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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사명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7. 19. 23:18

 

 

 

 

노컷뉴스 | 입력 2013.07.19 07:45 | 수정 2013.07.19 17:18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작가의 사명

 

 

◇ 정관용 > 알겠습니다. 다시 소설 얘기로 좀 돌아가서. 어떤 인터뷰 기사를 잠깐 보니까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 열 페이지 읽기가 힘들더라.' 이런 말을 하셨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더라고요. '그들은 1인칭, 내가 주인공인 그런 소설만 쓰더라. 3인칭 주인공 소설을 못 쓰더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 조정래 > 단편에서는 길어야 100매, 짧으면 80매. 나로 이야기를 단순화시킬 수 있습니다. 장편이라는 것은 여러 주인공이 나와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얽혀서 긴 것을 장편이라고 합니다.

 

◇ 정관용 > 그렇죠.

 

◆ 조정래 > 그러면, 여러 주인공이 나오려면. 그들이 다 자율적으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되는데 나 해버리면. 나가 없으면 나머지는 다 죽어버리고 못 움직입니다.

 

◇ 정관용 > 그런데 요즘 작가들은 왜 3인칭 소설을 못 쓸까요?

 

◆ 조정래 > 노력을 안 하는 거죠.

 

◇ 정관용 > 노력?

 

◆ 조정래 > 네. 작가적 수련을 해서 소설을 쓰려면 모든 인물 개개가 다 전형성을 가지고, 생명력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로 쓰는 것보다는 주인공이 네 명이면 네 배 힘들고, 다섯이면 다섯 배 힘든 일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 노력을 포기해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단편 쓰는 식으로만 계속 장편을 쓰니까.

 

◇ 정관용 > 살아 있는 사람들을 여럿 만들어 놔야 되는데. 그만큼의 상상력도 경험의 폭도 없다?

 

◆ 조정래 > 네. 나라고 하는 걸 쓰면 자율성이 없어지고 활동력이 없어지고 개성 있는 인물이 없어지고 스토리텔링이 안 되죠, 단순화되어 버리죠. 그러니까 이야기가 전부 사적으로 흐르고 공감대가 구축이 안 되고 큰 사회문제 전혀 이야기할 수 없고. 이렇게 되어 버리니까 독자들의 기대치가 점점 떨어져서 독자와 결별하는. 그런 사태가 2000년 이후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 정관용 > 그게 다 노력 부족 하나입니까?

 

◆ 조정래 > 그렇습니다. 노력하면 되죠. 그리고 세계에 위대한 작품이라는 걸 다 보십시오. 나라고 하는 주인공으로 되어 있는 소설을 봤습니까? 단 한편도 없습니다.

 

◇ 정관용 > 맞아요.

 

◆ 조정래 > 단 한편도 없습니다.

 

◇ 정관용 > 소설이라고 하는 게, 어떤 분이 그렇게...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스토리가 있고 그다음 표현, 문체 이런 게 있고 또 그 저류에 흐르는 철학적, 문명사적 어떤 고찰, 의식 이 세 가지가 있다. 상대적으로 지금 젊은 작가들은 표현, 문체. 거기에만 매달리는 거군요?

 

◆ 조정래 > 그것도 또 말초신경적이고. 그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역사체험이 빈약하기 때문에, 분단도 모르고 하기 때문에 쓸 거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조정래는 일제시대를 살았습니까? 안 살았잖아요. 그런데 아리랑을 썼잖아요. 그리고 그들과 한세상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래도 안 쓰고 저는 썼지 않습니까? 작가의 눈과 치열성과 노력이에요.

 

◇ 정관용 > 게다가 안 살아보셨던 중국도 이제 쓰셨잖아요.

 

◆ 조정래 > 썼잖아요. 노력해야죠.

 

◇ 정관용 > 일부러 우리 한국 작가의 휴전선 이남으로 갇혀져 있는. 이 작가적 상상력을 국제화하고 싶었다, 이런 말씀도 하셨더라고요?

 

◆ 조정래 >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까지 써온 소설이 전부 무대가 한반도 반쪽.

 

◇ 정관용 > 남쪽이죠.

 

◆ 조정래 > 휴전선 밑인데 이번에 그걸 터트리고 깨면서 중국 거의 전역을 무대로 삼으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고. 어떤 독자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정글만리 읽고 나니까 중국 큰 문명이 있는 거대한 땅을 기행하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좋아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걸 찾아내서.

 

◇ 정관용 > 막 신나세요? 쓸 때.

 

◆ 조정래 > 그럼요. 고통스러운 반면에 황홀한 성취감이 있으니까 글을 쓰죠.

 

◇ 정관용 > 그럼 앞으로도 더 세계화, 국제화 하실 건가요?

 

◆ 조정래 > 소재에 따라서 그렇게 해야 되겠죠.

 

◇ 정관용 > 다음 작품이 혹시 구상돼 계십니까? 벌써.

 

◆ 조정래 > 대략 앞으로 10년 정도 것의 구상을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 10년! 뭐뭐요?

 

◆ 조정래 > 그러니까 한 권짜리 장편을 두 권, 두 가지. 세 권짜리를 두 가지. 그다음에 단편집 하나, 산문집 하나를 앞으로 10년 동안 쓸 거예요.

 

◇ 정관용 > 뭐 이렇게 구체적이세요? 바로 다음 거 하나를 생각하기도...

 

◆ 조정래 > 아니, 이 정글만리도 20년 전부터 생각한 거라고요.

 

◇ 정관용 > 그러면 우선 세 권짜리 두 개. 그건 주제가 어떤 겁니까?

 

◆ 조정래 > 지금 말하면 천기누설.

 

◇ 정관용 > 그래요?

 

◆ 조정래 > 네.

 

◇ 정관용 > 배경이 국내입니까? 중국입니까?

 

◆ 조정래 > 그것은 특히 인간 존재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전세계도 될 수 있습니다.

 

◇ 정관용 > 인간 존재.

 

◆ 조정래 > 네.

 

◇ 정관용 > 세 권짜리 두 개가 다 인간 존재?

 

◆ 조정래 > 네.

 

◇ 정관용 > 제가 자꾸 조금씩 조금씩 천기를 누설시키려고.

 

◆ 조정래 > (웃음)

 

◇ 정관용 > 한 권짜리 장편은 어떤 거예요?

 

◆ 조정래 > 지금 한국의 교육이 정말 엉망진창이 되어 있습니다. 공기업이 다 무너지다시피 했고 사교육비로 연간 20조가 날아가는 나라입니다. 애들은 계속 자살하고 있습니다. OECD 34개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1위인데 그 1위 자살률의 반이 청소년들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다 죽이는 거예요. 아파트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거죠, 성적 때문에. 이렇게 되면 이게 지옥이지 어디 사람 사는 세상입니까? 그래서 그 이야기를.

 

◇ 정관용 > 교육.

 

◆ 조정래 > 내년, 내후년쯤에 한권의 소설로 써보려고 합니다.

 

* 이 글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조정래 소설가가 출연하여 나눈

대담 내용 중에 작가정신과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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