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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의 어떤시

[139] 향수(鄕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0. 6. 17:36

[최영미의 어떤 시]

[139] 향수(鄕愁)

입력 2023.09.25. 03:00업데이트 2023.09.25. 09:02
 
 
 
 
일러스트=이철원

향수(鄕愁)

 

나의 고향은

저 산 너머 또 저 구름 밖

아라사(俄羅斯·러시아)의 소문이 자주 들리는 곳.

 

나는 문득

가로수 스치는 저녁 바람 소리 속에서

여엄-염 송아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멈춰 선다.

-김기림 (金起林 1908~?)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제목 ‘향수(鄕愁)’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겹고 아련하다. 어떤 요란한 기교도 부리지 않고 편안한 시어들. 3행이 1연을 이루는데, 아래 행으로 갈수록 행이 길어지고 넓게 퍼진 모양이 마치 산자락이 펴지듯 시각적인 재미를 준다. 김기림은 1930년대 조선 문단에서 가장 앞서가는 모더니스트 시인이자 산문 작가였다.

2행에서 ‘저 산 너머’ 뒤에 ‘저 구름 밖’의 대구도 절묘하다. ‘구름 밖’ 뒤에서 행이 끝나, 갑자기 낭떠러지처럼 끊어진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고향과 시인 사이의 거리가 그처럼 멀었나. 김기림의 고향은 함경북도 학성군, 항구에서 30리 떨어진 곳에서 자랐다고 한다. ‘향수’의 4행에 들어간 ‘문득’처럼 사랑스러운 ‘문득’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가로수를 건드리는 바람 소리 속에서 문득 송아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향이 생각나 멈춰 선 마음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또렷하게 잘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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