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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호위대 ‘팔부중상’ 석탑마다 새겨진 까닭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7. 31. 14:59

부처님 호위대 ‘팔부중상’ 석탑마다 새겨진 까닭은…

한겨레 등록 :2002-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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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 여덟 부하 문양, 신라 불교미술 독창성 보여줘 /1층 탑신 수호의 상징이지만 탑마다 도상 배치순서·모양 달라, 선림원터 발굴 10돌 학술대회 열띤 토론

우리 전통조각의 역사에서 최고의 제재는 무엇일까. 단연 부처님이 꼽히지만 미술사학자들은 스타급 조연을 하나 덧붙이곤 한다. 부처님을 사방에서 수호하거나 설법을 듣는 청중을 상징하는 사천왕의 직속부하 여덟분을 일컫는 ‘팔부중상’(혹은 ‘팔부신장’)이다. 지금은 낯설지만 제각기 독특한 복식과 기구를 든 팔부중상의 여덟 문양은 선조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 석굴암 전실 조각을 비롯해 숱한 석탑과 불화 등에 등장한다.

중국과 일본 조각 등에는 별로 없어 전통조각의 독창성을 증거하는 단서지만 미술사적으로는 수수께끼의 문양이다. <법화경> <관불삼매해경> 등의 불경에서 ‘아수라‘, ‘가루라’, ‘건달파’ 등의 각 팔부중상 이름들이 언급되고 있으나, 석탑 등에 새겨진 도상이 누구를 뜻하는지는 명확하지 않고 유적마다 새겨진 상의 배치나 모양도 각기 다르다.

지난 4일 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가 강원도 양양 선림원터 발굴 10돌을 맞아 연 ‘양양 선림원의 사상과 불교미술’ 학술대회(양양 낙산 비치호텔)는 이런 의문들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했다. 통일신라 하대 양양 진전사와 함께 선종의 토대를 닦은 선림원터 3층석탑에 새겨진 팔부중상 양식의 편년과 특징을 놓고 여러 주장들이 오갔다.

시선은 ‘선림원지 삼층석탑의 조형적 특징과 의의’에 대해 고찰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재구 학예연구관의 발표에 모아졌다. 소 학예사는 “선림원 석탑에 새겨진 팔부중상 양식은 9세기 중반 진전사터 석탑을 본떠 만들어진 것”이라며 “불사리가 있는 탑의 1층 몸체를 지킨다는 속뜻과 함께 8세기 중엽 이후 석탑양식이 상층기단 한면을 세쪽에서 두쪽으로 나누는 쪽으로 바뀌자 구획 칸수에 맞는 문양을 찾다보니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사상적 배경보다 양식 변화에 따른 조형적 필요성에서 팔부중상이 등장했음을 암시한 것이다.

뒤이은 토론에서는 ‘선림원탑이 본떴다는 진전사탑 팔부중상 순서와 선림원터 탑의 순서가 정작 맞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김정희 원광대 교수) ‘선림원과 다른 석탑 등에서 팔부중상이 갖는 기능은 각기 어떻게 다른가’(이강근 경주대 교수) 등의 이견이 나왔지만 소 학예관은 “답변하기가 벅차다”고 즉답을 피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팔부중상이 유행한 까닭을 놓고 ‘석탑의 기단공간배치가 팔부중상 조각수에 맞도록 바뀌었기 때문’ ‘사상적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 등이 오갔으나 논의의 가닥을 잡지는 못했다.

팔부중상 문양은 석탑의 부조문양 가운데 인왕상과 사방불, 십이지상에 이어 가장 늦게 나타난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예로 보이는 8세기 중엽 경주 창림사터 삼층석탑을 비롯해 진전사터, 선림원터 석탑, 경주남산리 삼층석탑, 운문사 삼층석탑 등 19기에 달하지만 상들이 배치된 순서는 석탑마다 제각각이다. 게다가 석탑의 팔부중상 문양은 대개 앉은 자세인데,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입상과 달리 기본형의 유래를 몰라 외국유래설과 독자창안설이 엇갈린다. 학술회의가 겉돈 것은 이처럼 팔부중상에 취약한 학계 연구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불교조각 연구자인 김정희 교수는 “중국쪽 석굴벽화와 국내 팔부중상 조각 사이의 차이점을 일일이 현장비교하며 도상의 변화를 추적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