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아 아인슈타인 깨운 3가지… 나침반·바이올린·토론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42) 인류 최고의 과학자는 어떻게 역경 극복했나
아인슈타인은 1879년 독일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말 배우는 것이 늦어 세 살까지 한마디도 못 했다. 학교에 입학해서도 독일어가 어눌하고 약간의 자폐 증상이 있어 왕따가 되었다. 다섯 살 무렵 입원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무료해하는 아들에게 ‘나침반’을 사주었다. 아인슈타인은 나침반 바늘이 항상 북쪽을 가리키는 움직임을 관찰하며 바늘을 끌어당기는 우주의 힘이 숨어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는 우주의 힘이 어떻게 자기한테까지 오는지 궁금했다.
아인슈타인은 학업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 지진아로 분류되었다. 담임은 성적기록부에 ‘이 아이는 나중에 무엇을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음’이라고 기록했다. 이를 본 어머니는 어린 아인슈타인에게 믿음을 심어주었다. “너는 세상의 다른 아이들에게는 없는 훌륭한 장점이 있단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너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그 길을 찾아가야 한다. 너는 틀림없이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아들을 격려했다.
“넌 특별하단다” 어머니의 믿음
어머니는 아인슈타인이 남보다 잘하길 바라지 않았다. 무언가 남과 다른 특출한 재능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녀는 아들에게서 ‘Best’가 아닌 남과 다른 ‘Unique’한 재능을 찾으려 노력했다.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는 아인슈타인에게 여섯 살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배우기 싫어해 1년쯤 배우다 그만두었다. 이때 어머니는 강요하지 않았다. 몇 년 뒤 아인슈타인은 모차르트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다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자기가 원해 다시 시작했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아인슈타인에게 놀라운 집중력이 발견되었다. 그는 어느 날 모차르트 음악이 수학적 구조로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미처 깨닫지 못한 것에 진리가 숨어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혼자서 깨닫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서를 즐기는 아버지 덕에 아인슈타인도 책 읽기를 좋아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가난한 신학생을 대접하며 자녀를 돌봐주게 하는 대신 학비를 지원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열 살 때 부모는 막스 탈무드라는 의대생을 목요일마다 초대했다. 막스는 아인슈타인이 ‘자연의 움직임’에 호기심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각종 과학책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21권짜리 자연과학 시리즈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막스는 아인슈타인이 12세가 되자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이끌어 함께 읽고 질문을 던져 스스로 원리를 깨우치도록 했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기하학의 규칙성과 논리에 빠져들었다. 유대인 교육에 있어 이처럼 ‘호기심’ 자극과 ‘답을 스스로 찾는 해결법’은 가장 중요한 학습 방법이다. 이후 막스는 아인슈타인의 관심을 철학으로 넓혀주어, 뉴턴, 스피노자, 데카르트의 책들을 섭렵하게 했다. 13세 때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을 한 구절, 한 구절 같이 읽으며 몇 시간씩 토론했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토론의 즐거움에 빠져들면서 토론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가족은 1895년 뮌헨에서 밀라노로 이사했다. 막스도 의대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아인슈타인은 학업을 위해 혼자 뮌헨에 남았으나 주입식 교육이 싫었다. 결국 역사·지리·어학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학교를 중퇴했다. 그리고 가족이 있는 밀라노로 갔다. 16세 때 독학으로 미적분을 뗐고, 17세 때 ‘나는 평생 술 대신 인문학에 취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고전 읽기에 빠져들었다. 아인슈타인은 밀라노에서 대학을 가려 했으나 고등학교 졸업 증명서가 없어 불가능했다. 그러다 취리히 연방 공대는 입학 시험에 졸업 증명서가 필요 없음을 알게 되어 응시했으나 떨어졌다. 이때 그의 탁월한 수학 성적에 주목한 학장의 배려로 아인슈타인은 페스탈로치가 설립한 고등학교에서 1년간 더 공부하는 조건으로 이듬해 입학했다. 대학 시절 아인슈타인은 수업에는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여러 주제로 친구들과 토론하며 즐겁게 보냈다.
유대인 두뇌 계발의 비밀은 ‘호기심과 상상력’이다. 아인슈타인도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상대성원리를 발견했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우주는 어떻게 작동하나’와 같은 추상적 의문에 매달렸다. 열여섯 살 어느 여름날, 공상에 잠겨 길을 걸으며 ‘인간이 빛의 속도로 날아가면 무슨 일이 생길까’라고 상상한 것이 상대성원리 발견의 계기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 성적이 좋지 않아 취직이 힘들었다. 보험 회사에 취직했다가 잘린 뒤 물리학 가정교사를 하기 위해 신문 광고를 냈다. 이때 배우러 온 유대인 솔로비니에게 가르치기보다 함께 토론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이 모임에 수학자 하비 히트가 합류했다. 그 뒤 친구 아버지의 도움으로 1902년 스위스 특허청에 취직했다. 직장 상사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 근거한 사고 훈련을 받았다. 이에 자극받은 아인슈타인은 토론 모임을 ‘올림피아 아카데미’로 이름 짓고 퇴근 후 토론에 열중했다. 칼 피어슨의 ‘과학 문법’, 앙리 푸앵카레의 ‘과학과 가설’,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학 체계’ 등을 읽으며 토론했다. 책의 중요한 부분은 며칠씩 토론했다. 이때 의견들이 부딪치면서 불꽃 튀는 창의성이 발현되곤 했다. 이것이 그의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토론으로 단련된 그의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에 상상력이 더해졌다. 오로지 머릿속 실험으로 우주의 진리에 다가갔다. 1905년 26세의 아인슈타인은 그의 상상력이 발견한 보물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독일 물리학연보에 논문 다섯 편을 연달아 발표한 것이다.
머릿속 실험으로 우주에 다가가
3월에 ‘광전 효과’, 5월에 ‘브라운 운동’, 6월에 ‘특수 상대성 이론’, 7월에 ‘분자 차원의 새로운 결정’, 8월에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설’(E=mc2)을 게재했다. 그 하나하나가 너무나 중요한 주제였다. 1905년은 ‘기적의 해’였다. 그는 ‘광전 효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중력 이론이 포함된 이론으로 확대해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이 이론에서 “강한 중력장 속에서 빛은 구부러진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옳은지는 개기일식 때 태양 바로 옆 별의 위치를 측정하면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별은 평소 위치에서 어긋나 보일 것이다. 1919년 5월 개기일식 때 영국 관측대에 의해 이것이 확인되어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은 상대성 이론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가설들은 가히 혁명적이어서 아인슈타인에게는 ‘위대한 천재’라는 환호가 쏟아졌다. 오늘날 우리가 위성 텔레비전을 보고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면서 한 번쯤은 아인슈타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게끔 인류에게 우주의 길을 열어준 과학자가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이 본 교육의 목적]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 지식엔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세상을 감싼다”
“교육의 목적은 기계적인 사람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인간적인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 교육의 비결은 상호 존중의 묘미를 알게 하는 데 있다. 일정한 틀에 짜여진 교육은 유익하지 못하다. 창조적인 표현과 지식에 대한 기쁨을 깨우쳐주는 것이 교육자 최고의 목표이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에는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세상을 감싼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말로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생각이 먼저 떠오르고, 그런 다음 말로 표현하려고 애써야 한다”고 했다.
창조란 ‘상상력’을 통해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상상력이 21세기의 화두이자 가장 중요한 경제 동력이 되고 있다. 상상력(想像力)이란 글자 그대로 ‘생각(想)한 것을 그려내는(像) 능력(力)’이다. 창조는 상상력과 꿈으로부터 나온다. 탈무드도 “당신의 꿈은 당신을 가장 아름답게 꾸며주는 최고의 옷”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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