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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몬도가네가 된 사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3. 15. 11:47

한국이 몬도가네가 된 사연

[중앙일보] 입력 2015.03.14 00:02

 

 

이훈범 논설위원

 

이럴 때 한국인인 게 부끄럽다. 이 사회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존재를 드러낼 때 말이다. 온 나라에 쭉정이들이 널리고 까불린다. 한 얼치기 극단주의자의 치기(稚氣)에 무늬만 다른 수많은 치기들이 달라붙고 물어뜯는다. 그러면서 부끄러운지도 몰라서 더 부끄럽다.

 남의 나라 대사의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으니 가벼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석고대죄 단식은 무엇이며 쾌유 기원 부채춤은 또 뭐란 말인가. 아무리 선의더라도 애견가로 소문난 외국인에게 개고기 선물은 경박했고 지나쳤다.

 새로울 것도 없지만, 미 대사 피습을 “정의의 칼 세례”로 포장하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비유하는 북한의 물색 없음은 그야말로 ‘초딩’ 수준이어서 참담하다. 비판도 듣는 귀가 있어야 하는 거고 그저 “좀 빠져줄래”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경찰이 돌발상황을 막긴 어려웠다 쳐도 ‘개콘’급 사후 대응은 황당하다 못해 허망했다. 피 흘리는 피해자는 연행하듯 경찰차에 실어 나르고, 현행범은 들것에 이불까지 덮어 앰뷸런스로 고이 모셨다. 공공장소에서 칼을 휘두른 손에 수갑도 채우지 않았다. 그러면서 국가보안법을 운운하며 앞서나간다.

 부박함의 정점은 역시 정치권에서 찍었다. 어떤 지형(地形)에서건 자기 논에 물을 끌어올 수 있는 신공(神工)을 보유한 정치권은 이번에도 그 놀라운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여당은 야당을 ‘종북 숙주’로 몰아세우며 난데없는 미사일 방어체계 얘기를 꺼내 든다. 야당은 여당을 종북 타령만 하는 정신질환자로 몰아붙이며 또 다시 사법부의 힘을 빌릴 준비를 한다. 거기에 그들의 제 할 일인 대화와 타협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국정 파트너란 말이 무색하고, 그런 게 언제 있기라도 했나 싶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난 대도 크게 기대되지 않는 게 다른 이유가 아니다.

 모든 게 오버고 비정상이다. 오죽하면 미국 신문 뉴욕타임스가 요지경 보듯 한국사회를 신기하게 쳐다보겠나. 선정적인 얘기 좋아하는 폭스뉴스는 덩달아 신이 났다. 반만년 역사의 예의지국이 하루아침에 몬도가네가 된 이유가 뭘까. 결국은 아집 때문이란 게 내 생각이다. 좋은 예가 있다.

 인도 신화에서 정의의 신 아스라한테 절세미인 딸이 있었다. 어느 날 전쟁의 신 인드라가 거리에서 그 딸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인드라는 욕망에 못 이겨 그녀를 겁탈하고 자기 궁전으로 납치해갔다. 아스라가 불같이 화를 낸 건 당연한 일. 인드라에게 결투를 신청했지만 젊은 인드라를 이길 수 없었다. 그사이 아스라의 딸은 인드라의 진심을 알고 그를 사랑하게 됐다. 두 사람은 금실 좋은 부부가 됐다. 그러나 아스라의 분노는 끝이 없었다. 인드라에게 계속 도전하다 결국 신계에서 추방되고 만다.

 얘기만 놓고 보면 아스라보다 인드라가 나쁜 신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인드라를 법과 질서의 수호신인 제석천(帝釋天)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아스라는 싸움만 좋아하는 마신(魔神) 아수라가 됐다. 인드라는 자신의 죄를 사랑으로 승화시켰지만 아스라는 자기만 옳다는 아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집이란 ‘자기 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해 남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 내세우는 것’이다. 설 자리가 좁으니 똑바로 지탱하기 어렵고 끝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경박함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그런 아집들이 모여 국가를 포플러처럼 떨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원인을 알면 병도 고칠 수 있다. 꽉 쥔 아집을 조금씩만 내려놓으면 된다. 나 스스로 진리라 믿고 있는 가치가 얼마나 상대적인 건지 알면 버리기 쉽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나의 상대성이론이 증명된다면 독일은 나를 독일인이라 할 것이고 프랑스는 세계시민이라 할 것이다. 내 이론이 엉터리로 판명된다면 프랑스는 나를 독일인이라고 할 것이고 독일은 내가 유대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