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 이제 늘 들을 수 있어요
국립경주박물관에 새로 문 연 성덕대왕 신종 소리 체험관
17년 만에 타종해 녹음본 공개
입력 2021.02.24 03:41 | 수정 2021.02.24 03:41
‘미인도’의 치맛자락처럼 봉긋한 종(鐘)의 곡선이 화면 가득 떠오른다. 우람한 몸통 위로 휘감아 새긴 모란 당초(唐草) 무늬, 살포시 무릎 꿇고 앉은 비천(飛天·하늘을 나는 선인)의 자태에 넋을 뺏길 무렵, 울리는 종소리가 고막을 파고든다. 당목(종 치는 막대)이 몸통을 때릴 때마다 깊은 울림의 ‘댕~’ 소리가 퍼져 나갔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이달 초 개관한 ‘성덕대왕 신종 소리 체험관’이다. 주종 1250년을 맞아 실제 옥음(玉音)을 공개하는 체험관으로 문을 열었다. 보존을 이유로 2004년 이후 타종을 멈췄으나, 17년 만에 전문 장비를 갖춰 타음하고 입체 음향 시스템을 입혀 온몸으로 소리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여운과 함께 8세기 신라의 풍경이 펼쳐진다.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종각에 걸려있는 성덕대왕 신종. /국립경주박물관
일명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성덕대왕 신종은 지금 경주박물관 야외 종각에 걸려 있다. 높이 3.6m, 무게 18t이 넘는 우리나라 최대(最大)의 종이다. 비늘까지 살아있는 용머리 모양 고리, 몸통에 새긴 연꽃무늬와 비천상. 통일신라 금속공예술의 절정으로 꼽히는 이 종을 만드는 데 무려 34년이 걸렸다. 실패를 거듭하다가 갓난아기를 던져넣자 쇠가 붙었다는 설화가 유명하지만, 역사 기록에도 없고 현대의 성분 분석 결과 사람 뼈의 주성분인 인(燐)은 검출되지 않았다. 이동관 학예연구사는 “지난해 10월 1차 타음 조사에서 측정된 고유 주파수, 맥놀이(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 시간 파형 등을 2001~2003년 측정된 데이터와 비교 분석한 결과,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내년까지 총 3차에 걸쳐 타음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성덕대왕 신종 소리체험관' 영상 속 이미지. /국립경주박물관
체험관 영상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했다. 까마득한 먼 미래, 경주에 착륙한 외계인이 신종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어느새 화면은 8세기 신라로 훌쩍 이동. 거듭되는 제작 실패로 상심한 신라 장인이 석굴암을 찾아가고, 이를 갸륵히 여긴 부처의 도움으로 신종이 완성된다. 뜨거운 쇳물을 녹여 종을 만들고, 완성된 신종이 거대하게 울려 퍼진 후 청아한 여운으로 남을 때까지 관객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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