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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황인숙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 15. 18:45

새해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의미를 두고 해봄직한 일이 뭐가 있을까? 한번 떠올려보자. 해돋이 보기, 떡국 먹기, 지인에게 편지쓰기, 자신과 대화하기 등 저마다 다른 여러 이벤트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래도 좀 더 가슴의 일렁임을 느껴보고 싶은 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문학집배원’ 황인숙 시인의 시 배달 감상이다. 새해 인사 삼아 누군가에게 추천하거나 대신 신청해 선물해도 좋겠다. 2013년의 시작을 시심과 함께 맞이하는 건 어떨까? 지금 막 업데이트된 콘텐츠 안에서든 이전 글에서든, 마음에 닿는 구절이 넘쳐날 것이다. 지금 당장 문학집배원에 접속해 보자.  
황인숙 시인은 지난 2012년 5월부터 문학집배원 시 배달을 맡아 지금까지 여러 편의 시를 추천해왔다.

“살뜰한 시 읽기가 영혼의, 혹은 감정의 근육을 건드리고 키워주기를 소망하면서 당신은 중얼거린다. 아직 말초신경은 살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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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친근하게 첫 인사를 건넸던 시인은 2012년 끝자락에도 시 배달을 해왔고, 2013년을 시작하며 인터뷰로 독자와 시 밖에서 또 만났다. 문학집배원 이용자들을 대신해 황인숙 시인의 오래된 독자이자 문학집배원 이용자로서 옷을 두껍게 껴입고 뒤뚱거리며 황인숙 시인을 뵈러 갔다.  
지난 1월 4일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 날, 4호선 숙대입구 부근에서 ‘영혼의 근육’은 물론 몸의 근육까지 늘어났으리라 믿으며, 황인숙 시인의 시 배달 관련 얘기를 세심히 듣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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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문학집배원 시 배달 시를 잘 읽고 듣고 보고 있습니다. 시를 고를 때 중점을 둔 부분이 있었는지요?  

 -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눈에 뜨인 시를 골랐어요. 어떤 때는 시집이 없으면 서점에 가서 사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빌려보기도 하고, 알라딘에서 보기도 했죠. 하지만 항상 고루 안배를 하려고 생각했어요.

Q. 국내 시나 해외 시, 젊은 시인의 시, 국어 교과서에 보던 현대시 등 굉장히 여러모로 다양한 시들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 한쪽에 치중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 사람 시가 좋은데 덜 소개됐다 싶은 시, 덜 알려졌던 시를 고르려고도 했고, 그래서 더 의도적으로 젊은 세대의 시집들을 보려고 했죠. 그런데도 내가 뜻밖에 너무 등한히 한 건 없는가 싶을 때도 있어요.    

Q. 문학집배원뿐 아니라 한 일간지에서도 정기적으로 시를 소개하고 계신데요. 각 시마다 시의 문학적 배경, 시와 관련된 다른 문화 얘기, 시인의 사견 등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얻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많은 것들을 한 데 계속 담아내고 계신데요. 힘들진 않으세요? 

- 시인 세대, 시인 전체를 소개하는 방향으로 나가려고 해봤어요. 그러다보니 역량도 모자라고, 앞으로는 해당 시 한 편만 읽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는 생각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 싶어요. 이 기회에 독자에게 시 세계, 시 안목, 시 정보, 시 지식을 넓혀 주자 어쭙잖은 사명감을 버리고, 가볍게 나가볼까 생각도 해요. 

Q. 시를 고르는 기준이 있었나요? 

- 기준으로 내세운다기보다 두 가지 생각을 하면서 시를 고르고 시에 대한 집배 글을 썼어요. 확산에 대한 욕망과 함께 시를 쉽고 재밌게 퍼뜨리는 게 어떨까 싶은, 조금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예요. 쉽고 재미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이 글에서 시의 정수, 시의 깊이를 또 알게 해야 옳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Q. 소개하는 시인에 대한 개별적 근황이 배달 글에 드러날 때도 재미있었는데요. 그럴 땐 일일이 해당 시인에게 연락을 하셨는지요?  

-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때그때의 얘기가 글을 쓰다 맞아떨어지면 적었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확실한 정보이고 내용이 시시할지언정 나쁜 말이 아니다 싶으면 썼어요. 
 
Q. 시 추천 때문에라도 더 많은 시집을 읽으셨을 것 같아요. 

- 제일 처음에는 ‘문학의 서민, 시의 서민들 것을 소개하자’ 이런 마음으로 읽었어요. 그러다보니까 아무래도 알려지지 않은, 좋은 시인을 소개하려고 어떻게든 찾아 읽으려고 했어요. 
내 욕심은 ‘어떤 시 한 편을 발견하면 그 시집 한 권이라도 찬찬히 다 읽고 쓰자’였거든요. 그런데 문학집배원 시 배달을 시작한 다음에 시집들이 정말 집에 많이 오는 거예요. 시집에 치어 있어요.   

Q. 시 추천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는 데에 대해선 마음이 어떤가요?(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사용하지 않는 황인숙 시인에게 인터넷에서 여러 사람들이 그의 시 집배 글을 리트윗하고 공유하고 있는 상황을 전해 드렸다.) 

- 기쁘죠. 문자 그대로 집배를 할 뿐인데 그래도 사람들이 시를 읽는 드물고 귀한 시간을 줄 수 있으니까요. 문학집배원 배달을 받는 사람들이 ‘시의 매력에 맛을 들이면 좋으련만’ 하는 바람이 있죠.  

Q. 문학집배원 플래시 영상을 매번 보시는지요? 낭송이 좋았던 시나 낭송에 더 바랐던 게 있다면요? 

- 매번 봐요. 좀 못 읽더라도 시인 목소리로 읽힐 때도 좋았고, K 시인이 읽었을 때도 기억에 남아요. 남자 페르소나를 여자가 읽거나 여자 페르소나인데 남자가 읽거나 그럴 때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Q. 시를 어떻게 낭송하는 게 가장 좋은 걸까요? 

- 씌어 있는 그대로, 자신의 독해력으로 해독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어릴 적 마음 그대로 읽으면 될 것 같아요. 

(참고 : ‘어릴 적’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황인숙 시인에게 개별적으로 어릴 적 시낭송대회에 나갔던 추억을 말씀드리며 시인의 마음을 어떻게 다른 사람이 다른 목소리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에피소드를 얘기한 까닭이다. 특히 음악을 고를 때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는데, 황인숙 시인은 어떤 시의 경우에는 아예 음악이 없는 경우가 낭송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음악과 잘 어울리는 낭송을 들었을 때 탁월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독자들 역시 문학집배원 시를 들을 때면 시인이나 성우, 배우의 목소리뿐 아니라 배경음악에 시 감상 느낌이 많이 좌우될 수 있는데 현재 문학집배원의 시 배달 음악은 해당 부서에서 패키지로 구입한 곡들 중 제작진이 선정해 작업을 하는 시스템이라 한다.)

Q. 황인숙 작가님은 특히 산문쓰기에서도 항상 감동을 주고 계신데요. 시를 쓸 때와는 다른 기분이라거나 다른 상황에서 쓰는 건가요? 

- 말하자면 잡문인데, 제대로 된 에세이를 쓰고 싶은 욕심도 있죠. 그런 에세이 한 편 한 편을 한 권으로 하고 싶기도 해요. 내 게으름, 재능 없음이 그때그때 청탁받은 것을 잡문으로 쓴 거예요. 그런데 이건 시감으로 좋겠다, 이건 에세이로 좋겠다, 실제 분류해놓기도 하죠. 대체로는 메모를 해요. 이건 시를 써야겠다 싶으면 시라고 써놓고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더 집중하고, 더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죠. 에세이 쓸 때 적당한 구석에 집어넣어서 쓰기도 하고 그럴 때도 있어요. 대체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면 산문거리로 하고, 에스프리가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시감으로 해요.  

Q. 올해 새해에 새 책 발간 계획이 있나요? 

- 아직 원고를 넘긴 건 아닌데, 봄이나 초여름쯤 시집을 낼 생각이에요. 지난해 5월에 넘긴 에세이가 이번 달 열흘이나 보름쯤에 나와요. 

Q. 자주 교류하시는 지인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 친구들이 많은 편인데, 문인들이나 고양이 기르는 친구들? 

Q.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작가님께서 지금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 바라는 게 있으신지요?(인터뷰를 위해 만난 날도 황인숙 시인은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 주셨다. 여름철 폭우나 겨울철 강추위에도 상관없이 꾸준히 계속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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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추운 날, 보광동에서 누군가 헬스장에 고양이를 버리고 갔어요.엘리베이터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고양이가 있나 보네’하고 봤더니, 헬스장 두 번째 현관문에서 삐쩍 마른 고양이가 있었어요. 이렇게 추운 날에는 그냥 두면 죽을 수도 있어요. 갖고 있던 음식을 주고, 수선 집에 맡기러 갔는데 거기가 닫혀서 서성거렸어요. 아무래도 안 되겠기에 막막해 도로 데려왔는데 어느 아가씨의 도움으로 병원에 맡기 수 있었어요. 예방 접종은 해줬는데 벌써 20일이나 됐네요. 입양 보낼 사람을 찾고 있어요. 5개월 쯤 된 남자애인데 사람을 되게 잘 따르거든요. 내가 안은 채 서성서성해도 안겨있던 애예요. 진짜 온순하고 사람을 되게 잘 따르거든요. 얼마나 굶었는지 갑자기 많이 먹은 데다 추위 속에 떨어서 병원에 가서 토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잘 먹는대요.  


인터뷰 후 집에 돌아와 책장에 꽂혀 있던, 황인숙 시인의 이전 시집을 모두 꺼내 보았다. 산문집들은 읽고 친구들에게 선물해서 갖고 있는 게 없었지만, 시집은 시 옆에 이런저런 메모나 낙서를 많이 해놓아서 소중한 기록물로, 낡은 일기장처럼 남아있었다. 밤새 다시 이리저리 들척이며 예전에 읽은 시를 되돌려 보았는데, 또 새로운 느낌이다. 
특히나 황인숙 작가의 목소리가 귀에 울려 그 음성으로 다시 읽혔다. 황인숙 시인의 목소리만으로 꾸며지는, 문학집배원의 시 배달 시즌 2, 번외편이 나와도 될 듯했다.

황인숙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동서문학상, 2004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자명한 산책> <리스본行 야간열차> 등이 있다. 장편소설로 <도둑괭이 공주>, 산문집으로 <나는 고독하다> <인숙만필> <목소리의 무늬> <육체는 슬퍼라> <해방촌 고양이> 등이 있다.  

             Webzine ARKO 2013.0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