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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을 뚫고 걸어가는 담쟁이의 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 1. 19:56

 

덫을 뚫고 걸어가는 담쟁이의 시

 

나호열(시인,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현대시의 배경에 대하여

 

한 편의 시가 풍경 하나를 슬며시 보여준다면 한 권의 시집은 그 풍경 속에 음각되어 있는 한 사람을 보여준다. 말 할 것도 없이 그 한 사람은 시인 자신이다. 시는 시인의 독백이며 그 시인은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시 속에 자리잡는 것일텐데, 편편의 시들이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일 때는 어쩔 수 없이 그 가면은 무력화되고 시인의 면모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시가 시인의 독백이라 할 때 그 중얼거림의 첫 번 째 청자 聽者는 시인 자신이겠지만 이미 창작의 행위에서 타자 他者를 지향하는 의식을 배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독백은 자연스럽게 불특정, 미지의 독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가면은 감정의 과잉을 방지하고 독자들의 긴장을 유지시키면서 시가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의 객관성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장치인 것이다. 이 가면의 공고한 탈착 여부를 놓고 시와 시인에 대한 평가를 가늠하는 것이 일반화된 의식 儀式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창작물과 그 창작물을 생산한 작가는 설탕물과는 달리- 혼합물이 아니라- 화합물인 까닭에 가면에 들러붙어 있는 작가의 정신까지 분리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본다면 새로운 정황에 부딪칠 수도 있다. 그 새로운 정황이란 시인이 포용하고 있는 세계관 내지는 인생관의 문제이다. 일군의 독자들은 한 권의 시집 속에서 다양한 풍경과 새로운 메시지와 조우하기 바라며 또 일군의 독자들은 자신의 정서와 일치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존재 - 시인, 작품 -를 향유하기 바란다. 우리가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일일이 교유할 수 없듯이 창작행위나 창작물과의 마주침은 우연과 영감에 기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창작자(시인)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작품 속에는 창작자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스며들어 무늬로 물결처럼 아로새겨지는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작동원리를 체득하고 그 작동원리에 의거하여 자신의 삶을 반응하는 행위의 자각은 예술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다. 이 기민한 촉수는 망원경을 통하여 우주의 상상력으로 뻗어나가거나 현미경을 통하여 미세한 생명의 숨결을 찾는 과학적 분석의 길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 현대시는 다양다지한 국면에 마주치게 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20세기는 과학의 급격한 발전이 이루어진 시대였으나 그 앎의 증대만큼 인간의 무지가 증대될 수밖에 없다는 불확정시대의 암울함과 마주쳤던 불우한 시대였다. 그 반향으로 의식의 해체와 필연의 법칙에 대한 불신은 포스트모던의 길을 열었으며 그와는 반대로 자연과 자연의 법칙에 대한 외경과 안도로 가는 길로 나누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시에 관련지어서 생각해 볼 때 이 두 길 사이의 스펙트럼은 건너지 못할 강처럼 폭이 넓다. 다른 말로 한다면 이 두 길의 불화는 수많은 오해와 편견을 만든다. 이 불화는 서정에 대한 정의의 차이에서 오거나 시대적 환경에 대한 대응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 문제가 증폭되어 시의 정의 문제까지 확대되어 가기도 한다. 이 인식의 차이를 빌미삼아 시의 우열을 따지거나 시인의 품격을 논한다는 것은 어리석고 치졸한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우주,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다소 장황하게 여러 국면들을 살펴보는 이유는 시인 박명숙의 시집 『우레와 같은 침묵』을 친구로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일면식도 없는 한 시인의 세계와 마주한다는 일은 면벽하고 그 벽 너머의 침묵과 대화하는 일에 다름이 아니리라.

 

서정의 시학

 

시집 『우레와 같은 침묵』을 일별하면서 평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박명숙 시인의 시관 詩觀을 몇 가지로 정의한다면 첫 째, 전통적 서정의 미화, 둘 째,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삶의 허무의식, 셋 째, 정화 淨化의 시학으로 감히 나누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짧게나마 그 하나하나의 징표를 살펴보면 궁극적으로 시인이 지향하는 바가 선연히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면서 글을 이어가기로 한다.

 

먼저 서정 抒情에 대해 이야기 해 보기로 하자. 동양적 사고의 근간은 인간과 자연을 이분적 대립 구조로 보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자연, 인격화된 자연관은 자연과 자아와의 합일, 동화 同化를 이끌어내는 것이었으므로 마땅히 서정 抒情은 인간 감성의 발로인 동시에 자연물의 발언이기도 하였다. 물질을 재화로 환치하는 시대적 추이, 과학의 발전으로 말미암은 물질과 정신을 나누는 서구적 사고가 일반화되어 있는 요즈음의 사태는 전통적 서정이 그 위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시인들이 흠모와 영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꽃’이 수컷의 성기에 해당된다든지, 고고하고 상승의 의지로 표상되는 나무들이 수종 樹種간의 치열한 생존의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든지, 예지와 그리움의 상징인 별이 암석 덩어리라든지 하는 과학적 예증은 전통적 서정시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에 있어서의 서정은 기계화된, 즉물적 감성을 벗어나 “시를 쓰고 싶다는 정서 그 자체”이다. 한 마디로 현대시는 서정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서정시의 위상은 폄훼될 수 없다. 사유의 방식을 유물론적 관점에서 보다는 것은 인간을 감성이 제거된 기계화된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레와 같은 침묵』에 수록된 다수의 시편들은 꽃, 비, 바람, 눈과 같은 자연현상을 모티브로 하고 있음을 볼 때 시인이 지향하는 바가 물신화된 세계, 감성이 고갈된 세계를 한사코 거부하는 몸짓임을 알 수 있다. 시 「폭포」를 예로 들어 본다. 「폭포」의 주제는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시인이라면 누구나 쓰고 싶은, 절절한 주제이면서 새로울 것이 없는 대상이다. 가없는 희생, 가녀림 속의 강인함의 모성을 누가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 수많은 어머니를 묘파한 시편 중에 새로운 감성, 새로운 어법, 새로운 발상을 갖춘 시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끝없이 소리치는 저 깃발

바위에 부딪쳐 깨지고 찢어져도

의연하게 발 내딛는

눈부신 파편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의 속가슴

항시 그것이었죠

 

천둥치듯 억장 무너져도

 

결코

내려놓을 수 없어

소리치는 깃발

어머니

 

- 시 「폭포」 전문

 

시인은 쉬임 없이 낮은 곳으로 떨어지며 분쇄하는 폭포를 어머니의 본성으로 치환하는 동시에 바람에 의해서만 펄럭일 수 있는 깃발의 이미지, 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미를 투입함으로써 기존의 ‘어머니 시’들이 지니고 있는 수동적, 운명적 자세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신선함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 서정이 낡은 것, 고리타분한 회상조라는 편견은 이 한 편의 시로 말미암아 깨끗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되어 지는 것이다.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삶의 허무의식

 

시집의 표제가 암시하듯 『우레와 같은 침묵』은 불교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한 마디로 석가세존의 가르침은 이 세상에 자아가 없으며(緣起說), 이 세상에 항상된 것은 없으며, 그러나 집착된 자아, 고형화된 욕심을 털어낼 수 있는 열반적정 涅槃寂靜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열반이 무엇인가? 육도선회하는 삶을 영원히 끊고 영원한 죽음의 해탈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 「우레와 같은 침묵」은 선사 禪師 법정 法頂의 다비식을 통해 삼법인 三法印의 경지를 묘파한 가경 佳景이다. 말이 쉽지 무소유의 경지를 범인으로서 체득하고 실천한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화염에 들다

다비식

홑저고리

홑이불

댓쪽 얼키설키 엮은

평상

관도 없이

훨훨 훨훨…

하늘로 하늘로 치솟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뜨거운 불꽃!

 

바람도 손 모으는가

둘러선 우뚝한

거목들마저

가만히

숨 죽인다

 

화중생연(火中生蓮)

 

선하디선한

찬란한 이 불꽃!

불길 서로 다독여

곱디곱게

오직 한 길로 다 태운다

 

지식

황금

권력

독차지하는

무리

사랑으로 가르치신

 

“무소유(無所有)”

 

우레와 같은 침묵

열반의 미소!

- 시 「우레와 같은 침묵」 전문

 

 

시인 박명숙은 오욕칠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을 ‘덫’의 세계로 인식한다. 부모로부터 내려받은 이 생명이 덫이고, 이 생명에 깃든 욕심이 덫이다. 더 나아가서 자신이 걸어다니는 덫이 되어 탐진치 貪瞋痴의 三毒으로 악업을 쌓을 지도 모른다는 통렬한 자각이 절망의 끝이고 희망의 시작인 것이다. 접해 보지는 못하였으나 이미 몇 권의 시집 중에 『덫』이라는 시집을 상재한 바 있는 시인이 이번 시집에도 ‘덫’ 연작 스무 편을 올려둔 것을 보면 냉철하게 현실의 삶을 허무 그 자체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삶의 허무의식은 시인 박명숙에 있어서는 극복하기 위한,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희망의 대척점에 놓여있는 과제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매일 밥은 먹어도/밤마다 잠은 자도/이 하늘 아래 땅/되지못해/늘 비틀거리는/한심한 /아낙- 시 「덫 46」 전문”으로 자신을 한탄하다가도, 초대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손님같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간밤 잠 빼앗던/신경통증/어김없이/비가 오려고 또 그렇게 몸부림쳤나 -시 「덫 34」부분”그러나 끝내 근기를 내려놓지 않는 시적 태도는 시인이 결코 하무 그 자체에 함몰되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기에 마음이 든든한 것이다.

 

겨울이 봄 위해 도를 닦는

것이라

누가 말했나

얼음짱 밑으로

살아있는

물소리 들어보면 아는 걸

- 시 「덫 29」 전문

정화 淨化의 시학

 

전통 서정시의 영역이 이 천 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위력을 상실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일부 원로시인들이 ‘극서정시’의 기치를 새로이 주창하는 것도 전통 서정시의 퇴조를 우려하는 모습일 것이다. 사랑하는 방식은 달라도 사랑 그 자체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운 가치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전통 서정시의 일시적인 퇴조 현상은 막을 수 없을지 몰라도 그 가치조차 소멸되어야 한다는 극단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명숙 시인이 추구하는 서정시의 밀도는 더욱 심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시인이 생각하고 있는 ‘시의 정의’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미 오늘날의 현대시의 지형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나 극명하게 다시 요약해서 말하면 “시의 위의 威儀는 시인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점이다. 시의 효용이 계몽과 교훈의 전달에 있던, 자아의 정화에 있던 그 경중은 오롯이 시인 자신만의 몫인 것이다. 시는 말로써(言)과 시인이 붙잡고 싶은(持)뜻을 전하는 것이다. 시인 박명숙은 외로울 때, 슬플 때, 기쁠 때 시에게로 달려간다. 이 때의 시는 시인에게 있어서 고해소이고 사원 寺院이 된다. 다른 말로 한다면 박명숙 시인에게 있어서의 시는 마음을 복사하고 뜻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적 행위를 넘어서는 기도이다. 그 기도의 핵심은 시인이 시인 자신에게 던지는 약속에 다름 아니다.

 

지구는 둥굴다 했지

둥글어서 끝이 없다 했지

달도 기울면 다시 찬다 했지

별은 영원한 그리움

영원한 짝사랑이라 했지

 

아무리

말 많이 해도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사랑해

미안해

잘못했어

더 잘할게

- 시 「약속」 전문

 

약속에는 말의 군더더기가 필요 없다. 교언영색은 더욱 그렇다. ‘사랑해/미안해/잘못했어/ 더 잘할게’ 이보다 더 큰 간절함이 있을까? 이보다 더 깊은 울림이 있을까? 박명숙 시인의 시집 『우레와 같은 침묵』은 한 개인의 희노애락을 드러내고 있으나 감상 感傷에 치우치지 않고 종교적 달관을 추구하면서도 ‘덫’이라는 화두를 놓치 않는 치열한 구도의 정신을 담아내고 있으며, 존재의 아픔을 존재의 속성으로 치유하려는 강열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시집임에 틀림 없다. 『우레와 같은 침묵』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시 「담쟁이」는 시인이 걸어온 길인 동시에 앞으로 걸어가야 할 시의 길임을 독자들과 함께 읽으며 오래 기억하고 싶다.

 

오직 한 길 목숨줄 잡고

끝없이 기어오르는 손끝

 

가녀린 핏줄

풀물 들어 애잔함

방울방울 툭 떨어지듯 봄이 오고

 

지는 해 끌어다

짙푸른 물 들여

숲의 감옥으로 깊어가는 한여름

 

가을에도

겨울에도

또 오르다 보면

 

손끝 갈퀴 되어

 

마침내

기어오를 수미산

- 시「담쟁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