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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령ㆍ서천의 몇몇 출향 시인을 찾아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8. 27. 23:43

차령車嶺의 끝에서 번지는 시의 향기

-- 보령ㆍ서천의 몇몇 출향 시인을 찾아서

구재기(시인)

서천舒川, 보령保寧하면 먼저 차령車嶺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강원도 오대산五臺山(1,563m)으로부터 시작된 차령의 맥脈이 보령을 거쳐 서천에서 끝을 맺기까지 오른쪽에 출렁이는 서해바다를 펼쳐놓고 수많은 시인 묵객들은 산천을 혈맥에 묻고 노래해 왔다.

차령은 오대산으로부터 강원도와 충청북도가 경계를 이루는 지점까지에는 계방산桂芳山(1,577m)ㆍ회령봉會靈峰(1,309m)ㆍ흥정산興亭山(1,277m)ㆍ태기산泰岐山(1,261m)ㆍ치악산雉岳山(1,288m) 등의 높은 봉우리들로 이어오다가, 충주 부근에서 남한강의 횡단으로 분리된다. 여기에서 서남부는 점차 고도가 낮아져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 부분에서 오갑산梧甲山(609m)ㆍ국망산國望山(770m)ㆍ덕성산德城山(521m)ㆍ서운산瑞雲山(547m) 등이 그 위세를 자랑한다. 충청남도에 이르러서는 남동부와 북서부로 자연 경계를 지으면서 광덕산廣德山(699m)ㆍ칠갑산七甲山(561m)ㆍ무성산武城山(614m)ㆍ금계산金鷄山(575m)을 거쳐 내리다가, 문득 여기에서 거슬러 남북으로 뻗어 예당평야와 태안반도를 구분하면서 가야伽倻를 만들어 놓는다. 다시 성주산聖住山(680m) 등으로 이어지다가 봉림산鳳林山(346m)을 거쳐 남쪽을 향하여 금강의 하구를 바라보고 있는 서천의 천방산千房山(324m)에서 장장 250km의 대장정으로 그 꼬리를 내린다.

이러한 차령의 꼬리를 터전으로 하여 많은 시인들은 태어나고 자라왔으며, 이를 ‘시의 터전으로 가꾸면서 노래해 왔다. 그러나 그 시인들은 이미 다른 세상으로 떠나거나 다른 곳에 발길을 멈추고 시작품으로써 태어나고 자란 터전을 노래한다. 몇몇 출향 시인들의 작품을 통하여 보령ㆍ서천의 터전을 살펴보기로 한다.

문득 서천과 보령 사이를 연결해주는 고개가 하나를 만난다. 바로 보령의 주산과 서천의 판교를 이어주는 ‘간재재’가 그것이다. 이 고개를 넘어 시인 임영조는 판교장으로 나가 염소를 팔았다지 아니한가?

 

고2 때 기말시험 보던 날

납부금 안 냈다고 쫓겨난 나는

고향집에 내려가 식구들 몰래

새끼 밴 염소를 내다 팔았다

 

간재재 넘어 삼십여 리 길

팔려가는 낌새를 알아차린 듯

거품 물고 버티며 울부짖던 염소를

판교장에 끌고 가 헐값에 팔았다

 

 

삼십 년 지난 오늘

이제야 비로소 깨닫느니

내가 염소를 내다 판 게 아니라

염소가 나를

대처에 판 걸 알았다

 

이 고달픈 生을

어디에 안녕히 뿌려놓지 못하고

세월의 볼모처럼 덜미잡힌 채

날마다 헐레벌떡 끌려온 내가

굴레 쓴 염소임을 알았다.

 

                                 ― 임영조의 <염소를 찾아서 3> 전문

 

“한국놈들은 지겟다리 자손두 동네 이장만 되면 금방내 관청 편이 된다는 거”라면서 농촌 현실을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로 담아 풍자한 소설《관촌수필》《우리 동네》의 소설가 이문구는 다음과 같은 동시를 썼다.

 

두 노인만 사시는

오두막집

밤 깊어 도란도란

누가 왔을까.

들리다 말다

무슨 얘길까.

별밖에 없는

외딴 마을에

잠 안 오는 두 노인

하고 또 하는 소리.

                             

                                        - 이문구의 동시 [오두막집] 전문

 

위암으로 불과 62세로 세상을 뜨며, “한 세상 고맙게 살다가 여한 없이 가니 내 죽거든 화장해 뿌려 아무 흔적 남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는 끝내 보령의 산하에 한 줌의 재로 뿌려진 그에게는 무덤도 그 흔한 문학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다만 여느 시골처럼 그의 고향 곳곳에는 ‘빈집’만이 가득하다.

 

빛바랜 라면봉지가 반쯤 묻혀 있다

어디로 떠난 것인지

기억하기엔 너무 오래된 이름들,

비포장도로 끝에서 먼지로 불어와

빈 농약병 소도록한 뒷마당을 지난다

무너진 담장 넘어

녹슨 자물쇠를 비틀어보면

마루 밑

고요한 그늘이 숨죽이고,

마당 가운데

웃자란 잡초들이

지나는 바람소리에 기웃거린다

뒷산 대숲을 파랗게 굽이치는 참새떼

수취인불명의 하늘을 날아오를 때

나방 한 마리,

소인(消印)처럼 거미줄에 걸려

흔들리고 있다

 

                          ― 윤성택의 <빈집> 전문

 

 

 

보령출신의 젊은 시인 윤성택의 [빈집]이란 시작품이다. 그가 태어난 집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 집이 사라지기 전에는 이미 ‘빈집’이었지 아니할까? 오늘날 시골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들의 고향 집, 모두다 떠나버린 ‘빈집'의 모습을 바로 윤성택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시인은 고향을 떠나 삶의 터전을 향하여 떠나고, 이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도 삶의 터전 어느 곳에서든지 꽃은 또 피었다가 진다. 그래서일까? 시인 홍윤기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이 세상에 남기고 떠났다.

 

이런. 한 송이 모란꽃이 피어 있었구나.

그 한 송이 모란꽃이 이슬을 머금었네.

그 한 송이 이슬 머금은 모란꽃 위에

별빛이 소나기처럼 우 쏟아져 내리네.

내 원, 까맣게 모르고 잠만 잤구나.

그러고 보니 소나기처럼 우 쏟아져 내리는

이 날샐 녘 동트기의 별빛 아래였네.

오, 한 송이 모란꽃이 피어 있었구나.

그 한 송이 모란꽃이 이슬을 머금고

그 한 송이 이슬 머금은 모란꽃이

별빛 받아 붉어 있었네.

내 참, 보았으니 나도 그래야겠구나.

                                       

                                    ― 홍윤기의 <모란> 전문

 

태어난 자리에는 언제나 그리움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보령출신의 시인 이양우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리움에 목말라 한다. 그래서 뒤돌아본다.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나 삶의 허무함이 뒷자락에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솔길 너머에는

마른 갈대가 울고 있다

강 빛 푸른 구비로는

산 여울이 넘실거리고

다복다복 쌓인 가랑잎 소리에

곱게 살아온 허무들이

기지개를 편다.

 

아스라이 널려있는 저 먼 길처에

아버지하고 함께 걷던 유년이 있다

그 시간이 지금도 살아 있을 리 없지만

생각의 찌꺼기 속에 가라앉은 무늬가

얼룩얼룩 강 밑으로 얼비치고 있다

정말 계절이 타오르는 목마른 추억

그 허무가 삶의 뒷자락에 서성이고 있다

 

                                              ― 이양우의 <목마른 추억> 전문

 

우리나라에서는 6번째로 긴 강이며, 남한에서는 한강·낙동강에 이어 3번째로 긴 금강錦江은 신무산神舞山(897m) 북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서천의 하구까지 407.5㎞, 금강 하구둑까지 397.25㎞, 유역면적은 9,885㎢의 큰 흐름을 보여준다. 서천 출신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 및 문화부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예술원 회원 등 한국시단에 큰 족적은 남긴 시인 신석초는 금강의 흐름을 바라보면서 영원함을 꿈꾸었는지 <멸하지 않는 것>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황홀하게도 은밀하게도

내 가슴에 정열이 타고 남은

적막한 잿무덤 위에

예지와 수많은 그리메로써

꾸며진 이 회색의 무덤 위에

페닉스. 오오. 너는 되살아서

 

불과 같은 나래를 펴고

죽은 줄만 여긴 네 부리에

매혹의 힘은 다시 살아나서

나를 물고 나를 쪼으고

연애보다도 오히려 단 오뇌로 나를

또 이끌어 가누나.

                                    ― 신석초의 <멸하지 않는 것> 전문

 

서천 출신의 시인 나호열은 왜 ‘견인이동통지서’를 보고 ‘그리운 집’을 떠올린 것일까? ‘집’은 태어난 근본의 자리요, 그래서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구중궁궐같이 크면 클 대로 누가나 기다리는바 소망과 믿음의 근원지가 된다. 그리고 그 근본으로부터 때로는 멀리 떠나고 싶어하고, 때로는 멀리 떠나 다시 그리워하기도 한다. ‘오십년째’ 아직 떠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거니와 그 또 얼마나 먼 시간을 기다리게 될까?

 

나는

나의 옛집이다

이른

봄나무

얼굴에

꽃 피지 않고

잎 올리지 않고

펄럭이는 그것

 

견인이동통지서

나를 끌고 가겠다는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오십년 째

 

                                ― 나호열의 <그리운 집> 전문

서천 출신 최호일의 시 <저곳 참치>를 보면 그의 상상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일상 중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참치 통조림 깡통이 타고 가던 자전거바퀴에 걸려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을 보고 우주속의 어느 별에 가서 넘어지고 싶다는 것이다. 이 우주적 상상력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아마 삶의 터전을 떠나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저녁 어스름의 고독’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참치를 보면 다른 별에 가서 넘어지고 싶어진다

동그란 깡통 참치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바다를 헤엄쳐 다녔는지 깡통 속에서 살이 통통하게 쪘는지

지느러미와 내장이 없다

참치는 좀 더 외로운 모습으로 진화해 온 듯하다 먼 훗날

비행접시를 타고 바닷가에 내린 어느 외계인처럼

사람들은 내용물을 버리고 깡통을 구워 먹을지 모른다

다 먹고 버린 참치를 차고 노는 아이들

참치를 숭배하는 자세로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오다가

덜커덩 자전거가 어느 돌에 넘어졌다

저 곳으로 넘어지는 참치

저 돌은 어느 별에서 날아 왔을까 돌은

그곳에서 가시를 발라낸 비교적 딱딱한 참치일 수도 있고

저녁 어스름의 근원적인 고독일 수도 있다

아가미가 없는 참치

                                                      ― 최호일의 <저곳 참치> 전문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얼어붙은 겨울의 한낮, 거무튀튀한 절벽의 중간쯤, 볼록 튀어나온 암반 위’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산양을 바라보며 서천 출신의 시인 유승도는 ‘흐느끼지’ 않고, ‘무릎 꿇지 않’으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얻으려 하지 말고 살아라/차가운 마음으로 살아라’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금방이라도 쓰러지며 덮칠 것 같은 절벽의 위세도 아랑곳하지 않고 흐르던 물이 하얀 속마음을 드러내며 얼어붙은 겨울의 한낮, 거무튀튀한 절벽의 중간쯤, 볼록 튀어나온 암반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산양을 보았다 뿔은 하늘을 찌르고 수염은 절벽 아래를 향해 내려뜨린 채 산양은 미동도 없이 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엇 하러 이 산중에 들어왔느냐

한 발만 헛디뎌도 생명의 저 끝이 보이는 곳이 이곳인 줄 몰랐더냐

나 또한 이 벼랑을 의지해서 목숨 한 가닥 붙이고 사느니,

흐느끼지 말아라

 

나를 노려 이 벼랑으로 뛰어오르는 짐승이 있다면

내 두 뿔을 치켜 올리며 그 짐승과 함께 낭떠러지 아래 저 계곡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해도 무릎 꿇지 않으리

목을 물려 끌려가지 않으리

 

네가 왜 나를 바라보고 섰느냐

얻으려 하지 말고 살아라

차가운 마음으로 살아라

 

                                            ― 유승도의 <절벽에 붙어선 산양을 보았다> 전문

서천 출신 시인 이향아는 말한다. ‘기적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날마다 다시 사는 연습’을 계속하면서 ‘눈을 감고 살기를 복습하여서/꿈을 위해 비워둔 항아리처럼/꿈도 비워 깊어진 항아리처럼/기적보다 눈부시게 돌아오기를/옷깃 여며여며 기다리’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기적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퍼낸 물만큼 물은 다시 고이고

달려온 그만큼 앞길이 트여

멀고 먼 지축의 끝 간 데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동이 튼다면

날마다 다시 사는 연습입니다

연습하여도 연습하여도

새로 밀리는 어둠이 있어

나는 여전히 낯선 가두에

길을 묻는 미아처럼 서 있곤 했습니다

눈을 감고 살기를 복습하여서

꿈을 위해 비워둔 항아리처럼

꿈도 비워 깊어진 항아리처럼

기적보다 눈부시게 돌아오기를

옷깃 여며여며 기다리겠습니다.

― 이향아의 <비운 항아리처럼> 전문

 

현대사회는 분명 정신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가운데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서 결코 물질적인 가치를 상실하는 아니다. 오히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할 때 오히려 물질 적 가치를 통한 생산적인 면이 발전할 수 있다. ‘문학’이란 예술 중 정신적 가치를 가장 중요시하는 시작품을 통해 올바른 삶의 가치를 추구한다. 태어난 터전을 뒤로 하고 비록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각자의 삶을 구축하고 있는 보령ㆍ서천의 출향 시인들의 정신적 가치는 향토를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시인들에게도 큰 시적 지성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

 

필자가 굳이 향토시인을 마다하고 출향시인들의 시작품을 통해 향토적 시의 가치를 가늠하여 본것은 오늘날 사색을 무시함으로써 감수성까지도 상실하게 하는 현대 사회를 구원해줄 수 있는 정신적 가치의 한 일면을 그려보기 위함이었다. 갑자기 향토를 지켜가는 보령ㆍ서천의 모든 시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싶어진다. 그리고 천방산에 올라 먼 금강의 흐름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구재기 약력>

•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시집『편안한 흔들림』과 시선집 『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등 다수

• 충남도문화상, 시예술상본상, 충남시협본상 등 수상.

- 2013년 봄호 [시와산문]에 게제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