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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의 어떤시

매실을 따고 있네요(摽有梅)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8. 7. 17:29

[최영미의 어떤 시]

[132] 매실을 따고 있네요(摽有梅)

입력 2023.08.07. 03:00
매실을 따고 있네요(摽有梅)

 

매실을 따고 있네요

일곱 개만 남았네요

나를 찾는 임이시여

날 좀 데려가세요

 

매실을 따고 있네요

세 개만 남았네요

나를 찾는 임이시여

지금 빨리 오세요

 

매실을 다 땄네요

광주리에 담고 있네요

나를 찾는 임이시여

말만이라도 해주세요

-작자 미상, 출전 <시경(詩經)>

(이기동 옮김)

일러스트=이진영

지금부터 2500여 년 전, 공자가 편찬했다는 ‘시경(詩經)’에 실린 노래다. 매실이 익을 무렵 그녀의 청춘도 무르익어 날 좀 데려가 달라고 임을 부른다. 중국의 어느 지방에서 매실을 따며 부르던 민요일 텐데, 초여름에 매실을 따는 고된 노동이 사랑 노래를 부르며 좀 가벼워졌으리라.

 

반복되는 후렴구 “나를 찾는 임이시여”의 앞뒤가 재미있다. “일곱 개만 남았네요.” “세 개만 남았네요.” 일곱 개 남은 매실이 세 개로 줄고, 그네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그는 언제 오는가. 매실을 따서 광주리에 담는 과정을 따라가는 속도감 있는 묘사가 탁월하다.

 

유교 경전의 하나라는 이유로 시경을 (고리타분하다고 지레짐작해) 멀리하다 최근에야 비로소 찾아 읽었다. 시경에 엮인 시가 삼백여 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대개 사랑 노래. 오래된 노래 가사를 맛깔스러운 우리말로 옮긴 이기동 선생님의 번역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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