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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20세기의 유산, 공산주의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2. 27. 14:46

20세기의 유산, 공산주의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2025.02.2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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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나는 비교적 많은 여행을 했다.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기에 배우고 얻은 것도 많았다. 1961~1962년, 1년 가까이 미국에 머물렀고 유럽을 거쳐 귀국했다. 세계여행을 한 셈이다. 10년이 지난 72년에도 한 학기를 미국 대학에 가 있었고, 두 번째 세계여행을 시도했다. 40세부터 90을 넘길 때까지 공산 러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를 찾아보았다. 그러는 동안에 20세기 들어 공산 국가들의 탄생과 쇠퇴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 과정에서 세계의 정신문화와 종교의 관계를 직간접으로 터득할 수 있었다.

1960년대 유럽 각국 긍정 찬양
10년 후 위상 달라져 자취 감춰
북 왕조는 공산주의도 변질시켜
이념은 결국 휴머니즘에 흡수

김지윤 기자

20세기 중반 냉전 시대의 절정기는 이념전쟁의 기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전 세계는 두 가지 무언의 역사적 희망을 가졌다. 모든 식민지는 해방되며 무력을 앞세운 침략은 허용할 수 없다는 평화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공산국가 소련은 그 혼란과 무질서의 국제적 공간기(空間期)를 이용해 세계 공산화의 사상 아래 무력 침략을 감행했다. 그 대표적 사건의 하나가 6·25 한국전쟁이다. 바로 우리 민족이 그 세계사적 비극의 무대가 되었다. 소련 공산당의 흐루쇼프 서기장은 쿠바를 공산화하면서 미국 침공의 기지를 구축하려고 시도했다. 미국의 케네디 정부는 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는 신념과 용기로 소련의 침략 의도를 무산시켰다. 이런 냉전 시대를 겪으면서 세계는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과 소련 주도의 공산 진영 어느 하나에 속하게 된다는 역사적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이 우파 자유를 택했고 북한은 좌파 공산에 흡수된 사실이 그런 세계적인 진영 갈등 상황의 역사적 선례가 되었다.

냉전 시기 베를린, 무력 없는 전쟁

1962년 여름이었다. 내가 영국에 갔을 때였다. 런던 중심부를 차지하는 하이드 파크에는 점심시간이 되면 두 가지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의 정치를 선전하고 찬양하기 위해 군중을 모으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특이한 종교신앙의 선전자들이 사이비 신앙에 가까운 선교에 열중하는 사례였다. 같은 시기,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관광하면서 세계는 무력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어디에서나 공산당원을 만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지성인들은 물론 세계적 철학자들도 공산주의를 긍정 찬양하고 있었다. 6·25전쟁은 미국의 지령을 받은 대한민국이 일으킨 침략 전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랑스의 젊은 세대들의 좌경 기류가 당시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전통문화와 사상이 버림받기 시작했고, 일본 대학생들은 좌파 세력을 사상적으로, 학문적으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기독교 교회의 젊은 목회자들까지도 사회주의를 소개해야 지성인다운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선진국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10년 후에 두 번째 세계여행을 할 때는 세계가 완전히 위상을 달리한 상태였다.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공산주의자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공산당은 위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기차역에서 한 지성인을 만났다. 그는 18년 동안 공산당원으로 활동해 왔는데 지금은 반공 진영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7·4 남북 공동 성명에 관한 평가까지 언급했다. 그의 주장은 거짓과 폭력을 배제하면 공산주의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직접 소련에 가서 그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는 고백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만난 자민당 정책실장은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름 방학 기간마다 30만 명 가까운 일본 대학생들의 외국 여행을 뒷받침했는데, 해가 갈수록 좌파 학생들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좌파 대학생들 대부분이 소련을 방문하면서 일본보다 후진국인 것을 발견한다고 했다. 일본보다 개성 있는 정신문화를 갖춘 선진국은 모두가 자유 국가임을 발견한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곧 좌파 학생 없는 사회가 될 거라고 주장했다.

정치나 경제는 좌우의 양극적 대립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 사회적 모순이론도 아닌 공존의 정신과 질서로 진화·변질하게 되었다. 선진국일수록 빠른 속도로 변화를 추진했다. 좌가 진보로 바뀌고 우가 보수 세력을 대신하면서 보수와 진보는 공존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발전적 진화가 이뤄졌다.

중국과의 수교 이후 20여 년 전부터 중국의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 연변 과학기술대학 행사 때문에 몇 차례 다녀오고 북경의 한인교회에서는 설교와 강연도 했다. 중국 4대 대학 주변의 서점에 들러 대학생들이 어떤 독서를 하는가도 살펴보았다. 공산국가에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비중은 컸으나 자유 국가와 같은 인문학은 허용되지 않았다. 사상의 자유가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학·철학적 연구와 창조성이 사라지고 실질적으로는 종교가 금지되어 있어, 독서문화가 전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극히 제한된 소수의 인문학과 사상 서적이 눈에 띄었다. 인문학의 주류를 차지하는 역사학 저서들은 공산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용을 왜곡시켰다. 모택동 시절에는 전통적인 중국의 고전들까지 금서(禁書)가 되었을 정도였다.

지금의 중국은 어떠한가. 공산주의 사상과 정신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공산정권만이 유지되는 상황이다. 경제는 자유시장 무대와 교류하면서 경제를 좌우하는 정부 정책과 맞지 않는 모순을 겪는 실정이다.

공산주의, 종교국가는 못 뚫어

뜻밖의 현상도 있다. 기성 종교가 국가적 가치로 인정받는 국가에서는 경제적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는 침투하지 못했다. 가령 공산주의의 반(反)종교 정책 때문에 그렇다. 중동 지역은 물론이고 인도와 동남아시아에는 종교적 토양 자체가 공산주의 사상이 자라나기 어렵다.

오늘날 후진국을 점령한 공산주의는 정치 이념이나 사상이라기보다는 좌파의 정권 쟁취와 유지를 위한 필수조건이 된 실정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공산주의는 성쇠를 거듭하고 있다. 운명적 종말을 맞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북한은 이미 공산주의 자체도 변질시켜 버렸다. 김씨 왕조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다. 하지만 모든 이데올로기는 결국 휴머니즘에 흡수되게 마련이다. 휴머니즘은 영구한 가치를 계속해서 창조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6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