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시창작 도움자료

시는 노래방, 헛소리가 참말 되도록 연습하세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0. 5. 21:13

 

시는 노래방, 헛소리가 참말 되도록 연습하세요
 

이성복 시인은 “다친 새끼발가락, 이것이 시예요”라며 시를 쓸 때 몸에 붙여서 쓰라 했다. [중앙포토]

 
기사 이미지
극지의 시 , 불화하는 말들 , 무한화서
이성복 지음, 문학과지성사
각 권 141~183쪽, 각 권 1만1000~1만2000원


이창동 감독의 2010년 영화 ‘시’의 주인공은 늘그막에 시를 써보려는 할머니(윤정희)다. 진지하고 끈질기게 창작에 매진한 그는 끝내 시 한 편을 써낸다. 이성복(63) 시인이 펴낸 세 권의 시론(詩論)은 이런 본능적 시인 지망생에게 희망을 주는 길잡이다. “시는…”으로 시작하는 짧고 긴 경구와 시 수백 편이 읽으며 배우는 재미를 던져준다.

 “시는 도서관이 아니고 노래방이에요. 헛소리가 참말이 될 때까지 계속 연습하세요.” 언어는 현실의 온갖 오물들이 다 묻어 있는 상스러운 것이지만 그 때문에 축복받았다. 비어·속어·은어는 시의 보고다. 가볍고 쉽게 사라지는 입말, 리얼리티가 있고 리듬이 살아있는 구어(口語)에 의지해 머리로 쓰지 말고 입으로 써라. 권투의 잽 날리듯이 말을 툭툭 던져라.

 “시는 독자를 소스라치게 만드는 귓속말이에요. 시는 우리 심장에 정확히 꽂혀, 다시는 안 빠지는 화살이에요.” 글이 착하면 재미가 없다. 약간 싸가지 없고 톡톡 튀며 무엇보다 살기가 서려 있어야 한다. 진실을 밝힘으로써 자기와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옷깃에 스며드는 삼월 추위 같은 것, 빗나가고 거스르는 것이 시다. 일상의 닳아빠진 관절들을 갈아 끼우라.

 “시는 천둥벼락이고 집중호우예요.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써야 힘이 있어요.” 시는 몸에서 바로 꺼내야 한다. 생각에 의지하면 항상 늦는다. 머리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빨리 쓰라. 시는 말의 춤이다. 말에도 ‘넣고 빼고’ 하는 관능이 있으니 손을 신뢰하면서 가급적 한달음에 써라.

 “시는 단도직입(單刀直入)이고 단도직입(短刀直入)이예요. 짧은 칼 한 자루 들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거지요. 시는 백 미터 달리기예요.” 시의 깊이는 불화에서 생기고, 시의 감동은 열정에서 나온다. 사각의 링에서 코너에 몰린 선수같이 링의 반동을 이용해 튕겨 나오는 것이 시 쓰기다. 머릿속 잡념이 지나가는 속도로, 잡생각과 헛소리에 의지하라.

 1977년 등단한 뒤 40년 가까이 시인으로 살아왔지만 “완성 같은 것은 애초에 어디에도 없다”고 그는 말한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시가 닿은 지점은 ‘불가능’이고, “오직 모를 뿐”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극지(極地)가 시인이 머물러야 하는 자리다. “얼다가 녹다가 하는 일의 반복” 속에서 “오직 견디는 것뿐. 위로 안 받기 위해, 좀더 강해지기 위해” 그는 시를 쓴다. “또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보려는 것이 문학 아니겠어요”라고 되묻는 시인은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사람의 낮은 한숨 소리”처럼 읊조린다. “속절없이 바다에 내리는 눈이 무슨 말을 더 하겠어요.”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S BOX]  이성복 시인의 시시콜콜

 ●우리 시대 손꼽는 한국 시인=황지우는 재능이 특별하고, 최승자는 시에 순교했으며, 박남철은 뛰어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스승=김수영, 카프카, 벤야민.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할 때마다 카프카를 읽는다. 카프카의 문장은 전부가 시다.

호(號)=미사(未思). 이 말은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 지금까지 제 공부의 요약이다.

인생과 글쓰기의 원칙=‘당신과 세상과의 싸움에서, 세상 편을 들어라’는 카프카의 말. 자신이 어떤 관계 속에 있든 자기한테 유리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가장 사랑하는 문장=우리는 없는 길을 가야 한다. 길은 오로지 우리 몸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밀고 나가야 한다.

문학 지탱의 축=진지함, 측은함, 장난기. 진지함이 없다면 진실에 대한 지향이 없을 테고, 측은함이 없다면 윤리적 책임감 같은 것이 없을 테고, 장난기가 없다면 예술가라 할 수 없을 것.

러닝머신 할 때 외우는 책자=『꽃에 이르는 길』. 제게 가장 필요한 문구들을 뽑아놓았다. 글쓰기와 ‘생사 문제’ 해결에 지침이 되는 것들로 그 가르침들을 반복해 외우면서 뼛속에 새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