러지는 빼어난 경관에 있으니까. 시아바다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화원반도의 작은 언덕이 있다. 딱 그 자리에 얼마 전에 호텔이 들어섰다. 한국관광공사가 직접 지은 ‘해남 126 오시아노호텔’이다. 호텔은 120실 규모로 그리 크지 않지만, 연회장과 인피니티 풀, 카페, 레스토랑 등을 두루 갖췄다.

산이정원 중심에 심은 동백나무. 프레임 안에 나무가 들어오도록 코르텐강 구조물을 세운 건 관람객의 기념촬영을 위한 배려다.



이름에 들어간 ‘126’이란 숫자는, 호텔의 경도(經度) 좌표다. 경도는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나타낸다. 경도(동경) 126도라면 서쪽 끝이 인천 앞바다의 덕적도고, 동쪽 끝이 서울 남산쯤이다. 의문이었던 건, 남쪽 땅끝인 해남의 호텔에 왜 하필 경도 좌표를 썼느냐 하는 것이다. 남쪽 끝임을 도드라지게 보이게 하려면, 경도보다는 남북의 좌표인 위도를 쓰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니, 그건 또 아니다. 위도의 차이를 좌표로 드러내는 건, 해남의 호텔이 멀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 단정함과 절제의 배경엔 무엇이

호텔의 외관은 순백의 색과 간결한 직선으로 이뤄져 있다. 건축이 그려낸 색과 선에서 절제가 느껴진다. 근사한 바다 경관을 두르고 있는데도, 허세나 과시는 없다. 바다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레스토랑도, 매혹적인 인피니티 풀도, 바다가 내다보이는 모든 객실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는다. 근사한 모든 것이 여기서는 일상처럼 담담할 따름이다. 그게 그곳을 더 매력적이게 한다. 이런 단정함과 절제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해남 계곡면의 방춘정. 방춘(芳春)이란 이름답게 봄에 가보면 좋을 곳이다. 지붕에 작은 지붕을 덧댄 이른바 ‘부섭지붕’이 독특하다.



해남 126 오시아노호텔은 치열한 공모 과정을 거쳐 지어졌다. 공모에 제출된 37개 작품 가운데 아파랏체 건축사무소와 토도건축이 공동으로 응모한 작품이 당선됐고, 그 설계를 바탕으로 지은 게 지금의 호텔이다. 호텔을 설계한 최연웅 아파랏체 건축사무소장의 설명. “호텔 건축 설계의 모티브를 해남 윤씨 고택 녹우당(綠雨堂)에서 가져왔습니다.” 해남의 과거 인문과 역사를 지금의 건축과 미감으로 되돌려준 셈인데, 호텔에서 느껴지는 절제된 단정함의 뿌리가 여기에 잇닿아 있다.

한옥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공간이 곳곳에 있다. 호텔 앞의 자그마한 꽃밭 정원과 정원을 구획하는 낮은 담, 호텔 내부로 끌고 들어온 크고 작은 3개의 뜰…. 입구 쪽의 처마를 낮추거나 주변에 작은 정원과 낮은 담을 만든 것도, 중앙 공간을 열어젖히고 바로 진입하는 게 아니라 마당 한쪽을 끼고 돌아 들어가는 식으로 동선을 설계한 것도, 녹우당의 한옥 설계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 공공예산으로 지은 호텔, 이래서 좋다

해남 126 오시아노호텔의 주인은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다. 공기업이 공공 예산을 투입했다는 건 호텔이 곧 ‘공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우선, 호텔을 지은 목적 자체가 운영을 통한 수익이 아니라 오시아노 관광단지 투자 활성화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설명이 좀 필요한 오시아노 관광단지 투자 얘기는 뒤에서 다시.

투자 활성화 외에도 호텔이 추구하는 공적 가치는 여럿이다. 친환경도 있고, 에너지 효율도, 지역 고용 확대 등도 있다. 호텔을 ‘너무 크지 않게’ 지은 것도 의도적이다. 숙박 분야에 민간 영역을 부러 남겨둔 것이기도 하고 적절한 규모, 그러니까 ‘휴먼스케일’에 부합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여러 공적 가치 중 투숙객들이 몸소 체감할 수 있는 건 ‘누구에게나 평등한 장애물 없는 환경’이다. 호텔 최초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예비인증을 받았고 본인증 취득을 앞뒀다. 여기서 ‘장애물이 없다’는 게 단지 문턱을 없앴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이 든 노인부터 막 걸음마를 시작한 유아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도 불편하지 않도록 설계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프런트 데스크 아래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두었다거나, 객실 벽면에 촉각으로 객실 호수를 알 수 있도록 점자를 새긴 것에서 따스한 배려가 느껴진다. 나는 몸이 불편하지 않으니 상관없다고? 천만의 말씀.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섬세한 배려를 갖춘 호텔이라면, 당연히 직원들의 응대에도 정중함과 배려가 묻어있을 수밖에 없다.

삼산주조장에 걸린 삼산주조장 옛 건물 그림. 해남에서 열린 전남수묵비엔날레에 참가했다가 술맛을 보고 반한 조병연 작가의 작품이다.



# 이렇게 좋은 곳을 몰라보다니…

오시아노는 한국관광공사가 오랫동안 추진해온 해남의 대규모 관광단지다. 관광단지 면적은 507만3425㎡(약 153만 평). 서울 여의도의 2.75배. 중동신도시 면적과 엇비슷하다. 지정 당시의 명칭은 해남 화원면의 지명을 딴 ‘화원관광단지’였다. 오시아노는 이탈리아어로 ‘넓은 바다’를 뜻하는 ‘오씨아노(Oceano)’에서 가져왔다. 처음에는 ‘오씨아노’ 그대로 썼다가 ‘시아바다’와 이름을 섞어서 오시아노가 됐다.

오시아노는 대작(大作)을 그리려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온 사업이다. 화원관광단지를 처음 지정했던 게 노태우 전 대통령 때인 1992년. 자그마치 33년 전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전체 사업 진척률은 30%대다. 이쯤이면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실현이 의심되는 수준이다.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한 관광단지 개발은 역대 전직 대통령들의 통치권 차원의 역점 사업이었다. 1975년 국제부흥개발은행 차관을 도입해 개발한 경주 보문단지도, 제주도 특정 지역 관광종합개발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1978년 추진한 중문단지 개발도, 당시 박정희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바탕으로 성공을 거뒀다. 노태우 정부의 오시아노 관광단지는 제주 중문단지와 경주 보문단지 성공에 뒤이은 범정부 차원의 세 번째 대단위 종합 레저타운 사업이었다.

개발사업이 차질을 빚은 결정적인 이유는 예산 부족과 민자유치 실패다. 인허가 절차와 토지보상 문제로 난항을 겪다 우여곡절 끝에 토지매입과 기반조성공사를 끝냈는데, 그런 뒤에도 들어오겠다는 투자자가 없었다. 한국관광공사가 직접 관광단지 안에 호텔을 짓게 된 이유다. 호텔을 짓기로 하면서 관광공사는 아마도 이런 심산이었을 게다. “이렇게 좋은데 여기를 몰라보다니….”

아직 나무와 숲이 울창하지 않아서 그럴까. 산이정원에서는 조형작품이 돋보인다. 산이정원의 랜드마크가 된 유영호 작가의 작품 ‘브릿지 오브 휴먼’.



# 늦은 개발 속도가 만든 근사한 풍경

오시아노 단지에는 늦은 개발 속도가 의도 없이 만들어낸 근사한 풍경이 있다. 첫 번째가 단지 안의 정원형 숲이다. 파인비치골프장에서 캠핑장을 지나 해남 126 오시아노호텔에 이르는 5㎞ 남짓 해안도로를 끼고 근사한 난대림 정원이 꾸며져 있다. 정원 형태의 녹지공간으로 이 숲도 ‘남도 정취가 묻어나는 화원(花園)’이란 개념으로 지난 2006년 현상공모를 통해 설계했다.

매화나무, 동백나무부터 팽나무, 감나무, 해송, 왕벚나무, 사방오리나무, 먼나무, 후박나무, 홍가시나무 등이 심어진 숲이 자연스러운 건 20년의 시간이 묵어서다. 조경 잘된 정원형 숲이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해안 경관은, 세계적인 해외휴양지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생각해보면 이런 풍경은 ‘개발 속도가 느려서’ 얻어진 것이다. 갓 만들어진 관광단지는 이제 막 심은 어린나무들로 초라하고, 오래된 관광지는 숲은 좋긴 해도 시설이 낡았다. 그런데 지금 오시아노는 오래 가꾼 짙고 무성한 숲과 이제 막 만들어진 말끔한 시설이 조화를 이룬다.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지체된 개발도 다른 쪽으로 생각한다면 ‘오래 준비해온’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정부의 대단위 관광단지 조성이 차질을 빚고 있다지만, 그게 오히려 여행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도 있다. 호젓한 바다와 근사한 바다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다. 잘 정돈된 정원 같은 숲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한적하게 즐기겠다면, 해안길 드라이브를 권한다. 오시아노 단지 안의 파인비치골프장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임하도까지 15㎞ 구간이 최고의 코스다. 그냥 달리면 20분 남짓한 길인데, 훌륭한 경관 앞에서 자주 차를 멈추다 보면 훨씬 시간이 더 걸린다.

# 오시아노 말고 ‘솔라시도’도 있다

해남에는 오시아노 말고도, 매립한 간척지 위에 개발 중인 ‘솔라시도’도 있다. 비슷한 듯 다르다. 오시아노가 관광단지였다면, 솔라시도는 환경을 기치로 내건 관광 레저형 기업도시다. 오시아노는 관광지이고, 솔라시도는 관광과 결합한 환경도시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관광지’보다 ‘도시’가 규모가 큰 건 자명한 일. 솔라시도는 오시아노의 7배쯤의 크기다.

솔라시도는 3개 지구로 나뉘는데, 지구별로 특성이 뚜렷하다. 솔라시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지구가 해남 산이면의 ‘구성지구’다. 구성지구에는 골프장과 호텔, 리조트를 비롯해 도시 정원과 데이터센터, 첨단농업단지 등이 들어간다. 근래 가장 ‘핫’한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는 ‘산이정원’이 바로 이곳 구성지구에 있다. 솔라시도에는 전체적으로 9개의 정원이 들어서는데, 정원마다 장소별 특성을 담는다. 지금까지 완성된 건 두 곳, ‘태양의 정원’과 ‘산이정원’이다. 태양의 정원은 태양광발전단지에 들여놓은 원형 정원. 누리는 정원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의미를 앞세운 정원이다. 반면 산이정원은 ‘가족정원’을 표방하는, 높은 친화력의 공원이다.

산이정원은 아직 조성이 다 끝나지 않았다. 전체부지 11만 평의 절반쯤인 5만 평 정도만 우선 개장했다. 이곳을 조성한 이는 이병철 산이정원 원장이다. 그는 경기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 한상경 원장의 대학원 제자다. 나무를 심고 가꿔 아침고요수목원을 만드는 일을 스승과 함께했다. 그러다 2019년 이곳으로 내려와 산이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 산이정원의 동백나무 이야기

나무와 숲만 가지고 말한다면 산이정원은 아직 보잘것없다. 심은 지 몇 년 안 된 나무는 작고, 그런 나무가 만든 숲은 빈약하다. 그런데도 그곳이 근사하고 감동적인 건, 나무와 숲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가 있어서다. 이 원장은 나무와 꽃을 손수 심기도 했지만, 정원을 만든다는 건 그게 전부가 아니다. 메시지를 만드는 일. 이 원장의 진짜 실력은 거기에 있는 듯했다.

정원에 스며있는 감동과 이야기는 그저 나무를 심거나 꽃을 기른다고 얻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연의 가치와 그걸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그걸 기르는 수고 속에서 나온다. 산이정원에서는 그걸 다 경험해볼 수 있다.

산이정원이 중심을 두고 있는 두 가지 가치는, 미래와 환경이다. 이런 가치를 드러내는 곳이 미래세대와 미래환경을 위해 탄소 저감 수종만을 골라 심은 ‘약속의 숲’이다. 약속의 숲 뒤쪽 가장 높은 언덕 위에는 채플을 형상화한 공간이 있다. 야외 결혼식이 열리는 ‘서약의 정원’이다. ‘인간 최고의 약속은 결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산이정원의 중심 앞마당쯤 되는 자리에는 봉긋한 언덕이 있는데, 그 위에 상처 입은 몸에 붕대를 친친 두른 늙은 동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나무는 해남의 너른 황토밭 한가운데 있었다. 농기계가 밭둑을 지나다니며 이리 치고 저리 쳐서 나무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그걸 본 마을 사람들이 “안쓰러워서 못 보겠다”며 산이정원에 잘 길러 달라고 기증했단다. 마을 주민들은 선대의 누군가 뙤약볕의 황토밭에 그늘을 만들고자 동백나무를 심은 마음을 생각했다고 했다. 더디 자란 동백이 깊고 무성한 그늘을 만들어줬는데, 보답을 못 할지언정 상처 입은 모습은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산이정원은 오래전 늙은 동백나무를 심었던 이의 마음을 닮고 싶어 한다. 상처 입은 동백나무를 정원 한가운데다 잘 모신 이유다. 산이정원에 가면 아직 무성한 자연을 볼 수는 없지만, 언젠가 깊은 그늘과 위안이 되어줄 자연을 한땀 한땀 가꿔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봄의 정취를 누릴 수 있는 정자

해남의 명산인 흑석산 아래에는 ‘방춘마을’이 있고, 이 마을에 정자 ‘방춘정’이 있다. 방춘(芳春)이란 ‘꽃이 한창 피는 아름다운 봄’을 말한다. 봄이 무르익은 이즈음에 가면 딱 좋을 듯해서 봄 여행의 목적지로 추천하는 곳이다. 고맙게도 마을 주민들이 늘 정자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으니, 방춘정 마루에 올라앉아 봄날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방춘정은 지붕 양쪽에 또 다른 작은 지붕을 덧댄 모습이 독특하다. 이런 형태를 ‘부섭지붕’이라 한단다.



‘진득’ 해창막걸리·‘향긋’ 진양주의 고향

■ 애주가 발길 몰리는 이유
해남을 여행하겠다면 술을 권한다. 먼저 술부터 챙겨 놓고 시작하자. 이유는 단순하다. ‘해남에 좋은 술이 많아서’다.

먼저 막걸리 얘기부터. 해남에는 해창막걸리가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 술을 빚던 주조장이었다가 광복 이후 막걸리 술도가로 명맥을 이어온 해창주조장을, 지금의 주인이 2008년 인수한 뒤에 해창막걸리를 빚어내고 있다.

막걸리 한 병에 1000원도 안 하던 때에 한 병에 1만 원이 넘는 가격을 매겼다. 처음 반응은 ‘무슨 막걸리가…’라는 것이었다. 논란을 잠재운 건 맛. 찹쌀로 빚은 해창막걸리는 요구르트처럼 진득한 질감에 농밀한 향으로 애주가들을 사로잡았다. 대부분 막걸리는 알코올도수가 4∼6도인데, 해창막걸리는 9도와 12도가 대표상품이다. 가격은 8000원과 1만2000원. 덧술을 여러 번 해서 도수를 높인 18도짜리도 있다. 출하가격이 11만 원인데도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 순전히 이 술을 사러 해창주조장을 찾아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해창주조장의 1대 주인 시바타 히코헤이가 설계하고 건축한 일본식 2층 목조주택과 잘 꾸며진 정원이 근사하다. 부친이 목재상을 운영하였던 시바타는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목재를 목포를 통해 들여와 해창리에서 3년 건조한 뒤 주택을 지었다고 전한다. 신(神)과 인간의 공간을 연결하는 개념의 일본식 정원은 바위를 중심으로 언덕과 산, 강, 바다를 재현해 놓았다.

해남에는 삼산막걸리도 있다. 삼산주조장은 1952년 문을 열었지만, 산정리에서 산정주조장을 운영하던 3대째 주인이 1990년 인수해 새로 문을 연 것이니, 산정주조장의 세월을 보탠다면 내력은 좀 더 길다.

삼산막걸리는 6도짜리와 9도, 12도짜리가 있는데 대표상품은 9도짜리 찹쌀 생막걸리. 지난해 열린 우리술품평회 고도(高度)탁주 부문에서 이 9도짜리로 대상을 받았다. 질감이나 맛으로 보면, 삼산막걸리는 해창막걸리의 가장 반대쪽에 있다. 해창막걸리가 진득하면서 농익은 맛을 보여준다면, 삼산막걸리는 맑고 청량한 쪽이다. 마치 ‘해창막걸리처럼 안 만들겠다’고 작정한 술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번에는 다른 술 얘길 해보자. 해남에는 진양주(眞釀酒)가 있다. 장흥 임씨 가문에서 6대째 내려오는 술이다. 진양주는 찹쌀로 빚어 맑은 노란색을 띤다. 특징은 풍성한 향이다. 다양한 향이 찹쌀 특유의 단맛에 스며있다.

진양주는 본래 ‘궁중의 술’이었다. 왕가의 술이 어찌 이 먼 땅끝까지 전해지게 됐을까. 그 얘길 하자면 약 200년 전, 그러니까 조선 헌종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궁중에서 왕이 마시던 술인 ‘어주(御酒)’를 빚던 궁녀 최 씨가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최 씨는 궁궐에서 폐출돼 고향인 전남 영암으로 돌아왔다. 귀향한 최 씨는 광산 김씨의 소실로 들어갔는데, 본처의 손녀 김 씨에게 술빚기를 전했다. 이후 손녀 김 씨가 해남의 장흥 임씨 집안으로 출가하면서 임씨 집안의 며느리에서 며느리로 6대째 술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 술을 빚고 있는 이는 최옥림(76) 씨. 1994년 진양주를 전승받은 이래 30년 넘게 술을 빚어오고 있다. 최 씨는 진양주를 한 해 3∼4번쯤 담근다. 한 번에 700ℓ 남짓으로 500㎖짜리 병으로는 1600∼1800병쯤 된다. 술맛을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랄 듯한데, 그렇지 않단다. 이렇게 만든 술을 소매유통만 하기 때문이다. 매장을 낸 적도 없다.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술을 판다. 간판도 없는 그냥 가정집이다. 최 씨의 집은 계곡면 덕정리 마을회관 바로 옆이다. 마을로 들어가서 ‘술을 사러 왔다’고 하면 주민들이 안내해준다.

'그곳이 가고 싶다(신문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머니도 발걸음도 가볍게 즐기는 제주  (0) 2025.03.24
해남  (1) 2025.03.20
경남 통영 좌도(佐島)  (0) 2025.03.06
동해 묵호 ‘추억 여행’  (0) 2025.02.27
설악산 울산바위  (0) 202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