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치 혀로 천냥 빚은 갚을 수 있어도 거짓은 덮을 수는 없다.
국민 (시/ 정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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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사람으로 지나가고 여러 사람으로 흩어진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들의 한 사람으로 지나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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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그는 겸손하고 선량하다
흉흉한 뉴스를 보면 - 세상이 무서워요
선행을 한 후엔 -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터뷰에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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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의 그는 모범적이지 않다
그는 곧잘 피해자와 가해자로 합의된다
- 잘 걸렸다
소박하고 수줍던 그가 법 없이 살던 그가
법을 들먹이며 도사린 마음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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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부딪혔을 뿐인데 목뒤를 잡고 드러눕거나
멀쩡한 치아를 흔들어 사태를 악화시킨다
밤이 되면 담 밑에 쓰레기를 버리고
훌쩍 담을 넘는 허깨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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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않을 때 그는 힐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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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의 그가 모인 자리에서 그는 한층 어긋난다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요지부동을 고수하며
어차피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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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나간다 더 없이 선량하고 무심한
한 사람의 그를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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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문예》 202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