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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1. 6. 23:31

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의심해보세요

입력 : 2015.11.05 03:07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

    의심 안 해서 마녀사냥한다고 생각한 데카르트
    치열한 의심 끝에 한 가지 결론 도달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철학은 지식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의심 깨려고 하다보면 진실 발견할 수 있어요

이 세상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이 있을까요? 새는 난다? 아니에요. 펭귄과 닭은 새지만 날지 못해요. 군대는 남자만 간다? 이스라엘과 노르웨이는 여자도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해요. 행복해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아니에요. 공부를 열심히 해도 오히려 불행해질 수도 있어요. 신은 존재한다? 무신론자들은 동의하지 못할 거예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역시 유신론자들은 동의하지 못하겠죠.

철학은 이렇게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철학은 지식이 아니라 생각하기예요. 친구들과 함께 의심하기 놀이를 한번 해보는 것도 좋아요. 이런저런 의심을 하고, 또 그 의심을 깨려 하다 보면 우리 모두 철학자가 될 수 있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 끝에 뭐가 남을까

이번에는 좀 더 고난도 의심을 해보도록 합시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이것도 역시 확실한 사실은 아니에요. 지금 전 지구인의 수는 70억이 넘어요. 이 가운데 최소한 몇 명은 영원히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생명과학자 상당수는 노화를 멈추게 하는 방법과 모든 질병을 이겨 내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는 때가 온다고 믿고 있어요. 지구는 둥글다? 하지만 지구는 둥글지 않아요. 지구는 사실 울퉁불퉁해요. 에베레스트산과 로키산맥의 험준한 굴곡을 떠올려 보세요.

여러분은 지금 제가 쓴 글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하지만 사실은 여러분이 제 글을 읽는 것이 아닐 수도 있어요. 여러분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겁니다. 꿈속에서 제 글을 읽고 있다고 착각하는 중일 수도 있어요. 여러분은 사람이 아니라 게임 속의 캐릭터일 수도 있어요. 자기 자신을 사람이라고 믿도록 프로그램된 캐릭터 말이에요. 동물원에서 태어난 오리도 사육사를 엄마라고 착각하지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정서용

르네 데카르트(1596~1650)도 우리처럼 이렇게 확실하다고 믿고 있는 사실들을 하나하나 치밀하게 의심하고 또 의심했답니다. 그리고 치열한 의심 끝에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어요. 그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는 순간에도 자기 자신이 그렇게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어때요? 그럴듯하죠? 그래서 데카르트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내가 살아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달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은 모두 착각일 수 있어요. 인간은 오로지 의심하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존재이지요.

폭력적·독단적으로 되지 않으려면 의심해요

요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데카르트 시절에는 대단히 충격적인 주장이었어요.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사람이 산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신의 은총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신이 우리에게 살아갈 수 있는 지구라고 하는 터전을 주고 생명을 주었기 때문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데카르트는 달랐어요. 사람이 생각하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했지요.

데카르트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 이유는 그가 살았던 시대가 바로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때였기 때문이에요.

당시 유럽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절대적으로 믿었고, 하나님의 뜻에 조금이라고 어긋난다고 믿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학대했어요. 너무나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여인이 있다면 마녀로 몰아 죽였어요.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도 마녀의 후손으로 몰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고 물에 빠져 죽이는 등 온갖 잔혹한 방법으로 학대했지요.

데카르트는 당시 사람들이 왜 그릇된 종교적 신념을 지니고 집단으로 악행을 저지르는지 고민했어요. 그가 내린 결론은 그들이 의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즉 생각의 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서 생각의 힘을 강조했지요.

모두가 마녀를 학대할 때 "그녀는 마녀가 아닐 수 있습니다"고 외칠 수 있는 용기가 있나요? 데카르트는 우리에게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그런 용기는 단순한 우격다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치밀한 의심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 점에서 데카르트의 의심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데카르트에 의하면 "의심은 종교적 독단과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진실을 발견하는 방법"이라고 해요. 그래서 이러한 의심을 방법적 회의(方法的 懷疑·확실한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수단이나 방법으로 삼는 의심)라고 부르지요. 회의란 회(懷·품을 회)와 의(疑·의심할 의), 즉 '의심을 품는다'는 뜻이에요.

방법적 회의를 통해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결론을 얻었고 이 결론을 통해 종교적 독단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 즉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선언할 수 있었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반역 작품 사진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반역, 1929.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이미지의 반역’에는 담배 파이프 하나가 덩그러니 그려져 있고 그 밑에 프랑스어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어요.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의심함으로써 생각의 힘이 길러지지요.

채석용 대전대 교수(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