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세계는 왜 폭력적인가, 왜 아름다운가… 내 모든 질문의 근원은 사랑"
한강, 노벨문학상 강연 '빛과 실'… 31년간의 작품 세계 회고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7일 오후 5시(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연사로 나선 한강이 작가로 활동한 지난 31년을 회고했다. 1979년 4월 여덟 살 때 쓴 시(詩)로 강연의 문을 열고 닫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은 일명 ‘귀로 듣는 문학’으로 불린다. 200명 안팎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림원 종신 위원 마츠 말름이 한강을 소개한 뒤 그를 무대로 불렀다. “The floor is all yours(당신의 무대입니다.)” 연단에 오른 한강은 준비한 원고를 30여 분간 한국어로 읽었다. 제목은 ‘빛과 실’. 영어·스웨덴어 번역은 인쇄돼 참석자들에게 배포됐다.
다음은 강연 요약.
“장편, 삶과 맞바꾸는 절실한 질문에 머무는 것”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뛰는 가슴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그 후 14년이 흘러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 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빛과 따스함으로 갈 수 없게 하는 무언가 있었다”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2005년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삶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한강은 연단에 놓인 물을 따르며 잠시 호흡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 시점까지 나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불가능한 수수께끼 오직 글쓰기로 대면”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 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래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 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00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광주뿐 아니라 국가 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그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 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5월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광주는 보통명사이자 되돌아오는 현재형”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같은 해 6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 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났을 때였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부디”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 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어쩌면 내 모든 질문은 사랑을 향하고 있었다”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한편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2~3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나는 한강의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존재로서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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