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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문학은 내 영혼의 방부제였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1. 6. 23:41
[박해현의 문학산책] "돌아보니 문학은 내 영혼의 방부제였네"

입력 : 2015.11.05 03:00

칠순 맞아 새 소설 펴낸 박범신, 등단 42년차에 42번째 장편 써
'영원한 청년 작가' 비결은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 것
"작가 생활, 열렬한 연애 같아… 내가 아직 여자를 좋아하잖아…"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박범신이 최근 칠순을 맞아 새 장편소설 '당신'을 냈다. 1973년 등단해 42년 동안 창작 인생을 살아온 작가가 42번째 장편을 내놓은 것이다. 중·단편 전집(7권)을 빼고도 장편을 쉼 없이 낸 필력을 장대로 삼아 고희(古稀)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박범신의 소설 중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등등은 1970~80년대 세태와 풍속을 반영하면서 그 시대의 부조리한 상황을 풍자해 큰 인기를 누린 베스트셀러였다. 그는 "한때 신문과 잡지에 동시 연재하기도 했고, 청소년을 위한 장편도 많이 써야 했다"고 했다. 안면이 있는 출판사 대표가 술 한 병 사 들고 찾아와 애절한 눈빛으로 간청하면 어쩔 수 없이 집필한 소설도 많았다고 한다.

박범신의 다작(多作)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노동의 산물이었다. 생존에 급급한 출판사들의 든든한 밥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단에선 '문학의 상업화에 앞장선 대중작가'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남모르는 고통이 적지 않았다. 박범신은 1993년 느닷없이 절필을 선언한 적이 있다. 대학생 아들이 어느 날 자퇴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아들이 수강한 교양 국어 시간에 강사가 박범신 문학을 비판했다는 거였다. 아들은 강사의 발언보다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뻔히 아는 친구들이 신나게 킬킬거린 것에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아비는 고민 끝에 글을 끊었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의 절필 결심은 삶의 마감과도 같았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박범신은 우울한 성장기를 보냈다. 딸 넷을 줄줄이 낳은 부모가 중년에 얻은 외아들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선 식구들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박범신은 중학생 때 기찻길 옆집에 살았다. 밤기차가 지나갈 때면 창밖으로 내다봤다. 기차는 집을 떠나 어디든 먼 곳으로 가고픈 소년의 갈망을 애타게 돋우어 놓기만 했다. 골방에 틀어박힌 소년은 문학을 상상력의 기차로 삼아 먼 길을 떠나곤 했다. 그가 책을 읽던 골방이 기차처럼 움직이는 공간이 됐고, 그 기차는 강물처럼 시간의 흐름이 돼 소년을 조숙하게 키웠다. 그는 고등학생 때 '사상계'를 구독했고,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에 심취했다.

박범신은 교육대학을 졸업해 초등학교 교사가 됐지만 이내 사직서를 쓰고 1969년 상경해 판자촌에서 살았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시내버스 계수원(計數員)이 됐다. 운전기사와 차장이 짜고 요금을 가로채는 이른바 '삥땅'을 몰래 적발하는 일이었다. 박범신은 승객인 양 버스에 탄 뒤 승객 숫자를 일일이 세서 회사에 보고했다. 그는 '삥땅' 의혹을 산 차장이 알몸 수색까지 당하자 스스로 모멸감에 시달린 끝에 한 달 만에 그만뒀다. 중국 음식점 주방 보조, 잡지사 기자 등을 거쳤다가 스물일곱 살에 그토록 열망했던 신춘문예 당선 통지를 받았다. 작가 생활은 창작의 고통과 함께 황홀도 안겨다 주었다. "써야 할 말들이 형형색색 수천의 나비 떼처럼 날아올랐다"고 했다. 밤새워 쓴 원고가 책으로 속속 묶이는 게 너무 신났다. 그런 글쓰기로 번 돈으로 대학까지 보낸 아들이 아비의 글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니,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박해현의 문학산책]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러나 박범신은 절필 3년 만에 창작을 재개했다. 쉰 살이 넘었지만 청년 작가 시절의 열정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중편 '흰 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며 문단에 복귀했다. 그 소설의 끝에 그는 "그래도, 여전히, 나는 자꾸 글을 쓰고 싶으니… 눈물겹다"고 썼다. 그는 독자들을 향해 "과거의 박범신이 아닌 나를 신인 작가로 받아달라"고 했다. 그 이후 박범신은 '영원한 청년 작가'란 꼬리표를 달기 시작했다. 그가 2000년 이후 쓴 장편은 속속 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자전적 장편 '더러운 책상'이 만해문학상을,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를 다룬 장편 '고산자'가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히말라야를 10차례 넘게 다녀온 체험을 담은 장편 '촐라체'는 산악인들의 필독서가 됐다. 늙은 시인의 열정적 사랑을 담은 장편 '은교'는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됐고 책은 지금껏 23만부나 나갔다. 칠순을 맞아 낸 신작 '당신'은 출간 보름 만에 1만3000부를 찍었다. 치매를 다룬 '실버 문학'이지만, 언어 감각이 풋풋해 순정(純情)소설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박범신은 "작가 생활 42년은 한 번의 열렬한 연애처럼 흘러갔어"라며 "돌아보니 문학은 내 영혼의 방부제였던 것 같아"라고 토로했다. 건강관리를 위해 특별히 하는 운동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영원한 청년 작가'로 불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감수성의 유지'를 꼽았다. "우리 지식인 사회는 관념을 숭상하는데, 작가가 관념을 내세울 게 아니라 감각적 묘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관념을 떠올리게 해야 한다는 게 내 소설 작법"이라고 했다. "내 몸을 자연인 양 내버려두고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내가 아직 여자를 좋아하잖아…"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