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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켄타우로스 가족' : 프로이트 만난 달리, 고전주의 지향…스릴러 영화 미술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5. 16. 19:48

이건희 컬렉션 '켄타우로스 가족' : 프로이트 만난 달리, 고전주의 지향…스릴러 영화 미술도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15 00:21 수정 2021.05.15 01:54

[영감의 원천] 이건희컬렉션 ‘켄타우로스 가족’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인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의 역사를 새로 쓴 ‘이건희컬렉션’ 중에서 ‘인왕제색도’ 같은 국보와 나혜석·이중섭 등의 희귀 근대 회화 외에도 유난히 내 흥미를 끄는 작품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7점의 외국 거장 회화 중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이다. 달리 특유의 관능적이고 기괴한 분위기가 다른 기증작들의 점잖고 온화한 분위기와 달라서 특히 눈에 띈다. 이 그림이 컬렉션에 포함된 사연과 기증작으로 선택된 이유가 궁금한데, 국립현대미술관에 문의하니 아직 알지 못한다는 답변이었다.

‘나르키소스의 변신’ 작품 보여주자
프로이트 “무의식 보다 의식 보여”

정신분석학 심취, 초현실주의 탈피
종합예술가 희망, 여러 장르와 협업

 

이 그림의 원제는 ‘육아낭 달린 켄타우로스 가족’이다.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마(半人半馬) 종족인 켄타우로스에게 캥거루처럼 육아낭이 있어서 거기로부터 아기들이 빠져나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달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학에 심취해 있었는데, 프로이트의 제자인 오토 랑크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랑크는 인간이 출생할 때 겪는 육체적 고통과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분리되는 정서적 고통이 최초의 트라우마이며, 이러한 출생 트라우마가 인간의 불안과 노이로제의 근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낙원 같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켄타우로스가 부럽다고 달리는 말했다.

프로이트 제자 랑크 이론에 영향 받아

달리가 ‘켄타우로스 가족’을 그린 이듬해인 1941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달리의 미국 최초 회고전이 열렸다. ‘켄타우로스 가족’은 전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큐레이터이자 평론가인 제임스 소비는 이 그림을 전시 카탈로그에 소개하고 달리의 중대한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다뤘다. 달리가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등을 돌리고 르네상스 미술의 고전주의를 지향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매우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데다가 초현실주의의 바탕인 정신분석학에 영향받은 그림인데, 어째서 그렇다는 걸까?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주창한 초현실주의 운동은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의식을 표현하는 게 핵심이고 그래서 그림에서도 의식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켄타우로스 가족’은 매우 의식적으로 르네상스 대가들이 사용한 삼각형 구도와 균형을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소비는 자의식 과잉인 달리가 이미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 불화하면서 무의식보다 의식을 표현하는 쪽으로 기울다가, 38년 런던에서 그의 우상인 프로이트를 만나면서 변화의 결심을 굳히고 훗날 ‘켄타우로스 가족’을 그리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당시 프로이트는 81세로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고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망명 온 상태였고, 달리는 34세였다. 두 사람은 프로이트의 런던 집에서 만났는데, 그때 프로이트는 달리가 가져온 그림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고전적인 그림에서 내 관심을 끄는 건 무의식인데, 당신 그림에서 내 관심을 끄는 건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군요.” 진정한 초현실주의자에게는 욕으로 들릴 소리였지만 사실 달리의 정곡을 찌르는 소리였다.

살바도르 달리의 ‘나르키소스의 변신’(1937), 런던 테이트모던 소장. [사진 테이트모던 미술관]

 

그때 달리가 가져간 그림이 지금은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소장된 그의 37년작 ‘나르키소스의 변신’이었다. 나르키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인데, 자신에게 구애하는 수많은 남녀를 냉정하게 거절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거절당한 이들 중 한 명이 ‘그도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으로 고통받게 해달라’고 복수의 여신에게 기도하자 여신은 나르키소스에게 저주를 내렸다. 그 저주는 맑은 샘물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에 반하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저주가 아니라 그의 타고난 기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르키소스는 수면의 자기 반영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닿을 수 없어 괴로워하다가, 결국 상사병으로 죽어 한 송이 수선화로 변신했다고 한다.

달리가 이 그림을 가져간 이유는 바로 프로이트가 (용어 자체는 다른 의사가 만들었지만) 나르키소스의 이름을 딴 나르시시즘(자기애)을 중요한 정신분석학 개념으로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유아기에는 리비도(성 충동 또는 삶 충동)가 자기 자신을 향하는 일차적·근원적 나르시시즘의 상태에 있다. 그 후 성장하면서 리비도는 외부 대상으로 향하게 되지만 근원적 나르시시즘은 내부에 남아있다. 우리는 연인에게 사랑받거나 타인에게 찬사를 받으면 스스로를 사랑스럽거나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렇지 못하면 심한 경우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분노와 증오를 품게 되는데, 그게 이차적 나르시시즘이라는 것이다.

달리 자신이 엄청난 나르시시즘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가 ‘나르키소스의 변신’을 그린 건 너무나 어울리는 일이었다. 그는 나르키소스 신화를 절묘한 이중 이미지로 구현했다. 먼저 그림 왼쪽을 보면 나르키소스가 금빛 햇살을 받으며 샘물가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의 반영을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다. 오른쪽을 보면 그는 그 모습 그대로 창백한 화석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화석은 알을 든 거대한 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 알의 표면이 깨지며 수선화가 피어난다. 그 상태에서 다시 왼쪽을 보면 이번엔 이것도 나르키소스가 아니라 거대한 손으로 보인다. 갈색 수선화 알뿌리를 들고 있는 거대한 손으로.

스릴러 영화에 달리 그림 많이 차용돼

히치콕 영화 ‘스펠바운드’(1945)에서 달리가 미술을 담당한 꿈 장면. [사진 스크린 캡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따르면 이것이 달리의 ‘편집광적 비판 방법(또는 편집증적 비평 방법)’이다. 굉장히 어렵고 거창하게 들리는 용어인데(실제로 달리는 이 용어가 어렵게 들려서 좋아했다), 무슨 뜻일까? 편집증 환자는 아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망상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편집광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일반인들이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읽어내곤 한다고 한다. 달리가 명명한 ‘편집광적 비판 방법’은 그것에 착안해 하나의 이미지가 여러 가지로 보이게 하는 초현실주의 회화 기법인 것이다.

달리는 이 그림이 프로이트의 인정을 받길 바랐지만, 프로이트는 “당신 그림에서 내 관심을 끄는 건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군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달리는 또 자신이 편집증에 대해 쓴 글이 실린 잡지를 가져갔지만, 프로이트는 잡지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달리를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달리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잡지 글의 제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반복해서 말했다. 그의 동요 없는 무관심 앞에서 내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더욱 날카로워지고 우기는 톤이 되었다…프로이트는(그들의 만남을 주선한 친구에게)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스페인 사람의 예를 본 적이 없어요. 완전 광신도네.’”

사실 프로이트는 그를 우상으로 삼은 초현실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전주의를 선호했기에 아방가르드 미술에 관심도 없었고, 그가 오스트리아 빈에 살던 시절, 초현실주의를 주창한 브르통이 그의 집에 초대도 받지 않고 불쑥 나타나 민폐를 끼치고 간 전례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달리는 이 만남이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프로이트는 달리에 대해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다음날 주선자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그전까지 나는 초현실주의자들을 철저히 터무니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어제 그 젊은 스페인인의 솔직하고 광신적인 눈과 부인할 수 없이 완성도 높은 그림 테크닉을 보니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프로이트의 이 말은 달리에게 전해졌을 것이고. 그 후 달리는 정신분석학에 계속 영감을 받으며 테크닉과 구도는 좀 더 고전주의를 지향해 ‘켄타우로스 가족’ 같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달리는 르네상스적인 종합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에 패션·공연·영화 등 여러 장르와 협업을 했다. 특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정신분석학적 심리 스릴러 영화 ‘스펠바운드’(1945)에서 꿈 장면의 미술을 담당했다. 달리가 참여하지 않은 후대의 정신분석학적 스릴러에도 꿈 장면에 달리 그림이 차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다시 궁금해진다.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은 어떤 맥락에서 영감을 주어 ‘이건희컬렉션’에 들어갔고 기증작 중 하나로 선택되었을까? 정신분석학과 관련해서일까, 아니면 고전주의로의 회귀와 관련해서일까? 오는 12월로 예정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이건희컬렉션 2부: 해외거장’ 전시에서는 그런 맥락들이 밝혀져 소개되었으면 한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미술전문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학·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컬리지 문화학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 저서로 『그림 속 경제학』(2014), 『명화독서』(2018), 『광대하고 게으르게』(201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