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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자화상을 그리는 아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26. 22:06

고독의 자화상을 그리는 아이

한명희

 

 

나는 김상미 시인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나의 애정과 연민을 불편한 것으로, 더 나아가 불쾌한 것으로 여기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그에 대한 애정과 연민은 습관과 같은 것이다. 알게 모르게 몸에 베어버려 이제는 나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그런 습관 말이다. 나는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가 더 풍요로웠으면 좋겠다. 그가 좀 더 영악했으면 좋겠고, 제발 좀 외롭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김상미 시인의 시를 받아든 느낌. 그것이 즐겁지만은 않다. 그(의 시)가 아프다고 할까 봐 두렵고, 그(의 시)가 외롭다고 할까 봐 무섭다. 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의 시를 읽는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늘 적중하는 법이다. 고독이 사라지기는 커녕, 끝 모르게 깊어졌다. 이번 신작시에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고독의 도도한 방자함 안에서 태어났다./ 도도滔滔함은 아버지에게서 배웠고 / 방자芳姿함은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말할 수 없이 고독했다.// 고독은 건성일 때가 더 무섭고/ 내밀할 때가 더 아프고 고혹적이다.// 백양나무가 바람에 큰소리치며 흔들릴 때에도/ 잔바람에도 꿈적 않고 침묵하는 가지가 있듯이// 나는 그 둘 사이에서 언제나 조심조심/ 끝내 내가 밟지 못할까봐 두려운 일상생활을 그리워했다.// 창문이 열리고 대문이 열릴 때마다/ 신작로의 가로수 잎들이 우수수 내 욕망 위로 몰려들어 와도/ 나는 아버지처럼 도도하고 어머니처럼 방자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우리 집 마당을 쓸고 또 쓸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도도한 양복주머니에 꽂힌 회한의 손수건은/ 홀로 방 안에서 우는 어머니의 방자한 눈물을 다 닦아내지는 못했다.// 나는 그 둘 사이에 숨죽인 채 틀어박혀/ 아무런 열정 없이도 잘도 돌아가는 바깥세상을 흠모했다.// 그리고 그때 이미 나는 알았다./ 세상에는 나 말고도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게 너무나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걸었던 그 길 위에 손을 얹고 / 사무친 그리움으로 내 핏줄의 숲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핏줄의 숲」 전문

 

 

이토록 슬픈 시가 있을까? 일찍이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애비는 종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 먹고 싶었으나’ 먹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난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정주 시에서의 고백은 충격적이었으나 슬프지는 않았다. 그의 자화상 속에는 그래도 살아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 같은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김상미가 「핏줄의 숲」에서 보여주는 자화상은 너무나 슬픈 자화상이다. 그는 고독할 수밖에 없는 ‘핏줄’을 지녔다고 말한다. 나는 고독의 도도한 방자함 안에서 태어났는데, 도도함은 아버지에게서 방자함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그래서 그 둘 사이에서 말할 수 없이 고독했노라고. 여기서 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도덕 교과서가 보여주듯 고독하게 태어난 그가 그 어려움을 자양으로 삼아 더욱 튼튼한 나무로 자라날 수 있었으면…. 그래서 8할의 고독이 나를 키웠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으면. 그러나 그는 이 ‘핏줄의 숲’을 뛰쳐나갈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우리 집 마당’을 쓸고 또 쓸었을 뿐. 다만 ‘잘도 돌아가는 바깥세상을 흠모했’을 뿐. 이렇게 자란 아이는 조숙하게 마련이다. 세상의 이치를 너무 빨리 깨쳐버리게 마련이다. 그는 그때 이미 알았다고 말한다. ‘세상에 나 말고도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게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이런 아이는 적어도 핏줄의 숲에서는 사랑을 보채지 않게 된다. 그러나 어디 인간이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던가. 그래서 그는 사무친 그리움으로 자신의 핏줄의 숲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상미 시인은 아직 자신의 핏줄의 숲을 찾아내지 못했다. 여전히 자신을 고독하게 부모가 만들어 놓은 핏줄의 숲에서 자신의 고독을 견뎌내고 있다. 고독의 지나친 무게 때문일까? 그는 쉽게 숲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숲 속에서 고독 속에서 놀고 있다. 위에서 본 시 「핏줄의 숲」이 고독하게 태어난 시인의 자화상이라면, 아래에 인용할 시 「봄날의 한 아이」는 핏줄의 숲에서 혼자 놀고 있는 시인의 자화상이다.

 

 

나른한 봄날 오후/ 남자아이 하나가 하굣길 담벼락에 기대 / 울부짖는 병아리에게 주사를 놓고 있다 / 검은 만년필 주사// 콕콕 찌를 때마다/ 병아리 몸속으로 퍼져 나가는 검은색 잉크/ 검은색 비명// 무엇이 저 아이를 저토록 무섭게 혼자 떨어져 있게 하여/ 저 잔인한 외로움을 병아리에게 전이시키게 했는가!// 처음엔 아이도 병아리도 그저 함께 놀고 싶었을 뿐일 텐데// 죽어서 축 늘어진 병아리 날갯죽지를 쭉쭉 찢으며/ 석양에 검붉게 변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 우리들의 너무나도 외로운 한 아이// 그래서 그는 ‘지옥’에서 살게 된다.

 

──「봄날의 한 아이」 전문

 

 

때는 나른한 봄, 장소는 초등학교 하굣길 담벼락이다. 등장인물은 남자아이 하나다. 소품으로 병아리와 만년필이 필요하다. 등장인물의 행동은 단순하다. 만년필을 가지고 병아리에게 주사를 놓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극은 아동극이 아니다. 아이의 주사 놓기는 의사 놀이가 아니다. 이것은 아동극이 아니라 참혹극이다. 울부짖는 병아리에게 검정색 잉크를 주입하는 폭력이자 학대에 대한 것이다. 참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는 끝내 울면서 병아리 날갯죽지를 쭉쭉 찢는다. 그리고 마침내 운다. 이 연극의 제목은 ‘지옥’이다. 이 연극의 연출자는 이렇게 말한다. 외로운 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나에게 싸움을 걸지 않고/ 나 자신 외에는 누구도 나에게서 평화를 빼앗아 가지 않는/ 무인도.//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인간은 서로를 바라보기 위해서 태어났다./ 나는 타인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는 / 어떤 천국도 꿈꾸고 싶지 않다.// 아무리 타인이 지옥이라 해도/ 나는 타인과 더불어 그 지옥 속에서/ 꿈꾸는 천국을 넘보고 싶다.

──「타인의 힘」 전문

 

 

인간은 서로를 바라보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언명은 그것이 지옥에서 발화되는 것이기에 너무나 쓸쓸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마주보며 따뜻한 손을 마주잡고 달콤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무인도에서 스스로에게 절규하듯 하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타인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는/ 어떤 천국도 꿈꾸고 싶지 않다”고. 내가 한때 탐독했던 ‘연애학 개론서’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그 ‘한때’란 ‘연애’만이 나의 고독을 해결해 주리라 믿었던 시기를 말한다. ‘한때’라고 했으나, 그것은 수사적인 표현일뿐 나에게 그 ‘한때’는 실로 길었다). 혼자 있어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만이 둘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그리고 결혼한 친구들은 또 이런 식으로 말했다. 둘이 있을 때 외로운 건 정말 참을 수 없다고. 나는 지금 이 두 가지 말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라도 이 두 가지 말을 참고해서 나쁠 것은 없으리라.

김상미 시인은 무인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왜 무인도에서 나오지를 않는 것인지 나는 단박에 말해줄 수 있다. 그는 그곳에서 시와 놀고 있으며 시를 살고 있다. 시를 통해 울고 웃으며 시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 그에게 시는 하굣길 학교 담벼락에서 병아리에게 만년필 주사를 놓는 의사 놀이나 마찬가지다.(바로 이러한 점에서 그는 여전히 자라지 않고 있는 아이다).

 

이제 그 시집은 재미가 없다. 저는 문학을 믿습니다, 선언하는 시인의 얼굴이 비스듬히 조급해 보인다. 명성의 소유주는 어디에서 밤을 지새우

건 초조하게 별빛을 좇기 마련. 기꺼이 그 시집을 다 읽고 온 힘을 다해 하는 양치질. 마음의 눈이란 아무리 감고 있어도 봐야 할 것은 다 보이는 법. 죽어서도 조국 땅에 묻히지 못하고 길고 긴 세월을 분서갱유당한 고달픈 하이네는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누릴 것 다 누린 자들의 오만한 자의식이 현실에서 분리된 팽팽한 내 내벽을 아프게 치고 간다. 그 숨 막히는 지적폭력이 종이 위에서만 존재하는 최악의 몸부림, 통찰의 섬광이라니! 활활 타오르던 불도 꺼지고 나면 전혀 특별하지 않듯이, 이제 그 시집은 정말 재미가 없다. 내 뜻에 맞지가 않다. 저는 문학을 믿습니다, 선언하는 시인의 기념비적인 얼굴이 미약한 옛사랑의 그림자만큼이나 아프고 불확실해 보인다.

 

──「불가침권」 전문

 

 

그는 미친놈이다. 무한한 예술적 상상력을 성욕으로 방해받기 싫어 어느 날, 자신의 페니스를 절단해 유리병에 담갔다, 그의 아내인 그녀는 갑자기 그의 몸에서 사라진 페니스에 경악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페니스가 무슨 탯줄인 줄 아느냐며 어찌나 그녀가 서럽게 울던지, 그는 그녀의 눈물이 사랑스러워 홀짝홀짝 마시고 싶다는 격렬한 욕망을 느꼈다, 그는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그녀의 눈 밑에 유리병을 갖다 댔다, 유리병으로 흘러들지 않고 밖으로 새는 눈물은 혀로 핥아먹었다, 아, 그녀의 눈물이 이토록 영롱하고 맑다니! 이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이 좋구나! 그는 그녀의 눈물을 핥고 또 핥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또 한 번 경악한 그녀는 힘껏 그를 확! 밀쳐버렸다, 그 바람에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페니스 담긴 병이 떨어져 깨어지고, 덩달아 눈물 병도 깨어지고 말았다, 그 모양, 그 꼬락서니에 울고 있던 그녀가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진 페니스를 주워 창밖으로 휙! 던져버렸다, 미친놈! 이제 너와는 끝이야! 29층 아파트 창밖으로 던져진 페니스는 사시나뭇가지에 걸려 대롱대롱 떨다가 그 곁을 지나가던 새에게 발견되어 그만 새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그토록 그가 해방시키려던 그의 무한한 예술적 상상력은 두 개의 깨어진 유리병 파편이 되어 29층 아파트로 새어 들어오는 찬란한 햇살에 더없이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이며, 히히히 그를 비웃고 있었다, 미친놈! 자신도, 자신의 둥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놈이 예술은 무슨 예술!

 

──「미친놈」 전문

 

 

김상미 시들은 시의 일부를 떼어서 인용하면 시의 참맛을 잃어버린다. 원고량을 생각하여 시 인용을 줄이려고 해도 도저히 줄일 곳이 없다. 그의 시들은 차돌m같아서 어느 한구석이라도 깨어놓으면 그것은 전혀 다른 시가 되고마는 것이다. 다시 병아리 얘기를 해보자. 고독해서 병아리에게 만년필 주사를 놓는 어린 아이처럼, 그는 고독해서 시 놀이를 한다. 그가 고독을 이겨내는 유일한 무기가 바로 시다. 그는 시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과 소통한다.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된 무인도에서 그나마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이 바로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자라지 않은 아이인 채 시를 읽고 시를 쓴다. 그래서 그의 시 읽기는 늘 순정한 그 무엇을 향해 있다. 명성을 쫓는 시, 누릴 것 다 누린 사람의 시는 그에게 맞지 않다. 아니 그는 그러한 ‘부정’을 견디지 못한다. 김상미 시인이 무인도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인도에서 그가 쓴 시가 세상을 감동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시쓰기는 필록티티즈의 활쏘기와 똑같이 닮아 있다. 대적할 수 없는 활을 가졌으나 몸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 외딴 섬에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필록티티즈. 그러나 전쟁이 났을 때는 불러오지 않을 수 없는 필록티티즈.

내가 김상미 시인을 잘 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은 그의 ‘고독’에 절대적인 친연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고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가 무인도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의 머릿속이 다 나에게 전이되어 오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까지 아프다. 제발 그가 핏줄의 숲을 걸어나오기를, 무인도에서 빠져나오기를 소망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더 이상 고독하지 말자고 주문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또 어쩌겠는가. 절대고독을 얻은 댓가로 절대시(절대 반지처럼 그런 것이 있다면 말이다)를 얻게 되었다면. 그래서 김상미 시인이 기꺼이 시의 편에 서겠다면. 그렇다면 그가 더욱더 맑고 영롱한 시를 써내기를 기도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지 않겠냔 말이다.

 

 

한명희 / 1965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199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시집읽기』, 『두 번 쓸쓸한 전화』, 『내 몸 위로 용암이 흘러갔다』가 있고 시와시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