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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이야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7. 3. 4. 14:06

  야생화 이야기

                                                  이 재 형

 겨울로 접어드는 11월 말의 늦은 밤 시간이다. 아직 난방이 본격적으로 들어오지 않는 교실은 제법 두껍게 껴입은 옷에도 불구하고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질 만큼 썰렁하다. 하지만 그건 처음 교실에 들어설 때의 느낌일 뿐 수업이 시작되고 화면에 시리즈 별로 야생화의 화려하면서도 앙증맞은 모습들이 나타나면 제법 큰 교실 안은 꽉 메운 학생들의 열기로 금방 후끈 달아오른다.
 한 달째 배우면서 자연히 알게 된 바로는 수강생 중에 영종도에서 오는 부부도 있고 모녀가 함께 오는 사람도 있으며 특히 색다른 것은 여느 사회교육 현장보다 남자의 수가 많아서 총 인원의 반을 넘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줄잡아 40명을 넘는 많은 사람들이 과연 무엇 때문에 야생화 강의에 이렇듯 관심을 가졌는지 은근히 궁금해서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각자에게 한 사람 한 사람 따로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짐작컨대 대개가 숲 해설가이거나 수목원 같은데서 관람객을 안내하는 자원봉사의 일을 하는 분들이라는 게 그분의 대답이었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수목원 관광객을 안내하기 위해서 수목이라든가 꽃에 대하여 자신이 남다른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할 테니까.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문학 공부하랴 강연하랴 또 그런 관계로 맺어진 각종 모임에 참가하랴 바쁜 일정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定員이 다 차서 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정보 도서관측의 사절 통고를 무릅쓰고 청강생으로 등록하여 부득부득 강의를 듣고 있는 나는.
 내가 이토록 고집스럽게 야생화 공부를 하는 데에는 ‘그냥 꽃이 좋아서’라는 평범한 이유 말고 비교적 독특하다면 독특한 이유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수많은 야생화가 주제 또는 소재가 될 수 있는데 그 이름뿐만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꽃에 대하여 모른다는 것이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이다. 국화와 구절초 그리고 개쑥부장이의 구별에 자신이 없고 망초와  개망초의 구별도 확실하게 하지 못하며, 토종 식물인지 외래 귀화식물인지는 더욱 무지한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오던 터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금년 여름 타계한 원로 시인 김춘수 님은 그의 시 ‘꽃’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그처럼 꽃에 다가가 마음을 다한 이름을 불러주어 새로운 의미로 탄생시키지는 못할지언정 이미 선인(先人)들이 만들어준 이름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두 번째의 이유는 오래전에 읽었던 이웃 일본의 한 여교수의, 자연을 대하는 학자적 성실성을 본받아야하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되었다.
 

 1970년대 아사히신문의 칼럼을 모은 책 속에서 본 일화 한 토막.
 ‘달맞이꽃은 왜 밤에 피는가?’라는 제목의 글에 실린 이야기는 이렇다.
 20년간, 그 수수께끼에 도전하여 관찰을 계속한 70세의 한 여인, 사이토 미치 씨가 그 관찰의 결과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는데 그가 관찰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는 20년 전 50세의 여학교 생물학 선생이었었는데 어느 출판사로부터 어린이가 달맞이꽃에 대한 연구기록을 투고하였다며 평설을 부탁해왔다.   기록을 검토해보니 자신의 지식을 뛰어넘는 내용이어서 솔직하게 평설쓰기를 사양하고 그로부터 20년 동안 수백그루의 달맞이꽃을 연구실에서 기르면서 開花와 햇빛과의 관계, 해가 지고 나서 개화까지의 유예시간, 박각시나방이라는 야행성 곤충의 화분운반(花粉運搬), 그리고 개화 순간 잎과 줄기가 바르르 떨면서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꾸준하면서도 치밀한 관찰을 통해 알아내어 자연계가 가지고 있는 오묘한 섭리 하나를 사람들에게 알린 것이다.
 

 나는 식물학자도 생물학자도 아니다. 따라서 야생화를 본격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연구할 입장은 아니다. 그렇지만 생태에 관심을 가진 문인으로서 비교적 자주 자연을 주제로 또는 소재로 하는 글을 쓰게 될 터이니 최소한의 식견을 갖추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름모를 가을꽃’과 같은 모호한 표현을 줄여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벌써부터 내년 봄 야생화 현장학습 여행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