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뭇별이 들려주는 이야기(마음글)

女子, 女性, 女人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2. 6. 21:04

 

 女子, 女性, 女人

입력 : 2016.02.06 03:00

 

남자가 아닌 어떤 성인을 글로 묘사할 때 여자, 여성, 여인 대략 세 단어를 두고 뭘 쓸까 고민한다.

여자라는 단어는 가치 중립적인 듯하지만 어떤 경우 그 사람을 낮춰 이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80대 여자가 지하철 스크린도어 틈에 끼여 숨졌다"라고 쓰면 어감이 확실히 이상하다. '80대 여성'이라고 쓰면 적절해 보인다. 이 경우 '80대 여인'이라고는 쓰지 않는다.

"다음 생이 있다 해도 여자로 태어나겠어"라는 문장을 쓴다면 '여성'보다 '여자'가 낫다. '여자 화장실'을 '여성 화장실'이라고 쓰거나 부르지는 않는 것 같다. 이상한 건 '여성 전용 사우나'는 있어도 '여자 전용 사우나'라고 써 붙인 곳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화장실은 여자 전용, 사우나는 여성 전용인 것인가.

'빗속의 여인'이나 '해변의 여인'처럼 '여인'은 노랫말에 주로 쓰인다. 어딘지 모르게 시적(詩的) 감흥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소라 명곡 '난 행복해' 가사 중에 "다음 번엔/ 나 같은 여자/ 만나지 마"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때만 해도 한국 발라드에서는 '여인'이 주로 쓰였는데 '여자'란 단어를 쓴 희귀한 노래였다.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김현철은 '나 같은 여자' 부분을 이소라가 너무 부르기 싫어해서 녹음할 때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 부분을 '나 같은 여성' 또는 '나 같은 여인'이라고 불렀다면 아무래도 이상했을 것 같다. 김현철 생각이 옳았다.

남자와 남성의 차이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남성은 확실히 성(性)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 같고 남자는 그저 '여자가 아닌'의 뜻으로 쓰일 때가 많 다. '남인'이란 말이 없다 보니 노랫말에는 오로지 '남자'만 쓰인다. 김수희가 '애모'에서 "당신은/ 나의 남성이여"라고 노래했다면 퍽 이상했을 것이다.

오늘 어떤 글 한 편을 쓰다가 여자, 여성, 여인 사이에서 고르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웠다. "글쓰기에 완성이란 없다(A piece of writing is never finished)"는 말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