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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최불암 없는 '최불암 다큐'를 보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6. 5. 11. 08:33

[태평로]

최불암 없는 '최불암 다큐'를 보고

허전해서 기억 속 그를 떠올렸다
'수사반장' 본 육영수 여사의 전화
한국적 아버지 그린 '전원일기'…
웃음소리 '파하-'가 최불암 자체

입력 2026.05.10. 23:39
 
 
 
드라마 '수사반장'에 19년, '전원일기'에 23년 출연한 배우 최불암. MBC가 제작한 이번 다큐멘터리는 연기 인생 60년을 담았지만 그는 병환으로 카메라 앞에 서지 못했다. 사진은 2018년 연극 무대를 준비할 때 모습. /고운호 기자

 

지난 5일 방영된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에는 주인공이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최불암 없는 최불암 다큐라니, 아버지 없는 가정의 달 특집처럼 허전했다. 지난해 초 건강 문제로 ‘한국인의 밥상’을 떠난 배우 최불암(86)은 지금도 병마와 싸우고 있다. 쓸쓸해서 TV 전원을 껐다. 기억 속 최불암을 떠올렸다.

요즘 안방극장에는 자극적이고 뒤틀린 인간관계가 넘쳐나는 반면, 가족의 의미나 훈훈한 인간애는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 최불암이 ‘전원일기’에서 그려낸 한국적 아버지, 지혜와 용기를 나눠주던 어른이 그리운 이유다. 이 드라마에서 그가 창조한 웃음소리 ‘파하-’는 노모가 건넌방에 계시는데 크게 웃을 수 없어 웃음을 삼키다 비롯된 것이다. 어른을 향한 배려와 자식 된 도리가 녹아 있다. ‘파하-’가 최불암 자체라고 생각한다.

 

1972년 어느 일요일, 최불암의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청와대 부속실이라고 했다. 잠시 기다리니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쪽에서 “최불암씨, 저 육영수예요”라고 했다. 최불암은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 부부는 드라마 ‘수사반장’을 즐겨 봤는데, 그날 ‘수사반장’을 시청하곤 박 반장(최불암)에게 전할 말이 있었던 것이다.

수화기 너머 육영수 여사가 물었다. “드라마에서 담배를 몇 대 태우시나요?” 상황 전환용으로 넉 대를 설정했다고 최불암은 답했다. “아이고, 저 양반도 그렇게 한 50분 동안 넉 대를 태우세요. 저 양반 피우는 건 아무 상관이 없는데, 다들 따라 하면 국민 건강이 염려됩니다. 흡연 장면을 조금 줄이면 어떨까요?”

'수사반장' 3인방 故 조경환, 故 김상순, 최불암(왼쪽부터) /조선일보DB

 

다정하면서도 단호한 부탁이었다. 인터뷰와 회고록에서 최불암은 그 전화가 평생 교훈이 됐다고 했다. 최고 시청률 70%를 찍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국민도 따라 할 수 있다는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 후 ‘수사반장’에서 박 반장의 흡연 장면은 사라졌다. 육 여사가 금연 캠페인을 선구적으로 한 셈이다.

최불암의 모친은 서울 명동에서 은성(銀星)이라는 주점을 운영했다. ‘명동백작’으로 불린 소설가 이봉구, 시인 변영로·김수영·박인환, 화가 김환기 등 예술인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유품을 정리하던 최불암은 외상 장부가 가득한 궤짝을 발견했다. 손님 대부분이 유명 예술인이었으니, 외상값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장부는 암호투성이였다. 코주부, 백대가리, 안경잡이, 짱구…. 외상값 옆에 이름 대신 별명을 적어둔 것이었다. 수금은 당연히 불가능.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단골들의 자존심을 배려해준 어머니의 깊은 뜻을 그제야 깨달았다.

 

‘한국인의 밥상’으로 10년 넘게 매주 전국을 돌 때 최불암은 “어딜 가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똑같았다”고 했다. 그가 맛본 음식은 진수성찬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어려운 시절에 가족을 먹이기 위해 어머니들이 궁핍한 식재료로 지혜를 짜내 만든 것이었다. 최불암은 “밥상을 받을 때마다 이 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어머니들 덕분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가정의 달에 최불암 없는 최불암 다큐를 보다 한국 사회가 상실한 것, 아쉬운 것, 그리운 것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진지하고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국민 아버지 이미지는 ‘최불암 유머’라는 반전 코미디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최불암은 “앞서 간 명배우들을 떠올릴 때마다 새삼 두려워지는 것은 지금의 후배들이 보고 있을 나의 뒷모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느 분야에나 통할 금언(金言)이다. 배우의 쾌유를 빈다.

'파하, 최불암입니다' 방송 화면. 최불암은 나이도 옷처럼 자유롭게 갈아입을 줄 아는 배우였다. 노역(老役)이 일찍, 그리고 오랫동안 맡겨졌다.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