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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대하소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2. 31. 12:00

[일사일언]

인생은 대하소설

나연만·소설가
입력 2024.12.31. 00:32
 
 

 

장편소설을 쓰기 전에 소설가들은 시놉시스를 먼저 쓴다. 작가마다 시놉시스를 쓰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소설의 계획서 같은 것이다. 시놉시스에서 소설의 장르와 주요 줄거리, 주인공이 정해진다. 시놉시스 없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시놉시스대로 소설을 써나간 적이 없다. 처음에는 순조롭게 써지는 듯하다. 하지만 절반도 가기 전에 주인공이 파업을 하고 빌런이 개과천선하는 등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린다. 내가 쓰는 이야기인데도 그렇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나아간다. 빌런에게 사악한 생각을 주입하고 주인공을 움직일 동기를 안겨줘서 개연성을 확보한다. 줄거리는 바뀔지언정 한번 시작한 소설을 도중에 중단한 적이 없다.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어떻게든 끝까지 쓰고 나면 나중엔 계획한 것보다 더 마음에 드는 소설이 완성되어 있곤 했다.

인생이야말로 그렇지 않을까. 인생이 계획대로 잘 풀리던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며 노력했던 소년이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한다든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하고 싶었던 이가 시험에 떨어져 입사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노력이나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원하는 것은 노력만으로 얻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꿈은 회사원이었지, 작가가 아니었다. 소설을 쓴다는 계획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를 중간에 그만두어 임원이 되지 못한 걸 후회하거나, 계획에 없던 작가가 되었기에 인생이 망했다고 여기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른 나이에 소설을 좋아했더라면 더 빨리 작가가 됐을 텐데’하고 말이다.

인생은 길다. 장편소설보다 훨씬 더 길다. 인생은 2막이 아니라 3막, 4막도 시작할 수 있다. 환경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 전직 야구선수가 차린 식당이 대박 나거나, 대기업 진출에 실패한 이가 창업해 굴지의 회사를 일구는 경우들을 본다. 원만히 풀렸을 때보다 오히려 실패했을 때, 몰랐던 다른 세계가 보이기도 한다.

어떡할 것인가 인생이라는 소설은 이미 쓰기 시작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