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2.08 03:06
[69] 신숭겸 무덤의 비밀과 봄이 오는 도시 춘천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왕건과 갑옷 바꿔 입고 견훤 부대에 목 베여 전사
왕건이 자기 묻힐 명당에 황금으로 머리 만들어
신숭겸 장사 지내… 도굴 우려해 봉분은 세 개
전남 곡성에는 신숭겸 애마가 물고온 머리를 묻었다는 목무덤
춘천은 사라진 고대국가 맥국의 수도가 있던 땅
고려 문인 이자현은 조부 이자연과 사촌 이자겸
탐욕에 질려 오봉산 청평사로 은둔
계곡에는 그가 만든 거대한 고려식 정원 흔적
강원도 춘천은 미스터리의 도시다. 멀쩡한 도시에 어느 날 갑자기 호수가 생겼으니 그 첫째 미스터리요, 그 옛날 춘천 땅에 있던 맥국(貊國)이라는 고왕국(古王國)이 마술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둘째 미스터리다. 그 미스터리의 왕국 땅, 서면 방동리 산기슭에 한 사람을 묻은 무덤이 세 개나 있으니 이 또한 수수께끼다. 전국에 확인된 묘가 다섯 개나 되니 더 기이하다.
사람 하나 무덤 셋
신숭겸(?~927)은 전라도 곡성 사람이다. 춘천에서 자랐다는 기록도 있다. 후삼국시대 신천지를 꿈꾸는 왕건과 피를 나눈 형제가 되었다. 하루는 왕건이 신숭겸에게 "하늘 나는 세 번째 기러기를 쏴보라" 하니 과연 그 기러기를 화살로 맞혔다. 마침 그곳이 황해도 평산인지라, 감탄한 왕건이 신숭겸에게 평산이라는 본관을 내렸다.
서기 927년 견훤이 신라 경주를 침략해 만행과 약탈을 자행했다. 이에 구원 출정한 왕건이 대구 팔공산까지 진격했는데 견훤 부대를 당해낼 수가 없어 살아남은 100여 병졸과 함께 벼랑 끝까지 쫓겼다. 그때 신숭겸이 왕건에게 이리 말했다. "내가 형님과 군복을 바꿔 입고 싸우겠어요." 신숭겸은 견훤 진영으로 돌진해 싸우다 목이 베여 죽었고 왕건은 무사히 탈출했다.
목 없이 돌아온 의형제 시신 앞에서 왕건이 울었다. 그리고 자기가 묻히리라 미리 봐둔 명당 터에 아우를 묻었다. 사라진 목 대신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함께 묻었다. 도굴꾼이 파갈까 두려워 봉분을 세 개 만들고 묻었다. 그게 바로 춘천 방동리에 있는 장절공 신숭겸 장군묘다. 주민들은 1970년대까지 황금 두상을 꺼내려고 도둑들이 수시로 삽을 들고 나타났다고 증언한다.
여기까지가 춘천 신숭겸 묘에 봉분이 세 개 있는 이유다. 전설은 이어진다. 신숭겸이 전사하자 그가 타던 말이 머리를 물고서 곡성 동리산 기슭에 돌아와 사흘을 울고 죽었다. 산에 있던 스님들이 그 자리에 머리를 묻고 애마도 옆에 묻었다. 지금 동리산 태안사 뒤편에는 신숭겸의 목무덤이 남아 있다. 그가 태어난 곡성 목사동면 덕양서원에는 그의 태를 묻은 태묘가 있다. 전하기로는 팔공산 자락과 황해도 구월산 자락에 허묘 5개가 더 있다고 한다. 춘천 묘역은 웅장하고 기세가 당당하다.
미스터리의 왕국 맥국(貊國)
백제 온조왕 13년(기원전 6년) 음력 5월 어느 날 왕이 말했다. "북쪽 말갈이 변경을 침공하여 편안한 날이 없다. 반드시 도읍을 옮겨야겠다. 한수(漢水) 남쪽을 보니 토양이 비옥하였다.(삼국사기)" 그리하여 온조는 하북 위례성을 떠나 하남 위례성으로 수도를 옮겼다. 백제는 이후 북방 침략을 피해 웅진과 사비로 끝없이 남하하다가 660년 나당연합군에 멸망했다.
그 남하의 첫 번째 원인 제공자가 바로 말갈, 그러니까 백제 북쪽 변경을 침공하던 맥국이다. 말갈은 동북아시아 도처에 분산돼 살던 족속을 통칭하는 말이다. 여러 고서에는 이 맥국이 지금 춘천 땅에 있던 부족국가라고 기록하고 있다. '춘주(春州)는 예전의 우수주(牛首州)인데 옛날의 맥국(貊國)이다.(삼국유사)'
한민족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족속이 예족과 맥족이다. 강릉 지역 예국은 일부 흔적이 남아 있지만, 춘천에 있던 맥국은 연기처럼 종적을 감췄다. 이유가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춘천이 "산이 깊고 험해 다투지 않는 지역이 됐다"고 했다. 21세기 춘천문화원이 내놓은 춘천 역사에도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평야지대가 발달하지 못하여 인구밀도가 낮았으며, 산물이 풍부한 편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맥국이라는 나라가 있든 없든 주변 강대국이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학계에서 '방기(放棄)된 나라'라고 표현할 정도다. 전설에 따르면 맥국 마지막 왕 태기는 신라군에 평창까지 쫓기다가 산중에서 자살했다. 그 산이 태기산이다.
지명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의암호는 삼악산과 강변 바위 봉우리 사이를 댐으로 막아 만든 호수다. 그 봉우리 이름이 의암(衣岩), 옷바위다. 맥국을 침략한 적군이 군복을 빨래 널 듯 널어놓아 맥국 군사들을 방심하게 했다는 바위다. 신북에는 맥국 왕궁터가 있는 왕대산이 있고 궁터라는 지명도 남아 있다. 동면 월곡리에는 맥국왕의 무덤이라는 능산(陵山)도 있다. 637년(선덕여왕 6)에야 신라 영토로 편입됐으니 무려 600년 넘도록 존재한 나라였다. 춘천 사람들은 발산리에 맥국이 있었음을 알리는 맥국터 기념비를 세웠다.
도사(道士)가 숨어 살던 춘천
인천 사람 이자현(李資玄·1061~1125)은 춘천으로 숨어버렸다. 서기 1089년 일이다. 나이 스물여덟에 고려 국립음악원 원장 격인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되었으나 곧바로 사표 내고 사라져버렸다. 고모 셋은 모두 문종의 왕비와 후궁이었고 훗날 조카딸들도 예종과 인종의 비(妃)가 되었다. 하나 딸 셋을 임금에게 바친 할아버지 이자연과 역시 딸들을 왕에게 들여보낸 사촌 이자겸이 딸들을 수단 삼아 권세를 누리는 꼬락서니를 두고 보지 못하였다. 마침 아내와 사별하자 이자현은 그 김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도사 은원충(殷元忠)을 따라 궁벽한 춘천 땅으로 숨어든 것이다. 그가 숨어든 산에는 아버지 이의가 중창한 절이 있었다. 지금 산 이름은 오봉산이고 그 절 이름은 청평사다.
이자현과 고려 정원
서기 1117년 9월, 28년째 두문불출하던 이자현을 예종이 개경으로 불렀다. 거절하였다. 예종이 남경(서울)까지 나와서 그를 찾았다. 이자현이 함께 차를 마셨다. 왕이 이리 말했다. "도덕이 높은 원로를 존경해 마지않으나, 신하의 예로는 볼 수 없다." 동국통감에는 이리 기록되었다. '성품이 인색하여 재산을 많이 모으고 물자와 곡식을 쌓아두어 농민들이 아주 괴로워하였다.'
훗날 퇴계 이황은 이 기록을 일러 '작은 흠집 들춰내어 패옥의 아름다움 가리지 말라(莫指微瑕屛玉珩·막지미하병옥형)'고 옹호했지만('삼명시화·三溟詩話', '퇴계가 이자현을 옹호한 시'), 오솔길을 따라 소양호 선착장에서 청평사까지 오르다 보면 농민들의 괴로움이 보인다. 자그마치 3㎞에 이르는 그 오솔길 주변이 거대한 인공정원인 것이다.
청평거사라 자칭한 이자현은 그 산중에 암자들을 짓고 개울가에 인공연못을 조성했다. 사다리꼴로 석축을 쌓은 뒤 개울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지었다. 가운데에는 큰 바위 세 개를 놓고 그 사이에 갈대를 심었다. 맑은 날이면 오봉산 산 그림자가 비쳤다. 하여 이름을 영지(影池)라 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고려정원이다. 지금은 길섶에 영지 연못 하나 남아서 그 모습을 유추할 정도이나, 맑은 물과 바위와 폭포가 어우러진 선경(仙境)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지금 청평사 초입에는 그의 부도로 추정되는 승탑이 서 있다.
탈속(脫俗)의 공간, 청평사
주차장에서 돌계단을 오르며 조금씩 드러나는 청평사 건축미는 참으로 감탄스럽다. 감탄하는 방법이 있다. 반드시 숨을 고르면서, 돌계단을 오르며, 한 칸 오를 때마다 정면 마당 건너에 있는 회전문을 바라본다. 더 구체적으로는, 회전문 두 기둥 사이로 보이는 문 안쪽 풍경을 본다. 오봉산 봉우리가 지붕 위로 조금씩 솟고, 텅 비었던 기둥 사이가 문 너머 대웅전 전각으로 조금씩 채워지는 것이다. 그 풍경을 보아야 한다.
보물로 지정된 회전문은 양쪽에 텅 빈 집을 한 채씩 가지고 있다. 비었다. 사천왕도 없고 방도 없다. 그냥 공간(空間)이다. 날개처럼 펼쳐진 그 회전문 너머에 대웅전이 있고 그 뒤로 산봉우리가 솟아 있다. 그러니까 청평사라는 절 자체가 성(聖)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과도 같이 느닷없이 산중에 열려 있는 것이고, 그 문을 천천히 걸어들어갈 때 비로소 속(俗)을 탈출할 수 있는, 그런 풍경이다. 경북 안동에 있는 병산서원도 청평사와 동일한 구조다. 계단을 오르며 점진적으로 진면모를 드러내주는 그런 점층적인 공간 미학이다.
소양댐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대부분 산 뒤편 도로 대신 유람선을 타고 청평사로 가니, 청평사는 이자현 시대와 마찬가지로 속상하거나 열 받는 사람들이 은둔하기 딱 좋은 여행지가 되었다. 바야흐로 봄이다. 사라진 고대 왕국의 땅, 춘천에서 그 의미심장한 봄을 맞아보라.
[TV조선 '땅의 역사' 포항편]
2월 11일(토) 오전 11시 50분 채널 19번 종합편성채널 TV조선에서는 '박종인의 땅의 역사 포항편'이 방송됩니다. 철기 문명을 담은 연오랑과 세오녀 신화, 일본 흔적이 보존된 구룡포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