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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해변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2. 17. 10:03

 충남 태안해변길

[중앙일보] 입력 2013.02.15 04:00 / 수정 2013.02.15 04:00

푹신한 오솔길, 포실한 황톳길 … 되살아난 바다따라 300리

 

 

신두리 해안사구에 조성된 데크로드를 따라 걸었다. 모래가 쌓이고 그 위에 다양한 사구생물이 자리를 잡기까지 1만5000년이 걸린다.


충남 태안에는 ‘치유의 길’이 있다. 태안해안국립공원 안에 조성된 태안해변길이다. 깎아지른 해안절벽, 다양한 생물의 터전인 너른 갯벌, 1만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형성된 모래언덕, 해송이 빽빽이 자라 있는 야트막한 동산 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태안해안은 한반도 해변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해변길은 바로 이 바닷가를 따라 만들어졌다.

 week&은 59km에 달하는 태안해변길 중 원북면 학암포~신두리해변으로 이어지는 바라길(12km)의 일부와 신두리~소원면 만리포에 이르는 소원길(22km)을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6년 전 사고가 떠올랐다. 인간의 실수로 원유 1만2547 kL(7만8918배럴)가 태안 해역으로 유출돼 안면읍 내파수도에서 북단의 가로림만에 이르는 해안선 167㎞가 기름으로 뒤덮였던 악몽 같은 그 사건 말이다. 123만 명의 자원 봉사자를 포함해 연인원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제에 나섰고 이런 노력 덕분에 현재 태안은 사고 전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다. 2012년 태안해안국립공원 방문객 수는 전년에 비해 34% 증가했다. 전국 국립공원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태안은 이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씻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상처에서 회복한 태안은 이제 치유·재생·희망의 상징이 됐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위안과 용기를 주는 태안해변길이다.

글=홍지연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의항해변으로 향하던 길에서 본 바다. 2007년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 때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밑으로 내려가 갯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았다.


 

신두리 해안사구 뒤쪽에는 람사르 보호습지로 등록된 두웅습지가 있다.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며 걷는 길


여정은 1구간 바라길 끝부분에서 시작했다. 신두리 해안사구에서부터 바라길 구간이 끝나는 신두리 해변 중앙탑까지는 약 3㎞다. 여기서 걷기 시작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신두리 해안사구(천연기념물 제 431호)와 사구 뒤에 형성된 두웅습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해안사구는 바닷물이 닿지 않는 해안가에 형성된 모래언덕을 말하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신두리 해안사구가 유일하다.

 해양보호구역 출입통제소에서부터 신두리 해안사구까지는 해송림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었다. 고운 모래와 솔잎이 쌓인 길은 폭신폭신했다. 아기자기한 해송림을 통과하자 해변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나왔다. 여기서 길은 두 개로 갈린다. 평소에는 신두리 해변을 따라 걸을 수 있지만 만조 때는 신두리 해안사구를 가로지르거나 사구 뒤쪽으로 난 길을 이용해야 한다. 신두리 해안사구에는 생태공원 조성사업이 한창이었다. 방문객이 증가하면서 사구가 훼손될 위험에 처하자 공원화하기로 결정했다. 데크로드를 깔아 정해진 곳으로만 방문객이 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데크로드 조성 공사는 오는 20일께 마무리된다.

 물이 다 빠져버린 바다는 갯벌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갯벌 반대쪽 해안가에는 사막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모래 언덕이 펼쳐졌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라는 신두리 해안사구는 길이가 약 3.4㎞, 폭은 가장 긴 쪽이 1.3㎞에 달한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해안가와 가깝게 형성된 사구 표면에는 자글자글한 주름 같은 물결 모양이 표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륙 쪽에 형성된 해안사구는 해안가에 가깝게 만들어진 것과는 또 모양이 달랐다. 형성된 지 1만5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륙 쪽 해안사구에는 좀보리사초, 갯그렁, 순비기나무, 갯메꽃 등 온갖 사구식물들이 무성히 자리하고 있었다. 모래 언덕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해안사구를 통과해 두웅습지로 향했다. 멸종위기 직전에 놓였다는 노랑부리 백로가 맞아줬다.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귀한 새를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 외에도 왜가리·기러기 떼가 해안사구 주변을 서성거렸다. 두웅습지는 사구 배후에 형성된 습지로 길이는 약 200m, 폭 100m에 이른다. 규모는 작아도 311종에 달하는 다양한 식물의 터전이다. 천연기념물 1종인 붉은배새매와 멸종 위기에 처한 금개구리 등이 살고 있다. 신두리해변 중앙탑 쪽에서 바라길 구간이 끝나고 제 2코스 소원길 구간이 바로 이어졌다.

우리 손으로 회복해낸 자연

 

 만리포해변에 서 있는 노래비.

 

바라길이 해변을 끼고 걷는 길이라면 소원길은 바다를 조망하며 걷는다. 신두리에서 시작된 길은 서해 쪽으로 삐쭉 튀어나와 있는 큰재산으로 이어졌다. 포실포실한 흙을 밟으며 전망대에 오르자 따뜻한 바닷바람이 맞아줬다. 큰재산은 동쪽부터 신너루해변, 안태배해변, 구름포해변, 의항해변 등에 둘러싸여 있는 야트막한 동산이다. 신너루해변과 안태배해변에는 2년 전에 전복, 굴, 다시마 양식이 다시 시작됐다.

 2012년 12월 국토해양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태안 지역 생태계는 80~90% 회복이 됐다. 바닷물의 기름기 농도와 생물체 내의 유해물질 농도 등 여러 지표들도 사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편견이 문제였다. 2007년에는 2000만 명이 태안을 방문했지만 2012년 9월 말에 조사한 결과 677만 명으로 집계됐다. 3분의 2가 준 것이다. 수산물 거래량은 2007년 1만4146t에서 2011년 7354t으로 반 토막이 났다. “고기가 안 잡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태안 거라고 하면 깨끗하다고 믿고 먹었는데 사고 이후에는 편견이 생겨서….” 이날도 바다에 나가 간자미를 잡았다는 정낙민(52) 선장이 말끝을 흐렸다.

 

방근제 황토길.

 태배전망대에 오르자 동쪽으로는 앞서 걸었던 신두리 해변이, 서쪽으로는 너른 서해가 훤히 펼쳐졌다. 태배전망대부터 의항해변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2007년 유조선 사고 때 자원봉사자들이 걸었던 길이다. 큰재산에서 내려와 의항해변으로 향했다. 의항마을은 2007년 유조선 사고 이전에는 굴 양식장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굴 양식을 못하고 있다. 마을을 지나면서 어민 무리를 만났다. 오전 내내 갯벌에 나가 바지락 조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많이들 캐셨느냐는 물음에 여인들은 엷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의항해변을 빠져나와 백리포 부근을 지나자 소나무 숲에 접어들었다. 숲 한복판은 한낮에도 어두웠고 공기도 달랐다. 좁다란 길 양옆으로 철조망이 처져 있는데, 철조망 안쪽은 천리포 수목원 땅이다. 길이 난 곳도 원칙적으로는 수목원 부지인데, 수목원 측이 배려해 길을 내도록 해줬다.

 천리포 수목원 연수원에서 등산로를 따라 국사봉(205m)에 올랐다. 전망대에 서자 신두리부터 백리포·천리포·만리포 해변이 전부 보였다. 국사봉에서 내려온 길은 만리포 해변으로 이어졌다. 깔끔한 포장도로가 만리포 해변을 따라 조성돼 있었다. 도로를 따라 횟집·음식점들도 줄을 이었다. 한 식당 앞에는 정갈하게 손질된 우럭이 바닷바람에 몸을 말리고 있었다. 떨어지는 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 연인, 유모차에 푹 파묻혀 앉아 졸고 있는 꼬맹이, 나이 지긋한 노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만리포 해변을 바라보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길 정보=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서산IC로 나온다. 서산·당진·태안 방향으로 32번 국도를 타고 40㎞ 정도를 달리면 태안군에 접어든다. 태안군청을 지나 603번 도로를 타고 20㎞를 더 달리면 신두리 해안사구다.

 

 

태안해안국립공원 내에 조성된 태안해변 걷기 길은 모두 59㎞, 4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북쪽에서부터 바라길·소원길·솔모래길·노을길로 구분된다. 2011년에 바라길과 소원길이, 지난해에 솔모래길과 노을길이 개통됐다. 바라길(12㎞)은 원북면 학암포부터 시작해 신두리 해변에서 끝난다. 바라길에서 바로 연결되는 소원길은 22㎞로 가장 길다. 신두리 해변에서부터 소원면 만리포까지다. 남면 몽산포부터 드르니항까지는 솔모래길(13㎞), 안면읍 백사장항부터 꽂지에 이르는 노을길(12㎞)이 있다. 코스 대부분이 바다를 조망하도록 만들어졌고, 바라길은 아예 해변에 딱 붙어 걷는 구간이 많다. 올해는 꽂지에서 황포항에 이르는 샛별길과 황포항에서 고남면 영목항에 이르는 바람길 구간이 추가된다. 전 구간이 개통되면 태안해변을 따라 약 120㎞에 달하는 걷기 길이 완성된다.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taean.knps.or.kr) 041-672-97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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