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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1. 6. 23:35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 입력 : 2015.10.03 04:00

    [김대식의 북스토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1637년, 프랑스 철학자 레네 데카르트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우리는 종종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보고,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믿곤 한다. 어디 그뿐이랴. 매일 밤 우리는 꿈에서 왕이 되고, 짝사랑하는 여인을 차지하고, 우주의 진리를 이해한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진리도, 사랑도, 권력도 모두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만약 깨어있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믿고 있는 모든 것들 역시 허상이라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내 이름이 '레네 데카르트'라는 사실 조차도 참이 아닌 조작된 환상이라면? 우리가 믿고 있는 수많은 명제 중 절대 진실이란 존재하는가? 데카르트는 중대한 결론을 내린다. 이 세상 그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더라도, 바로 지금 그 생각을 하는 '나'라는 존재만큼은 존재해야 한다고. 그렇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의 선호도는 시장경제를 가능하게 하고, '나'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 나는 행복하거나 불행하다. 우울하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태어나서 언젠가는 죽는다. 나! 나! 나! 그런데 현대문명의 핵심에 '나'라는 절대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코타르 증후군'(Cotard delusion) 환자들의 이야기다. 19세기 프랑스 신경과 의사 쥘스 코타르(Jules Cotard, 1840~1889)가 처음 기록한 이 질병에 걸린 환자들은 멀쩡한 팔, 다리, 심장 같은 신체 부위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하고, 간혹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까지 믿는다.

    하지만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생각을 하는 존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코타르 망상에 빠진 환자들은 완고하다. 자신은 생각하지만,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도 출신 영국 기자 아닐 아나타스바미의 책에 소개된 환자들의 스토리는 놀라움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 어떻게 멀쩡히 숨을 쉬고 밥을 먹는 사람이 자신은 이미 죽었다고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자신의 손을 찌른 바늘과 붉은 피를 보면서도 자신은 불멸의 존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아나타스바미는 단순히 희귀한 정신질환 환자들의 이야기만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두개골을 열어보면, 눈에 보이는 것은 '뇌'라는 1.5kg 짜리 고깃덩어리뿐이다. 하지만 어딘가, 어떻게 그 뇌는 '나'라는 자아를 가능하게 한다. 아니면, 많은 뇌과학자들이 주장하듯 자아와 '나'는 뇌의 '착시현상'일 뿐일까? “자아와 나는 착시”라는 주장을 하는 그 무엇이 바로 “나” 아니었던가?

    파고들어가면 파고들어갈수록 깊어지기만 하는 '나'라는 미스터리. 아나타스바미의 흥미진진한 책은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읽는 '나'라는 존재의 정체를 파헤친다.

    [김대식의 북스토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Anil Ananthaswamy
    “The man who wasn’t there”
    Dutton,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