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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개인 문제가 아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2. 4. 22:16

 

자살은 개인 문제가 아니다

 

이민수 고려대병원 우울증센터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입력 : 2013.01.15 23:30 | 수정 : 2013.01.16 08:52

사회 다원화되고 복잡해졌지만 개인을 아우르는 제어 장치 부실…사회 통합·안전망 미비가 자살 불러… 물질 외의 가치 돌아봐야 할 때

 

  요즘 자살이 너무 흔하다. 툭하면 터져 나오는 게 누군가의 자살 소식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매일 44명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현대인은 하루 중 신문을 읽는 데 약 39분을 보낸다고 하니, 이 신문 지면을 살펴보는 중에도 어디선가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는 셈이다. 자살이 너무 익숙해진 세상이 됐다.자살을 시도한 우울증 환자는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편해질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한다. 과연 그럴까. 죽은 뒤에는 편안함·후련함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남은 사람들은 '대체 왜?' 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되풀이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때론 자살한 사람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많은 이가 자살을 고통 해소와 문제 해결 방안으로 생각하는 듯하여 안타깝다.

 

  자살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여러 부류가 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소속감을 잃어버리면서 시도하는 자살은 이기적인 자살이다. 학력과 지위가 높은 사람 또는 이혼·독거자 등의 자살이 여기에 속한다. 이타적 자살은 사회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할 때 발생한다. 민주나 정의, 종교적 신념을 외치며 분신·투신하는 경우가 이 범주에 속한다.

 

  가치관의 붕괴와 혼돈에서 오는 아노미적 자살도 있는데, 이는 대개 파산이나 실직을 경험하고 나서 하게 된다.문제는 이 모든 것이 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즉 사회 통합 기능의 부실에서 온다는 것이다. 자살의 원인을 경제적 어려움, 학업·직업·결혼생활의 실패, 대인 관계의 갈등, 신체 질병 등에서 찾지만 과거에도 그런 어려움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럼 왜 예전보다 자살이 증가하는가. 결국 사회가 다원화하고 복잡해졌지만 사회가 개인을 적절하게 아우르고 자살하지 못하게 하는 제어 장치를 제대로 두지 않은 탓이다.따라서 사고의 변화가 필요하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사람, 실제로 자살한 사람을 나약하고 의지가 부족하다며 몰아붙이고 뭔가 부족한 사람 취급을 하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자살 책임을 그 가족이나 배우자에게 전가하는 분위기 역시 변해야 한다. 이제 자살을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통합과 안전망 문제로 봐야 한다.정신 건강 의학계에서는 자살 가능성이 큰 환자를 선별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자살을 예방하는 데 힘써 왔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사회단체·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복지 시스템과 실업 대책이 자살 예방과 연계되어야 한다. 학교의 정신 보건 교육, 알코올과 약물 관련 법안 개선, 정신 상담 제도 활성화, 건물·교각의 자살 예방 기준 강화, 자살에 쓰일 위험성이 높은 도구의 접근 제한 등 세세한 것을 모두 논의해야 한다. 언론도 유명인의 자살을 선정적으로 다루지 말고 자살 예방 활동이나 자살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자주 소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어느덧 예전보다 크게 나아진 경제적·문화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자살이 늘어나는 것은 물질적·외형적 가치만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이제 생명의 소중함과 내적 가치의 귀중함을 돌아봐야 한다. 삶이 언제나 살 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나 우울함과 고통만 있지 않다는 것도 느끼며 산다. 하지만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 주위의 누군가에게 "나 지금 많이 힘들다. 괴롭다"고 하면서 손을 내밀 수 있고,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 손은 당신이어야 하고, 사회이어야 하고, 국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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