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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는 사람의 태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 29. 23:52

 

문학하는 사람의 태도

 

방민호(서울대 교수)

1.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진정한 글쓰기를 위한 고민의 자리에 이렇게 문학적인 이력이 보잘것없는 저를 불러 주신데 대해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평소에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학 강단에서 선생님과 학생들,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문인들, 아니면 출판사 사람들 정도입니다. 이번에 만나뵙게 되는 분들은 여러 면에서 저와는 다른 상황에서 문학을 하고 계시는 분들인 듯하여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학을 한다는 면에서는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드릴 말씀은 네  개의 짧은 이야기로 모자이크된 하나의 작은 그림과 같은 것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 직업으로서의 문학

 

한국현대문학 연구자로 이름 높으신 김윤식 선생은 저의 은사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저는 1984년에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저희 때부터 계열별이 아니라 과별 모집이었고 따라서 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학생들이 많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공부는 뒷전인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1학년때 김윤식 선생이 맡으신 강의는 『근대문학의 이해』라는 것이었습니다. 현대문학이라고 하지 않고 근대문학이라고 하면 벌써 말이 어렵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 첫 학기에 선생께서 즐겨 하신 말씀은, 여기는 운동장이 아니라 공부하는 곳이다, 운동하려면 운동장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이 어렸던 저는 그 말을 일견 옳게 생각하는 중에도 다른 한편으로 일종의 반감이 슬며시 일었습니다. 학생으로서 역사와 시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공부만 잘 하면 된다는 것인가.   

그때 선생이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 운운 하셨는데 그때는 별 관심이 없다가 나중에서야 그가 쓴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업에의 헌신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학문을 하는 데서 교수가 되는 행운은 꼭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구비해야 할 태도에 관해 역설하고 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것에 어떻게 임해야 할 것인가? 직접 인용을 통해서 일찍이 김윤식 선생이 받아들이셨고 나중에 저 자신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베버의 견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존경하는 참석자 여러분! 학문영역에서는 일에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만이 ‘인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학문영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알고 잇을 정도로 위대한 예술가라면 그는 자기 일에, 오로지 자기 일에만 헌신하는 것 이외에는 결코 다른 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괴테 정도의 인물이라도 자기 ‘생활’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려고 제멋대로 했다면, 예술에 관한 한은 그 업보(業報)를 받았을 겁니다. …… 학문의 영역에서 매우 확실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입니다. 즉 자신이 헌신해야 할 일에 그 지휘자로서 무대에 나타나는 사람, 어떻게 하면 자신이 단순한 ‘전문가’와는 다른 어떤 존재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 사람, 이런 사람은 결코 ‘인격’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오늘날 대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어디에서나 그 결과는 보잘것없으며, 또 그렇게 묻는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그 대신 임무에, 오직 임무에만 내적으로 몰두하는 것은 그를 그 자신이 헌신한다고 주장하는 일의 절정에 오르게 하며 또 그 일의 가치와 함께 그 자신을 드높여 줍니다. 이것은 또한 예술가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막스 베버, 이상률 옮김, 『직업으로서의 학문』, 문예출판사, 1994, 23-4면)

 

위의 인용문은 참으로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베버는 이것을 내적인 헌신이요 몰두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글을 쓴다는 행위는 상대적 우위에 서려는 욕망이 아니라 글을 써야 한다는 “임무”에 대한 충실성에 바탕한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양식, 즉 모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3. 생활 처리와 예술 처리

 

제가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오늘날 한국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갖추지 못한 덕목이 무엇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은 선생이 『1950년대』(민음사, 1973)라는 책에서 하신 말씀 같은데 지금 생각이 납니다. 삶을 문학적으로 사는 사람은 그의 문학은 정작 빈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정말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삶을 문학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문학한다는 기분에 취해서, 문단적인 교류를 쌓고 있다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맛보면서, 문학적인 생활이 선사하는 음주가무와 음풍농월에 휩싸여 있을 때 정작 그 사람의 문학은 빈곤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문학은 명백히 하나의 “직업”으로서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내적인 헌신과 몰두를 요구하는, 엄연한 현대적 제도의 하나가 아닐까요?

얼마 전에 모모한 문학상의 후보가 된 작가 분과 대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내이자 며느리고 어머니이면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작가로서 활동하는 것과 그 밖의 생활을 해나가는 것 사이에 모순이 없을 수 없을 텐데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나가고 계십니까? 지금까지는 생활이 우선이 되다시피 했고 글을 그 남는 시간에 어떻게든 쓰려고 해왔지만 앞으로는 다르게 하려고 한다고 그분이 말씀하셨을 때 저는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저명한 문학상의 후보가 된 것은 일종의 행운일 테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남다른 재능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식의 재능이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은 그 성취 과정에서 재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문학에 비해 훨씬 높습니다만, 문학은 재능도 재능이지만 글을 쓰는 일이 하나의 “직업”이 되고 나아가 매일 수행해야 하는 “노동”이 되는 사람들의 담당 분야입니다. 사실은 음악이나 미술도 일정한 단계를 지나치게 되면 문학과 똑같은 상황 아래 놓이게 됩니다.

예술을 앞에 놓고 살리에르냐 모차르트냐 하는 이항대립(二項對立)식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다들 믿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게으른 모차르트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 발자크는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 자고 밤에 일어나 밤을 새워 다시 집필을 하는 생활을 49세까지 계속해 나갔습니다. 니체는 하루에 네 시간인가 이상은 절대로 일을 할 수 없는 병약한 체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지독한 노동과 같은 집필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전기 작가로 잘 알려진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의 『천재와 광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김윤식 선생은 새벽에 일어나 쓰고 오후에 가르치고 저녁에 읽는 일을 계속해 나가셨다고 하는데 다 전설과 같고 다만 제가 대학원 다닐 때 보면 새벽에 선생의 연구실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본 적이 많았습니다.

또한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함께 수록된 부록을 보면 박경리 선생에 관한 이야기가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멋있는 사람은 박경리 씨. 안 빗고 안 지진 머리, 신경만이 살아 있는 듯한 피부, 굵은 회색 쉐타 바람, 검은 타이트 치마. 여학생같이 소탈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산문고, 1968, 267면)

 

박경리 선생이 일생 동안 『토지』를 비롯한 원고더미 속에서 살아온 분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박경리 선생은 담배를 태우고 커피를 많이 드십니다. 그래도 남편과 아들을 잃고 한쪽 가슴마저 떼어낸 고통은 다 풀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글을 쓰다 밭일을 하고 다시 글을 쓰면서 오랜 세월을 견뎌왔습니다. 그런 박경리 선생을 생각하면 위대한 문학이란 역시 운명의 도움을 얻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맞닥뜨린 운명이 아무리 가혹하다 해도 그러한 운명을 한 자루 펜으로 견뎌내고 헤쳐 나가겠다는 삼엄한 의지가 없다면 가혹한 운명은 운명에 그칠 뿐 문학을 낳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원하는 생활과 문학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생활 처리와 예술 처리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생활 처리를 다 하고 난 후 예술 처리에 들어가는 유형의 문학인을 경멸한다고 이미 말씀드린 셈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제가 예로 든 작가와 예술인들은 예술 처리에 전념하면서 생활을 버린 사람들에 가깝습니다. 그들에게 생활이란 예술을 위한 한갓 조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러한 방식으로 생활 처리를 하고 예술 처리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위대한 사람들의 이상적 삶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생활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의미 없는 사건일 뿐이었습니다. 생(生)에서 사(死)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작품만이 의미 있는 것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모든 문학인, 문학 지망인이 이런 운명적 행운을 맛볼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문학인, 문학 지망인이 생활 처리와 예술 처리 사이에 놓인 협로(狹路)를 따라 위태롭고 긴장된 삶을 살아갈 의지와 인내를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생활 처리에 치우쳐 예술 처리를 방기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예술을 하고 있다는 기분에 취해서 살롱을 드나드는 것처럼 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4. 본질을 향한 물음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게 되는 것은 제가 요즘 그녀의 글에 대해서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에 전혜린에 한 번쯤 빠져 보지 않은 문학도가 있을까요? 시간이 오래 지나서 다시 그 책을 보니 옛날만큼 몸서리가 쳐지는 ‘실존의 감각’은 부족했습니다. 제가 벌써 오십이 가까우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유작(遺作)을 모아놓은 구성 탓에 책이 다소 산만해 보이는 점도 있었고 무엇보다 독일, 뮌헨, 슈바빙에 관한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느낌도 컸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새로 얻은 인상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7녀1남 중의 장녀였던가 봅니다. 아버지가 그녀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공주처럼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는 전근 다니는 아버지를 따라서 신의주에 가서 2년인가를 보냈더군요. 신의주라는 말이 제게는 먼 이국땅처럼 들렸습니다. 1934년생으로 1965년에 자살했는데 그 무렵 쟝 아제베도라는 남자를 무척 사랑했는지 편지 두 통이 함께 실려 있었습니다. 불현듯 전혜린의 평전을 새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났는데도 역시 첫 번째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이라는 글인데 이것과 이미륵(李彌勒, 1899-1950)의 무덤을 찾아갔던 이야기를 제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수필선집에 넣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은 그녀가 뮌헨에 처음 도착했을 때를 쓴 글로서 이 글은, 내가 독일의 땅을 처음 밟은 것은 가을도 깊은 시월이었다, 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저는 일종의 절대 고독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영원한 물음 ‘당신은 어디서부터 왔는가?(Woher sind Sie?)’에서 도망하고 싶었고 황색 비젼을 나는 쫓고 있었다. 낮이나 밤이나 우울한 회색과 안개비와 백일몽의 연속이었다. 악몽처럼 혼자라는 생각이 나를 따라다녔고 절망적인 ‘고국까지의 거리감(Pathos der Distanz)’에 나는 앓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청산문고, 1968, 22-3면)

 

전혜린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두 물음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응당, 당신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라는 물음에 시달렸겠지요. 그때 한국이라는 나라는 존재조차 희미했을 테니까요. 그녀는 당연히 고국까지의 거리감, 을 앓고 있었겠지요. 자기 나라를 떠나 오래 타국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지독한 향수병을 앓지 않는 사람은 드문 법이니까요.

그러나 이 두 개의 문제를 독일어로 표현하여 Woher sind Sie?, Pathos der Distanz, 라고 써놓으면 뭔가 범상한 것과는 다른 의미가 생겨나는 듯합니다. 그것은 한국을 떠나 독일의 뮌헨에 도착한 전혜린이라는 여인이 맞닥뜨린 물음이나 명제가 아니라 어디에 누가 살고 있든 한 번쯤 독하게 묻고 앓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들로 변해 버립니다.

저는 이 독일어를 이렇게 바꾸어 놓고 싶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나? 진정한 나의 고국은 어딘가?

문학을 하는 사람은 자기를 둘러싼, 너무나 낯익은 생활이라는 것에서 벗어나 식구도 이웃도 없는 단독자가 된 심정으로, 눈 내리는 겨울 들판에 홀로 선 나무와 같은 심경으로, 나는 어디서 왔나? 진정한 나의 고국은 어딘가? 묻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어디서”라는 말과 “고국”이라는 말은 모두 메타포입니다. 그것은 문학을 하는 사람의 마음의 고향이며 이상향입니다. 그것은 바로 문학을 하는 사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해 나가는 원리로서의 물음입니다.

원리로서의 물음은 생활 이전에 생활을 통어(通御)하는 힘이자 의지입니다. 원리로서의 물음은 발견하고 관철해야 하는 것이지 변형시키고 타협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박경리 선생은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저 강 너머 피안을 향해 한 치도 나아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배를 띄우고 그곳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왜, 무엇을 위해 살며 그 삶의 궁극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문학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질문을 한시라도 놓쳐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형이상학에서 벗어나 세속의 물질주의와 낡은 관습에 마음과 몸을 맡기는 순간 참된 문학은 한숨처럼 우리 곁에서 날아가 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이 우리를 핏줄과 학연, 지연과 경제와 통념, 상식에 묶어두려 할 때 우리는 그것에서 온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단독자의 근원적 물음 앞에서 서지 않는다면 본래 타성에 젖어들기 쉬운 인간종의 하나일 뿐인 우리는 문학을 지탱해 나갈 힘과 의지를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5. 무엇을 써야 하나

 

근원적인 물음 앞에서라면 우리는 늘 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음은 자명합니다. 동시에 중요한 것은 신의 제단 앞에 몸을 던진 사람은 대승적(大乘的)인 삶을 지향해야 하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문학인들은 이러한 시각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문학은 이제 더 이상 계몽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문학은 거대담론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문학은 삶의 작은 진실들, 일상의 삶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부담 없이 읽고 즐길 수 있는 문학, 현실의 압력에서 벗어나 유쾌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문학이 필요하다 등등……

다들 그 자체로서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문학사에서 1980년대가 특히 정치적 문학과 거대담론의 시대였다고 해서, 또한 한국현대문학이 정론적 문학이라는 고질적 체질을 갖고 있다고 해서 오늘의 한국문학이 보여주는 왜소한 양상이 변론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된 것은 다들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존 쿠체(J. M. Coetzee, 1940-현재)라는 작가였습니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난 백인계 작가로서 서구 중심적 가치관과 인종차별의 비인간성과 위선, 허위를 적나라하게 묘파해 온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것이 절대적 가치 척도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세계 문학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척도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문학은 아직도 한국문학계에서 줄곧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는 거대담론과 계몽주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과연 오늘의 세계문학은 우리가 이미 벗어난 우물 속에서 과거의 놀이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그 정반대일 가능성이 오히려 높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문학이 생활과 일상의 중력장에서 벗어나 초연(超然)한 눈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을 넓게 살피고 성실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러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을 비난하고 웃음거리로 치부하는 풍토 속에서 어떤 위대하고 심원한 문학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지금 환멸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모두들 어느 정도 수긍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올해 하반기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말의 적절성을 반신반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저는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이 환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일군의 커다란 민족 집단이 지금 깊은 정신적 타락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누가 과연 부정할 수 있을까요? 물질에 민감하고 기민한 우리의 마음은 경제를 위해서, 국익을 위해서, 라는 등의 단서를 달아 강자의 편을 들고 약자를 유린하는 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똑같은 일이 나라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잘 살기 위해, 내 식구, 내 동네, 내 지역, 내 계급, 내 당파를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투사들’과 ‘투사들’의 싸움과 대립으로 인해 나라는 영일(寧日)이 없습니다. 타자의 옳지 못함, 깨끗하지 못함을 들어 자기를 정당화하는 타락한 법률사의 기운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은 지금 맑고 투명하지 못합니다. 잔뜩 흐려 있습니다. 그러한 기운을 쏘여 동질화되어 가는 저 자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때 문학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문학인은 과연 무엇을 써야 할까요? 근원을 향한 우리의 물음은 절벽처럼 다가선 시대의 혼탁(混濁) 앞에서 더 나아갈 줄을 모릅니다.

저는 생활이, 생활에의 의욕이 문학하는 사람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둘러싼 생활이라는 것을 경계하고 좁은 소아(小我)를 넘어 대아(大我)의 문학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문학, 계몽적인 문학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면서 이상을 잃지 않는 문학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과연 한국의 문학은 이러한 문학을 다시 획득할 수 있는 걸까요? 지금 저는 생활과 일상을 부정하는 것도, 생활과 일상에 뿌리박은 문학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상대화하면서 보다 본질적인 물음을 향해 나아가는 문학인의 힘과 의지에 관해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시우주 시낭송회 cafe.daum.net/siwoojoo 특강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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