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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열의 시창작론

시 쓰는 즐거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5. 21. 09:34

 

 

시 쓰는 즐거움 : 시를 두려워 하시나요?

 

1. 왜 시를 쓰는가?

 

 

왜 시를 쓰는가 하는 질문은 너는 왜 밥을 먹지 않고 빵을 먹느냐 하는 질문과 동일하다.

 

시를 쓰는 사람은 음악을 듣는 사람보다 조금 더 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음악을 전혀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음악에 대한 관심도가 시를 쓰는 행위보다 더 높을 따름이지 시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관심이란 말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어떤 경로를 통하던 간에 쓰는 행위, 말하는 행위를 거듭하고 있다. 관심이 없으므로 이런 행위는 하지 않아도 되고 관심이 있으므로 저런 행위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생존은 행위의 복합적 축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관심의 영역 밖에 위치하는 것이다. 생존의 욕구 즉 생존의 안전이 확보되고 난 다음에 인간은 현실에서 보다 고차원적인 예술의 세계로 이행해 나간다. 예술의 세계는 현실계와는 동떨어져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계를 捨象(사상)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현실계를 기반으로 하여 美醜好惡(미추호오)의 1차적 감정을 드러내거나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유추함으로서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이 세상에 드러내는 일을 수행한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 즉 표현은 여러 가지 형태로 구사된다. 불교에서 識(식)이 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바와 같이 음악, 그림, 시나 소설, 무용 등의 형식으로 분화하게 된다.

 

그러므로 왜 시를 쓰는가? 하는 문제는 행위자의 하나의 취향 내지는 태도와 관련지어 질수 있다. 시를 쓰려고 하는 의지는 <언어와의 싸움>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규명하려는 작업을 또는 시가 갖추어야할 형식 - 형식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가 될 것이다 -을 허락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시와 산문의 차이점 : 이승훈 교수(한양대)

 

1. 사고의 단위가 산문은 문장이고 시의 경우에는 행 line이다. (시에는 리듬감이 있다)

2. 산문은 객관적 정보 전달과 실용적 가치에 우선을 두지만 시는 심리적 반응을 요구한다.

 

3. 산문은 사고의 단위가 연대기적이며 시는 연상적 기법을 따른다.

4. 산문에는 리듬이 없지만 시는 리듬감을 가지고 있다.

5. 산문은 의미의 확산을 시는 압축을 생명으로 한다.

 

 

1. 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재구성함으로서 새로운 심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2. 시의 형식은 시인에 의해서 자유롭게 만들어지는 것이지 정형화된 법칙은 없다.

 

3. 시에서 압축이 의미하는 것은 연상과 상상력의 확대와 관련이 있다.

 

3. 언어의 기능

 

(1) 정보전달 기능 (2) 행위요구와 유도 기능 (3) 새로운 체험 제공의 기능

 

4. 시에서의 언어의 의미

 

1. 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관습적 표현이 되어서는 안된다.

* 시는 일상의 언어가 지닌 추상성과 불안전성을 언어를 통해 극복하는 노력이다

* 비유, 묘사, 상징, 이미지 - 개별적 사물에 적합한 이름을 부여한다

 

2. 詩語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3. 하나의 언어는 그 하나마다 지닌 의미가 있다 (배열, 조화: 바둑에서의 무궁한 포석처럼 언어의 무수한 포석을 생각하라.)

 

4. 시는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묘사를 통하여 미적 상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5. 시 읽기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 최 승 호

1.

-시화호의 아름다운 처녀시절을 떠올리며 술 한잔 마시고 베란다 밖을 내다본다. 황량한 밤이다. 누군가 죽은 딸 곁에서 울고 있다.-

 

2.

 

시화호에선 시체 냄새가 난다. 몇 년을 더 썩어야 악취가 사라질지 이 거대한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3.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다 어느 바닷가를 지날 때였다. 마을 사람들이 짐을 꾸려 마을을 떠나고 있었다. 달마가 물었다 「왜들 떠나시오?」마을 사람들이 대답했다. 「악취 때문에 떠납니다」달마가 보니 바다 속에서 대총이라는 큰 이무기가 썩고 있었다. 달마는 해안에 육신을 벗어놓고 바다로 들어간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 자신의 몸, 해안에 벗어놓았던 몸이 사라진 걸 알고는 당황한다. 달마는 결국 자신의 육신을 찾지 못한다. 대신 누군가가 바닷가에 벗어놓은 얼굴 흉측한 육체, 그걸 뒤집어쓰고 중국으로 건너간다.

4.

시화호에선 악취가 난다. 관료들에게서도 악취가 난다. 구역질, 두통, 발열, 숨막힘, 마을 사람들은 떠났다. 개펄은 거대한 조개무덤으로 변해 버렸다. 쩍 벌어진 조개껍질 위로 허옇게 소금바람이 분다. 갯지렁이들도 떠났다. 도요새들은 항로를 바꾸었다.

 

5.

무력감에서도 악취는 난다. 산 송장들, 시화호 바닥에 누워 공장 폐수와 부패한 관료들의 숙변을 먹는 산 송장들, 이것은 그로테스크한 나라의 풍경인가, 시화호라는 거대한 변기를 만드느라 엄청난 돈을 배설했다.

 

달마는 시화호에 오지 않는다. 시화호에 달이 뜬다.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 누가 죽은 시화호를 딸처럼 부둥켜 안고 먼 바다로 걸어나가며 울겠는가.

 

6.

나는 무력한 사람이다. 절망의 벙어리, 그래도 세금은 낸다. 세금으로 시화호를 죽였다. 살인청부자?

 

7.

내가 시화호의 살인청부자였다. 나를 처형해다오. 달 뜨는 시화호에 십자가를 세우고 거기 나를 못 박아다오. 아니면 눈 푸른 달마를 십자가에 못 박아 피 흘리게 하든지.

 

칸나/ 최승호

 

 

칸나에 대해 쓰고 싶었다. 제주도의 여름, 현무암 돌담 아래 피어 있던 칸나, 그 붉은 꽃을 본 후로 칸나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다. 어쩌면 오늘도 쓰려고 애쓰다가 그만둬야 할 지 모른다.

 

내가 칸나인 것처럼 쓰고 싶었다. 칸나 속으로 들어가서 칸도 없고 나도 없는 칸나의 마음으로 말이다. 칸나! 칸나는 말의 저편에 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글이 이렇게 갑자기 벽에 부딪힐 때가 있다.

 

칸나에 대해 쓰고 싶었다. 제주도의 여름, 붉은 칸나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그날, 무슨 일인지 내 혓바닥은 고름들로 퉁퉁 부어올라 있는 상태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나는 칸나를 보고 있었다. 시커먼 화산재들이 치솟고 뜨거운 용암들이 흘러넘치는 한라산 밑에서 나는 꽃 붉은 칸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는 굳어버린 불의 돌, 현무암, 그 거무스름한 돌담 아래 피어 있던 칸나의 붉은 꽃, 오늘도 칸나에 대해 제대로 쓰지 못한 느낌이 든다. 다음에는 칸나에 대해 더 잘 쓸 수도 있겠지.

 

 

 

 

* 성동 - 한양 평생대학 ( 2014.04.29 10:00 -13:00) 강의자료임

*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최 승 호)에 대한 설명은 "언어의 특성 "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