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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노케이루스 퍼즐 풀어낸 과학자 이융남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2. 19. 19:26

데이노케이루스 퍼즐 풀어낸 과학자 이융남

이융남 박사가 2006년과 2009년에 발굴한 데이노케이루스 골격과 도굴된 골격을 합친 골격 모델

이융남 박사가 2006년과 2009년에 발굴한 데이노케이루스 골격과 도굴된 골격을 합친 골격 모델

 

어린 공룡 덕후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은 공룡학자보다 공룡의 이름을 더 많이 알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각종 데이터를 암기한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공룡 덕후들은 아주 다르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이 이 친구들은 어른들의 무식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티라노사우루스·트리케라톱스·스테고사우루스와 브라키오사우루스 정도만 알고 있으면 공룡에 대한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려준다. 하지만 요즘 공룡 덕후들에게 최고의 공룡은 따로 있다.
 

오스몰스카 52년 전 앞발 발견 후
그리스어로 ‘무서운 손’이라 명명

화성시와 몽골 탐사 나선 이 박사
2009년 머리·발뼈 없는 몸체 발견
5년 후 소장자 설득해 골격 완성
네이처 제출 4일 만에 논문 게재

 

이야기는 1965년 시작된다. 네 명의 젊은 과학자가 몽골 고비사막으로 떠났다. 이들은 후에 걸출한 고생물학자로 성장한다. 목긴공룡의 볼숙, 갑옷공룡의 메리안스카, 중생대 포유류의 조피아, 그리고 정체불명의 공룡을 발견한 오스몰스카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퀴리 부인의 조국인 폴란드의 여성 과학자다. 네 명의 여성 과학자들의 몽골 공룡 탐사는 아직도 최고의 탐사로 평가받고 있다.
 
 
앞발 길이만 2.4m 되는 거대 공룡
1965년 폴란드 과학자 오스몰스카가 발견한 거대한 앞발뼈. 길이가 2.4m에 달한다.

1965년 폴란드 과학자 오스몰스카가 발견한 거대한 앞발뼈. 길이가 2.4m에 달한다.

 

오스몰스카는 7000만 년 전 지층에서 오로지 두 앞발만 남아 있는 공룡 화석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발견된 적이 없는 신종이다. 그런데 앞발의 길이가 무려 2.4m. 6600만 년 전에 살았던 티라노사우루스의 앞발이 1m에 불과한 것과 견주어 보면 몸의 길이가 적어도 12m는 되는 엄청나게 커다란 공룡일 것이다. 오스몰스카는 날카로운 발톱을 보고 이것을 카르노사우루스류의 육식공룡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였다. 공룡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면 무엇보다도 머리와 골반 화석이 필요했지만 일대를 아무리 뒤져도 다른 화석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오스몰스카는 1970년 두 앞발만 가지고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공룡의 이름을 데이노케이루스 미리피쿠스(Deinocheirus Mirificus)라고 불렀다. 데이노케이루스는 그리스어로 ‘무서운 손’, 미리피쿠스는 라틴어로 ‘독특한’이라는 뜻이다.
데이노케이루스를 밝힌‘네이처’ 논문의주요 저자들이 2015년 8월 15일몽골 고비사막에서다시 뭉쳤다.왼쪽부터 작토바타르 진조릭(몽골),요시쯔구 고바야시(일본), 린첸 바스볼드(몽골)와 이융남 박사. 이항재 연구원은사진에 없다.

데이노케이루스를 밝힌‘네이처’ 논문의주요 저자들이 2015년 8월 15일몽골 고비사막에서다시 뭉쳤다.왼쪽부터 작토바타르 진조릭(몽골),요시쯔구 고바야시(일본), 린첸 바스볼드(몽골)와 이융남 박사. 이항재 연구원은사진에 없다.

 
거대한 앞발을 가진 괴상한 공룡은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대중은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더 크고 무시무시한 상상도를 그렸다. 악어 머리에 질질 끌리는 거대한 꼬리를 붙인 괴물로 그린 상상도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하늘을 나는 익룡을 잡아먹는 괴물로 상상했고 또 어떤 이들은 개미핥기처럼 느릿느릿 흰개미 집을 파먹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데이노케이루스의 실체는 미궁에 빠졌다. 데이노케이루스의 정체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밝히는 것은 모든 공룡학자들의 꿈으로 남았다.
 
공룡 연구로 박사된 유일 한국인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톱니바퀴로 돌아간다. 1999년 시화호 20여 곳에서 공룡알 둥지가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이듬해 시화호 한복판의 넓은 땅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화성시 공무원들은 기뻐하며 무릎을 쳤다. 화성 하면 연쇄살인사건, 연쇄살인사건이라면 화성이었던 시절이다. 비로소 지역의 나쁜 이미지를 바꿀 기회가 온 것이다. 그들은 공룡알을 화성시를 상징하는 문화콘텐트로 삼으려 했다.
 
화성시가 찾은 전문가는 2001년부터 대전의 지질박물관장을 맡고 있던 이융남 박사(현 서울대 교수). 이 박사는 공룡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는 화성시에 공룡박물관을 짓자고 제안했다. 좋은 아이디어이지만 공룡박물관에 전시할 공룡 화석이 없다. 어떻게 할까? “몽골로 가자, 연구비는 우리 화성시가 대겠다.”
 
2006년 드디어 한국-몽골 국제공룡탐사가 시작됐다. 알탄울라 지역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이때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공룡 화석이 있었지만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2009년에는 부긴자프 지역에서 거대한 앞발을 지닌 괴상한 공룡을 발견했다. 한눈에 데이노케이루스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등뼈는 뭉개진 상태였지만 나머지는 거의 완벽한 모습이었다. 다만 머리뼈와 발뼈가 없었다. 대신 현장에서 2002년 발행된 몽골 지폐가 발견됐다. 그러니까 2002년에서 2009년 사이에 도굴꾼이 다녀간 것이다.
 
데이노케이루스는 타조처럼 목이 길고 등이 낙타처럼 솟은 모습이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는 11m로 티라노사우루스와 비슷하지만 오스몰스카의 생각과는 달리 육식공룡이 아니었다. 화석과 함께 1400개가 넘는 위석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위석은 초식공룡의 특징이다. 이융남 박사 연구팀은 데이노케이루스를 초식공룡으로 알고 있는 타조공룡의 일종으로 분류했다.
 
위장에서 녹은 물고기 척추·비늘 발견
1 두 앞발만 발견된 상태에서 그린 데이노케이루스 상상도(1977년).

1 두 앞발만 발견된 상태에서 그린 데이노케이루스 상상도(1977년).

 

그런데 위장 부분에서 녹은 물고기 척추와 비늘도 발견됐다. 데이노케이루스가 물고기를 먹었다는 증거다. 이것은 타조공룡이 초식이 아니라 잡식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다. 게다가 데이노케이루스의 뒷발 발톱 끝은 뭉툭한 모양이다. 무른 땅에 깊이 빠지지 않고 물가의 땅을 밟고 다닐 수 있었다는 뜻이다. 타조공룡은 초식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이 통째로 바뀐 순간이다.
 
데이노케이루스의 대퇴골두는 모양이 특이하다. 보통은 둥근 공 모양이지만 갈고리 모양이다. 이융남 박사는 이런 갈고리 모양의 대퇴골두를 본 적이 있다. 바로 2006년에 발견한 정체불명의 공룡 화석이 그 주인공이다. 이 박사는 이미 2006년에 데이노케이루스를 발견했던 것이다. 다만 2006년 표본에는 앞발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데이노케이루스라고 하면 오스몰스카와 함께 이융남 박사를 떠올리게 되었다. 놀라운 성과였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머리뼈를 아직 보지 못한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2011년 벨기에 왕립자연과학연구소의 파스칼 고데프로이트 박사가 이융남 관장에게 벨기에의 한 개인 소장가가 데이노케이루스의 머리뼈와 앞발뼈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왔다. 이 박사는 즉시 벨기에로 날아갔다. 후에 이 박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뼈를 보는 순간 공룡의 머리가 2009년 화석의 머리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죠. 뼈의 색이나 상태, 크기 모든 게 같았거든요.”
 
2 ‘네이처’에 실린 데이노케이루스 상상도(2014년).

2 ‘네이처’에 실린 데이노케이루스 상상도(2014년).

 

이 박사가 발굴한 뼈는 소장가에게 없었고 소장가에게 있는 뼈는 이 박사에게 없었다. 동일 개체임이 확실했다. 이 박사는 도굴된 화석을 몽골에 돌려주라고 설득했다. 그가 순순히 내줄 리가 없었다. 이런 와중에 재밌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초 티라노사우루스 한 마리가 뉴욕 화석 경매장에 출품되었다. 경매장에 있던 몽골 학자가 그것은 티라노사우루스가 아니라 몽골에서만 나오는 타르보사우루스라고 밝혔다. 도굴된 것이니 몽골로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결국 딜러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고 이혼까지 당했다. 그리고 화석은 몽골로 반환됐다. 완고하던 벨기에 소장가도 이 소식을 접하고는 두 손 들었다.
 
2014년 5월 데이노케이루스의 머리뼈와 발뼈가 몽골에 반환됐다. 이융남 박사는 자신이 발굴한 오른쪽 앞발 둘째 발가락 둘째 마디뼈를 반환된 골격에 맞춰보았다. 딱 맞았다. 마침내 데이노케이루스의 거의 모든 골격이 확보된 것이다.
 
데이노케이루스는 잡식성 공룡

 

머리에는 오리주둥이처럼 생긴 턱이 붙어 있는데 이빨이 없다. 위턱보다 아래턱이 훨씬 발달한 것으로 보아 강력한 혀를 가지고 있으며 흡인력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형적인 초식공룡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다. 데이노케이루스가 잡식성이었다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2014년 8월 15일 필자는 대전지질박물관의 이융남 박사와 이항재 연구원의 공룡탐사 서포터로 고비사막에 함께 있었다. 저녁 식사 후 두 사람은 언덕 위에 올라가 위성 수신기를 켰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의아했다. 무슨 비상사태가 벌어진 것도 아닌데 사막에서 인터넷 볼 일이 뭐가 있다고 번잡스럽게 위성 수신기를 켠다는 말인가. 두 사람에게는 ‘네이처’ 편집장이 보낸 e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몽골로 출발하기 직전인 8월 10일 네이처에 투고한 논문을 게재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논문을 제출한 지 단 4일 만에 게재 결정이 난 것이다. 이렇게 하여 50년 동안 베일에 덮여 있던 데이노케이루스의 비밀이 풀리게 되었다.
 
데이노케이루스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 자체가 과학이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스토리다. 이제 독자들은 청소년 공룡 덕후들과 친해질 준비가 끝난 셈이다.
 
 
위석(胃石)은 식물을 먹었다는 증거

 

우리가 흔히 닭똥집이라고 부르는 기관은 실제로는 모래주머니로 닭의 소화기관 가운데 하나다. 주로 새처럼 이빨이 없는 동물에게 있지만, 물범과 바다사자 심지어 악어에도 있다. 모래주머니는 근육으로 된 주머니로그 안에 모래 또는 자갈이 들어 있다.
 

DA 300


1906년 초식공룡의 위장 위치에서 반들반들한 자갈들이 발견됨으로써 공룡들도 질긴 식물을 잘게 부수기 위해 돌멩이를 삼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돌멩이를 위석(胃石, gastrolith)이라고 한다. 물론 위장 위치에서 발견됐다고 해서 위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공룡 뱃속에서 나온 돌이 화석 발견지에서 나오는 돌과는 전혀 다르다면 위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위석은 강가의 둥근 돌과는 전혀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위석이 이빨처럼 솟은 표면은 매끈하게 닳지만, 움푹 들어간 곳은 거의 닳지 않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공룡에서 나온 위석은 그 공룡이 식물을 먹었다는 강력한 증거다. 데이노케이루스의 위장 위치에서는 약 1400개의위석이 발견되었다.
 
 
이정모
서울 시립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