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과 표심의 제물…문화가 만만한가
중앙일보입력 2026.05.07 00:14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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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탄핵으로 막을 내린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정농단의 주 무대였다. 최순실에게 발탁된 CF 감독 출신 차은택이 당시 ‘문화계 황태자’로 불렸다. 차은택은 자신의 친척·은사·지인을 정부 요직에 앉혀 이른바 ‘차은택 라인’을 구축했다. 그의 외삼촌인 김상률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그의 지도교수였던 김종덕이 문체부 장관으로, 그의 광고계 선배인 송성각이 한국콘텐트진흥원장으로 임명됐다. 측근 인사를 통해 정책과 예산을 주무르는 컨트롤 타워를 완성한 셈이었다. 이후 문화예술계를 발칵 뒤집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도 이들은 실행 및 관리를 담당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이어진 국정농단 재판에서 이들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비난 들끓어도 코드인사 강행
선거철 노린 한예종 이전 시도
예술은 사회의 생명 유지 장치
홀대했다간 국가경쟁력 훼손

지난달 21일 문화연대ㆍ한국작가회의 등 문화계 인사들이 현 정부의 문화예술 인사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상조 기자
자기 사람을 요직에 앉히고 승리에 기여한 이들에게 보은 인사로 화답하는 것은 정치권력의 자연스러운 생리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권력의 본능이 정권의 성향을 막론하고 유독 문화예술 분야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문화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는, 그 정도 문화생활을 하는 인사라면 누구나 문화 행정 업무쯤이야 해낼 수 있을 것이란 안일한 인식이다.
‘형수 욕설’ 옹호 황교익 “내 덕에 홍보”
문화예술 기관장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코드 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현 정부의 지지세력이었던 진보성향 시민단체 문화연대조차 ‘밀실 인사’ ‘셀럽 인사’ ‘보은 인사’라고 비판했을 정도로 인사 전횡의 수위가 높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서승만 국립정동극장 신임 대표는 2021년 “대장동 개발 씹는 애들, 대선 끝나고 대장암이나 걸렸으면 좋겠다”며 친명 성향을 드러냈던 코미디언 출신이고, 황교익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신임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형수 욕설’ 문제에 대해 “욕하는 사람이 많은 환경 속에서 살다 보면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쓰게 된다”고 옹호했던 맛 칼럼니스트다.
이들의 임명 사실이 알려진 뒤 비난 여론이 들끓었지만 당사자들은 “비난은 짧고 예술은 길다”(서승만), “우리 연구원 홍보에 내가 역할”(황교익) 등 꿋꿋한 발언으로 응수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 역시 지난달 30일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회의에서 “문화예술계는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분야인 만큼, 인사 대상자에 대한 과도한 공격이 이어지는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며 비난 여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밝혔다. 60%를 넘나드는 대통령 지지율의 기세를 믿고 여론을 무시하는 오만한 행태다. 내 편을 챙겨주는 ‘화이트리스트’는 네 편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그 결말은 파국이란 게 역사의 교훈이지만 권력은 늘 이를 망각한다.

지난달 28일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한예종 광주 이전 법안 발의에 대한 반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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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앞두고 난데없이 튀어나온 한국예술종합학교 광주 이전 문제도 정치권의 문화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인사 전횡과 결을 같이 한다.
한예종은 일반적인 공공기관이나 행정 부처와는 성격이 다르다. 예술 교육에는 주변 인프라와의 유기적 결합이 필수다. 수도권에 밀집해있는 공연장, 갤러리, 제작 현장과 단절되면 경쟁력을 잃을 위험이 크다. 학생들이 “문화예술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라며 반대 집회에 나선 배경에는 지역구 표심만 계산하는 정치적 근시안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지난달 28일 집회에서 학생들은 “연간 공연 티켓 판매액 중 수도권의 비중이 82.7%에 달하고, 전업예술인의 50∼60%가 수도권에 거주한다”며 “정부의 서울 쏠림 현상 방기의 책임을 왜 한예종이 져야 하냐”고 따져 물었다.
예체능 시간에 자습했던 시절 여파인가
1992년 설립된 한예종은 전문 예술인 양성에 특화된 학교다. 부족한 예산에 변변한 교사(校舍)도 없이 출범했지만, 임윤찬·김기민 등을 길러내며 오늘날 세계가 경탄하는 K컬처의 요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예종 설립은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선생이 퇴임 직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천재가 있으면 특별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역설해 관철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선생은 타계 한 달 전인 2022년 1월 중앙일보와 마지막 인터뷰를 하면서 한예종 학생들을 향해 “너희들은 이 사회의 산소호흡기야! 떼면 죽어!”란 말을 남겼다.
예술을 공동체의 생명 유지 장치로 본 선생의 말이 무색하게도, 문화를 논공행상과 표심의 수단으로 여기는 권력 앞에서 예술은 구색 맞추기용 장식품 취급을 당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거철마다 진통을 겪는, 정치권의 만만한 타깃이 돼버렸다.
왜 문화예술이 이런 대접을 받게 됐는가. 그 원인을 파고들다 보면, 현재 의사 결정권자들의 청소년기였던 1980년대 교실 풍경이 떠오른다. 입시 위주의 당시 교육 현장에서 음악·미술·체육은 주변부 과목이었다. 시험 기간이 닥치면 예체능 수업이 자습시간으로 대체되기 일쑤였다. 이런 ‘문화맹(文化盲)’적 인식이 문화를 정치의 하위 범주로 취급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토양일지 모른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늘 권력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더욱이 이제 문화는 그 자체로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다. 문화예술에 대한 홀대가 국가의 미래 먹거리 기반마저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할 요즘이다.
이지영 문화스포츠부국장 jylee@joongang.co.kr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6272
[이지영의 문화난장]
보은과 표심의 제물…문화가 만만한가
중앙일보
입력 2026.05.07 00:14
최근 문화예술계에서 어떤 논란이 있었나요?
최근 문화예술계에서는 정부의 인사 결정과 정책 추진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있었습니다. 🧐 대표적으로 코미디언 출신 서승만 씨가 국립정동극장 대표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으로 임명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친정부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발언들로 인해 전문성이나 자질에 대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한,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를 광주로 이전하는 문제가 갑자기 제기되어, 문화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학생들과 예술계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왜 문화예술 분야에서 유독 이런 정치적 인사 논란이 반복되는 건가요?
문화예술 분야에서 정치적 논란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문화 전문성에 대한 존중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됩니다. 🧑🎨 많은 정치인들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정도의 문화생활을 하면 누구나 문화 행정 업무를 할 수 있다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 씨에게 발탁된 차은택 씨가 자신의 인맥을 정부 요직에 앉혀 '차은택 라인'을 구축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주도했던 것처럼, 자기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혀 정책과 예산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정권의 성향과 관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문화예술계를 정치적 보상이나 선거 전략의 대상으로 여기게 만드는 토양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인사와 한예종 이전 문제에 대해 어떤 다른 의견들이 있나요?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
먼저, 논란의 중심에 선 당사자들의 의견입니다. 서승만 대표는 “비난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말했고, 황교익 원장은 비판 여론이 오히려 “우리 연구원 홍보에 내가 역할”을 한 것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정부 측에서는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2026년 05월 07일 기준 전월) 30일 회의에서 “인사 대상자에 대한 과도한 공격이 이어지는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며 비판 여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반면, 비판적인 목소리도 높습니다.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인 문화연대조차 현 정부의 인사를 ‘밀실 인사’, ‘셀럽 인사’, ‘보은 인사’라고 비판했습니다. 한예종 학생들은 “문화예술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라며 반대 집회를 열었습니다. 학생들은 지난달(2026년 05월 07일 기준 전월) 28일 집회에서 “수도권에 공연장, 갤러리 등 인프라가 밀집해 있는데, 이와 단절되면 학교의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며, 수도권 쏠림 현상 방치에 대한 책임을 왜 한예종이 져야 하냐고 주장했습니다.
문화예술을 정치적 수단으로 여기는 현 상황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그에 따른 경고는 무엇인가요?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이 역사의 교훈을 잊고 있다는 점입니다. 📜 자기 편을 챙기는 '화이트리스트'는 결국 반대편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로 이어져 파국을 맞이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의 배경에는 문화예술을 정치의 하위 개념으로 취급하는 '문화맹'적인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의사 결정권을 가진 세대가 입시 위주 교육 속에서 예체능 과목을 등한시했던 1980년대의 교육 환경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고 분석됩니다.
이에 대한 경고는 명확합니다.
🚨 문화는 그 자체로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예술이 권력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다면, 이제는 문화예술에 대한 홀대가 국가의 '미래 먹거리'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현실적인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예술을 정치적 논공행상이나 표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태도에 대해 더욱 큰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sum-article/25426272?type=u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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