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림박물관 ‘철, 검은 꽃으로 피어나다’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이 2017년 첫 기획전으로 이 고려 철화청자를 꺼내 놓았다. 1996년 철화청자 특별전을 개최한 이래 20년 만이다. 그 사이 부지런히 수집한 것들까지 더해 그중 220점을 골랐다. ‘철, 검은 꽃으로 피어나다’(3월 21일~9월 30일)는 철화청자를 주제로 한 전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박물관 소장품의 90% 정도가 나왔고 절반 이상이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게다가 박물관 옆 지하 M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불화(佛畵)와 웹툰의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전시도 함께 열렸다. ‘웹툰『신과 함께』로 만나는 지옥의 왕들’(3월 21일~9월 30일)이다. 두 전시 현장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
철사 안료 묻혀 쓱쓱 그리고 청자유약 발라내
철화청자를 얘기하기 전에 우선 고려청자의 발달과정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려청자는 970년대 광종 시절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을 배우기 시작하던 시점이다. 윤용이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고려의 왕족과 귀족은 중국의 청자를 좋아했지만 수요에 비해 수입이 한정되었기에 고려청자의 제작을 요구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북송의 수준 높은 문화는 고려인들에겐 큰 자극이었다. 도자기 분야에서 보자면, 청자와 백자와 흑자로 만들어진 꽃 모양 찻잔이나 참외 모양 화병 등은 귀족들의 안목을 훌쩍 높여 놓았다. 12세기 전반 고려 예종은 북송의 고급 문화를 적극 수용해 귀족 사회의 수준을 높여갔는데, 특히 전남 강진 사당리에 자기소(瓷器所)를 두어 왕실 및 중앙관청에서 쓸 최고급 청자를 제작공급하게 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자토와 유약을 넉넉히 공급하고 장인들을 물심 양면으로 도왔다. 중국 청자를 능가하는 청자를 만들기 위해 왕실과 귀족사회가 힘을 합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청자 제작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이 발전하고 사회 전체가 문화적으로 융성해지면서 고려는 황금기를 맞게 된다.
인종 1년(1123) 송나라 사신의 수행원으로 고려에 한 달간 머물렀던 서긍은 그림을 곁들인 견문록을 썼다.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다. 이 책에서 그는 “고려인들은 청자의 색을 비색이라 했는데, 청자는 근년 이래로 제작이 공교해지고 색깔이 더욱 아름다워졌다”며 “술항아리와 산예향로는 다른 그릇과 달리 뛰어나고 절묘했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철화청자의 제작은 명종 시절인 1180년대 해남 진산리 일대의 가마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양도 처음에는 간략한 초문, 모란문에서 점차 음각기법, 압출양각기법 등으로 다채로워졌다. 매병·주전자·유병·화분 등의 여러 형태에 모란당초문·국당초문·화훼문·초화문을 다양하게 그려냈다.
13세기에 이르게 되면 질이 다소 떨어지는 청자뿐 아니라 고급스런 양질의 청자에도 철화기법이 적용돼 뛰어난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도자기 전면에 모란문·국화문·초화문·연화문을 자유롭게 그리거나 회화적으로 시원하게 표현한 작품들은 모두 이 시기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윤 교수의 설명이다. “고려청자 중에서도 자유롭고 활달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3세기 후반에 이르러 형태와 문양에 있어 고려화된 상감청자가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철화청자는 급속하게 쇠퇴한다.
━
풍악 울리는 장고에는 철화장식 전통
전시장 동선은 존재감이 두드러진 철화청자를 모아놓은 4층부터 시작된다. 처음 관람객을 맞는 것은 ‘청자철화모란문통형병’(12세기)이다.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원통형이라는 점이 눈에 띄거니와 모란을 꽉 차게 그려넣은 것도 보기 드문 스타일이다. 그 옆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주전자는 ‘청자철화모란문주자’(12세기)인데, 송대 경덕진요에서 제작된 것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눈길을 낚아챈 것은 ‘청자철채상감연당초문장고’(12~13세기). 청자로 만든 장고다. 철사안료로 전면을 칠하고 문양을 새긴 후 여백 면에는 백토를 상감해 문양을 돋보이게 했다. 유진현 호림박물관 학예연구팀장은 “풍악을 즐기는 장고는 다른 기종에 비해 철화로 장식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청자철채백화국당초문매병’(12세기)은 당당했다. 검은색 바탕 위에 백색으로 국화와 당초문을 아주 큼지막하게 그려넣었는데, 강렬한 흑백의 대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청자철백화연류수금문칠각향로’(13세기)는 일곱 개의 나팔꽃잎이 활짝 피어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 표면 전체에 산화철을 칠하고 몸통 부분에는 여유롭게 날아가는 학과 한 떨기 구름을 상감기법으로 그려넣은 ‘청자철채상감운학문매병’(13세기)은 세련됨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했다.
DA 300
3층은 매병·화분·합(盒·뚜껑이 있는 그릇) 등 용도·기능별로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유 팀장이 대뜸 한 전시품을 가리키더니 “이건 무엇에 쓰던 물건일까요”하고 묻는다. ‘청자철화모란당초문난주’(12세기)다. 원통형 상단에는 구멍이 뚫려있고 맨 위에는 삼각뿔 같은 것이 달려있다. “고려청자는 음식용 기구로는 물론 장식용이나 신앙, 건축용으로도 사용됐다”는 유 팀장은 “기둥들 상단에 같은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어 계단 난간에 사용된 난주(欄柱)로 추정된다”며 “청자 기와는 있었으나 청자 난주는 알려진 사례가 거의 없어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흥미로웠던 것은 고려 인삼의 잎사귀를 그려넣은 ‘삼엽(蔘葉)’청자였다. 삼엽은 철화나 철채청자에서 주로 확인되는데 “문양의 형태가 단순하고 간결하기 때문에 선호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청자철화어문대반’(12세기)은 철화청자가 고려 사람들의 일상속에 자리했었는지 대번에 보여준다. 말 그대로 세수대야다. 바닥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그려져 있어 항상 물을 받아놓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혔다. 붓글씨 쓸 때 물을 담는 연적으로 또 아녀자들이 얼굴 단장할 때 사용하는 화장용 기름을 넣는 유병으로, 철화청자의 변신은 끝이 없었다.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호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