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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독일비애극의 원천]의 니체[비극의 탄생]비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17. 11:38

『시와 표현』 기획특집 | 박찬일의 ‘인문’ 에세이 3: 벤야민과 니체

 

벤야민[독일비애극의 원천]의 니체[비극의 탄생]비판

박찬일

 

1. 루카치를 통한 니체 비판: [유물론적] 역사철학의 부재?

 

폴켈트Johannes Volkelt가 『비극적인 것의 미학』(3. neu bearbeitete Aufl., 1917)에서 "비극적인 것을 인류보편적인 것으로 현재화하려는 것"은 "헛된 노력"으로서 이는 역사철학적 관점의 결여에 기인한다(『독일비애극의 원천』, Ⅰ-1, 280). 벤야민의 관점이다. 이에 대한 유비로서 벤야민은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불러온다. 『비극의 탄생』에 의할 때 근대연극과 그리스비극 사이에 공통점을 말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비극의 탄생』이, 초판의 제목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이 암사하는바, 아울러 초판에 있었던 「바그너에 붙이는 서문」이 시사하는 바, 비록 [그리스]비극의 재탄생을 목적으로 했더라도 말이다. 셰익스피어비극-고전주의비극-낭만주의비극과 그리스비극은 니체에 의하면 아주 다르다. 무엇보다도 '바그너' 당대의 음악극-오페라에서 성행하던 라프레젠타티보rappresentativo[무대조음악]과 서창Recitativ은 그리스비극의 합창형이상학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니체에게는 배척의 대상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차라투스트라』가 완간된 1885 이후로써, 1886『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에 붙이는 서문」을 빼고 『비극의 탄생』에 새로운 서문 格인 「자기비판의 시도」를 덧붙인 점이다. 「자기비판의 시도」에서 쇼펜하우어에 對한 비판과 낭만주의에 對한 비판이 시도됐다. ‘자기비판의 시도’라는 말이 이미 암시하는 것으로서, ‘그 동안의’ 바그너-쇼펜하우어-낭만주의에 대한 지지가 철회됐다. 바그너 비판은 바그너 음악극이 특히 「파르치팔Parzifal」을 정점으로 기독교로 기울어졌기 때문이고, 쇼펜하우어 비판은 쇼펜하우어에서 기독교의 유비로서 '삶에의 의지의 부인', 혹은 "삶을 부인하는 의지"를 보았기 때문이고, 낭만주의 비판 역시 후기 낭만주의에서 기독교로의 경도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니체, 『비극의 탄생』, Ⅲ-1, 5-16). 니체는 자신의 비극論을 관철시키기 위해 당대의 시대정신 및 예술에 대한 통찰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니체가 당대의 시대정신 및 예술에 대한 통찰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면서 자신의 비극論을 개진한 것은 역사철학적 관점과 무관하지 않다. 벤야민이 다음과 같이 말할 때 더욱이 그렇다.

 

역사철학적 관점이 비극論의 필요불가결한 부분으로서 입증되어야 할 때, 분명한 것으로서, 비극論은 그 연구방향이 자기 자신의 시대상황에 대한 통찰을 제시할 때 오로지 기대될 수 있는 점이다.(Ⅰ-1, 「폴켈트의 『비극적인 것의 미학』」 章, 280)

 

니체에서 자신의 시대상황에 대한 통찰의 부재를 말할 수 없고, 따라서 니체에서 역사철학적 관점의 부재를 말할 수 없다. 벤야민이 그런데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당대 상황에 대한 통찰의 부재를 말하고 이의 결과로서 역사철학적 관점의 부재를 말했다면? 그리고 이것을 『비극의 탄생』의 ‘아르키메데스의 점der archimedische Punkt’으로 말했다면?(280); 역사적 유물론자 벤야민에게 당대의 비극예술 상황에 대한 통찰에서 역사철학적 관점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벤야민은 니체 초기 저작 『비극의 탄생』에서 例의 ‘아르키메데스의 점’을 말하면서, 동시에 로젠츠바이크Franz Rosenzweig를 끌어들이고, 무엇보다도 루카치Georg Lukàcs의 『영혼과 형식Die Seele und die Formen』(1910-1911)의 다음 구절을 끌어들인다.

 

헛되이 우리의 민주주의적 시기는 비극적인 것에 對한 동등한 자격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영혼이 가난한 자들에게 이러한 하늘제국의 문을 열어주려는 시도는 매번 헛되었다.(280)

 

벤야민에게 니체의 문제는 역사철학적 관점의 부재라기보다 유물론적 역사철학적 관점의 부재가 아니었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영혼이 가난한 자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에게, 弱한 자들에게 ─말 그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하늘제국의 문을 열어주려는 시도는 매번 헛되었다”? ‘하늘제국Himmelreich의 문’이 말하는 것이 悲劇, “비극적인 것”에 관해서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쇼펜하우어의 表現대로 오로지 빵과 곡예이다?(『의지와 표상으로서 세계?, 57.章); 평일에 빵을 필요로 하고 일요일에 곡예를 필요로 한다? 가난한 자들에게 정말 영혼이 없다? 가난한 자들에게 형이상학이 없다?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는 그의 걸작 『미메시스』(1967, 4. Aufl.)에서 자연주의의 가장 위대한 드라마 중의 하나인 졸라의 『제르미날』(1885)에 관해 언급하면서, 특히 『제르미날』 3.부 3.章에서 광부 마유Maheu의 노동자들에 대한 말, “[그들에게] 성교가 돈 안 드는 유일한 樂”(475)을 인용하면서, “이것은 틀림없이 위대한 역사비극이며 속됨humile과 숭고함sublime의 혼합이다. 내용으로 볼 때 숭고함이 압도적이다”(477)라고 하면서, 전통적 양식규범의 틀을 벗어난 ‘양식혼합’을 자연주의드라마의 주요 특징으로 지적했다. 아우어바흐에게 하층계급을 진지하게 다룬 것이, 즉 '저속한 제재'를 숭고한 장르인 전통비극에서처럼 진지하게 취급한 것이 자연주의드라마의 주요 덕목이었다. 아우어바흐에 의할 때, 하층계급에게 비극의 주요 소재들인 사랑과 죽음, 그것이 야기하는 연민과 공포 또한 적용되지 않을 리 없다. 아우어바흐의 비극論에서 역사철학적 고찰의 부재를 말할 수 없다.

 

문제는 벤야민-로젠츠바이크-‘루카치’와 달리 니체가 ‘유물론적’ 역사철학적 방법을 적용하지 않은 점이다. 그렇다고 니체는 가난한 자들에게 영혼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난한 자들에게 형이상학적 향유의 능력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반시대적 고찰』(1873)에서 드러나지만 니체의 비판은 “‘독일정신의 패퇴 및 거세’”(Ⅲ-1, 156)로서 니체가 겨눈 칼은 오히려 “‘교양 속물들Bildungsphilister’”(161)에 있었다. 니체가 지속적으로 그리스인의 명랑성과 素朴性을 말한 것은, 그 소산으로서 그리스비극의 위대성을 말한 것은, 바로 아폴론적 형이상학, 특히 디오니소스적 형이상학 때문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루카치 式으로 말할 때, 하늘제국[천상의 왕국]에 도달하려고 하였다. 잔혹성이 표상인 ‘자연’에 거부권을 행사해, ‘인공적 자연’[미적 현상]을 만들어 ‘잔혹성’을 試演하여, 잔혹성을 인위적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자연이 그 잔혹성을 해소할 방법을 알려주는 것에 관심이 없으니, ‘자연을 경멸할 권리’로서 혹은 다음 단계로서, “비자연적 방법”(『비극의 탄생』, Ⅲ-1, 63)인 ‘미적 가상’을 세운 것이다. ‘세계 현존은 미적 가상을 통해 是認된다’가 말하는 뜻이다. 미적 가상이 ‘가장 최고의 예술로서 비극’이다.

 

2. ‘청년 루카치’의 비극 이해

 

비극이 발언하는 가장 심오한 판결은 비극의 현관에 새겨진 문구이다. 문구가 말하는 것은 […] 비극의 제국을 감당하기에 너무 약하고 비천한 자들 모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들의 출입을 영원히 봉쇄하는 것에 관해서이다. 헛되이 우리의 민주주의적 시기는 비극적인 것에 對한 동등한 자격Berechtigung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영혼이 가난한 자들에게 이러한 높은 제국의 문을 열어주려는 시도는 매번 헛되었다. 만인을 위한 동등한 권리 요구를 분명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생각했던 민주주의자들이 현존재를 위한 비극의 정당성Berechtigung에 관해서도 계속적으로 치열하게 모색했다.

 

[벤야민이『 영혼과 형식』으로부터 인용한 것에서 앞 뒤 부분을 추가해 다시 인용했다. 『영혼과 형식』의 마지막 章 「비극의 형이상학: 파울 에른스트」에서이다] “비극적인 것에 대한 동등한 자격”? “민주주의적 시기”의 비극적인 것에 대한 “동등한 권리 요구”? 비극의 민주주의적 정당화 가능성? 루카치가 이런 것들을 말했더라도 이 당시의 루카치에게 “하늘제국”과 같은 전통비극-그리스비극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말할 수 없다. 루카치는 당대 파울 에른스트Paul Ernst의 그리스적 비극 『부른힐트Brunhild』와 다른, 역시 에른스트에 의한, 그러나 非비극적untragisch 내용의 『앙클로스의 니논』에 관해 언급한다. 여주인공이 마지막에서 비극성을 벗어나는 방식, 즉 “모든 고귀한 것과 운명적인 것”(232)을 따돌리는 방식에 주목하고, 그리하여 여주인공이 삶으로 복귀하는 것, 즉 “창녀들의 자유”로 복귀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루카치는 이것을 “최고의 필연성으로서 자유”가 아닌 것으로, 즉 ‘비극적 자유’가 아닌 것으로 단죄한다. 여성의 자기해방은 [비극적] 남성의 자기해방과 견줄 수 없는 것으로서, 후자에서만 “본질적 필연성으로서 종말로의 인도”가 성사되기 때문이다. 루카치는 『앙클로스의 니논』의 여주인공을 의식하는 것으로서, 그러나 스스로를 ‘페미니즘’의 예봉으로부터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한 여자가 자기의 삶에서 남자와의 관계 속이 아닌 자력으로 비극적일 수 있을까? 자유가 한 여자의 삶에서 진정한 가치가 될 수 있을까?” 긍정문이 아닌 ‘부정문으로서 대답’을 기대하는 수사적 질문이다. 루카치에게 문제는 ‘비극적인 것의 윤리학’이다. 비극으로 종결되는, “보다 높은 세계”를 “인간의 길”로서, 즉 “목표”(233)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청년 루카치에게 ‘“약하고 비천한 자들”을 위한 비극’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음이 이른바 루카치에 의한 ‘비극의 윤리학’이다(이 글 각주 16).

 

비극에 있어서 죽음은 ― 한계 자체로서 죽음은 ― 모든 각각의 사건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늘 내재적 현실이다. 비극의 윤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개시된 모든 것들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쫓겨 가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이것이 비극의 정언명령이다.(217)

 

루카치의 비극이해는 역사철학적 고찰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영혼과 형식』과 『소설의 이론』(1914-1916) 시기의 루카치는 세기말의, 제4계급이 문학에 전면적으로 들어온 최초의 경우인 자연주의운동, 그리고 당대의, ‘새로운 인간에의 요구’가 모토였던 표현주의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자연주의 『영혼과 형식』의 마지막 章 「비극의 형이상학」은 초역사적 형식에 대한 깊은 천착의 소산물이다. 벤야민이 인용한대로 루카치를 수용할 수 없는바, 청년 루카치의 비극이해는 강조하거니와 역사철학적 고찰과 전혀 무관하다. 청년 루카치의 비극이해는 역사철학적 고찰의 소산이 아닌 규범적 고찰의 소산이다.

 

윤리학의 효용성과 힘은 그것의 복종여부와 관계없다. 그러므로 오로지 윤리적 차원까지 순화된 형식만이 ― 그 때문에 맹목적이거나 빈곤하게 됨이 없이 ― 모든 문제적인 것의 현존을 잊을 수 있게 하고, 그리고 문제적인 것의 현존을 영원히 그 제국 밖으로 추방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233)

 

「비극의 형이상학」의 마지막 부분이다. 『영혼과 형식』의 마지막 부분이다. “문제적인 것의 현존”을 잊게 하고, “문제적인 것의 현존을 영원히 그 제국 밖으로 추방시켜 줄 수 있는 것”으로서, “순화된 형식”을 말한다. 루카치에게 형식은 초월적 형식이다. 벤야민은 바로크드라마 고찰에서 그가 설정한 역사철학적 형식, 즉 역사철학적 방법론을 통해, 바로크 고유의 비애극형식으로서, 바로크 알레고리형식을 찾아냈었다. 역사철학적 방법론의 끝은 규범적 형식의 탄생이다. 규범적 형식이 다시 역사[철학]적 고찰의 대상이 되더라도.

 

역사철학적 고찰이 아닌 규범적 고찰의 소산으로서, 루카치의 비극이해의 결론이 비극의 ‘초역사성으로서 초시간성’이다. 비극은 초시간성이 특징이다. 비극은 ‘초역사성[초시간성]으로서 비극’이다. 규범적 고찰은 작품내재적werkimmanent 고찰에서도 마찬가지로 초역사성-초시간성을 얻어낸다, 초역사성-초시간성으로서 비극이해가 구제형이상학으로서 비극이해를 얻어낸다. 이른바 형식과 내용의 일치이다.

 

인간 실존에 대한 가장 깊은 동경이 비극의 형이상학적 근거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인간의 동경으로서, ‘현존재Dasein로서 인간’의 정점을 삶의 도정 차원으로 변환시키려는 동경이고, 인간으로서 의미를 일상적 현실로 변환시키려는 동경이다. 비극적 체험, 드라마틱한 비극이야말로 그 동경의 가장 완벽한 수행, 남김이 없는 것으로서, 오로지 완벽한 수행이다.(218)

 

시간의 무시간化를 비극적 드라마가 표현해내야 한다. 통일체에 대한 모든 요구들의 수행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항시적 합일체에 관한 것이다. 현재가 주변적인 것으로서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과거가 매우 위험한 것으로서 위협적인 것이 되고, 미래가 오래전 알게 된 것으로서, 비록 의식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삶으로서 체험된 것이 되면서, 그러한 계기들의 선후관계가 더 이상 시간적 순서가 아닌 것이 된다. 시간적으로 볼 때 그런 드라마는 영원히-경직된 상태의 어떤 것이다. 그 계기들의 고립적 상황은 선후관계가 아닌 병렬관계로 봐줘야 한다. 계기들의 고립적 상황은 더 이상 시간적 체험 차원에 놓여있지 않다.(214)

 

첫 인용문에서 “정점”은 “비극적 체험”, 즉 “드라마틱한 비극”의 체험으로서 정점이다. ‘비극적 체험으로서 정점’이 삶에 관여해서 삶을 변화시키는 것에 관해 말한다. 불안을 최초로 경험한 자가 世人das Man으로 살 것을 관두고 평생을 ‘죽음으로의 선구Vorlaufen zum Tode’로 살 것을 결단한다. 이른바 ‘선구적 결의’이다. 구제형이상학을 아주 간명하게 말한 루카치. 죽음으로서의 선구(하이데거)가 ‘자발적 몰락의지’(니체)의 다른 버전인 것으로서, 루카치의 구제형이상학은 니체 구제형이상학의 유비적 존재자이다. 하이데거의 구제형이상학 물론 니체 구제형이상학의 유비적 존재자이다.

 

둘째 인용문 중-후반부만으로 볼 때 벌써 구제형이상학이다. “시간적으로 볼 때 그런 드라마는 영원히-경직된 상태의 어떤 것이다”, 그리고

“계기들의 고립적 상황은 더 이상 시간적 체험 차원에 놓여있지 않다”들이 말하는 것은 니체가 『비극의 탄생? 1.章 뒷부분에서 인용한 쇼펜하우어의 ‘마야의 베일’이 말하는 것, 즉 생시인가/꿈인가?, ‘삶인가/죽음인가?’가 말하는바와 같고, 역시 ?비극의 탄생?에서 개진되는 아폴론적 꿈-장면과 디오니소스적 도취-장면이 말하는바와 같다. [꿈과 도취가 말하는 것과 마야베일이 말하는 것이 같다] 배우-무대장면으로서 꿈과 ‘합창단-무대장면으로서 도취’가 말하는 것이 마야베일이 말하는 것과 같다. 인용 앞부분에서 “시간의 무시간化”를 말할 때, 즉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항시적 합일체”을 말할 때 이것은 신화비극에 관한 것으로서, 요컨대 그리스비극에 관해서이다. 물론 여기서는 에른스트의 비극 『부른힐데』에 관해서이다. ‘과거-현재-미래의 합일체’가 말하는 것이 과거-현재-미래의 구제에 관해서이다. 쉴러의 비극論, 즉 ‘합창형이상학’(「비극에서 합창의 사용에 관하여」)에 나타났던 것으로, ‘거대한 量으로서 합창’이 과거-현재-미래를 구제한다. 니체의 영원회귀論(『차라투스트라』)에 나타났던 것으로, 과거는 현재에 의해 구제되고 현재는 미래에 의해 구제된다. 미래는 다가올 현재로서 또한 미래에 의해 구제된다. 벤야민의 ‘역동적 멜랑콜리論으로서 구제형이상학’(『독일비애극의 원천』)에 나타났던 것으로, ‘몰락의 보편성으로서 진리’가 과거-현재-미래를 구제한다. 벤야민에 의할 때, 성좌알레고리의 예에서 명백하듯 이념이 나타나는 것이고, 진리가 드러나는 것이다. 벤야민(1892-1940)-루카치(1885-1971)-니체(1944-1900)에서 ‘다 같이’ 과거-현재-미래를 포함하는 구제형이상학을 말할 수 있다. 양상을 달리 하더라도, ‘유물론적 구제알레고리’, ‘비극의 구제형이상학’, ‘영겁회귀로서 구제형이상학’의 공통점으로서 구제형이상학.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 니체이다. 상대적 관점은 역사적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늘 유효하다. 니체에 의한 루카치-벤야민에 對한 영향을 말하지 않기가 곤란하다. 루카치와 벤야민으로 논의를 좁힐 때, 루카치와 벤야민에서 구제형이상학의 차이를 말할 수 없고, 다만 역사철학적 고찰의 여부를 말할 수 있다?; 순도의 규범적 고찰만을 말할 수 없고, 純度의 역사철학적 고찰만을 말할 수 없다. 루카치가 그리스비극이해에서, 무엇보다도 파울 에른스트에서 도출해낸 구제형이상학이해에서 '역사철학적 고찰함의'를 완벽하게 제외시킬 수 없다. ‘파울 에른스트’가 벌써 ‘자기 자신의 시대상황에 대한 통찰’이다. 니체가 그리스비극의 탄생을 계보학적으로 고찰하고, 그 계보학적 결론을 ‘비극’ 자체로 말했을 때, 이 또한 역사적 고찰로서, 역사철학적 고찰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3. 補遺: 청년 루카치의 니체的 비극이해

 

비극이 발언하는 가장 심오한 판결은 비극의 현관에 새겨진 문구이다. 문구가 말하는 것은 […] 비극의 제국을 감당하기에 너무 약하고 비천한 자들 모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들의 출입을 영원히 봉쇄하는 것에 관해서이다. 헛되이 우리의 민주주의적 시기는 비극적인 것에 對한 동등한 자격Berechtigung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영혼이 가난한 자들에게 이러한 높은 제국의 문을 열어주려는 시도는 매번 헛되었다. 만인을 위한 동등한 권리 요구를 분명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생각했던 민주주의자들이 현존재를 위한 비극의 정당성Berechtigung에 관해서도 계속적으로 치열하게 모색했다.[강조는 필자]

 

위 인용문 중간구절은 벤야민에 의해 인용된바 있다(이 글 1.章). 위 인용문은 이 글 2.章 앞머리에서 똑같이 인용된바 있다. 위 인용문에서, 그리고 2.章에서 전개된 ‘청년 루카치’의 비극 이해에서, 고귀한 자들이 등장하는 고전그리스비극에 對한 루카치의 적대감을 말하기가 곤란하다. 1911에 독일어로 확대 개정되어 출간된 『영혼과 형식』시기의 루카치는 신칸트학파의 영향 아래 있었고, 1914 겨울에 완성되어 1916에 출간된 『소설의 이론』 시기의 루카치는 헤겔의 영향 아래 있었다. 루카치는 1918. 12. 02에 헝가리공산당에 입당하고 이후 몇 편의 ‘마르크스주의 윤리’에 관한 논문을 썼고, 1923에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한 이후 최초의 중요한 저서 『역사와 계급의식』을 출판했다. 『영혼과 형식』에서『 역사와 계급의식』의 거리는 당시 시인-소설가 안나 레즈나이Anna Lesznai 말대로 사울과 바울의 거리였다. ‘일주일 만에 사울Saul이 바울Baul로 되었다.’; 벤야민의 교수자격논문 『독일비애극의 원천』은 1923. 3부터 준비되어 1925 初에 완성되어 1928에 출간되었다. 벤야민은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언급하기 위해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의 한 구절 “헛되이 우리의 민주주의적 시기는 비극적인 것에 對한 동등한 자격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영혼이 가난한 자들에게 이러한 높은 제국의 문을 열어주려는 시도는 매번 헛되었다”를 인용했다. 여기에는 ‘유물론자로서 루카치’를 통해 니체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혼과 형식』 시기의 루카치는 이른바 ‘사울’의 시기로서, 전혀 유물론자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유물론적 메시아주의자 벤야민에 의할 때, 비극예술은 ‘고귀한 자들의-고귀한 자들에 의한-고귀한 자들을 위한’ 것으로서 현대[당대]의 혁명적 상황에 맞지 않으며, 따라서 니체에 의한 『비극의 탄생』에서의 [그리스]비극예찬은 니체의 역사철학적 고찰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영혼과 형식』 시기의 루카치가 신칸트주의의 영향을 받아, 미학에서 또한 칸트의 순수미학을 수용한 것은 그의『영혼과 형식 』자체가 증명한다. 칸트미학과 니체미학을 같은 항렬에 놓을 수 없다. 니체미학을 순수미학으로 간단히 치부할 수 없다. 니체에게 필요한 것은 ― ‘필요’가 역사철학적 통찰을 전제한다 ― 형이상학적 위로의 예술이었다. 형이상학적 위로의 예술이 순수미학보다 목적미학에 가깝다. 루카치에 對한 니체영향을 넘어, 벤야민에 對한 니체영향을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벤야민(『독일비애극의 원천』)-루카치(『영혼과 형식?)-니체(『비극의 탄생』) 모두 구제형이상학을 말한 점에서 상호유비관계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영혼과 형식』 시기의 루카치와 『독일비애극의 원천』 시기의 벤야민이 니체와 유비적 관계에 놓인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영혼과 형식』 자체가 증명하는 것으로, 벤야민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영혼과 형식』에서 보여준 루카치의 비극이해가 다분히 니체的이라는 점이다.

 

위의 1.章-2.章에서 이미 면모가 드러난 것으로서, 루카치는 ‘파울 에른스트’라는 부제가 붙은 「비극의 형이상학」에서 비극작가 에른스트의 例의 『부른힐트』에 관해 상세히 언급하면서 특유의 명료한 필체로 비극을 정의했다. 루카치의 비극정의는 그리스비극 정의이다. 루카치는 『부른힐트』를 에른스트 “최초의 ‘그리스적’ 드라마”로 간주했다. 『부른힐트』에서 “‘형식으로서 영혼’을 탐색하는 극작의 영원히 위대한 모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를 보다 진정한 것으로서의 재현”(220)이 성취된 것으로 봤다. 루카치의 또한 『부른힐트』에 관한 다음과 같은 진단은 그리스비극 일반에 정확히 부응하며, 그리스비극에 대한 니체의 인식에 정확히 부응한다. 또한 그리스비극 일반에 대한 정확한 반대로서 바로크비애극을 짐작하게 한다. 바로크비애극에 관한 한, 벤야민에 對한 루카치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어디에서도 과잉이 없고, 장식을 위한 장식으로서 어디에서도 장황한 수식이 없고, 오로지 운명만이 있을 뿐, 오로지 필연성만이 있을 뿐이다.(221)

 

“과잉”, “장식을 위한 장식”, “장황한 수식”들을 말할 때 이것은 바로크비애극, 혹은 ‘바로크표현주의로서 바로크비애극’에 관한 것이다(박찬일, 「17세기 바로크비애극과 20세기 ‘역사적 표현주의’」, 예술가, 2014 가을). ‘과잉과 수식으로서 비애극’을 말할 수 있을 때, “인간 및 사건들의 단순화”로서 비극을 말할 수 있다. “풍요한 비극에는 그들의 만남이 벌써 그들에게 운명이 된 인간들만이 등장한다; 그들 인생의 계기들은 오로지 이미 운명이 되어버린 전체적인 것에 낚인다.”(219); 이것은『 오이디푸스王의』 경우에서 보듯 “극도로 절약된 형식과 극도로 강력한 내포”(221)를 벌써 말한다. “내적 진실성”과 “의미 있는 외적 진실성”(219)을 벌써 말한다. 비극은 비극적 계기에 의해 비애극과 분명히 갈라선다. 루카치가 "인간과 행위의 비극적 상호 얽힘과 설킴을 산출하는 것은 [그런] 의지가 아니며, 하물며 오성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말할 때 이것은 비극적 계기에 관해서이다.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필연성”으로서 “운명만”이 비극적 계기이다. 이런 비극적 계기의 전제로 요구되는바가 비극의 주인공에 요구되는 것으로서, ‘고귀한 인간으로서 비극의 주인공’이다. 고귀한 인간이 오이디푸스의 경우에서 보듯 “깊고도 통찰력 있는 정신들”(221)로서, “위대한 신비”(222)로서, 운명을 불가피한 것으로서, 그러니까 필연으로서 받아들일 줄 안다. 루카치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이것은 오이디푸스를 향한 것이다. 그리고 ‘니체에 의한 오이디푸스수용’을 얘기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주위에 한계들을 설정하고, 스스로를 만들어 나간다 […] 죄를 통해서 인간은 그에게 일어난 모든 것에 대해 예스라고 발음한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그의 행위와 그의 죄인 것으로서 느끼기 때문에, 요컨대 인간이 그의 죄에서 잉태한 비극을 그의 인생과 우주 사이의 경계로서 설정한 것으로 해서, 그가 그렇게 한 것을 정복하고 자기 인생을 형성하게 된다.(Bd. 1, 222-223)

 

[죄가 변하여 죽음의 명수를 넘어 죽음의 천재가 된다. ─비극이 말하는 것이다] 이른바 “죄”로부터 비롯한, 오이디푸스의 승전가로서, 천재의 승전가가 되는 얘기이다. 비극에서 승전가는 늘 고통-죽음에 對한 승전가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王』의 오이디푸스의 경우가 천재의 승전가인 것은 아이스킬로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의 프로메테우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니체의 『비극의 탄생』 을 참조할 때, “예술가의 상호관련적 재능”으로서 “고통으로의 재능과 고통의 지혜로의 재능”(Ⅲ-1, 34)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진리에의 의지로서, 고통 쪽으로 가는 재능', 그리고 고통이 알려졌을 때, 고통을 처리-수용하는 재능이다. 오이디푸스가 ‘진리에의 의지’로서 결국 자기의 죄Harmatia를 낱낱이 파헤치게 되었을 때 여기에서 생부살해-생모남편이 표상하는 수동적 죄만을 말할 수 없다. 역시 진리에의 의지로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 경우와 유비로서, 능동적 죄를 말할 수 있다. 능동적 몰락을 말할 수 있다(박찬일, 「오이디푸스의 비밀─프로메테우스의 승전가」, 현대시학, 2013, 7, 226-245);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참조해서 ‘천재의 승전가로서 오이디푸스’와 ‘천재의 승전가로서 프로메테우스’의 경우를 상세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으로서 그 가능성을 극단까지 몰고 가는 것, 프로메테우스의 제1의 천재성이다. 가능성을 극단까지 몰고 가는 것은 진리에의 의지로서 예술가의지이기도 하다. 몰락할 것을 알고도 그대로 몰고 가는 것, 프로메테우스의 제2의 천재성이다. 실제 몰락이 왔으니까 몰락해주는 것, 프로메테우스의 제3의 천재성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천재성과 오이디푸스의 천재성이 공유하는 부분은 인간으로서 그 가능성을 극단까지 몰고 가는 것─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표상하는 자연-神의 수수께끼, 우주적 수수께끼를 푸는 것까지 도달하는 것. 근본적 차이는 알고 짓는 죄-행동과 모르고 짓는 죄-행동이다. 프로메테우스와 오이디푸스가 다시 만나는 부분은 운명이 결정되었을 때, 그 운명을 기꺼이 감수할 때이다. 몰락을 통해 프로메테우스와 오이디푸스는 천재성을 완성한다. 『차라투스트라』에서의 ‘니체 명제’ 하나: 기꺼이 몰락해주는 자가 초-인간이다, 초-인간 천재이다. 프로메테우스와 오이디푸스가 비기는 것은 프로메테우스는 몰락의 고통을 알고 몰락을 자청했고, 니체 멜로디로 말하면, 몰락에의 의지를 보여주었고 ― 이 점이 프로메테우스의 빛나는 부분이다 ― 오이디푸스는 몰락에 이를 줄 모르고 ‘범행’을 저질렀지만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범행을 낱낱이 파헤치고자 하는 의지, 진리에의 의지를 보여주었고, 몰락의 고통에 입궐했고. [진리에의 의지는 예술가의지이다. 진리에의 의지는 비극의 근본적 특성이다](박찬일, 「보편성: 예술가천재─니힐리즘천재─천재의 승전가 ─ 『비극의 탄생』 D」, 『예술가』, 2012 겨울, 337-338)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에서 비극이해는 니체의『비극의 탄생』에서 비극이해의 자장권에 있다. 루카치가 『영혼과 형식』의 비극의 형이상학에서 보여준 '구제형이상학으로서 비극이해'를 두고 볼 때, 여기에서 니체의 『비극의 탄생』의 영향을 말하지 않기가 곤란하다.

 

4. 비극적 신화와 역사철학적 통찰

 

벤야민이 요구하는 것은 “비극의 신화에 대한 역사철학적 인식”(Ⅰ-1, 281)이다. 가당찮은 일인가?-아닌가? '오이디푸스 서사'에 역사철학적 통찰을 요구한다? [인류]보편적 서사에 역사철학적 통찰을 요구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서 오이디푸스-서사가 발생학적으로 역사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인간이란 무엇인가?’ 묻는 그 오이디푸스-서사를 보편적 틀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오이디푸스-서사가 고유적으로 갖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역사철학적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스핑크스 수수께끼의 대답으로서 ‘인간’의 틀, 그리고 생부살해-생모남편으로 이어지는 인간이라는 이름의 무지막지한 틀이 역사성을 갖더라도 ‘신화로서 오이디푸스-서사’가 지닌 근본적인 질문은 ‘초역사적 형식으로서 내용’이다. ‘비극적 신화’에 역사철학적 고찰을 요구하는 것은 신화에서 인류학 및 철학적 인간학이 그동안 일구어낸 가시적 괄목할만한 성과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사회생물학의 ‘거친’ 요구, 인류 공통분모로서 유전자, 유전자 결정론을 미리 부인한 것이 된다. 비극의 신화, 특히 신화에 관한 한, 역사[철학]적 고찰이라는 美名이 적용되기 곤란하다. 비극적 신화로서 이를테면 ‘오이디푸스서사의 변용’을 말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벤야민이 요구하는 비극적 신화에 對한 역사철학적 통찰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비극적 신화에 對한 역사철학적 통찰의 내용’이란?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에서 오이디푸스 서사는 어떻게 변용되었는가? 이렇게 묻는 것이 낫다. 벤야민은 그러나 그러질 않고 역사철학적 고찰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며, 니체의 비극적 신화, 즉 그리스비극에 관한 새로운 '발견'을 ― 발견인 점에서 사실 넓은 의미의 역사[철학]적 통찰이나 ― 수용하기를 주저한다. 벤야민의 말이다.

 

비극이 전설과 결합되어 있는 것에 대한 통찰, 그리고 비극적인 것이 윤리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에 대한 통찰을 통해 니체 저작은 이 같은 테제들의 토대를 세웠다 […] 비극 신화에 對한 역사철학적 인식을 포기하는 대가로 니체는 비극적 사건에 곧잘 부과되던 도덕성이라는 상투적 틀에서의 해방을 비싼 값을 주고 얻었다.(Ⅰ-1, 280-281)

 

"테제들"은 역사철학적 통찰의 결여에 의한 테제들이다; “니체 저작”은 물론 『비극의 탄생』이다. “윤리로부터 독립”을 인정하고, “도덕성”으로부터 “해방”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윤리로부터 독립에서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이 디오니소스적 '폭발적 방종'에 대해서이다. 다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규범시학으로부터 독립, 즉 동정심과 공포심으로 표상되는 격정으로부터 독립이다. 격정의 배설 또한 아니다. 벤야민이 바로크비애극에 대한 역사적 통찰에서 격정의 배설을 부인했듯, 격정의 배설을 더 이상 문제화하지 않았듯, 니체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귀한 비극論인 ‘카타르시스’에 적극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니체의 비극論의 핵심으로서, 아폴론적 꿈-예술과 디오니소스적 도취-예술이 말하는 '세계 현존은 미적 가상에 의해서만 是認된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論이 상호관계할 때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論을 구제형이상학으로서 접근할 때이다. 구제형이상학 관점에서 아폴론적 배설을 말할 수 있고 디오니소스적 배설을 말할 수 있다. 구제형이상학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배설[카타르시스]이 격정의 배설로서, 평상심의 회복이라면, 구제형이상학 관점에서 아폴론적 배설은 존재자가 처한 잔혹성의 배설이다. 생로병사-희로애락의 현존을 잔잔한 멜로디로 是認시킨다. 디오니소스적 배설과 아폴론적 배설의 차이는 잔잔함과 광포함의 차이이다. 디오니소스적 배설은 생로병사-희로애락의 현존을 광란의 주신찬가-디티람보스의 광포한 멜로디로 是認시킨다; 문제는 인용문에서 벤야민의 ‘도덕성으로부터 해방’에 대한 제한적 태도이다. 비록 도덕성을 “상투적 틀”이라고 했지만 그것으로부터 해방을 “비싼 값을 주고 얻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도덕성으로부터 해방’에 부정적 입장이다. 벤야민에게 도덕은 유물론적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서, ‘해방’시켜야 할 도덕이 아니다. 이것은 루카치가 1919 소위 ‘전향’ 이후 마르크스주의에서 ‘도덕으로서 윤리’를 찾아내려한 것과 유비이다. 「공산주의의 도덕적 기반」-「전략과 윤리」-「공산주의적 생산에서 도덕의 역할」-「공산당의 도덕적 사명」 등의 논문이 1923의 『역사와 계급의식』 이전, 1919-1920 사이에 쏟아져 나왔다.

 

‘루카치 인용’에서 확인했던바, 벤야민은 [영혼이] 가난한 자들의 입각점에서 니체의 미학주의를 비판한다. 니체의 미학 프로그램이 형이상학적 “프래그머티즘Pragmatismus”(282)일 때, 벤야민의 프래그머티즘은 유물론적 이해에 근거한 도덕적 프래그머티즘이다. 듀이의 그 프래그머티즘에, 하이데거의 용어로는 계산적 사유에 해당하는 그 프래그머티즘에, 누구의 프래그머티즘이 더 가까울까? 벤야민이 니체 형이상학에 프래그머티즘의 이름을 붙인 것은 벤야민이 니체 형이상학에 주로 개인적 구제 형이상학의 혐의를 뒀기 때문이다.

 

유미주의의 심연이 문을 열고, 이 심연에서 천재적 직관은 급기야 모든 개념들을 상실했다. 그 결과, 神들과 영웅들, 저항과 고통, 비극적 건축물의 기둥들이 無 속에서 증발된다.(281)

 

“유미주의”, “천재적 직관”은 니체, 혹은 니체의 비극論에 대한 명명이다. “神들과 영웅들, 저항과 고통, 비극적 건축물의 기둥들”은 벤야민의 유물론적 입각점의 반영으로서, 그 자체 유물론적 형상물의 나열이다. 벤야민은 무엇을 말하는가? ‘비극적 건축물’을 누가 만들었는가? 브레히트 式으로, 그 벽돌공-건축노동자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들의 이름은 왜 안 보이는가? 관중석에 그들이 있는가? 벤야민은 묻는다. [역사적 멜랑콜리커로서 벤야민의 구제형이상학은 유물론적 구제형이상학이다. ‘몰락’에 동참한 이름들에게 그 몰락을 ‘보편적 자연사’라고 속삭여준다. ‘많음으로서 성좌’들이 말하는 것이 ― 많음이므로, 많음이 말하는 것이 진리에 육박한다 ― 이른바 몰락의 보편성이다. ‘극단으로서 별자리들’이 확증하는 것 또한 몰락의 보편성이다(이 글 각주 19 및 7.章 「나가며」 (4) 절)].

 

일곱 개의 문을 가진 테베를 누가 지었는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왕들이 돌덩이들을 날랐을까?

그리고 저 여러 번 파괴되었던 바빌론 ─

누가 계속 바빌론을 건설했는가? 건축노동자들은

황금빛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다 만들어진 날 저녁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는

개선문으로 가득 차 있다. 누가 개선문을 세웠는가? 로마의 황제가

정복한 것은 누구였는가? 인구에 계속 회자되는

비잔틴에는 시민들의 궁전들밖에 없었는가? 저 전설적인

아틀란티스에서는

바다가 덮친 날 밤 물에 빠진 자들이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혼자서 했을까?

시저는 갈리아를 무찔렀다.

그가 적어도 요리사 하나쯤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 왕은 그의 함대가 몰락했을 때

울었다. 필립 왕만 울었을까?

프리드리히 대왕은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말고

승리한 자는 없었을까?

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는가?

십 년마다 위대한 자가 나온다.

거기에 드는 비용은 누가 대었는가?

수많은 보고들.

수많은 의문들.

 

─ 브레히트,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1939) 전문

 

5. 그리스비극에 대한 역사철학적 인식

 

문제는 비극적 신화의 역사철학적 의미가 아니라, 더 명료하게 말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비극의 역사철학적 의미이다. 벤야민과 니체가 갈리는 곳이 그리스비극의 간판으로서 코러스에 대한 인식이다.

 

"이미지의 불꽃 … 서정적 詩들. 이것들이 최고도로 전개되었을 때 비극, 드라마적 디오니소스송가[디티람보스]로 불린다." --- 합창단과 관객무리들의 환영 속으로 비극이 용해된다. 이어지는 니체의 말이다. "아티카 비극의 관객은 합창단 자리의 합창단에서 자기 자신들을 재발견한 점, 근본적으로 관객과 합창단 사이에 대립관계가 없었던 점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다. 그럴 것이 모든 것은 춤추고 노래하는 사티로스들에 의한 혹은 사티로스들에 의해 재현되게 하는 그런 인물들에 의한 위대하고 숭고한 합창단이기 때문이다 … 사티로스합창단Satyrchor은 무엇보다도 디오니소스적 대중들의" ― 즉 관객들의 ― "환영이며, 마찬가지로 무대 세계는 사티로스합창단의 환영이다."(282)

 

[벤야민에 의한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의 인용이다. 5.장 아르킬로코스 章에서의 인용이고, 8.장 디오니소스합창단 章에서의 인용이다] 니체가 “관객과 합창단 사이에 대립관계가 없었던 점”을 강조한 것에 對해, 벤야민이 “합창단과 관객이 결코 단일체가 아니다”(282)라고 주장한다. (한칸앞으로)벤야민은 '단일체로서 합창단과 관객'을 논박하면서 빌라모비츠-묄렌도르프Wilamowitz-Moellendorff의 말을 끌어들이나 사실 이 말은 설득력이 없다.

 

문헌학적으로 "비극적 합창단이 … 祭式에 연계될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282)

 

디오니소스제례를 말할 때 이것을 비극의 합창단과 상호유비의 관계로 못 말할 이유가 없다. 잘 알려진 대로 사티로스들의 축제인 원시 디오니소스제례에서 개방성을 말하지 않기가 곤란한 것처럼 비극의 합창단에서 개방성을 말하지 않기가 곤란하다. [디오니소스합창단의 광포한 선율이 울려 퍼졌을 때, 청중은 그 광포한 선율 통로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디오니소스 천재예술가는 자연의 그 광포한 선율을 청중에게 들려주는 자이다. 잔혹한 실존을 광포하게 넘어가게 해주는 자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벤야민이 끼워 넣은 "문헌학적으로"라는 말이다. 니체야말로 당대 최고의 문헌학자로서 그리스비극에 대한 고찰을 수행한 자 아닌가?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관중과 코러스의 혼연일체, 그러니까 '혼연일체의 형이상학'이다. 디오니소스적 酩酊-性的 황홀과 무관하지 않은 '혼연일체'에서 이른바 ‘삶의 가혹성이 진리로 드러났을 때'의 그 '가혹성으로서 삶’이 묻힌다. 니체가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비극의 디오니소스적 행위와 아폴론적 가상이다. 다시, 벤야민이 추적하는 것은 그리스비극의 역사철학적 의미이다. 한마디로 ‘그리스비극이란 무엇인가?’이다. 니체에게 ‘그리스비극이란 무엇인가’에 對한 대답이 주어졌고 벤야민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형이상학적 구제라는 척도에서, 벤야민에 對한 니체의 영향을 말할 수 있다. 벤야민이 역사철학적 구제를 말할 때, 혹은 통시적 구제를 말할 때, 이것은 위의 영원회귀論에서 나타난 대로 니체에 의해 이미 역설된 것으로서, 벤야민에 對한 니체의 영향, 혹은 니체의 '선취'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한다. 『비극의 탄생?은 니체철학의 저수지로서, 이후 『차라투스트라?에서 분명하게 개진된 자발적 몰락의지를 벌써 말한다; 니체에게 그리스비극은 니체가 명명하는 것으로서, 주지하다시피 디오니소스적 행위와 아폴론적 가상이다. 디오니소스적 도취예술과 아폴론적 꿈 예술이다. 도취와 꿈이 동시에 말하는 것이 미적 가상이다. '세계 현존은 미적 가상으로만 是認된다.' 합창단으로 표상되는 디오니소스적 도취가 자발적 몰락의지로서, 『비극의 탄생』에서 가장 강력한 “형이상학적 위로의 예술”(121)을 말한다. 『차라투스트라』에서 자발적 몰락의지는 영원회귀의 가장 중요한 因子로서, 영원회귀가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를 말할 때, 과거-현재-미래를 구제하는 계기가 된다. 몰락의 보편성에 의한 과거-현재-미래의 구제는 성좌알레고리가 말하는 것으로서, 벤야민 구제형이상학의 궁극적 결과물 아니었던가?

 

6. 역사철학의 동상이몽

 

니체는 '비극'을 근대비극이 아닌, 그리스비극에서 찾았다. 역사철학적 통찰에 의한 것으로, 니체가 근대비극과 다른, ‘그리스비극’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문헌학자로서 니체의 그리스비극에 대한 역사철학적 통찰은, '당대의 사상-예술'에 대한 통찰이 있었더라도, 오로지 그리스비극을 위한 역사철학적 통찰이 되고 말았다. 아닌가? ─그렇다[맞다]. 벤야민이 역사철학적 통찰을 통해 바로크비애극의 고유성을 찾아낸 것과 다르지 않다.

 

벤야민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철학적 통찰이다. 그리스비극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고, 바로크비극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고, 고전주의비극, 낭만

주의비극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다. 벤야민에게 역사철학적 통찰은 내재적 통찰과 같은 의미이다. 내재적 고찰을 통해 역사철학적 고찰이 완수된다. 이를테면 비극예술은 내재적 고찰을 통해 고유한 역사철학적 의미를 획득한다. 역사철학은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결과물이기도 하다. 역사철학적 고찰-통찰이 방법론이고 역사철학적 의미-인식이 결과물이다. 벤야민의 역사철학은 유물론적 성향을 띤다. 니체의 역사철학적 비극론이 제한된 의미를 갖는 것이, 다시 말하거니와 니체 당대 및 이전의 예술사상에 대한 탁월한 역사철학적 통찰이 있었더라도, 니체의 비극론이 디오니소스제례-그리스비극에 헌정되어 그것이 이후의 전범이 됐기 때문이다. 니체의 비극론은 쇼펜하우어의 음악형이상학과 마찬가지로 규범화되었다. 주목해야할 것이 니체의 비극론은 그리스비극론으로서 이후 니체 형이상학의 저수지가 된 점이다. 니체 또한 스스로 이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 1886 『비극의 탄생』에 덧붙인 「자기비판적 시도」에서 “예술가-형이상학”을 말하고, “형이상학적 행위들”을 말한다. 니체에게 비극예술은 비극적 신화이다. 예술은 늘 구제하고, 인간은 늘 구제받는다. 예술은 늘 주체이고, 인간은 늘 객체이다. 벤야민이 그의 『독일비애극의 원천』 곳곳에서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말한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 章에서 『비극의 탄생』 몇 부분을 집중적으로 인용한다.

 

(1) 신화는 현상세계를 경계지역으로 끌고 가고, 여기에서 현상세계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다시금 진정하고 유일한 실재의 품 안으로 도망치려고 한다 … 우리는 진정 미적인 청중의 경험들에서 비극작가 자체를 눈앞에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개별화시키는 풍부한 神인 듯 자신의 형상들을 창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의 작품은 ‘자연의 모방’으로 파악될 수 없을 듯하다 ─ 그러나 작가의 무시무시한 디오니소스적 충동은 현상세계 전부를 삼켜버리는데, 이것은 현상세계 전부의 배후에서 현상세계 전부를 절멸시킴으로써 최고의 예술적 근원-기쁨을 근원-일자의 품에서 예감하게 하기 위해서이다.(Ⅰ-1, 281; 『비극의 탄생』 22.章, 137)

 

(2) 그도 그럴 것이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명백해져야 할 것이, 우리를 낮추는 것도 되고 높이는 것도 되지만, 예술희극 전체가 우리를 위해, 이를테면 우리의 개선 및 우리의 교양을 위해 상연되는 것이 전혀 아니고, 또한 우리가 저 예술세계의 본질적 창조자가 아니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 우리가 예술세계의 진정한 창조자에게 이미 형상들이자 예술적 투사물들이라는 점, 그리고 우리가 예술작품들의 의미 속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점은 수긍해도 좋을 듯하다. 그럴 것이 현존재와 세계는 오로지 미적 현상으로서만 영원히 是認되기 때문이다. 반면 이러한 의미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물론 화폭에 그려진 전사들이 화폭에 서술된 전투에 관해 갖는 의식과 거의 다를 바 없다.(281; 『비극의 탄생』 5.章, 43)[강조는 필자]

 

(3) 이미지의 불꽃 … 서정적 詩들. 이것들이 최고도로 전개되었을 때 비극, 드라마적 디오니소스-송가[디티람보스]로 불린다.(282: 『비극의 탄생』 5.章, 40)

 

(4) 아티카 비극의 관객은 합창단 자리의 합창단에서 자기 자신들을 재발견한 점, 근본적으로 관객과 합창단 사이에 대립관계가 없었던 점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다. 그럴 것이 모든 것은 춤추고 노래하는 사티로스들에 의한 혹은 사티로스들에 의해 재현되게 하는 그런 인물들에 의한 위대하고 숭고한 합창단이기 때문이다 … 사티로스합창단Satyrchor은 무엇보다도 디오니소스적 대중들의 “ ― 즉 관객들의 ― ” 환영이며, 마찬가지로 무대 세계는 사티로스합창단의 환영이다.(282: 『비극의 탄생』 8.章, 55)

 

(1)에 대한 벤야민의 해석은 비극적 신화가 “순수한 미적 형상물”로 되었다는 것이고, 아폴로적인 힘과 디오니소스적인 힘의 대립적 상호작용 또한 “미적 영역”(Ⅰ-1, 281) 안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니체가 비극적 신화에 대한 역사철학적 인식을 포기했다는 것이다.(이 글 4.章 참조). 벤야민이 간과한 것은 ‘비극적 신화에 대한 역사철학적 인식’이 니체에게 영웅개인의 비극적 몰락이 표상하는 비극적 세계인식으로 나타난 점이다. 요컨대 벤야민이 간과한 것은 비극적 세계인식이 원인이고, 동시에 “진정하고 유일한 실재”인 “풍부한 神”의 세계[“신화”의 세계], 곧 ― 이것이 강조되어야 한다 ― “디오니소스적 충동”의 세계로 “도망치”는 것이 결과라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비극적 세계인식이고 비극적 세계인식의 극복이다, “최고의 예술적 근원-기쁨”이 “현상세계 전체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현상세계 전체가 표상하는 것이 비극적 세계인식, 곧 삶의 잔혹성이다. 니체의 그리스비극에 대한 역사철학적 인식에 다름 아니다.

 

(2)에 대한 벤야민의 해석은 앞서 인용했듯, 이로써 니체의 “유미주의의 심연이 문을 열고, 이 심연에서 천재적 직관은 급기야 모든 개념들을

상실했다. 그 결과, 神들과 영웅들, 저항과 고통, 비극적 건축물의 기둥들이 無 속에서 증발된다”(Ⅰ-1, 281)이다. 특유의 벤야민 비극論, 즉 '내재철학으로서 비극論'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벤야민은 (1)에서와 마찬가지로 ‘神들과 영웅들, 저항과 고통, 비극적 건축물의 기둥들’로 표상되는 것으로서, 역사철학적 비극적 세계인식을 강조한다. 이 글의 4.章에서 개진됐듯 벤야민 특유의 유물론적 역사인식을 강조할 수 있다. 문제는 니체 인용 (1)과 (2)에서 드러나는 ‘역사철학으로서 비극적 세계인식’이다. 비극예술에서 비극적 세계인식이 문제되지 않으면 그것이 비극예술인가. 그리스비극의 내재적 고찰에 의한 그리스비극의 고유한 역사철학은 무엇인가?

 

니체는 비극적 세계인식-삶의 잔혹성을 디오니소스제례, 곧 그리스비극의 코러스, 그 가무합창단의 量적 충만함을 통해 넘어가려고 한다. 삶의 비극성을 강조하는 것이 내재적이고, 삶의 잔혹성을 넘어서려는 것이 내재적이다. 니체의 비극論에서 비극적 내재성을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벤야민의 구원철학이다. 벤야민의 니체비판은 자신의 고유한 구원철학을 말하기 위한 발판이다. 벤야민 고유의 구원철학이 고유할 것 없는, 벤야민의 역사철학적 비극적 세계인식을 구제한다.

 

(3)에 대한 벤야민의 대답은 “합창단과 관객무리들의 환영 속으로 비극이 용해된다”(282)이다. 니체는 비극을 ‘코러스와 청중들의 환상’으로만 구성하고 있다, ‘아폴론적 가상’보다 디오니소스적 ‘비극의 가상’만을 강조하고 있다, ─ 벤야민의 생각이다. 벤야민은 ‘아폴론적 가상’을 긍정한다. 그렇더라도 벤야민은 아폴론적 미적 가상에 의한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엇보다도 합창단, 즉 디오니소스적 미적 가상에 의한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4)에 대한 벤야민의 대답은 (3)에 대한 대답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서, 니체가 비극의 미적 해체의 원인이 되는 “아폴론적 가상을 과도하게 강조[의식]하고 있는 것”에 관해서이다. 벤야민과 니체의 차이는 아폴론에 의한 ‘삶의 비극성의 강조’와 디오니소스에 의한 ‘삶의 잔혹함의 극복’의 차이이다. 그러나 벤야민이 또한 간과한 것은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디오니소스적 도취만큼 아폴론적 가상이라는 인식을 중요시한 점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 마지막 25.章에서 아폴론적 요소와 디오니소스적 요소의 “엄격한 상호균형”(151)을 말한바 있다. 아폴론적 가상은 꿈이다, 꿈이 가상이다, 꿈은 쇼펜하우어가 언급했듯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무대가 가상이라면 무대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무대가 세계라면 세계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세계 속에서 인간은 자발적으로 몰락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를테면 ‘신들의 군화발소리와 같은’ 코러스에게 “현상세계 전체를 집어삼키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적 현상으로만 이 세계의 현존재가 是認된다’가 함축하는 의미이다.『 비극의 탄생』(1872)의 「자기비판의 시도」는 알려진 대로 니체의 주저 『차라투스트라』가 완성되고 1년 후 1886에 쓰인 것으로서 여기에서도 “미적 현상으로만 이 세계의 현존재가 是認된다”(Ⅲ-1, 11)라는 말이 강조된다. ‘현존재의 是認’은 니체철학을 관류하는 키워드이다. ‘미적 현상으로만 이 세계의 현존재가 是認된다’는 ‘나는 기꺼이 몰락해주리라’가 키워드인 『차라투스트라』 철학을 관류해서 다시 반복되었다.

 

7. 나가며

(1) 벤야민에게 구원이 역사철학적 유물론적 역사구원이라면, 니체에게 구원이 형이상학적 미적 존재구원이다. 니체에게 메시아적 손길에 대한 기대감이 없고, 벤야민에게 메시아적 손길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벤야민의 메시아적 손길에 대한 기대감, “역사의 천사”(『역사철학테제』)에 대한 기대감이 형이상학과 무관하지 않다. 니체의 형이상학적 존재구원은 ‘가상의 충만[그리스비극의 코러스]’-위버멘쉬-권력의지-영겁회귀 등에서 짐작되듯, 질보다는 量에 의한 것으로서 ‘지난’ 형이상학과 다르다, 초월적 형이상학이 아닌, 내재적 형이상학이다. 벤야민과 니체의 관계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계와 유비관계로 볼 수 있다. “니체는 존재에 대한 변증으로서 현상을 주목했고, 종국에는 현상만 주목했고, 플라톤은 현상에 대한 변증으로서 존재에 주목했고, 종국에는 존재만 주목했다.”(박찬일, 「유물론적 변증철학─‘플라톤’에 대한 가정적 접근 ─ 『국가』를 중심으로」,『예술가』, 2012 여름, 278). 이 인용문에서 플라톤 대신 『독일비애극의 원천』 시기의 벤야민을 넣어보는 것이다. 그의 ‘성좌알레고리로서 구제알레고리’[메시아알레고리]를 넣어보는 것이다.

(2) 벤야민의 니체철학 비판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은 벤야민이 니체 비극論에서 역사철학적 성찰의 결여를 특별히 지목했기 때문이다. [물론 『비극의 탄생』에서 역사철학적 관점의 결여를 말한 것 또한 수용 불가능하다] 니체철학의 저수지로서 『비극의 탄생』 이후, 니체가 문제 삼은 것이 서양형이상학 근본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니체철학은 오히려 근본적 역사철학적 입장에 서있다.

(3) 니체의 역사철학적 비극論이 디오니소스적 도취예술 및 아폴론적 꿈예술로 해서, 결과를 두고 볼 때 규범화된 것이 사실이다. 역사철학적 고찰이 규범화로 끝을 맺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규범화된 성문법은 다시 역사철학적 고찰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니체의 비극論은 ‘형이상학으로서 그리스비극論’이다. 『비극의 탄생』의 서문 「자기비판적 시도」에 등장하는 ‘예술가-형이상학’이 이 점을 미리 짐작하게 하고, ‘형이상학적 행위들’이 이 점을 미리 짐작하게 했다. 니체에게 비극예술은 신화와 같다. [예술이 늘 구제하고, 인간이 늘 구제받는다] 예술이 늘 주체이고, 인간이 늘 객체였다. 역사철학적 고찰에 의한 것으로서, ‘형이상학적 위로의 예술로서 비극’을 말할 때 이것이 니체의 비극論에 관한 것이다.

 

(4) 보론: 구제철학으로서 벤야민철학

「역사철학테제」(벤야민)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1942)에서 천사는 “새로운 천사Angeles Novus”로서 “잠시 머물고 싶어 할, 죽은 자들을 깨우고 싶어 할, 산산이 부서진 것을 짜맞추고 싶어 할 천사이다.”(Ⅰ-2, 697). 『독일비애극의 원천『에서 “멜랑콜리가 지식을 위해 세계를 배반한다. 멜랑콜리의 지속적 침전의 목적이 죽은 사물들을 구제하기 위해 죽은 사물들을 靜觀Kontemplation 속에 두는 것이다.”(Ⅰ-1, 334)고 했을 때 벤야민의 천사 역할은 분명해진다. 벤야민의 ‘천사’는 역사적 멜랑콜리커로서 “사물들의 덧없음을 영원 속으로 구제하는 것”(Ⅰ-1, 397)이다. 죽은 사물들을 짜 맞추어 ― 이것이 알레고리커로서의 행위이다 ― 덧없음의 알레고리를 만들어, 이 덧없음을 그들 각각에 되돌려주는 것이, 그들을 영원 속으로 구제하는 것이다. 북두칠성 예를 들면, 북두칠성의 배치를 덧없음의 알레고리로 보고, 이 덧없음을 7개의 별 각각에게 되돌려주어, 그들을 영원으로 구제하는 것이다.

 

‘멜랑콜리의 지속적 침전의 목적이 죽은 사물들을 구제하기 위해 죽은 사물들을 靜觀 속에 두는 것’, ‘사물들의 덧없음을 영원 속으로 구제하는 것’, 이것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간단히, ‘너희들에게만 몰락이 있었던 것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몰락을 몰락 속으로, 들여보내는 것, 몰락의 보편성 속으로 들여보내는 것, 그러므로 몰락자를 몰락자를 통해 구제하는 것―너희들만 몰락한 것이 아니야! 물론 멜랑콜리커의 어조이다.

 

벤야민의 천사는 정태적 멜랑콜리커가 아니라, 동태적 멜랑콜리커이다. 뒤러의 천사는 그의 동판화 「멜랑콜리아 Ⅰ」에 등장하는 것으로서 양면감정병존을 갖는다. 애도-잉여감정에 휩싸인 정태적 멜랑콜리커의 모습, 그리고 ― 이것은 천사 주변의 아이콘들을 고려한 것으로써 ― ‘사유운동으로서 동태적 멜랑콜리커’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죽은 사물들’과 ‘죽은 사물들의 구제’의 관계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