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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뜻밖의 자리에서 뜻밖에 만난 뜻밖의 큰 잣나무 한 쌍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3. 2. 14:21

 

[나무를 찾아서]

뜻밖의 자리에서 뜻밖에 만난 뜻밖의 큰 잣나무 한 쌍

 

삼월입니다. 삼월의 첫 날인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일부 지방에는 폭설까지 내리는 등 날씨가 오락가락하지만 삼월은 봄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 동안 날씨가 조금 따뜻해질 때마다 서둘러 봄의 기미라고 반기면, 다시 또 추위가 찾아오기를 몇 차례 되풀이했지요. 그래도 삼월 들어선 이제는 어엿한 봄입니다. 삼월의 첫째 주인 이번 주에는 대학을 비롯한 모든 학교도 개학을 하게 됩니다. 여전히 바이러스 감염병의 위험 때문에 학교마다 개학의 방식에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새 학기는 시작합니다. 게다가 지난 주에는 기다리던 ‘백신 접종’도 시작했으니, 이제 정말 움츠린 우리 마음에도 새 봄이 기쁘게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 밤이 많은 마을이어서 ‘한밤마을’로 불리는 전통 마을 ○

큰 나무를 찾아다니다 보면 뜻밖의 자리에서 뜻밖의 나무를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생깁니다. 경북 군위 부계면 대율리의 오래 된 마을인 ‘한밤마을’에서 만나게 된 잣나무도 그런 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밤마을은 서기 950년 무렵 홍란(洪鸞)이라는 선비가 이주해 왔는데, 그때의 마을 이름은 대야(大夜)였다고 합니다. 한밤마을이라고 부르게 된 건 홍란의 14세손인 홍노(洪魯)를 중심으로 부림홍씨(缶林洪氏)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시절부터였다고 합니다. 마을 이름을 한자로 ‘대야(大夜)’라고 부를 때에도 한글 이름은 ‘한밤’이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만, 마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마을에 밤나무가 많아서 한밤마을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옛 마을 이름인 ‘대야(大夜)’가 아니라 ‘대율(大栗)’로 쓰게 됐다는 거죠.

 

한밤마을 어귀에는 200년 정도 된 큰 소나무들이 무리지어 자라는 아름다운 솔숲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한밤 솔밭’이라고 부르는 숲입니다. 이 솔밭 안에는 2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임진왜란 때 선비의 몸으로 의병을 조직하고 이곳에서 훈련하여 적을 물리친, 의흥복병장(義興伏兵將) 홍천뢰(洪天賚, 1564~1615) 장군과 그의 조카인 선무원종공신 혼암(混庵) 홍경승(洪慶承, 1567~?)의 공적을 기리는 기적비입니다. 모두가 부림홍씨 가문의 자랑스러운 선조입니다.

○ 90년 전 홍수 때 떠내려온 돌을 쌓아 만든 돌담길 ○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한 쌍의 잣나무는 마을 안쪽의 오래된 살림집 남천고택(南川古宅) 담장 안쪽에 서 있습니다. 남천고택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4호로 지정 보호하는 고택이지만, 민박도 할 수 있습니다. 남천고택에 이르기 위해 돌아들어야 하는 마을 골목길은 아기자기한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돌담은 1930년에 이 마을에 홍수가 났을 때 떠내려온 돌을 이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밤마을의 여러 기와집들과 어울리며 전통마을의 상징으로 보일 만큼 예스럽고 아름다운 돌담길입니다. 조붓한 골목의 돌담 길은 제법 운치가 좋습니다.

운치 있는 돌담길을 조금 걸어 나가면 길 끝에서 꽤 널찍한 마당이 열리고 그 마당 한켠에 남천고택이 있으며, 고택 앞에는 한밤마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군위 대율리 대청(軍威大栗里大廳)이 있습니다. 이는 조선후기에 중창된 맞배지붕 형태의 누정으로, 원래 절의 종각이 있었던 자리에 건립한 학사(學舍) 건물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잣나무가 바라다보이는 누정에 모여 살림살이를 의논하는 자리로 쓰여왔습니다. 군위 대율리 잣나무 두 그루는 이 군위 대율리 대청과 닿아있는 남천고택 담장 안쪽에 서 있습니다. 남천고택은 부림홍씨의 집성촌인 한밤마을의 살림집 가운데 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이기도 합니다. 굳이 고택 안에 들어서지 않아도 잣나무의 융융한 자태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의 기세좋은 자태는 한눈에도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합니다.

○ 처음 집을 짓고 살림살이를 이어간 선조가 심고 키워 ○

군위 대율리 잣나무 한쌍은 250년 쯤 전에 심어 키운 나무로, 높이가 10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2미터를 조금 넘습니다. 사실 잣나무는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아서, 200년 넘은 잣나무를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산림청 보호수 기록을 찾아보면 잣나무 가운데에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는 열 그루가 채 안 되며, 그 나무들도 대개 200-300년 정도 된 나무입니다. 잣나무 숲을 비롯해 적지않은 잣나무를 만나보았지만, 군위 대율리 잣나무처럼 기품있는 잣나무, 그것도 한 집안의 상징인 잣나무를 만나게 된 건 처음입니다. 잣나무를 집안의 상징으로 심어 키운 사례도 아는 바 없기에 더 뜻밖이었습니다.

이 잣나무는 입향조 홍노의 10세손인 홍우태(洪寓泰)가 250년 전에 남천소택을 지은 뒤에 담장 곁에 심고 집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당호를 쌍백당(雙柏堂), 두 그루의 잣나무가 서 있는 집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다른 나무 종류에 비해 비교적 수명이 짧은 잣나무인 군위 대율리 잣나무가 25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며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무가 이 집을 처음 지은 가문의 선조가 손수 심은 나무이고, 이 나무를 가문의 상징처럼 여겼기 때문에 후손들이 대를 이어 소중하게 지켜온 덕이겠지요.

먹을 거리로 유용하게 쓰이는 잣나무가 한 집의 당호가 될 정도로 상징적인 경우도 드물고, 대를 이어 가문의 상징으로 소중히 여기는 경우도 더더욱 드문 경우여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겁니다.


기운차게 다가오는 새 봄, 기쁘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한 가문을 상징하는 나무로 살아온 잣나무를 기억하며 2021년 3월 2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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