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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산불 이후 ... 삼척 보듬은 삼척 여행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3. 29. 17:00
대형 산불 이후 ... 삼척 보듬은 삼척 여행
가까스로 ‘火魔’ 피한 금강송 군락 ...꺾이지 않은 ‘붉은 기개를 느끼다
 

준경묘의 금강송이 붉은 수피를 드러내고 있다. 준경묘 뒤쪽에는 황장산 능선의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이 길에 대왕소나무가 있다고 해서 찾아들어 갔는데, 발견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대왕소나무란 한 그루 나무가 아닌 일대의 금강송 거목 군락을 통칭해 부르는 이름이었다.



강원과 경북 동해안 일대를 덮친 대형산불이 꺼진 지 보름 남짓.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거대한 흉터로 남았습니다. 며칠을 불탔던 숲은 잿더미가 됐고, 불이 스쳐 지나간 산지의 소나무들도 푸르던 이파리가 하나둘 벌겋게 변색돼 가고 있었습니다. 숯덩이로 변한 건 산뿐만이 아닙니다. 산불 이후 관광객 발길이 뚝 끊기면서 주민들의 마음도 타들어 갑니다. 코로나19로 최근 몇 년 사이 관광객이 확 줄어들었는데, 산불 이후로 거기서 4분의 1 토막이 났다는군요. 불타 버린 숲을 복원하는 데 100년이 더 걸린다지만, 어려움에 처한 산불 지역 주민들을 돕는 건 마음만 조금 내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중 하나가 ‘그곳으로 여행하는 것’입니다. 급하게 강원 삼척을 다녀온 건 그래서입니다. 삼척에서 아름드리 금강송 숲이 있는 준경묘를 겨눠 찾아갔던 건, 토종 금강송 숲이 얼마나 장엄하고 감격적인지, 그래서 울진의 금강송을 산불로부터 지켜 낸 게 얼마나 다행인지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느낀 것 하나는, 우리가 그 좋은 숲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참, 삼척을 비롯해 강릉과 동해, 울진의 관광지는 산불 피해가 거의 없어서 여행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는 소식도 덧붙입니다.


#해동의 용(龍)이 잠들어 있는 곳

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으로 간행한 ‘용비어천가’는 이렇게 시작된다. “해동(海東) 육룡(六龍)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풀이하자면 “날아오른 여섯 마리 용이 하는 일마다 하늘의 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해동 육룡’이란 세종의 선대(先代), 즉 6대조 할아버지까지를 말한다. 세종의 1대 아버지 태종(이방원), 2대 할아버지 태조(이성계), 3대 증조할아버지 환조(이자춘), 4대 고조할아버지 도조(이춘), 5대 익조(이행리) 그리고 6대 목조(이안사)까지가 ‘여섯 마리 용’이다.

왜 오룡이나 칠룡이 아니고, 꼭 육룡일까. 그건 왕조의 개창자가 조상을 추존(죽은 이에게 왕의 칭호를 올리는 일)할 때, 4대조까지만 허락되기 때문이다. 태조에게 4대조라면, 세종에게는 6대조가 된다. 세종 때 지은 용비어천가에서 날아오른 용이 다섯도, 일곱도 아닌 여섯인 이유다.

강원 삼척의 아름드리 금강송 숲 한복판에는 준경묘가 있다. 준경묘는 세종의 6대조 이안사의 아버지, 그러니까 세종의 7대조인 이양무 장군의 무덤이다. 이양무는 ‘해동 육룡’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그가 죽어서 묻힌 준경묘는 조선 왕조 탄생에 있어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아들 이안사가 도승의 계시를 받아 얻은 명당자리에 이양무 묘를 쓴 뒤에 5대에 이르러 조선이 건국됐다는 얘기 때문이다. 그 얘기가 ‘백우금관(百牛金冠)’의 전설에 담겨 있다. 준경묘의 묫자리 기운 덕에 후대에 왕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조선 개국은 ‘하늘의 명(命)’이라는 암시가 담겼다.

 
 

#조상의 묘가 점지한 왕의 탄생

전설의 내용은 이렇다. 죽은 아버지 이양무의 묘지를 구하러 헤매던 아들 이안사가 우연히 한 도승의 말을 엿듣게 된다. 산중에서 문득 멈춰 선 도승이 그 자리를 두고 혼잣말로 ‘소 100마리를 잡아 제사하고 금으로 된 관을 싸서 장사를 지낸다면 5대 안에 왕자가 출생할 자리’라고 했다. 이안사는 그 자리에 아버지를 묻기로 했다. 하지만 가난한 형편에 소 100마리와 금으로 된 관은 언감생심. 궁여지책으로 소 100마리를 흰 소 한 마리로 대신했다. 흰 소를 한자로 쓰면 ‘백우(白牛)’라, ‘일백 백(百)’ 자와 발음이 같다는 데 착안한 것이었다. 금관은 귀리 짚으로 엮어 만들었다.

소 한 마리와 귀리 짚으로 만든 관을 바치고서 명당에다 쓴 이양무의 묘가 지금의 준경묘다. 도승의 예언대로 묘를 쓰고 5대가 지난 뒤에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왕위에 올랐다. 전설은 왕조의 정통성을 위해 꾸며 낸 이야기라는 혐의가 짙지만, 아무튼 그 내용이 이렇다.

준경묘는 사실 오랫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아버지 묘를 쓴 이안사가 함경도로 이주했다가 원나라로 귀화하는 바람에 묘를 잃어버렸던 것. 조선 건국 이래 태조와 세종 등 역대 왕들이 이양무의 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묘는 조선 말기인 고종 때(1899년) 찾았다. 늦게나마 왕조 탄생의 기원을 찾았으니 어찌 기쁜 일이 아니었을까. ‘깊은 경사’라는 뜻으로 ‘깊을 준(濬)’에 ‘경사 경(慶)’ 자를 써서 준경묘란 이름을 얻게 된 이유다. 하지만 미심쩍은 건 역대 왕들이 백방으로 찾으려 했어도 못 찾은 묘를 60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찾았다는 것. 과연 묘는 진짜일까.



삼척 근덕의 초곡용굴촛대바위길. 해안절벽에 잔도처럼 매달아 놓은 길 위에서 기기묘묘한 기암을 볼 수 있다.
 


#반은 나쁘고 반은 좋은, 준경묘 가는 길

준경묘까지는 누구든 걸어가야 한다. 주차장에서 준경묘까지 거리는 1.8㎞ 남짓. 보통 걸음으로 40분 정도 걸리는 길이다. 길의 절반쯤은 시멘트로 포장돼 있고, 나머지 절반도 비포장이기는 하지만 차로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아쉬운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번듯한 길을 놔두고 두 발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 시멘트 도로 구간은 경사도 제법 있는데 말이다. ‘그래, 걸어가야지’ 하고 마음을 접고 나면 아쉬움은 더 크다. 그 길이 탄력 있는 흙길이 아니라는 것이. 초록의 솔숲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오솔길이었다면 좀 좋았을까.

이 길을 오솔길로 놔두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베어 낸 나무를 실어 가기 위해서다. 준경묘 주변 396㏊(120만 평) 산림에는 토종 금강송 거목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았다. 이름하여 ‘삼척 천 년의 숲’이다. 이 숲의 나무는 궁궐의 기둥이 된다. 2008년 화재로 불탄 숭례문의 복원 과정에서 이곳 소나무 20그루가 베어져 기둥으로, 대들보로 쓰였다. 문화재 수리나 복원 작업에 쓰일 아름드리나무를 여기서 베어 내 차로 싣고 가야 하니 길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투덜거릴 일은 아니다.

주차장에서 준경묘까지 이어지는 초입의 800m 길은, 정말로 재미없다. 답답한 협곡 사이로 가파른 시멘트 포장도로가 구불구불 비탈을 오른다. ‘가장 걷고 싶지 않은 길’ 하나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여기를 지목할 수 있을 정도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근래 포장도로 옆으로 옛길이 놓인 걸 보면 말이다. 나무 덱과 오솔길로 이어 낸 옛길은 다시 포장도로와 만나 이어지는데, 나머지 1㎞ 흙길 구간은 훌륭하다. 솔숲 사이로 이어진 평탄한 길은 앞서 지루한 길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질 정도다.


#대왕소나무가 사는 ‘천 년의 숲’

금강송이 도열한 숲길 끝에서 갑자기 시야가 터지며 준경묘가 나타난다. 보통 왕릉 규모의 5분의 1쯤 될까. 묘 앞에는 제사를 지내는 전사청 하나, 그 옆에 비각 하나가 전부다. 준경묘에 가 보면 준경묘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곳이 누구의 묘인지, 과연 그곳이 명당인지, 그 묘가 진짜인지. 이런 질문은 준경묘 앞에 서면 그다지 의미 없다. 압도하는 건 역사가 아니라 자연이고, 묘가 아니라 숲이다.

준경묘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소나무다. 그것도 그냥 소나무가 아니라 금강송, 혹은 황장목으로 불리는 붉은색이 감도는 훤칠한 소나무다. 금강송 군락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 우리나라 최고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꼽히는 울진 소광리다. 소광리 금강송 숲은 울진·삼척 산불로 불이 코앞까지 번지는 바람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가 사투를 벌인 소방대원과 주민들 덕에 천신만고로 지켜 낸 숲이다. 준경묘를 두르고 있는 금강송 숲도 소광리 못지않다. 준경묘의 금강송 숲을 가 보면 알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숲을 갖고 있는지, 이런 숲이 왜 지켜져야 하는지, 그리고 소광리 숲을 지켜 낸 게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이런 훌륭한 숲이 있음에도 그걸 맘껏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도 든다.

준경묘의 숲은 소광리에 비하면 야생에 가깝다. 손길도, 발길도 덜 닿았다. 붉은 비늘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는 수천 그루, 수만 그루의 소나무가 도열한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준경묘의 금강송은 키가 클뿐더러 하나같이 수직으로 곧게 솟았다. 보통의 소나무 숲과는 다른, 장엄한 기운이 서렸다. 이런 나무가 한 번도 불타지 않고, 한 번도 베이지 않고 남아 온 산을 뒤덮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런 숲을 지켜 줘서 정말 고맙다’고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진다.



삼척 맹방의 덕봉산 해안생태산책로. 덕봉산으로 이어진 백사장에 놓은 나무다리가 사진촬영의 명소가 됐다.
 


#청룡·백호길, 그리고 치유의 숲

준경묘 주변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청룡길과 백호길이다. 준경묘 주위에도 송림이 울창하지만, 금강송 숲의 하이라이트는 단언컨대 이 길 위에 있다. 준경묘를 뒤로 두고 서서 보면 왼쪽으로는 청룡길이, 오른쪽으로는 백호길이 있다. 짐작하듯이 풍수에서 명당의 조건으로 일컬어지는 ‘좌청룡 우백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두 길은 확연하게 다르다. 청룡길은 준경묘 한쪽의 산자락을 에둘러 도는, 2.6㎞ 남짓의 등산로를 방불케 하는 제법 거친 길이고, 백호길은 준경묘 뒤쪽으로 이어지는 500m짜리 유순한 산책로다. 걷는 시간은 청룡길이 1시간 30분 남짓, 백호길은 10분 정도다. 청룡길이 ‘선택’이라면, 백호길은 ‘필수’다.

백호길은 준경묘 뒤에 있다. 준경묘를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면 길이 T자로 갈라지는데, 거기서 왼쪽으로 꺾으면 백호길이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황장산의 백두대간 능선까지 이어진다. 이 일대는 붉은 수피의 거대한 금강송으로 가득 차 있다. 준경묘 주차장에 세워진 지도에는 준경묘 주변에 ‘미인송’이 있고, 이곳에는 ‘대왕소나무’가 있다고 적혀 있다.

미인송은 산림청 임업연구원에서 전국을 뒤져 찾아낸 우리나라에서 가장 형질이 우수하고 아름다운 소나무. 그걸 기념해 지난 2001년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과 전통혼례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미인송은 보호철책 안에 있는데 굵은 둥치가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수직으로 힘차고 곧게 솟았다.

그런데 지도에는 있는 대왕소나무가 아무리 찾아도 없다. 삼척시청 산림과에 문의했더니, 대왕소나무는 특정한 나무가 아니라 백호길 입구 갈림길에서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길 주변의 소나무 군락을 통칭하는 이름이란다. 하기야 수백 년의 풍상을 이겨 낸 금강송 거목이 숲에 가득하니 이 중에서 어느 것 하나를 골라 대왕이라 명명한다는 게 난감한 일이었으리라.

준경묘가 있는 땅의 지명이 ‘활기리’다. 활기(活耆)란 이름은 본래 ‘황제(皇帝)가 태어날 터’를 뜻하는 황기(皇基)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청정한 솔숲으로 가득한 첩첩산중의 마을을 보면 지명이 ‘활기(活氣)’로 읽힌다. 길지 중의 길지라지만 활기는 첩첩산중이다. 이곳에 ‘활기 치유의 숲’이 들어섰다. 자연휴양림을 만들면서 산림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설을 들인 것. 고즈넉한 소나무 숲에 놓인 15개 코스의 숲길을 산책할 수도 있고, 산림치유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스트레칭, 맨발 걷기, 명상 등 다양한 치유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다. 개별 방문해서 족욕 테라피와 다도체험 등을 해볼 수도 있다.




삼척항을 끼고 있는 나릿골 감성마을
. 과하지 않을 만큼만 손을 대서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배신의 추억과 새로운 명소

준경묘의 금강송 숲 얘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삼척에서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바다다. 삼척의 바닷가에는 근래 조성된 이른바 ‘신상’ 여행지가 즐비하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삼척의 바다를 권하는 마음이 좀 복잡하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했던 2020년 봄의 기억 때문이다.

날짜도 기억한다. 2020년 4월 3일. 삼척시는 드넓은 맹방의 유채꽃밭을 트랙터로 다 갈아엎어 버렸다. 5.5㏊(1만6000여 평)의 해안가 꽃밭에 유채꽃이 만발했을 때였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와중에도 유채꽃을 보러 오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자 꽃밭을 밀어 버린 것이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오지 말라’는 얘기다. 돈이 될 때는 불러 모으다가, 외지인이 위해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니 야멸차게 쫓아 버렸다.

트랙터로 꽃밭을 갈아엎기 전에 관광객을 설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이해를 구하고 설득해 주민과 관광객이 같이 코로나19가 끝난 뒤를 기약할 수는 없었을까. 이런 기억 때문에 삼척에 가면 ‘빈털터리가 되자 매정하게 돌아섰던 변심한 애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고도 이제 와서 ‘산불로 지역경제가 어려우니 관광으로 도와 달라’고 할 염치가 있을까.

그래도 목전에 닥친 어려운 상황을 못 본 척할 수야 없지 않은가. 아니, 이런 의무가 아니라 관광지의 매력만으로 견주어 봐도 삼척에는 경쟁력 있는 명소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근덕면 초곡해변의 ‘초곡용굴촛대바위길’과 맹방의 ‘덕봉산 해안생태산책로’다.

강원 동해안에는 촛대바위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애국가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동해의 추암해변에 있고, 다른 하나는 삼척의 초곡해변에 있다. 동해 추암의 촛대바위가 훨씬 더 이름났지만, 그곳까지 이어지는 해변 길의 경치는 초곡의 촛대바위가 한 수 위라 할 수 있다. 접근로가 없는 해안 절벽에다 출렁다리와 나무 덱, 전망대 등을 잔도처럼 매달아 놨는데, 이 길 위에서는 촛대바위는 물론이고, 거북바위, 피라미드 바위, 사자바위 등 기기묘묘한 기암을 볼 수 있다. 동해안에는 해안가에다 놓은 걷기 길이 여럿 있는데, 경관으로 겨룬다면 그중에서 으뜸이라 할 만한 길이다.


#나릿골 감성마을의 순한 풍경

삼척 맹방에는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침투사건 이후 군 경계시설로 활용되며 일반인의 접근을 막았던 덕봉산이 있다. ‘산’이라 부르기는 하지만, 덕봉산은 해안 백사장과 연결된 손바닥만 한 섬이다. 그 섬에 꼭 1년 전쯤 해안생태산책로가 놓였다. 대숲 우거진 숲길을 걸어 해발 54m의 정상에 오를 수도 있고, 해안을 따라 돌면서 기암괴석을 볼 수도 있다. 덕봉산으로 건너가는 백사장에다 놓은 외나무다리도 제법 운치 있다.

여기에 한 곳 더. 삼척항을 끼고 있는 ‘나릿골 감성마을’도 추천한다. 정하동 나릿골은 이웃한 동해시의 관광명소가 된 묵호 ‘논골담길’의 산동네와 닮은 마을인데, 어딘지 분위기가 다르다.

동해 논골담길이 달동네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상이라면, 여기 삼척의 나릿골은 집이 제법 크고 성글며 두 집 건너 한 집꼴로 그리 넓진 않아도 마당쯤은 하나씩 두고 있다.

논골담길보다 나릿골의 집이 좀 나아 보이는 건 형편이 좋았다기보다는 순전히 삼척 인구밀도가 낮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가파른 경사의 비탈마을에는 지중해풍의 흰 담장이 세워졌고, 곳곳에 전망대가 있다.

마을에는 게스트하우스도, 무인카페도, 주민식당도, 마을 정원도 있고, 코로나19로 문을 닫기는 했지만 미술관까지 있다. 마을 안쪽의 언덕 위쪽으로는 주차장도 제법 잘 정비해 놓아 접근성도 뛰어나다.

나릿골 감성마을의 가장 큰 미덕은 과도하게 꾸미지 않았다는 점. 손댄 듯 대지 않은 듯 세련된 느낌으로 공간을 매만져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순한 풍경 속을 느릿느릿 걸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가파른 경사의 골목을 올라가 닿는 언덕마루에다 식물을 심어 자연을 들여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번잡스럽지도, 허전하지도 않은 딱 그 중간쯤의 느낌이랄까. 7년째 공들이는 삼척시의 노고가 느껴진다. 맹방의 유채꽃을 트랙터로 갈아엎어 상한 마음을, 여기서는 풀어 버릴 수 있을 듯하다.


■ 준경묘는 왜 삼척에 있을까

대대로 전북 전주에서 살았던 전주 이씨 이양무 장군은 왜 삼척에 묻힌 것일까. 그건 아들 이안사의 로맨스 때문이다. 이안사에게는 평소 아끼던 관기(官妓)가 있었다. 하루는 그 관기에게 수청을 맡겼다는 이유로 군 간부와 크게 다퉜다. 관기를 정부의 공공자산쯤으로 여기던 시대였으니 관기를 독차지하려는 건 작지 않은 죄였다. 이 일로 이안사는 도지사 격인 안렴사의 미움을 산다. 자칫 화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이안사는 외가가 있는 삼척으로 이주했다. 아버지 이양무의 묘를 삼척에 쓰게 된 연유다.


삼척=·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22324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