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균등 분배한 율곡 7남매… 장남 우대는 조선후기부터 생겼죠
조선 시대 상속 제도
최원국 기자 지호진·어린이 역사 저술가
입력 2020.11.12 03:00
얼마 전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나 많은 이가 애도하는 뜻을 보냈어요. 그런데 이 회장 사후에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속세 등 상속 제도에 대한 이야기도 화제가 됐답니다. 상속이란 부모나 자식처럼 친족 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서 한 사람이 사망한 후에 다른 사람에게 재산에 관한 권리와 의무를 이어받는 것을 말해요. 그렇다면 과거 고려나 조선시대의 재산 상속 제도는 어떠했을까요?
/그림=김영석
◇7남매가 재산 분배 문서를 쓰다
조선 제13대 왕 명종 때인 1566년 5월 20일, 장성한 7남매가 한자리에 모여 무엇인가를 의논하였어요. 이들은 화목한 분위기에서 의견을 모으고 합의한 내용을 문서로 작성하였는데, 문서 내용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긴 재산 분배에 관한 것이었지요.
이 7남매 중 셋째 아들은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였고, 그들의 아버지는 이원수, 어머니는 신사임당이었어요. 율곡 이이 7남매가 부모 재산을 분배하며 그 내용을 기록한 문서를 ‘이이 남매 화회문기’라고 부르는데, 보물 제477호랍니다. 가로 257cm, 세로 48cm 한지에 빼곡히 한문으로 썼고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자식들, 즉 네 아들과 세 딸뿐 아니라 아버지의 첩인 서모까지 포함하여 어떻게 재산을 분배하였는지 매우 자세하게 기록했어요.
당시 이이 등 7남매는 부모가 남긴 재산인 논과 밭, 노비를 거의 공평하게 나누었어요. 조선시대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맏아들이나 둘째 아들, 딸 구별 없이 모두에게 같이 재산을 나눠 주어야 한다는 균분 상속을 원칙으로 삼았거든요. 다만 제사를 지내는 자식에 한해서 상속분의 5분의 1을 더해준다는 규정이 있었지요. 또 첩의 자식에게도 재산을 나눠 주도록 했는데, 첩 신분이 ‘양인’은 본처 자녀의 7분의 1을 상속할 수 있고, 첩의 신분이 ‘천민’이면 10분의 1을 상속할 수 있도록 했어요. 이 경우에도 아들딸 구별 없이 균등하게 상속할 수 있다고 돼 있었습니다.
◇'공평하게 재산을 나누어주어야 한다'
이처럼 과거 우리 조상들이 자녀나 가족에게 나눠 줄 재산을 기록한 문서를 ‘분재기(分財記)’라고 불러요. 고려시대부터 작성하기 시작해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이어졌어요. 이 중 생전에 부모가 자녀에게 직접 재산을 나눠 주며 작성한 문서를 허여문기(許與文記), 부모가 돌아가신 뒤 자녀들이 합의해 재산을 나누며 작성한 문서를 화회문기(和會文記)라고 하고요. 앞서 언급한 7남매는 어머니 신사임당이 이미 1551년에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이원수가 1561년에 세상을 떠나자 자식들이 모여 화회문기를 작성한 것이에요.
분재기 중 일반적 재산 상속과는 성격이 좀 다른 별급문기(別給文記)라는 것도 있었어요. 재산을 가진 사람이 생전에 특별한 이유로 재산을 미리 특정한 인물에게 나눠 주는 경우 작성한 문서를 말해요. 재산을 받는 대상도 자식뿐 아니라 사위, 손자와 손녀, 조카, 심지어는 핏줄이 아닌 사람도 있었어요.
◇남녀 차별과 장남 우대가 생기다
남녀 차별 없는 재산 상속 원칙은 고려시대부터 행해온 것이에요. 고려시대에는 출가 여부를 불문하고 아들과 딸이 부모에게 재산을 똑같이 상속받는 남녀 균분 상속이 원칙이었어요. 부모가 생전에 재산을 분배할 때도 아들과 딸을 차별할 수 없었고, 부모가 돌아가신 뒤 재산을 분배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큰 전란을 겪으며 사회가 혼란해지고 신분제 질서가 흔들리면서 조선 후기인 17~18세기 무렵 재산 상속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변화에 위협을 느낀 양반 사대부들이 성리학 중심의 엄격한 사회 질서를 강조하면서 남녀 차별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지요. 이후 유교적 이념인 본처가 낳은 맏아들인 적장자(嫡長子)를 제사와 상속의 중심으로 삼는 종법제(宗法制)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장남이 제사나 상속에 절대적 권리를 갖게 됐어요.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아들, 그중에서도 큰아들을 중심으로 재산 상속이 이뤄지게 됐답니다. 이러한 풍습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도와 법으로 뿌리 내려 200년 넘게 이어지게 됐지요. 그러다 1990년 대한민국 민법을 모든 자녀의 상속 비율을 같게 한다고 개정하면서 이들과 딸, 큰아들과 둘째 아들 모두 차별 없이 평등하게 상속받을 수 있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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