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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의 시와 시평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8. 15. 18:03

 

시냇달 외1편

조정권

 

밤 시냇물에서 만진다 동치미 같은

겨울 달

양평해장국집에서 계산할 때

주인은 카드 대신 슬쩍달만 받고 만다

 

 

비망록

 

소나기의 수첩을 열어보니

진주가 가득 들어 있다

파초잎사귀에서 주운 진주알들 사려어!

 

 

<근작시>

겨울 주례사 외2편

 

언 호숫가 겨울나무가 서 있다.

흰 눈의 면사포를 쓰고 있다.

눈이 온다.

일생 겨울숲 속에서 밑둥은 얼어있을 것이다.

바람 속에서

견디고 있는 마음과

벌서고 있는 마음

진정 두 마음은 한마음임을 약속하겠는가.

 

참나무 숲에서 거절당하다

 

바람의 제자가

겨울 속으로 찾아가 문안드렸다.

참나무 숲이 말했다.

아무리 빈궁해도

난 이 겨울추위를 장작으로 팔지 않았다.

나는 추위로부터 자유로워 했지만

추위가

나를 평생 구속했다는 것을.

 

 

시는 큰 부채 속에 얼음을 담아

세상을 부치신다.

 

 

조정권1970년 『현대시학』 등단.시집 : 『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 『신성한 숲』, 『떠도는 몸들』 외한국시협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질마재문학상현 : 경희대사이버대 문창과교수

 

 조정권론

불굴不屈과 낭만의 미학- 조정권 시에 대하여

 

 

장무령

 

 

조정권의 시는 ‘겨울’을 견딘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증거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이해득실의 셈법으로 가시화되는 일상 세계의 비루함을 통박하고, 시류의 흐름에 결코 훼손되지 않는 절대 진리를 지향한다. 그러한 존재는 시의 유혹에 맞서 스스로를 가혹한 동토의 세계에 가두고 일관된 의지를 견지한다는 점에서 지사적 풍모를 지닌다.

니이체에 따르면 정신의 억센 힘만이 가장 무거운 짐을 요구한다.1)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의 정신을 가진 자만이 외경畏敬적인 존재이다. 세속의 이해득실을 차단하고 오로지 가장 높은 차원의 고결함을 지향하는 태도, 그러기위해서 그것을 방해하는 불순함과 단한 치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견지하는 조정권 시의 존재들은 그래서 외경적이다. 숭고하다.시인이 동토의 지대를 견디며 보고자 하는 것이란 개체성을 넘어서 모든 사물의 지향점이 되는 ‘진리’이다. 이때 ‘진리’는 인간의 말초적 욕망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일상이란 인간의 말초성이 집요하게 뿌리를 내리는 세계이다. 그것으로부터 가장 멀리 나아가기. 그래서 절대불변의 ‘이데아’를 지향의 꼭지 점에 은 존재, 시인이다. ‘겨울’의 추위가 강할수록 그 속에 존재하는 시적자아가 시선을 향하는 쪽의 이데아는 더욱 뚜렷이 빛을 발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시적 자아의 생명력은 동토의 땅과 대비되어 강하게 생동한다.

 

시는 큰 부채 속에 얼음을 담아

세상을 부치신다.

 

                                     - 「시」

 

세속은 가시적인 이해득실의 셈법이 목적이 된 세계이다. 이러한 세속에서 의미 있는 것은 당장의 셈법으로 구체화 될 수 있는 것들뿐이다. 이해득실의 계산법을 벗어난 높은 차원의 말들은 비현실적이거나, 비실용적인 허상으로 용도 폐기된다. 이때 인간은 이해득실이 노리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된다. 그러므로 세속의 인간은 자신의 본래적인 인성을 상실한 존재이다. 세속의 시류에 부합하기 위해 능수능란하게 겉모습을 탈바꿈시키는 재주가 한 인간의 본래적 모습으로 가치 전도된 세계는 고정 불변의 이데아가 동결된 겨울의 세계이다. 이를 직시하고, 겨울 속에서 그것에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이데아를 향한 생명 의지를 견지하는 것이 바로 “얼음을 담아 세상을 부치”는 조정권의 시이다.

 

조정권의 시에서 아름다움이란 다름 아닌 세속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는 곳에서만이 발견된다. 세속의 억압에 맞서, 그 보다 높은 차원의 진리를 지향하기, 이를 통해 수치적 계산의 논리가 보잘것없는 잠시잠깐의 욕망의 발로라는 것을 조정권 시는 말한다. 다음의 시도 그러한 경우이다.

 

소나기의 수첩을 열어보니

진주가 가득 들어 있다

파초잎사귀에서 주운 진주알들 사려어!

 

                                   - 「비망록」

 

조정권 시의 비망록에 적혀 있는 아름다움은 “소나기”의 과정을 지나온 “진주알”의 아름다움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과 접한 가공력加工力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 무위의 순리가 만들어 낸 결정체로서의 “진주알”이 진주알다운 진주알이다. 즉 조정권의 비망록은 “진주알”같이 가장 본래적이며 그러므로 불변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기록한 언어로 채워진다. 조정권의 비망록을 우리가 펼친다는 것은 곧, 상황 논리에 따라 유동하는 세속의 변덕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비가시적이나 엄존하는 것들의 비경을 살피는 경우에 해당된다. 이러한 비경이란 모든 사실의 시작점이었던 절대 진리의 자리인 이데아를 향한 불굴의 의지를 지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조정권의 시의 비경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들의 풍경이다. “겨울”의 가혹함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시간의 자장밖에 은폐되어 있는 비가시적, 비경제적인 진리를 인간 삶의 궁극적인 원리로 환원한다. 물론 이는 현실을 지배하는 세속적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이에 따른 가혹한 고통을 감내해야한다. 이러한 존재의 여정은 일상의 범주에서는 거의 실패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향한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 성공 유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세계의 본의를 얻으려는 의지만으로 현실의 고통을 견디는 것.

이러한 존재들에게서 발현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기가 조정권의 시이다.즉 산소가 희박한 산정 지대에서 메말라 있는 나무 같은 존재의 아름다움을, 세찬 “소나기” 줄기의 억센 채찍으로 단련된 “진주알”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이다. 이는 다음의 시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언 호숫가 겨울나무가 서 있다.

흰 눈의 면사포를 쓰고 있다.

눈이 온다.

일생 겨울숲속에서 밑 둥은 얼어있을 것이다.

바람 속에서

견디고 있는 마음과

벌서고 있는 마음

진정한 두 마음은 한마음임을 약속하겠는가.

 

                                                             -  「 겨 울 주례사」

 

 

“겨울나무”가 의미 있는 이유는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벌서고” 있기 때문이다. 세속에서 “진정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선, 세속이 요구하는 셈법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이는 곧 세속의 현실적인 유혹으로부터 엄동설한의 지역으로 스스로를 유폐하는 행위이다. “일생 겨울 숲속에서 밑 둥”까지 얼어가며 ‘견디고/벌서는’ 것이다. 시적 자아는 이 고난의 길을 택한다. “진정한” 것이 그 속에서만이 찾아지고 지켜지기 때문이다. 자기의 현실적인 모든 것을 상실할 지도 모를 가혹한 “겨울”의 시간을 향해 서슴없이 걸어가는 행위는 장엄하다. 개인의 이해관계를 지우고 호수가 얼어붙은 시간을 서로를 향해 다가서기 위해 견디는 것, 진정한 마음의 합이다.왜 면사포가 “흰 눈의 면사포”여야 하는지의 이유이다.

 

즉 흰 눈 같은 깨끗함을 얻는 것은 엄동설한의 추위를 견뎌야 만이 가능하다. “겨울”을 견디는 의지의 힘을 전제했을 때 비로소 절대 불변하는 진정한 마음의 합인 면사포가 가능하다는 것, 시 「겨울 주례사」의 의미이다.결국 시인의 주례사는 “진정한” 것을 위해 자신의 밑 둥을 얼리는 과정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자만이 지닐 수 있는 품격을 말한다. 이전투구가 삶의 원칙이 된, 그래서 현실의 논리로 가늠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를 한낱 관념적인 허상쯤으로 치부한 가혹한 현실 세계에서 절대적 진리 즉 이데아를 향한 자신의 의지를 견지하는 것. 설사 그러한 자신의 의지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가는 것을 조정권의 시는 “진정한”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조정권 시의 아름다운 존재들은 지사적이다. 이러한 지사적 아름다움이 변주되는 시가 다음의 「참나무 숲에서 거절당하다」이다.

 

바람의 제자가

겨울 속으로 찾아가 문안드렸다

참나무 숲이 말했다.

아무리 빈궁해도

난 이 겨울추위를 장작으로 팔지 않았다

나는 추위로부터 자유로워했지만

추위가나를 평생 구속했다는 것을.

 

                                             - 「 참나무 숲에서 거절당하다」

 

 

“아무리 빈궁해도” “장작”을 팔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득실의 현실적인 셈법과는 무관한 차원을 삶의 원리로 삼는다는 것이다. 지향하는 삶의 모습은 추위를 회피하기 위해 자기 의지를 꺾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얼어붙는 것이다. 그 가혹한 동결 속에 불굴의 생명이 내재한다. 생명다운 생명이란 세속의 이해득실의 달콤함을 단호하게 ‘거절’했을 때만이 가능하다. 참나무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가혹한 추위에 “평생 구속” 당하며, 불굴의 생명을 지켰기 때문이다. 물론 불굴의 생명력으로 뻗는 방향은 일상의 차원, 가시적인 차원을 넘어선 이데아의 세계이다. 이데아를 향한 불굴의 의지는 인색한 현실에 낭만성을 끼어들게 하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밤 시냇물에서 만진다.

동치미 같은겨울 달

양평해장국집 계산할 때

주인은 카드 대신 슬쩍달만 받고 만다.

 

                                            - 「 시냇물」

 

현실 차원을 뛰어 넘은 이데아를 지향하는 정신에는 낭만적인 것 또는 풍류적인 것과 연결되기 쉽다. 이해득실의 법칙을 거절하며 세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양평해장국”집이라는 세속에 존재하는 시적 자아가 발견하는 삶의 원리가 “돈”이 아닌 “달”로 대치되기 때문이다. 계산을 “달”로 하는 방식이란 세계의 진면목을 현실적인 셈법을 박차고 하늘로 상승한 탈일상적인 낭만에서 찾는 삶의 방식이다. 본질적인 것을 가리는 현실의 논리에 대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담보로 하고 맞서는 단호한 저항과 거부라는 불굴의 지사적 풍모와, “카드”로는 절대 밝혀지지 않는 세계의 진면목이 “겨울 달”로써야 비로소 환히 비춘다는 낭만성과 궤를 같이한다. 불굴의 정신과 낭만의 미학이 현실의 개별적인 셈법을 뛰어 넘어 세계의 심급을 향하는 것으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맞통한다.

 

그러므로 조정권의 이번 시는 불굴과 낭만의 미학으로 빚어진 시라 할 수 있다. ‘겨울’의 혹독함을 견디며 절대적 진리를 견지하는 불굴의 정신과 삶의 진리를 수단에 불과한 자본의 차원이 아닌 인간의 본원적 감수성에서 찾는 낭만성이 조정권 시의 두 축을 형성하고 있다.

 

 1) 프리드리히 니체, 황문수 역,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문예출판사, 1975, p.42.

 

장무령1999년 『작가세계』 등단.시집 : 『선사시대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현 : 『시평』,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