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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직지문인송’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영험한 소나무 한 그루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2. 7. 13:03

 

[나무를 찾아서] ‘직지문인송’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영험한 소나무 한 그루

김천 직지사 앞 ‘사하촌’이라 할 만한 마을에는 ‘문인송(文人松)’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는 소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오래 된 소나무 가운데에는 ‘의암송’ ‘귀학송’ ‘수성송’처럼 고유명사로 불리는 나무가 적지 않습니다. 김천 향천리 문인송도 그런 식입니다. 삼백 년쯤 이 자리에서 살아온 문인송을 더러는 직지사에 가까운 마을에 있는 소나무임을 가리키기 위해서 ‘직지문인송’이라고 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도 지난 《나무편지》에 이어서 지난 해에 답사하고, 미처 전해드리지 못한 나무 가운데 한 그루 전해드리겠습니다.

 

○ 일제 순사들의 감시를 피해서 소원을 빌었던 나무 ○

직지문인송이 서 있는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에 나무 앞에 모여 마을의 살림살이와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당산나무라는 이야기이지요. 게다가 나무는 마을 사람들 개개인의 사소한 소원까지 모두 들어주는 영험한 나무로 알려져서 마을 바깥 멀리에서도 자식을 낳기 원하는 아녀자들이나, 과거 시험에서 장원 급제를 비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 신령스러운 나무입니다.

 

여느 오래 된 나무들이 그렇듯이 문인송 역시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문인송에는 일제 강점기 때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그때 문인송 근처에는 일제 침략자들이 세운 신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제 순사들은 신사가 아닌 곳에서 사람의 소망을 기원하는 일을 엄격하게 통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 문인송에 소원을 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무가 마침 신사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문인송에 지성을 드리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지요. 그래도 사람들은 일제의 신사가 아닌 문인송을 몰래 찾아다녔다는 게 마을에서 오랫동안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 곁에서 자란 마을 사람을 문인으로 키워낸 나무 ○

‘문인송’이라는 이름은 이 마을, 특히 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서 100미터 안쪽에서 세 명의 문인이 배출됐다는 점을 기념하는 뜻에서입니다. 특별히 문인을 배출할 만큼 인문적 자원이 풍부한 마을도 아닌 평범한 농촌 마을에서 세 명의 문인, 그것도 나무 곁에서 자란 사람들을 문인으로 배출했다는 점을 기억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지어 붙인 이름이지요. 문인송이 배출한 세 명의 명사는 김천 지역에서 최초로 문인의 이름을 올린 홍성문 교수, 김천 지역 주민 최초로 시집을 발간한 이정기 교수, 그리고 이웃 봉산면 출신으로 결혼과 동시에 이 마을로 옮겨와 등단한 김천 최초의 소설가 심형준 작가가 그들입니다.

보호수 11-26-17호인 김천 향천리 직지문인송은 삼백 년 전에 이 마을에 살던 해주 정씨의 선조가 심은 나무라고 합니다. 마을 뒷동산 언덕 마루의 평평한 자리에 홀로 우뚝 서 있는데,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이 신목(神木)으로 여겨오며 잘 보호한 덕에 나무의 생육 상태는 매우 좋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주변 환경을 잘 정돈하고 나무 주위에 울타리까지 세웠습니다. 심지어 나무가 서 있는 언덕 주변에 축대를 쌓았으며 나무에 다가서는 길을 나무 계단으로 닦았습니다. 이 정도 정성은 여느 천연기념물 나무에서도 보기 어려울 만큼 대단해 보입니다.

○ 마을 뒷동산 마루에서 마을의 평화를 지켜주는 큰 나무 ○

이 소나무는 무엇보다 생김새 자체가 대단히 수려합니다. 첫눈에도 온 정신이 팔릴 정도입니다. 긴 세월을 자라면서 나무는 11미터 높이까지 자랐는데, 마을 어디에서도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가장 높은 언덕 마루에 서 있는 까닭에 실제 높이보다 훨씬 커 보일 뿐 아니라, 언덕 마루에서 마을을 굽어 살피며 서있는 모습이 여간 늠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이 마을에 오래 살게 되면 나무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나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직지문인송의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5미터 가까이에 이르는 듬직한 크기로 자랐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여느 소나무에 비해 결코 작은 크기라 할 수 없습니다. 바람 거센 언덕 마루에서 높이 자라지는 못했다 해도 줄기를 키우며 세월을 품어 안은 것이지요. 하기야 11미터라는 높이도 그리 작은 건 아니지요. 땅 위로 솟아오르면서 둘로 나누어진 줄기는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사방으로 가지를 고르게 펼쳤는데, 그 너비가 15미터를 넘습니다. 사방으로 펼친 가지는 마치 하늘을 날아오르는 학(鶴)을 연상할 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나무입니다.

지난 해에 수굿이 찾아보았던 경북의 보호수 가운데 오래 마음에 남는 나무 한 그루 이야기로 오늘의 《나무편지》 전해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를 떠올리며 2021년 2월 1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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