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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쓰지 않는 사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27. 14:30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참회록’ 쓰지 않는 사회

24세 윤동주 “나의 거울을 닦아보자” 참회록 써
지금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잘못했다는 반성 없어
고은 시인이 참회록 쓴다면 노벨상 탄생할 수도
지난 정부는 잘못 비춰볼 거울 가지고 있긴 하나
국민을 화나게 하는 건 반성 없는 내로남불 태도

 

입력 2023.01.27 03:00
 
 
 
 
 
 

‘참회록’은 윤동주 시인이 1942년 조국에서 쓴 마지막 시의 제목이다. 반성과 성찰의 상징인 ‘거울’을 통해 부끄러움의 미학을 전하는 이 시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로 시작하여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로 맺는다. 만 24세를 갓 넘긴 젊은이가 무어 그리 참회할 일이 있었을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란 이 고운 청년은 이듬해 독립운동을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숨을 거둔다.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고해성사를 요청했으나 교구장에게 거절당한다. 그러나 니콜라 빌렘 신부가 그에게 고해성사를 해주었고, 2011년 천주교회는 비록 살인을 했지만 그를 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한다. 이 반듯한 31세 청년은 15가지에 이르는 이토의 죄목을 나열하면서도 이토를 살해한 것에 대해 사죄했다. 그의 정결한 인품이 일본인도 감동시켰고, 이문열 소설의 제목처럼 죽어서도 천년을 살고 있다.

 

나라를 잃었거나, 나라를 빼앗길 경각의 시기에 이 땅에서 살다 간 인물 중엔 이렇게 상상도 할 수 없게 맑은 인물들이 있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겪었을 고초와 번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역사의 아픔조차 자신의 부끄러움과 잘못으로 성찰하는 이들에게는 내면에 양심이라는 거울이 있었기에 그게 가능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내면의 거울은 중요한 성찰 도구다. 인간이라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장 자크 루소는 다섯 자식을 유기한 일을 포함한 과거 허물을 모두 고백록에 담아냈고, 톨스토이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느낀 순간 위선과 교만에 찬 과거를 돌아보는 참회록을 썼다. 초대 그리스도교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13권에 걸쳐 자신의 모든 죄악을 고백하고 생활을 반성한 참회록을 펴냈는데, 이 책은 기독교 3대 고전 중 하나로 1600년 넘게 읽히고 있다.

 

그토록 원했던 나라를 되찾고, 전쟁과 분단을 넘어 눈부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참회록 따위는 개나 줘버릴 이름이 되어버렸다. 톨스토이의 고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윤동주 이후 참회록을 접한 기억이 없다. 그동안 개인이나 집단이 여러 역사적 고비에서 시행착오를 했을 텐데, 도무지 잘못했다는 사람이 없다. 반성하는 집단은 눈 씻고 봐도 없다. 스스로 비춰볼 거울이 없거나, 비췄더라도 보이는 모습을 외면했거나, 아니면 그 둘 다일 것이다.

 

얼마 전 상습 성추행 문제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던 고은 시인이 신작으로 복귀하려 하자 여론의 비판에 직면한 출판사가 사과하고 물러선 해프닝이 있었다. 출판사는 사과했는데, 정작 고은 시인은 “가족과 아내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성추행 문제를 공론화한 최영미 시인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는 지켜볼 것”이라고 맞받았다. 만약 고은 시인이 그 유려한 문장으로 참회록을 집필했다면, 혹시 아는가, 노벨 문학상감이 탄생했을지. 여하튼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투영된 한 시인의 추한 모습에 기운이 빠진다.

 

최영미 시인의 일갈대로 “권력은 반성하지 않는다”지만, 집단적 반성 결핍증을 앓는 집단으로 지난 정부 사람들이 으뜸 같다. 사실 정권이 교체된 것만으로도 그들은 반성할 거리가 차고 넘친다. 지지해준 사람들에게는 실패한 데에 사죄해야 하고, 그동안 나라를 맡겨준 일반 국민에게는 실패한 정책들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적어도 미흡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인정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방과 왜곡을 바로잡겠다고 단체를 만들고 모이며 분주하다. 얼마 전 출범한 정책 포럼 ‘사의재’는 ‘성찰과 계승’을 강조하고 있으나, 성찰보다는 대응과 계승 쪽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문재인 정권이 모든 정책적 허물, 예컨대 5년 만에 국가 채무를 거의 두 배로 늘린 것이나,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경제를 교란하고 북한에 대한 일방적 저자세로 나라의 정체를 위태롭게 한, 그런 잘못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하는 자세로 국정을 운영했다면 정권을 연장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더 화나게 한 건 무능보다 우격다짐과 내로남불 태도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아집에 가깝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새해 첫날 양산을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에게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선 안 된다”며 마치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말했다. 그들에게 거울이 있다면 스스로 비춰보라고 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주의와 법치가 크게 후퇴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의 실망과 진단에 대해 어떤 성찰을 하고 있는지.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 흔들리는 경제와 국민의 삶, 멍드는 안보와 외교,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했는데, 자신들이 집권한 시절 흔들린 경제와 국민의 삶, 멍든 안보와 외교, 무너진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그들에게 자신을 비춰볼 거울은 있는지 묻고 싶다.

 

거울이 없다는 건 내면의 양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문재인 시즌2는 아마 오지 않을 것 같다. 실패에서 배워야 성공도 도모할 수 있을 텐데, 적어도 지금까지 언행으로 미루어 그럴만한 반성과 성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